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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論語) - 옹야편(雍也篇) 5 ~ 10 장(章)
논어(論語) 필사(筆寫) / 해석(解釋)
<해서는 구양순, 초서는 손과정의 서풍(書風)으로 썼다. 字의 크기는 약 1.8Cm이고 7호(毫) 겸호면상필(兼毫面相筆)을 사용했다.>
論語集註大全
논어집주대전
論語 : |
공자(孔子)가 제자들이나 당시 사람들과 논란(論難: 어떤 문제에 대해서 옳고 그름을 따져 논하는 것) 하고 힐문(詰問: 잘못된 것을 따져 물음) 한 말을 제자들이 기록한 것이다. |
集註 : |
주자(朱子)가 서술한 주(註)를 명칭하는 것으로 송유십일가(宋儒十一家)의 주석(註釋)에서 좋은 점을 초출(抄出) 하고 논어 주소본(註疏本)에서 주(註)를 모아 자신의 학설을 덧붙여서 집주(集註)라는 이름을 붙인 것이다. |
大全 : |
명(明) 나라 성조(成祖)가 영락 년(永樂年) 중에 주자(朱子)의 집주(集註)를 근간(根幹)으로 하여 국가에서 발간을 한 영락대전본(永樂大全本)이다. 이 영락대전본은 명나라는 물론이고 우리나라에서도 교과서로 채택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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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雍也篇(옹야편) 5 ~ 10 章(장)
[五章]
子曰 回也 其心三月不違仁이요 其 餘則 日月至焉而已矣니라。
자왈 회야 기심삼월불위인이요 기 여즉 일월지언이이의니라。
공자가 말씀하시기를 안회는 그 마음이 석 달(오랜 세월) 동안 인을 떠나지 않았고, 그 나머지 제자들은 <그 마음이> 한 달(잠시) 동안 <인에> 이를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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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章下註】
程子曰 三月은 天道小變之節이니 言 其久也라 過此則聖人矣니라 不違仁은 只是無纖毫私欲이니 少有私欲이면 便是不仁이라.
정자(伊川)가 말하기를 석 달은 하늘의 운행이 조금 변화하는 때이니 시일이 오래된 것을 말한다. 이러한 경지를 넘어서게 되면 성인이 될 것이다. 인에서 떠나지 않는다는 것은 다만 털끝만큼이라도 사욕이 없는 것이니 조금이라도 사욕이 있으면 바로 불인이 된다.
尹氏曰 此 顔子於聖人에 未達一間者也라 若 聖人이면 則渾然無間斷矣라.
윤 씨(尹焞)가 말하기를 이것은 안자가 성인에 대하여 한 칸을 도달하지 못한 것이니 성인과 같은 경우는 혼연(인과 사람이 완전히 하나로 융화된 경지) 되어서 중단함이 없는 것이다.
張子曰 始學之要는 當知三月不違와 與日月至焉의 內外賓主之辨하고 使心意勉勉循循而不能已니 過此면 幾非在我者니라.
장자(張載)가 말하기를 처음 배우는 사람이 중요하게 알아야 할 것은 석 달 동안 인을 떠나지 않는 것과 하루에 한 번 한 달에 한 번 인에 이른다는 것의 내외(內外)와 빈주(賓主)의 구분을 알고(之) 심의(심정: 마음속에 품고 있는 생각이 나 감정)으로 하여금 부지런히 순서에 따라서 수양을 그치지 않토록 만들어야 될 것이니 여기(內外賓主之辨)를 넘어서게 되면 거의 나의 노력에 달려있지 않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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心 |
性과 情을 통괄하는 것[心統性情] |
性은 아직 발로(發露) 되지 않음. [未發] - 仁義禮智. |
精은 이미 발로(숨은 것이 겉으로 드러남) 됨. [旣發] - 喜怒哀樂愛惡欲. | ||
意 |
마음이 일어난 것[意者心之發] |
[六章]
季康子問曰 仲由 可使從政也與잇가 子曰 由也 果하니 於從政乎에 何有리오。
계강자문왈 중유 가사종정야여잇가 자왈 유야 과하니 어종정호에 하유리오。
曰 賜也 可使從政也與잇가 曰 賜也 達커니 於從政乎에 何有리오
왈 사야 가사종정야여잇가 왈 사야 달커니 어종정호에 하유리오
曰 求也 可使從政也與잇가 曰 求也 藝커니 於從政乎에 何有리오。
왈 구야 가사종정야여잇가 왈 구야 예커니 어종정호에 하유리오。
계강자가 묻기를 중유(자로)는 종정할만(대부를 시킬만) 합니까? 공자가 말씀하시기를 유는 결단력이 있으니 대부의 직임을 수행하는 데에 있어서 무슨 어려움이 있겠는가.
<계강자가> 묻기를 단목사(자공)는 대부를 시킬만합니까? <공자가> 말씀하시기를 사는 사리를 잘 알고 있으니 대부의 직임을 수행하는 데에 있어서 무슨 어려움이 있겠는가.
<계강자가> 묻기를 염구(자유)는 대부를 시킬만합니까? <공자가> 말씀하시기를 구는 정사에 재능이 많으니 대부의 직임을 수행하는 데에 있어서 무슨 어려움이 있겠는가.
★ 사서대전(四書大全)에『정사를 다스린다는 것은 임금이고, 정사를 행한다는 것은 경이고, 정사에 종사한다는 것은 대부이다.[爲政者君 執政者卿 從政者大夫]』라고 했다. ※ 계강자는 대부이기 때문에 사람들의 이름을 불렀는데 賜는 단목사(端木賜), 求는 염구(冉求)라고 해야 맞다. |
【章下註】
程子曰 季康子問 三子之才可以從政乎아하니 夫子答以各有所長하시니 非惟三子라 人各有所長하니 能取其長이면 皆可用也라.
정자(伊川)가 말하기를 계강자가 세 사람의 재능이 대부를 삼을 수 있는지를 물었는데 공자께서는 각각 지니고 있는 장점으로써 대답하였다. 세 사람뿐만이 아니라 사람들은 각각 지니고 있는 장점이 있으니 그 장점을 취할 수 있다면 모두 등용할 수 있는 것이다.
[七章]
季氏使閔子騫으로 爲費宰한대 閔子騫曰 善爲我辭焉하라 如有復我者면 則吾必汶上矣로리라。
계씨사민자건으로 위비재한대 민자건왈 선위아사언하라 여유부아자면 즉오필문상의로리라。
계씨가 민자건으로 하여금 비읍(費邑)의 수령으로 삼으려고 하니, 민자건이 말하기를 나를 위하여 사양하는 말을 잘해주게. 만일 다시 나를 부르는 일이 있다면 나는 반드시 문수(汶水: 노나라 와 제나라 사이의 강) 북쪽에 있을 것이다.
★ 계강자는 임금을 무시하였다. 계강자의 비읍으로 보낸 守令마다 반란을 일으키자 효자인 민자건을 비읍의 수령으로 보내려고 하였다.※ 閔子騫 : 민자건은 대단한 효자이다. 계모가 들어와서 아들을 둘 낳았는데 그 아들 둘에게는 얇고 따뜻한 솜옷을 해 입히고, 민자건에게는 두툼하지만 바람이 숭숭 드는 갈대꽃을 솜처럼 넣어서 입혔는데 하루는 민자건이 아버지를 위해서 수레를 몰고 가는데 춥고 손이시려 자꾸만 고삐를 놓치니 그의 아버지가 이상하게 여겨 확인해보니 옷에 솜 대신 갈 때 꽃을 넣은 것을 알았다. 집에 돌아와서 작은 아들들의 옷을 확인해보니 햇솜으로 만든 옷이었다. 아버지가 화가 나서 계모를 쫓아내려고 하니 민자건이 말하기를 “아버지가 지금 참지 않고 어머니를 쫓아내면 저와 같은 자식을 두 명을 더 만듭니다”라고 하니 그 말을 들은 계모가 뉘우쳐서 똑같이 대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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閔子不欲臣季氏하여 令使(시)者로 善爲己辭라 言 若 再來召我면 則當去之齊라.
민자는 계씨의 신하가 되고 싶지 않아서 심부름하는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을 위하여 사양하는 말을 잘해달라고 하였다. 만약 다시 와서 나를 부르는 일이 있다면 응당 <노나라를> 떠나서 제나라로 갈 것이라고 말한 것이다.
【章下註】
程子曰 仲尼之門에 能不仕大夫之家者는 閔子曾子數人而已니라.
정자(伊川)가 말하기를 공자의 문하에서 대부의 집안에 벼슬하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은 민자와 증자 몇 사람이 있을 뿐이다.
謝氏曰 學者 能少知內外之分이면 皆可以樂道而忘人之勢라 況閔子는 得聖人爲之依歸하니 彼其視季氏不義之當貴를 不啻犬彘라 又 從而臣之 豈其心哉아 在聖人則有不然者니 蓋居亂邦하여 見惡人은 在聖人則可커니와 自聖人以下는 剛則必取禍하고 柔則必取辱이라 閔子豈不能早見하여 而豫待之乎아 如 由也는 不得其死하고 求也는 爲季氏附益하니 夫 豈其本心哉아 蓋旣無 先見之知하고 又無克亂之才故也라 然則 閔子其賢乎인저.
사 씨(謝良佐)가 말하기를 배우는 사람이 내(내가 도를 닦는 것이 근본) 외(남의 위세에 의해서 벼슬하는 것)의 분별을 조금이라도 알 수 있다면 모두 도를 즐기고 다른 사람의 위세를 잊을 수 있다. 하물며 민자건은 성인의 도를 깨우치는 것으로써 자신이 귀의할 곳으로 삼았으니 그는 계씨의 의롭지 못한 부귀를 개, 돼지로 열길 뿐만이 아니었다. 더욱이 계씨를 쫓아서 신하 노릇하는 것이 어찌 민자건의 마음이겠는가. 성인에게 있어서는 그렇지 않은 것이 있으니 어지러운 나라에 있으면서 악인을 만나는 것은 성인에게 있어서는 괜찮지마는 성인으로부터 이하는 마음이 꿋꿋한 사람은 반드시 화를 취하게 되고, 마음이 연약한 사람은 반드시 욕을 취하게 된다. 민자건은 아마도 일찍 알고서 미리 그것을 대비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니겠는가. 이를테면 자로는 제 명대로 살지 못하였고, 염구는 계씨를 위하여 재산을 증식시켜 주었으니 그렇게 된 것이 그들의 본심이겠는가. 이것은 이미 <출사하기 전에는> 먼저 알아보는 지혜가 없었고, 또 <출사하고 난 뒤에는> 혼란을 이겨 나갈 수 있는 재능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민자는 어찌 현재(賢才: 남보다 뛰어난 재주를 가진 사람)가 아니겠는가?
[八章]
伯牛有疾이어늘 子問之할재 自牖 執其手曰 亡(無)之로다 命矣夫인저 斯人也 而有斯疾也할새 斯人也 而有斯疾也할새。
백우유질이어늘 자문지할재 자유 집기수왈 망(무)지로다 명의부인저 사인야 이유사질야할새 사인야 이유사질야할새。
백우가 깊은 병이 들어서 공자가 문병을 갔을 때 남쪽 창문 밖으로부터 그에 손을 잡고서 말씀하기를 이러한 병이 없으야 되는데 이렇게 병이 있으니 천명이로구나 이렇게 선한 사람이 악질(惡疾)이 있다니 이러한 사람이 악질이 있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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禮에 疾者居北牖下하나니 君視之면 則遷於南牖下하여 使君得以南面視己라 時 伯牛家以此禮尊孔子하니 孔子不敢當이라 故 不入其室하고 而自牖執其手하니 蓋與之永訣也라.
예기(禮記) 상대(喪大)에 “병이든 사람은 북쪽 창문 아래 거처한다”라고 하였으니 임금이 문병을 오면 남쪽 창문 아래로 옮겨서 임금으로 하여금 남쪽으로 향하여 자신을 볼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이때에 백우의 집에서 이 예(尊師如君: 스승을 존중하기를 임금과 같이 한다)로써 공자를 존중하니 공자께서 감히 감당하지를 못하였다. 그러므로 그 방에 들어가지 않고 남쪽 창문 밖으로부터 염경의 손을 잡았으니 아마도 백우와의 영결(죽는 사람과 마지막 이별)인듯하다. <백우는 남쪽 창문으로 옮겼고 공자는 밖에서 손을 잡음으로써 백우는 스승을 높이는 예를 다했고, 공자는 임금의 예와 동일시하지 않은 것이 된다.>
言此人 不應有此疾이어늘 而今乃有之하니 是乃天之所命也라 然則 非其不能謹疾而有以致之를 亦可見矣라.
이 사람은 이러한 병이 있는 것이 합당하지 않으니 지금 마침내 이러한 병이 있으니 이것은 바로 하늘이 명령한 것이라고 말한 것이다. 그렇다면 그가 병을 조심하지 않아서 이러한 병을 초래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니라는 것도 알 수 있다.
【章下註】
侯氏曰 伯牛以德行稱 亞於顔閔이라 故 其將死也에 孔子尤痛惜之니라.
후 씨(侯仲良)가 말하기를 백우는 덕행으로써 안자와 민자건의 다음이라고 칭송되었다. 그러므로 그가 죽으려고 할때 공자께서 더욱 애통해 하며 애석하게 여긴 것이다.
[九章]
子曰 賢哉라回也여 一簞食와一瓢飮으로 在陋巷을人不堪其憂어늘 回也不改其樂하니 賢哉라回也여。
자왈 현재라회야여 일단사와일표음으로 재누항을인불감기우어늘 회야불개기락하니 현재라회야여。
공자가 말씀하시기를 어질도다 안회여 한 도시락의 밥과 한 표주박의 음료수를 먹으면서 누항(빈민가)에 사는 것을 사람들은 그 <가난의> 근심을 견디지 못하는데 안회는 자신의 즐거움(道)을 바꾸지 않았으니 어질구나 안회여!
★ 부자들은 매 끼니마다 따뜻한 밥을 해 먹지만 가난한 사람은 아침에 밥을 해서 점심, 저녁을 다 먹는데 이것이『일단사(一簞食)』이고, 부자들은 매 끼니마다 국을 끓이지만 가난한 사람은 국 대신 물에 간장을 섞은것이『일표음(一瓢飮)』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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顔子之貧 如此로되 而處之泰然하여 不以害其樂이라 故 夫子再言賢哉回也하여 以深嘆美之니라.
안자의 가난함은 이와 같았으나 그곳에 태연하게 거처하면서도 가난 때문에(以) 자신의 道를(其) 즐기는 것을 헤치지 않았다. 그러므로 공자께서 두 번이나 “어질구나 안회여”라고 말씀하여서 깊이 감탄하면서 칭찬해 주신 것이다.
【章下註】
程子曰 顔子之樂은 非樂簞瓢陋巷也라 不以貧窶累其心하여 而改其所樂也라 故 夫子稱其賢이라.
정자(伊川)가 말하기를 안자가 즐긴 것은 단표누항(도시락의 밥과 표주박의 음료. 빈민가에 사는 것)을 즐긴 것이 아니다. 가난 때문에 자신의 마음을 얽매어서 자신이 즐기는 것을 바꾸지 않은 것이다. 그러므로 공자가 그의 어진 것을 칭찬한 것이다.
又曰 簞瓢陋巷은 非可樂이니 蓋自有其樂爾라 其字當玩味면 自有深意라. 又曰 昔受學於周茂叔할새 每令尋仲尼顔子樂處와 所樂何事라.
또(明道) 말하기를 단표누항은 즐길만한 것이 아니니 아마도 본래 그가 즐기는 것이 있었을 뿐이다. 기(其: 天理를 편안하게 여기는 것) 자를 마땅히 살펴보아서 맛보게 되면 자연히 깊은 뜻이 있을 것이다. 또 말하기를 옛날 주무숙(정자의 스승)에게 언제나 우리들(伊川과 明道)로 하여금 중니와 안자가 즐긴 곳(安乎天理)과 즐긴 것이 무슨 일(克己從事)인가를 찼아보게 하였다.
愚는 按 程子之言 引而不發하니 蓋欲學者深思而自得之라 今 亦 不敢妄爲之說이라 學者但當從事於博文約禮之誨하여 以至於欲罷不能而竭其才면 則庶乎有以得之矣라.
내가(朱子) 살펴보던데 정자의 말씀은 인이불발(활은 당기고 살은 놓지 않은 것. 문제는 제기하고 해답을 말하지 않는 것) 하니 배우는 사람들로 하여금 깊이 생각해서 스스로 터득하게 하고자 한 것이다. 지금 나도 역시 감히 함부로 그에 대한 설명은 하지 않을 것이다. 배우는 사람들은 마땅히 널리 글을 배우고 예로써 단속하라는 가르침에 종사하여서 그만두고 싶어도 그만둘 수 없어서 나의 재능을 다하는 경지에 이르게 되면 거의 정자의 말씀을 깨우칠 수 있을 것이다.
[十章]
冉求曰 非不說子之道언마는 力不足也로이다 子曰 力不足者는 中道而廢하나니 今女는 畫이니라。
염구왈 비불열자지도언마는 역부족야로이다 자왈 역부족자는 중도이폐하나니 금녀는 획이니라。
염구가 말하기를 선생님의 도를 좋아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만은 힘이 부족합니다. 공자가 말씀하시기를 힘이 부족한 사람은 중도에서 그만두게 되니 지금 너는 스스로를 한정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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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章下註】
胡氏曰 夫子稱顔回不改其樂하시니 冉求聞之라 故 有是言이라 然 使求說夫子之道를 誠如口之說芻豢이면 則必將盡力以求之리니 何患力之不足哉리오 畫而不進이면 則日退而已矣니 此冉求之所以局於藝也라.
호 씨(胡寅)가 말하기를 공자께서 안회는 자신이 도를 즐기는 것을 바꾸지 않았다고 칭찬하시니 염구가 그 말을 들었다. 그러므로 이 말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가령 염구가 공자의 도를 좋아하기를 진실로 입이 고기를 좋아하는 것과 같이 하였다면 반드시 힘을 다해서 고기를 구하려고 할 것이니 어쩌 힘이 부족한 것을 근심하였겠는가? 선을 그어 놓고서 나아가지 않으면 날마다 퇴보할 따름이니 이것이 염구가 예(藝: 재능)에 국한이 된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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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 권경상 선생의 강의 내용을 요약 정리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