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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륭타(ἀγαθός)
- 무엇을, 누가, 어떻게, 왜?
-- 2023, 08, 25. {젊가17000분류23S훌륭}
인간(슬기인)이 학문이라는 이름으로 체계와 정리를 한 것은 45억년 지구역사와 35억년의 생명 역사로 보면 너무나 짧다. 적게 잡아도 유인원을 거쳐서 인류의 작업이라고 여기는 구석기 신석기를 지나면서 남겨진 유물도 거의 없지만, 청동기 철기를 거치면서 그나마 기호들을 남겨서 역으로 추리해 볼 수 있지만, 기호 중에서 문자를 남긴 것은, 지금을 읽을 수 없는 문자지만 거의 4천년 전이라고 한다(우리 전승에서 단군은 4300여년 전이다). 다시 그 문자를 반추하여 생각을 정리한 것은 고작 3천 여년 정도 된다. 문자도 있었고, 그에 맞는 입말로서 구전(입으로 전승)도 있었지만, 그나마도 현대에 와서 읽고 해석(독해)할 수 있는 것이 그 정도이다.
지구상의 곳곳에서 인간들이 살면서 문자와 입말을 통해 전설따라 전해오는 이야기를 후대에서 듣고 읽으면서, 그 의미와 여정을 생각하여 정돈 배치하는 것은 거의 기원전 6세기경으로 잡고 있다. 맑스주의 학자들은 이 시기에 인간이 사유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었다고 하면서, 철기 문화가 생산력이 높아서, 최상의 지배층이 아니라도 여유를 갖고 사유할 수 있는 계층(잉여생산을 누릴 수 있는 층)이 생겨서, 생각을 어제(과거)-이제(현재)-아제(미래)를 연결할 수 있는지를 곰곰이 생각했다고 한다. 이제를 현실로 보면서, 어제를 비추어보고(반사, 반성, la reflexion), 어제와 이제를 견주어서 차이를 통해서 현실을 성찰(la méditiation)하면서 살아갔다. 아제(내일, 내년)를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생각을 하면서, 이제에서 어제로 거슬러 올라가듯이, 이제에서 아제를 펼쳐서, 어제, 이제, 아제를 총괄하는 생각을 집중(le recueillement, 명상)하게 하였을 것이다.
인도 사유에서 소수파인 불교는 집중을 아마도 명상이라 했을 것이고, 중국은 학문하는 이들이 집중을 세계에 대한 통찰이라 했을 것이다. 이를 서양 철학사에서는 아리스토텔레스 이후에 관조라고 했을 것이다. 각각은 자기의 방식이 있지만, 방법적으로 비슷하다(상사 相似). 이런 시기에 이르기까지 인간에서 개인은 거의 없다. 단지 신격화 될 수 있는 영웅과 참주(황제)와 그 주변만이 있을 뿐이었다. 인간에서 개인이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은 19세기 산업사회에서 프롤레타리아가 자기 생존을 위한 투쟁, 태업과 파업 등을 실천하는 가운데서 생겨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 이전시대에 인민은 노예나 농도로서 인간 취급을 받지 못했었다. 그런데 자유임노동자들이 자각하여 인간의 자유 투쟁을 시작했다고 할 수 있다.
인간이 자신의 삶을 보다 안락하고 편안하게 살기 위한 노력은, 생명 역사에서 생명체가 자기의 생존보존과 적응의 노력에서 죽 이어져 왔다. 우리는 다윈처럼 자연선택과 최적응이라고 하는 이론보다, 라마르크의 생명의 근원적 노력의 중요성을 강조한다(라마르크의 용불용설은 노력이 아니라 도구의 사용에 대한 설명으로 왜곡된 측면이 있다, 도구는 신체의 기능이고, 의식의 생명은 노력 역량이다). 인간뿐만이 아니라 모든 생명의 기원에서 출발은 노력과 충력(에는)이라 생각한다. 그 노력이 요즘에도 개인이 아니라 일반성과 추상성으로, 퉁쳐서 인간이란 개념으로 이야기하는 것도 개인 또는 자아가 18세기 계몽기에 성립하였다고 하지만, 여전히 인류는 청년기(18세기 계몽기, 칸트가 청년기라고 표현했다)에 머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열여덟의 젊은이는 계몽기를 벗어나, 스스로의 자아와 주체를 실천하고 사유할 수 있다고, 계몽기 시대에 루소가 그렇게 생각했다. 르네상스 이래로 새로운 삶이 무엇인지를 깨달은 이들은 반성-성찰-집중을 이룰 수 있는 몇몇 대학자들에게나 있었을 것이다. 학자들과 달리 인민이 스스로 생각할 수 있게 된 것은, 새로운 생산력의 발달에 있었다. 루소는 증기기관의 발명을 보고서 성내(폴리스 Polis, 부르쥬 Bourge)에서만이 아니라도 새로운 삶의 터전이 만들어지는 것을 보면서, 자연 속에 해답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벩송은 생산력이 높아지더라도 인간의 손발이 생산도구에서 벗어나는 원동기(모터)의 발명으로 인민도 스스로 사유하면서, 황제(참주)나 사대부(귀족)처럼 반성-성찰-명상에 이를 수 있게 되었다고 보았다. 사람들은 이 시대쯤에서 인민 속에서 민주주의가 도래한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러한 인민 속에서라는 발상은 소크라테스에도, 싯달다에서도 공자에게도 있었으나, 맑스주의자 표현으로 아직 인류가 총체적으로 자급자족하여 또는 생산력의 증가는 시대를 기다려야 했다.
서양 철학사는 흥미있게도 이런 과정을 문자로 남겨서 반성하게 하는 자료를 꾸준히 등록하고 그리고 검토하였으며, 논리적으로 추리(rationnel)하기도 하고 또는 상호 비교와 공통의 기반 위에 추론(rasonnable)하기도 하면서 발전해왔다. 철학자들이 문서와 자료들을 순서와 배열, 배치와 조작의 과정에서, 성내집단의 이기주의적 사고와 훌륭한 인품을 만들려는 사유가 다르다는 것이 드러났으며, 또한 현자들은 꾸준히 동질적 차이와 이질적 차히를 구분해 왔다. 이런 구분에서 분류작업을 하고 또는 분할의 경계선을 긋는 데는 기준과 순서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성찰하고 집중하기도 하였다
소크라테스는 신들의 이야기도 황제(참주)제라는 제도의 이야기도, 인간의 개인적 삶을 해명해 주지 못한다고 보았다. 그는 인간이 삶의 과정에서 자기를 만들어가는 의식(영혼)이 있다고 여겼다. 그래서 그는 학교(또는 학파)를 개설하지 않았지만, 고등학교(김나지움) 앞에서 학교를 나서는 젊은이들이게도, 무엇을 배우고 익히는지를, “이 뭣꼬”라는 질문으로부터 학교에서 배운 것과 다른 것을 이야기 했을 것이다. “무엇”, 즉 무엇이라는 대상이 어떻게 생겨났으며 전개되는지? 그러면 전개과정은 왜 그렇게 전개되고, 달리 전개되지 않는지도 생각해보자고 젊은이에게 말을 걸었을 것이다. 그러한 질문 중에, 대상보다 행동(실천)에 관한 질문이 많았다고 한다. 제자인 플라톤의 초기 대화록들이 이를 증거 한다. 그런데 “무엇”을 지시할 수 있는 대상, 나무, 소, 집은 설명하기 쉬울 것 같지만, 소나무 어떻게 자라지? 주로 무엇에 쓰이지? 라면 그건 좀 더 배워야 할 것이다. “무엇” 중에서 어렵지만 그 시대의 인민들 속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단어였다고 하는 “훌륭타(ἀγαθός, 아카토스)”란 무엇이지?라고 물으면, 학자, 장군, 기술자 등으로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소크라테스가 기술자들에 대한 질문을 할 때, 배 만드는 조선가(造船家)의 훌륭함이 무엇인가에서 배의 재료들, 배가 뜰 수 있는 능력, 그리고 속도 등을 다 알고 만든다는 것은, 고등학교 과정에서 배운 지식을 넘어서, 매우 어렵고 기나긴 실험과 노력의 과정에서 이루어질 것이다. 건강을 예로 삼아보아도, 담당하는 의사가 병을 고치는 데, 좋은 의사라는 훌륭함이 무엇인지를 물어보면, 요즘 표현으로 내과, 안과, 이비인후과 등으로 부분을 치료한다고 해서 병자를 잘 치료하는 훌륭한 의사가 아니다는 것을 사람들은 안다. 다른 부위를 물어보면, 그 의사는 어느 전문가에 가보라고 권하지 처방할 방법을 모른다. 소크라테스가 당대의 ‘잘 안다’는 지식인과 전문가를 찾아가 물어보았을 때, 그들은, 소크라테스의 계속되는 질문에, 나는 그러한 것은 모른다고 말해야 했고, 그들이 소크라테스에게 당신은 무엇을 아는 데라고 하면, 소크라테스는 “나는 내가 모른다는 것을 안다”고 하면서 모르기 때문에 묻어본다고 한다. 그의 태도는 진실과 내용을 알기 위한 노력의 과정이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소크라테스, 공자, 고다마 싯달다의 시대에는 학문의 체계가 있었던 것은 아니며, 그래도 각자는 그 시대의 진실로 어려운 문제(난문제)가 무엇인지를 “잘 모른다”고 하지만, 그래도 열심히 노력해서 탐구한다는 것을 잊지 않았던 자들이 현자들이다. 인민의 자각, 인민의 고통의 해소로서 성찰과 명상도 했을 것이고, 인민의 삶을 편안하게 하는 평천하를 생각했을 것이며, 각자는 시대의 난문제를 해결하려는 현자였다. 예수는? 이들보다 500여년 후에 태어났으며, 로마라는 참주(황제, 제국)의 지배를 벗어나는 것이 “무엇”인지를 고민했을 것이다. 인민을 걱정하기 않게 하려고 노력했을 것이다. 무엇을, 누가, 어떻게, 왜?
기나긴 인류의 역사는 무엇이라는 난제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의 과정이었다. 그럼에도 아직도 제국도 있고, 지구상의 곳곳에 굶주림과 고통도 있으며, 어느 한 곳에 전쟁을 치르지 않는 적이 없었다. 인간은 무엇을 추구하는가? 자유, 평화를? 그렇다면 인간이 자유로운 것이 무엇인지를 또는 평화가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하고, 그리고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현자들은 물었다. 아마도 아테네 시대에 그리스인들에게는 철학보다 연극이 시대의 흐름을 좌지우지 했던 것으로 보아 극작가가 여론을 주도했을 것이며, 그리고 민회의 그 많은 연설가들과 법정에서 이익의 다툼에서 변론가들(소피스트)이 시민들의 교양을 높이는 역할을 했을 것이다. 이런 삶에서 그리스인들은 기초를 다지기 위해 김나지움에서 전통의 호머를 통해 신들 이야기(신화)가 현실에 어떻게 적용되는 지를 신학과 법학으로, 현실 삶에 다양한 사건들을 동일한 평면위에 두고 추론하는 변증법이 가르치고 배웠을 것이다.
아테네 시대 연극의 극작가가 대중의 여론의 중심이었고, 수사학과 변론술, 그리고 변증론을 가리키는 자들의 역할이 컸으며, 소크라테스는 그 시대의 거의 변방으로 소수자에 속하였고, 들뢰즈 표현으로는 제도 경계가 없이 시정을 떠도는 노마드 같은 인물이었다. 그 인물을 서양사에서 그 이후에도 죽 살아남게(추억들로서) 한 것은 플라톤 뿐만 아니라, 장군이었던 크세노폰, 논리-변증을 이어받은 메가라학파의 에우클레이데스, 공동체의 삶을 찾았던 퀴레네 학파의 아리스티포스, 걸승처럼 자연의 섭리 속에 살고자한 퀴니코스학파의 안티스테네스 등이 있었다. 학문이 대상에 대한 분류의 방식과 대상의 자리매김하는 분할이 있듯이, 소크라테스 속에도 이런 분류와 분할이 있었을 것이라고 추측하게 하는 것은 그의 제자들이 이처럼 다양하기 때문이다. 공자에게도 제자들에 따라서 공자를 분류하는 방식이 다르고, 부다로 칭해진 싯달다의 제자들도 10대 제자들로 분류하기도 하고, 예수에 이르러서는 천체 운행의 영향으로 12사도라고 하기도 한다. 그 시대에서 무엇을 어떻게 왜 다루었는지를 탐구하고 추리-추론하면서 노력을 하는 자가 철학자 또는 현자일 것이다.
시대의 인물들을 분류하는 것은 연구자들에 따라 다를 수 있고, 또한 그 제자들의 그룹이 그렇게 구성되는지도 의문 스럽기도 할 것이다. 그럼에도 플라톤 이후는 계보도 확실하다. 왜냐하면 플라톤은 아카데미아라는 학교를 세웠고, 그의 계통은 학장(총장)을 지낸 사람들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불교에서 중국으로 전파되어 달마 이래로 선승의 계보가 있고, 유교는 나름으로 시대의 중요학자들을 통해서 계보를 형성하기도 하며, 예수를 크리스토스로 만든 집단으로 로만카톨릭과 동방정교는 각자 최고 종교지도자의 계보를 가졌다. 이런 계통은 정통성이라고 하지만, 기나긴 과정에서 논쟁과 투쟁의 산물이다. 그러한 논쟁과 사상투쟁은 그 영역에 따라, 달리 전개되었지만, 유교, 불교, 크리스트교는 종교화되어 불리지만, 소크라테스교에게는 없다. 그런 의미에서 소크라테스가 진정한 현자의 길을 추구하고, 탐색하며, 학습하고 노력한 인물일 것이다.
이 아테네 시기에 문제의 해결을 위한 노력은 각 분야의 전문가들에게 물을 수 있다는 점에서 학문이 분류표를 가진 것은 아니지만 그런대로 분화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사람들은 철학사에서 무엇을, 누가 어떻게 왜?라는 물음들 속에서 무엇에 대한 당대의 고민이, 소크라테스의 직계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정리해 보려고 노력했고, 그러고 나서 적어도 소크라테스이후 100년을 지나 스토아학파와 에피쿠로스학파가 전개될 때 “뭣”을 분명하게 드러내었다고 한다.
“무엇”을 분류하는 기본 틀이 있는가? <우리는 이미 “철학(哲學), 그 갈래...”(23.05.26)에서 제기했다.> 박홍규는 “더 이상 자를 수 없는 것”에서 문제제기를 한 적이 있다. 자르다(couper)를 무엇을 누가(무엇이) 자르는가? 이런 논의가 존재론의 영역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는 존재(현존)가 “뭣꼬”라는 질문을 해보자는 것이다. 이런 질문이 우주(cosmos)와 세계(le monde)에 대한 형이상학 또는 원인론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뭣을 지시하는 경우에 이미 ‘자른다’(경계를 긋다, 편을 만들다, 조건을 부여하다)는 관심이 들어가 있다. 자른다는 것은 기계 산업에서 굉장한 중요성을 갖고 있다. 기계의 조립과정은 잘라서 단위를 잘게 만드는 것이었다. 그런데 인공지능의 기초는 0과1이라는 가장 기초적인 절단(découpage)에서 시작한다. 박홍규 식으로 표현하면 절단은 존재론도 형이상학도 아니며, 우리가 보기에 이미 인간의 이익과 관심에 의한 절단이기에 인식론이다. 이 절단의 형태와 형식 또는 방법과 기능에 따라 기계의 조립이 성립하며, 그 조립의 방식은 원자론자들의 원자들의 조립, 관념연합론자들의 관념들의 연합과 유사(類似, ressemblance)하다.
‘뭣’을 자르지 않고 있는 그대로, 자연 그대로 보면 어떨까? 그 본다는 것도 인간의 관심(이익, 착취)가 들어있다고 말하는 이들이 있다. 이들은 파랭이이다. 잘려진 것을 보는 데 익숙한 자들이 잉여착취를 위해 전쟁을 불사하고, 투기를 투자라고 하면서 공부 또는 학습의 노력이라고 착각한다. “뭣”을 알려고 노력한다고. 뭣의 구분에는 가장 기본적인 것, 그것은 보이는 것(visible, 볼 수 있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invisible, 볼 수 없는 것)이 차이에서 분류가 나온다. 이런 사유의 길이 빨강이이며 현자의 길이다. 그러면 파랭이들은 무어라고 하느냐 하면, 보이는 것의 차이에서 출발할 수밖에 없지 않느냐고 한다. 보이지 않는 것은 다룰 수 없지 않는가? 보이는 것만을 다루는 것은 이미 결과를 보는 것에 가깝다. 과정, 그리고 원인, 기원을 생각하면, 현재 보이지는 않지만 또한 볼 수 없는 것이지만, 이 “뭣” 만들어지고 생성되는 과정이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현재 있는 것과 있었던 것과 있을 것, 어제-이제-아제를 총체적으로 보아야 하지 않을까? 여기에서 그리스 철학에서 출발점을 찾을 수 있다. 볼 수 없지만 있다고 느끼는 것이 있다는 것이다. 많은 논의자들이 간추려서 공간, 시간, 원자, 영혼이라 하였다. 그 중에서 영혼을 다루기는 매우 어렵기에 여기서 젖혀두고, 원자부터 해보자.
데모크리토스는 보이는 모든 것을 매우 잘게 자르면(gr. topma토마, couper), 보이지 않지만 있는 것인 원자들(atome) 수없이 많다고 한다. 그것들이 움직이는 것은 빈 것(le vide) 속에서라 한다. 빈 것을 있는 것이 아닐까? 나주에... 현실로 보이는 것은 물체들(corps, chose, thing, Ding)이다. 원자론자들은 보이는 것을 설명하는 단위들로서 보이지 않은 원자를 설정했지만, 그보다 그 원자들이 움직일 수 있는 빈 것은 진실로 보이지 않는 것이 아닐까? 후대의 철학자들은 보이지 않는 것이라는 설정이 공간이라고 보았다. 이 공간은 유클리드 기하학의 점이 있을 수 있는 공간과 차히(전혀 다르다)이다. 빈것과 아톰을 함께 다루지 않았다는 점에서 유물론의 부분만 다루었다고들 설명한다.
그런데 그리스 철학자들은 왜 보이지 않는 것을 물었을까? 탈레스 이전에는 신들이었을 것이고 이 이후로 철학자들은 신들이 문제거리를 만들고 있지, 문제를 해소한다고 여기지 않았다. 보이는 것에서 출발하자는 것이다. 그런데 보이는 것(visible, 볼 수 있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invisible, 볼 수 없는 것, ἄδηλα)의 차이는 무엇일까? 원자와 빈 것 보다 근원적으로 물어보야할 것은 일단 공간과 시간이 무엇이냐는 것이었다. 보이지 않는 대상, [공간, 시간] 이뭣꼬? 이것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가 문제였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이것을 정의(définition)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은 칸트의 의미로 생각하면 한계를 규정(결정)하는 것이지, 실재성은 아니었다. 현대의 관점에서, 시간과 공간은 규정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묘하게도 공간은 사물에 연관이 많고, 시간은 영혼에 연관이 많다. 즉 영혼과 신체는 시간과 공간의 결합 방식에 있을 것 같이 보인다. 고대 이래로 이런 사유를 암묵적으로 가지고 있었다. 더 크게는 하늘과 땅이 묘한 연대가 있을 것이라고 여긴 것은 플라톤 이래의 사유였다. 볼 수 없는 것을 정의, 규정, 결정하는 노력은 과학에서 특히 수학에서 엄청난 노력을 기울였다. 결과적으로 둘은 규정의 대상이라 아니라고 한다. 그러면 과정이며 흐름이며 운동일 수 밖에 없을 것다. - 아톰이 놀 수 있는 빈 것은 움직이고 있는 어떤 것일까? - 그런데 고대 그리스에서 흐름으로부터 철학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여겼다. 변하고 있는 것을 대상으로 다루고 있는데, 그 대상이 변하면 어떻게 위치, 성질, 양, 크기, 관계 등등을 다룰 수 있는냐고 반문하면서, 고정된 것으로 일정하게 불변하는 측면이 있어야 학문의 대상이 된다고 하였다. 그래서 철학에서 정지에서부터 출발하였기에 운동이 배제되었다. 다른 말로 하면, 실재하는 것은 정지이고, 가상으로 있는 것이 운동이라고 하는 철학사를 이어온 것이다.
무엇을, 누가, 어떻게, 왜? 긴 철학사는 이런 물음의 순서를 지니고 있을 것이라 나는 생각한다. 그런데 그리스에서 정지를 우선으로 두었는가? 뭣을 정지로 보았는가? 훌륭타는 정지인가? 다시 훌륭타(ἀγαθός)를 정의 또는 규정해보려는 노력은 소크라테스의 진심이었을 것이다. 민주화로 나가는 그 시대에 진정으로 훌륭타는 것은 무엇이며, 그를 표본으로 삼을 인물은 누구인가?에 있었을 것이다. 그러면 누가 무엇을 실행하는냐에서 훌륭타가 나올 것인데, 왜 소크라테스는 그 훌륭타를 “뭣”으로 알고자 했는가? 소크라테스가 알고자하는 것은 행위할 줄 아는 것이지, 지시 대상으로 또는 인식적 표시로서 알고자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대상을 알면 행위할 수 있는 것으로 사유의 순서를 바꾸어 놓은 것이다. 전도된 사고는 여기서 나온 것이리라. 훌륭한 인물을 표본으로 또는 이상으로 삼을 수 있고, 그를 닮아가는 노력을 하는 길도 있다. 그런데, 훌륭타는 어떤 찰나의 행동이나 시대의 경향을 따른 인물이라기보다, 인간의 자연(nature, 본성)을 실현하려는 노력과 과정의 총체적 결실일 것이다. 그의 삶의 과정의 전체를 보아야 하고, 그의 노력과 온전한 실현의 몫에 대한 찬사이다. 이 훌륭타를 추구하는 것이 소크라테스의 몫이었을 것이다. 전도된 사고는 과정과 노력을 뒷전으로 밀쳐버리고, 이 점을 보라 이런 인물을 보라고 할 때, 그 사람의 삶의 과정의 단면, 잘려진 장면, 절단된 찰나에 대해 얼마나 많은 이들이 찬사를 보내고 높이 숭상했는지 역사에서 알 수 있다.
과정으로서 어떻게 와 더불어, 왜 사람들은 지난 어제(과정)의 이야기를 다시하며, 반성하고 성찰하는가? 에피쿠로스학파가 놓친 것 중의 하나는 보이지 않는 것(invisible, 볼 수 없는 것, ἄδηλα)의 빈 것을 없는 것(무(無)라고)으로 착각했기에 진솔한 유물론 또는 자연론이 아니다. 살아가고 있는 한에서 공간을 느끼고 시간을 느낀다. 그럼에도 규정하기 어렵고 내보이기 어렵다. 더 심한 것은 영혼이다. 아톰은 쉽다. 왜냐하면 잘게 쪼개서 쪼개지지 않은 어떤 것으로 규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자연(퓌시스) 즉 휠레를 그대로 읽고 생각하는 이는 자연의 그 기나긴 과정이 보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45억년의 기나긴 과정이 있다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보이지 않는 것’이지만 진지하게 느끼고 있는 영혼, 무의식이 있다. 이는 개인에게서도 운동하며 자기완성의 길을 가려고 한다는 것이다. 보이지 않지만 진실로 실재하고 실재성이라는 점에서, 시간과 운동은 실재성 만큼이나 영혼은 실재성이라는 것이다. 이 실재성 속에, 끊임없이 변하고 있고, 자연 속에서 자기의 위치 또는 위상을 찾는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 나이의 시작이 소크라테스가 보기에도 열여덟이라 것이다.
고래로부터 성인식이 있었고, 플라톤의 작품에서도 루소에서도 청년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는, “보이지 않는 것”을 잘 다듬어 가는 시초이고 자기노력의 출발점이기 때문일 것이다. 공자의 논어 처음의 “열락”도, 소크라테스의 청년과 “대화”도, 싯달다의 6년후 첫 대화인 “염처경”도 마찬가지였다. 예수는 이런 이야기를 인민에게 전하고자 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고대의 사유에서 영혼이 자연 또는 물체(신체)속에서 생장하고 발전하는 노력이라는 점을 생각할 수 없어서, 저 세상에 또는 하늘의 완전성인 불멸성에게, 우주의 정령에게, 신의 성령에게 의존했던 것이다. 보이지 않지만 과거의 총체가 자신 속에, 생명체 속에, 지구 속에, 우주 속에 있고, 그 속에서 한 부분으로써 생명체인 자아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는 학습, 돈수, 수련을 통해서 알고자 노력하는 가운데 스르로 만들어 간다. 그 삶의 과정의 귀결에서 ‘훌륭타’가 성립할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긴과정을 생각하면서 훌륭타를 만들어 가는 것인데, 가정과 제도의 한계를 벗어나서 훌륭타를 이루기 위한 노력을 시작할 때는 열여덟에서 이다. 성인식 입문처럼. 결사를 이루기 위한 노력처럼.
우리는 철학사 속에서 훌륭한 인물들로, 소크라테스, 플라톤, 플로티노스, 부루노, 루소, 벩송, 들뢰즈가 있었다고 생각하지만, 우리 역사에서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을 훌륭타고 하지 않고, 주몽, 을지문덕, 강감찬, 드물게 왕이었지만 한글을 창제한 세종, 만주의 독립운동가들, 국내의 공산주의 운동가들을 훌륭타 라고 생각한다. 삶의 과정은 잘라서 절단하여 사고하는 조작 방식이 아니라, 흐름에서 과정에서 사유하는 확장 방식을 가르친 것이 소크라테스의 노력과 삶이었다.
철학은 현자로 되려고 노력함에서 시작한다. 열여덟 젊은이의 의식에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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