테마 기행 / 음악은 그리움과 소망으로 가득한 시공간
순수로 빚는 예술
음악은 소리를 바탕으로 이루어진 시간 및 공간예술의 하나입니다. 각각 특징이 다른 여러 가지 음향현상이 길고 짧게, 혹은 높고 낮게 다듬어지고 정해진 질서 속에 유기적으로 짜 넣어져 일정한 시공간 안에 펼쳐집니다.
다른 예술과 같이 음악도 시대의 변천과 함께 전승, 변형되어 왔습니다. 특히 음악은 현실에서 울려 퍼지는 것을 전제로 하는 만큼, 사회적, 문화적 맥락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역사에 민감하게 반응하여 왔습니다.
짧은 행동반경 안에서만 생활하던 고대나 중세에는 멀리 다른 문화로부터 들어오는 음악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전통을 굳게 지키면서 시대에 따라 조금씩 변화하는 양상을 보였지만, 교통이 발달하고 동․서양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음악 역시 다른 문화 예술 과 마찬가지로 민족이나․국가, 지역을 초월하여 세계로 전파되었고, 인류문화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해 왔습니다.
서양음악에 기초한 개념에서는 음악의 3요소를 선율(멜로디), 장단(리듬), 화성(하모니)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특정한 시대 서양에서 정의된 것일 뿐 세계적으로는 선율과 장단, 이 두 가지의 바탕에 가사를 얹어 언어로 다하지 못하는 감정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삼았습니다.
실제로 잘 정리된 음악만큼 사람의 감정이 잘 전달되는 예술도 드뭅니다. 내용이 순수하고 간절할수록 듣는 이의 심금을 울려 오래도록 기억에 남게 합니다.
낯선 아메리카 대륙에 끌려와 노예로써 혹독한 삶을 살던 아프리카 흑인들이, 고향을 그리워하며 부르던 “영가(靈歌)“를 한 예로 들 수 있습니다. 아프리카 특유의 리듬감에다 프로테스탄트교회 찬송가의 영향을 받아 성립된 ”흑인 영가“는 대부분 고통스러운 현실로부터의 탈출과 그리스도교가 약속한 신앙에 의한 내세(來世)에서의 자유와 행복, 희망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그 소박하고 애절한 소리는 누구의 가슴이라도 쉽게 파고들어 온통 가슴을 촉촉하게 적셔줍니다.
멕시코 민요, 브라질 삼바, 쿠바의 맘보 차차차로 대표되는 라틴아메리카 음악들도 그 뿌리의 상당부분을 사실은 아프리카에 두고 있습니다.
동양엔 이런 일화가 있습니다. 옛날 용문의 협곡에 숲의 왕인 오동나무가 있었습니다. 머리는 들어서 별과 이야기하고 청동빛깔의 뿌리는 땅 속 깊이 뻗어 수백 년 조상들과 숨 쉬고 있었습니다. 거문고 소리를 좋아한 한 황제가 이 나무로 거문고를 만들게 했습니다. 그리고 연주자를 찾았습니다. 온 나라의 명수란 명수를 다 불러 들였으나 그들의 연주는 하나같이 귀에 거슬리는 경멸의 음조뿐, 노래와는 조화되지 않았습니다. 거문고가 거부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때 백아(伯牙)라는 명수가 나타났습니다. 그는 먼저 부드러운 손길로 거문고가 된 오동나무를 어루만지며 함께 슬퍼한 다음 거친 말을 진정시키려고 애쓰는 사람처럼 노력하더니 부드럽게 탄주하기 시작했습니다. 봄과 여름, 가을과 겨울, 그리고 흐르는 물과 산새들의 지저귐을 노래하였더니 나무의 추억은 서서히 살아났습니다. 향기로운 봄바람이 줄과 줄 사이에서 살랑거렸습니다. 춤추듯이 피어나는 향기로운 봄의 꽃들. 빗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뻐꾸기 노래 소리가 가락 속에 담겼습니다. 계곡을 흐르는 물소리도 시원한 가을을 연상케 했고, 우박도 후둑 후둑 나뭇가지를 때리며 장난을 칩니다.
탄주(彈奏)를 마쳤을 때 황홀해진 황제는 백아에게 그 거문고를 정복한 비결이 무엇인가를 물었습니다.
“폐하”
하고 백아는 말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자기들 자신의 하고자 하였기에 실패했던 것입니다. 신은 거문고에게 곡의 선택을 맡겼습니다. 연주를 하는 동안 거문고가 백아였고, 백아는 거문고였습니다.”
이 이야기는 음악에 대하여 좋은 교훈을 던지고 있습니다. 좋은 작품이란 인간 혼자의 힘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연이라든가 사랑과 같은 인간 이전의 순수로 빚어지는 예술임을 암시하는 것입니다.
놀라운 예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즐거운 나의 집>이라는 단 하나의 노래로 유명해진 존 H 페인은, 그 자신은 결코 즐거운 나의 집을 한순간도 가져보지 못했습니다.
브람스는 불에 타 죽은 어린아이를 위해서 그 유명한 <자장가(Lullaby)>를 작곡했습니다.
베토벤이 신체에 결함 없는 소년이었을 때 그의 음악성을 인정해준 선생은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특히 작곡가로서는 전혀 희망이 없다고 그를 담당했던 음악 선생님들은 이구동성 말했습니다.
세계적인 작곡가나 연주자들의 전성기는 대개 가난과 실연으로 불행한 처지였습니다. 그들은 그 속에서 아름다움을 꿈꾸고, 그리움의 화려한 꽃을 영혼의 속삭임으로 완성해 내었습니다. 때문에 아무런 배경 설명이 없는 작자 미상의 명곡에서도 우리가 진실하게 느끼려고만 한다면 작곡자가 원했던 것을 얼마든지 느낄 수 있습니다. 고향의 숨결 같은 아련한 감정이 리듬 속에 살아 숨 쉬고 있는 것입니다.
음악은 이렇게 <인간이 존재하는 소리>와도 같이 우리 곁에 있어왔습니다. 사람이 살아 움직이는 곳에 소리(노래)가 있고 율동(춤)이 있고 버릇(풍습)이 생기는 법이라고 여긴다면 음악은 세계적인 언어요, 벗이요, 진실과 순수, 그리움과 소망으로 가득한 시공간인 것입니다.
뮤직<Music>의 어원은 라틴어의 <무시카>
음악이라는 용어는 영어의 뮤직(music)에 대응해서 사용하게 된 근대적 용어입니다. 프랑스의 musique, 독일의 Musik, 이탈리아의 musica, 아라비아의 musiqa 등이 모두 그렇습니다.
본래는 노래 또는 선율을 뜻하는 용어가 있었을 뿐이었습니다. 영국의 송(song)이나 튠(tune), 프랑스의 샹송(chanson) 멜로디(melodie), 독일의 게장(Gesang) 리트(Lied)가 그것들입니다. 말레이시아에서는 레구(lagu)라 했고, 미크로네시아에서는 엘리타클(elitakl), 탄자니아에서는 님보(nyimbo)라는 용어로 소리와 율동을 표현했습니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종교음악과 세속음악을 한데 아울러 히(hy:즐거움)라고 불렀습니다. 이집트의 상형문자에서 히(hy)는 활짝 핀 향기로운 연꽃이었기 때문입니다. 또 범어(梵語)에서는 삼기타(samgita)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기타(gita:歌), 바디야(vadya:악기), 느르타(nrtta:춤)를 포괄하는 것이었습니다.
뮤직(music)의 어원은 고대 그리스어의 무시케(mousike), 라틴어의 무시카(musica)에서 찾아집니다. 무시케(mousike)는 무사이(mousai)와 관련된 형용사가 명사화한 것으로 보입니다. 무사이는 그리스신화의 주신 제우스가 기억의 여신 무시모시네를 통해 낳게 한 9명의 여신으로 각각 서사시 서정시 비극 희극 음악 무용 운동 역사 천문 등을 담당했습니다. 따라서 무시케가 함축하는 내용은 시가(詩歌) 음악 무용 등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운동․시간과 관계되는 기예(技藝)나 거기에 종사할 때의 인간행동에까지 미쳤습니다.
중세로 접어들어 무시카(musica)는 이미 구비되어 있던 학문과 이론으로 더욱 그 성격을 강화하고, 나아가 자연과 우주를 지배하는 수와 그 비례원리에 착안한 하모니아론(harmonia論)으로 발전하면서 3갈래로 나누어집니다. ▲<무시카 인스트루멘탈리스> 또는 <무시카 소노라>는 목소리나 악기에 의해 표현되는 현실적인 음악을 말하고 ▲<무시카 문다나>는 모든 음악의 기초가 되었다는 우주의 음악을 가리키며 ▲<무시카 후마나>는 인간 영혼의 음악을 뜻하게 되었습니다.
이에 기초하여 무시카는 교육기관 스콜라에서 문법 수사학 변증법 산수 기하학 천문학과 더불어 자유 7과의 과목에 포함되었고 이후 유럽 음악사는 르네상스(1450~1600) 바로크(1660~1750) 고전파(1770~1820) 낭만파(1820~1890)시대를 거치면서 화려한 발전을 하게 됩니다. 한편 유럽음악은 16~20세기 식민정책의 부산물로서 유럽 이외의 지역에 폭넓게 보급되어 역사의 변천에 중대한 역할을 하였습니다.
가장 호소력 있는 감정 표현의 수단
동양에서 음악이라는 용어가 처음 쓰여진 문헌은 중국 진나라 때 만들어진 <여씨춘추(BC3세기)>입니다. 악(樂)이라는 용어가 음악의 넓은 의미로 쓰였는데 이것이 후에 ▲사물에 대해 느끼고 움직이는 성(聲) ▲그것이 변하여 형태로 나타나는 음(音) ▲그 음을 되풀이하여 즐기는 악(樂)으로 나뉘었습니다. 상형문자로서의 악(樂)은 나무(木)에 실(絲)을 친 현악기를 백(白:손톱)으로 연주한다는 뜻인데, 다른 해석으로는 나무(木)로 만든 대 위에 요(幺:騎鼓)를 2개 놓고 그것을 친다고도 풀이합니다. 어쨌든 중국에서는 악기를 연주하는 것을 악(樂)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나라의 음악에 대한 용어 매우 독특하고 독보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기악(器樂)을 악(樂)이라 한 것은 중국과 비슷하지만, 성악(聲樂)은 가(歌), 춤은 무(舞)로 애초부터 구별을 분명히 했습니다. 그리고 이 세 가지가 어우러진 마당소리를 음악적인 용어로 가무(歌舞) 또는 풍악(風樂)이라고 했습니다. 위에 열거한 유럽식의 자유 7과(自由7科)를 총괄해서는 풍류(風流)라고 했다 할 수 있습니다.
우리 음악의 뚜렷한 특징은 선율 장단 형식 연주법 등에서도 고루 돋보입니다. 먼저 선율에서 보면 한국 음악의 근원은 반음이 없는 5음계라는 점입니다. 이는 묘하게도 아프리카의 단순한 음계, 당김 음으로 된 리듬, 약동하는 비트 감각 등과 맥을 같이합니다.
선법에 있어서는 거문고나 가얏고 등 현악기의 선율진행에서 음을 흔들어 장식하는 연주기법, 즉 농현(弄絃)을 특징으로 들 수 있습니다. 이 농현 기법은 서양음악에서 종적으로 배열되어 음악적 의미를 만들어내는 하모니 기능과 비교되는 것입니다.
장단은 3박자 계통의 리듬이 주종을 이뤄 2박자나 4박자로 구성된 일본․중국의 음악과도 뚜렷이 구별됩니다. 또한 한 장단 안에서 강약의 차이에 의하여 맺고 푸는 기승전결의 구성을 보입니다. 이와 함께 장단의 강박이 음악의 첫머리에 나온다는 점도 특징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형식에 있어서는 몇몇 가곡에서 볼 수 있듯이 느린 악곡에서 시작하여 빠른 악곡으로 이어지는 점이라든지, 민요에서 느린 노래와 빠른 노래가 하나의 짝을 이루어 구성되는 점이 서양음악에서는 보기 어려운 기법입니다.
또 하나 즉흥 연주의 독특함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한국에서는 작곡자와 연주자가 뚜렷이 분리되지 않는 채 전통과 관습에 의하여 음악이 만들어지고 전승되어 왔습니다. 여기에서 생겨난 특징이 즉흥연주와 그 결과로 빚어진 악곡의 파생입니다. <아리랑>처럼 비슷한 내용을 가진 파생곡 변주곡이 많은 것이 한 예인데, 판소리에서 본래의 소리바탕에다 자신의 소리를 더 넣은 ‘더늠’이라든가 산조 연주자들이 기존의 가락에 자신의 가락을 첨가하고 새로운 음악으로 다듬어 자신의 유파를 형성하는 따위가 모두 즉흥연주의 전통에 뿌리를 두고 있는 것들입니다.
넓은 의미에서 보는 음악은, 자체로 독립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은 못 됩니다. 불멸의 작품들도 살펴보면 여러 가지 주변 영역과의 유기적인 관계 속에서 이루어져왔습니다. 고도의 자율성을 지니고 있다고 일컬어지는 현대음악도 현실에 울려 퍼지는 것을 전제로 하고 무엇인가 전달 내용을 가지고 있는 이상, 사회적 문화적 맥락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분명한 것은 음악이 다른 어떤 예술보다 호소력 있는 애환의 표현수단이라는 점이다. 사랑과 미움, 기쁨과 슬픔, 희망과 좌절, 만남과 이별, 그리고 그리움, 소망 등 언어나 회화만으로 다스릴 수 없는 심오한 마음의 감정을 가슴에서 가슴으로 전달하는 데 탁월한 기능을 보입니다.
이러한 점에서 음악의 참 모습은 어떤 경우라도 자연발생적인 것이라 할 수 있으며 - 민족과 이념의 차이를 넘어서서 - 인간 본래의 순수한 정서에 그 뿌리를 두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