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공부에선 독사 (doxa) 와 파라독사 (paradoxa)를 비교한 부분이 인상깊었어요.
독사는 어떤 사회 내 사건들이 발생할때 사회가 통상적으로 사건들을 계열화하는 방식이에요. 욕망을 길들이는 틀로서 “코드”라고 말할수도 있죠. 이에 반해 파라독사는 독사의 반대가 아닌, 다양한 방향과 의미를 추구하는 사유에요. 길 하나를 정답으로 고착화하기 보다는 잠재성의 장 전체를 알아차리려 노력하고, 맥락에 따라 그 상황에 맞게 가장 적합한 선택을 현실화하고자 하는 것이지요. 공부를 하다가 “파라독사를 실천하는 이시대의 주체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이 나왔어요. 그 때 많은 이름이 나왔는데요. 집에 돌아와서 그 질문 앞에 다시 섰어요. 물론 제가 존경해 마지 않는 이들 있고, 우리가 마땅히 기억해야할 이들 있지만 무엇보다 파라독사를 실천하는 나를 발견할수 있는가로 질문은 바뀌었어요. 파라독사의 주체로서 나를 발견할수 있는 지점이 작은 삶 한조각이라도 있다면 그 잠재성을 가지고 삶의 저변에 다양한 곳에 적용해보며 비로소 자유롭게 가로지르는 삶 살수 있지 않을까 싶었어요.
결국 “뜻”은 외부에서 뚝하고 떨어지는 무언가가 아니라, 내 안에 이미 깃듯 “뜻”이 깃들어있음을 자각하는 것이 필요하겠다 여겨졌어요. 내안에 그 “뜻” 모시고 “뜻” 밝혀 사는 것이 통념을 넘어 가로지르는 것이겠구나 생각을 갈무리할 수 있었어요. 그러려면 그 뜻이 나와는 멀리 떨어져 있어 어떻게 해도 닿지 않는 현실에 좌절하기 보다는, 뜻을 높게 세우더라도 그 실천을 삶의 아주 작은 영역으로 이어가, 실천을 통한 승리의 경험이 이후의 좀 더 큰 과제를 넘어설 힘을 주는 작업을 해 나가야겠다 싶었어요.
몸의 필요로 먹거리에 있어 예전의 실천과는 다른 결로 지낸지 일여년 정도 되어가는데요. 예전과 다른 수위와 긴장으로 다른 먹거리를 들이며 한편으로 느슨해지는 지점들이 있음을 느껴요. 먹는것이 삶에 주는 파장이 상당하다는 것을 알기에 어떤 뜻을 세워야 하며 어떻게 실천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어요. 식탐은 사람을 살게 하는 근원적 욕망이지만 조화롭지 못하고 과할때 사람을 죽게도 하는 욕망이라는 것 잊지 않고 뜻 세워가며 조바심 내지 않고 작은 승리 지어가며 지내고 싶어요. 뜻 함께하는 벗들과 지내며 가장 많이 변한 것이 있다면 먹는 것이라고 할만큼 지난 시간 가랑비에 옷 젖듯 그렇게 변화를 경험했는데요. 이런 변화 기억하며 지금의 모습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지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