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바티칸 기행
아침 일찍 일어나 식사를 호텔 현지식으로 하고 바티칸으로 향했다. 바티칸은 세계에서 제일 작은 초미니 국가지만 전 세계 가톨릭 신자를 결집시키고, 그들의 지지를 받는 강력한 신앙의 구심체다. 한때 로마를 비롯한 유럽전체를 실질적으로 지배했던 교황청의 위엄을 바티칸 입구에서부터 느꼈다. 성베드로 성당의 거대한 열주와 수많은 대가들의 걸작품들이 통로의 바닥과 벽과 천장에 도배되어 있어 마치 내가 예술의 구름 위를 걷는 기분이었다.
수많은 명작들 중에서도 미켈란젤로의 시스티네 성당의 천장화 천지창조와 최후의 심판은 단연 압권이었다. 사진으로 볼 때는 색깔이 다소 연하고 그림에 힘이 빠진 듯했지만 직접 보니 웅장하면서 과장되지 않는 차분한 블루로 전체구도에 가장 적절하게 그린 명작임을 느꼈다. 화가들은 보통 대작을 주문 받으면 진한 색깔로 과장하게 마련이다.
하지만 미켈란젤로는 타고난 미술적 천품으로 잔잔하면서도 웅장하게, 개별적이면서도 전체적으로 조화와 균형을 이루며 거대한 그림을 완성한 것이다. 역시 미켈란젤로의 작품인 성 베드로 성당 입구에 있는 피에타도 걸작이었다.
죽음 앞에 눈물 흐르듯 흘러내리는 부드러운 대리석, 아들보다 젊은 어머니 소녀 마리아의 비통함이 느껴지는 피에타(비통함이란 뜻)는 루브르의 모나리자처럼 유리에 갇혀 있어 더욱 비통하게 느껴졌다. 스탕달 신드롬이란 말이 있다. 뛰어난 미술품이나 예술작품을 보았을 때 순간적으로 느끼는 정신적 충격이나 황홀경을 말한다. 작가 스탕달이 이탈리아 피렌체에 있는 레니의 그림 작품을 감상하고 나오던 중 무릎에 힘이 빠지면서 황홀경을 경험했다는 사실에서 유래한다. 나는 루브르, 노틀담, 두오모, 피사에서 연이은 예술적 충격을 받고 마침내 바티칸의 천지창조와 피에타에서 카운트펀치를 맞고 스탕달 신드롬을 경험했다. 많이 걸어서인지 모르겠지만 무릎에 힘이 빠지고 정신은 혼몽한 채 흐느적거리고 있었다.
거대한 규모의 성당과 어마어마한 예술적 성취, 무한히 뻗쳐오르는 인간의 창작적 능력, 이런 것에 비하면 우리의 일상은 얼마나 모래알만큼 작은가. 천체망원경으로 우주를 보고나서 개미 같은 인간이 보잘것없이 보일 때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중국식당에서 다소 느끼한 점심을 먹고 걸어서 로마관광을 했다. 작고 단단하면서 부드러운 검은 벽돌로 만든 로마 가도를 걷는 발맛이란! 발에 착착 감기는 기분이 들었다.
트레비분수에 도착해 동전을 던진 뒤 베네치아 광장의 통일기념관으로 갔다.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의 기마상이 늠름하고 카부르 수상, 그밖에 통일에 기여한 이름 모를 영웅들의 동상이 세워져 있었다. 우리나라의 통일을 위해선 가리발디 장군 같은 헌신적인 인물이 필수적이다.
그는 이탈리아 남부를 점령한 뒤 남부지방의 군주로 틀어 앉아도 되는 상황에서, 분열을 원치 않았기에 통일을 위해 남부를 통째로 에마누엘레 2세에게 바쳤다.
경순왕이 고려 왕건에게 신라를 바치고, 북한의 김정은이가 북한을 통째로 박근혜 대통령에게 바치는 것과 같은 상황이다. 그런데 통일공원 한 가운데 와야 할 가리발디 장군의 동상이 보이지 않는다. 그는 조국의 통일을 위해 명예조차도 희생한 모양이다. 콜로세움을 향해 가는 길에 바닥에서 파낸 도시인 고대 유적 포로 로마노를 보았다. 로마 밑에 로마가 있고 로마 위에 또 로마가 있다.
원로원과 신전, 개선문과 로마귀족들의 언덕 주거지대, 이제 발굴하기 시작한 로마의 지하도시들이 거인의 잠을 깨고 있었다. ‘로마는 하루 아침에 이뤄지지 않았다’는 말을 실감할 수 있었다. 도보여행 중 나의 눈길와 발길을 사로잡은 곳은 베드로와 바울이 갇힌 지하감옥이었다.
베드로는 이곳에서 갇혀 있다 십자가에 거꾸로 달려 순교했고, 사도 바울은 이곳에 갇혀 옥중서신 디모데전후서, 디도서 등을 쓴 뒤 참수를 당했다.
한국 교회는 양적으로 급성장했지만 종교지도자들의 권력숭배와 타락과 음행, 세습과 마모니즘에 빠져 지금 최대의 위기를 맞고 있다. 천 만 성도라더니 이제는 6백만∼7백만 명에 불과하다. 유럽도 마찬가지다. 바티칸의 타락으로 종교개혁이 일어났고 현재 유럽 교회와 성당은 관광지와 술집으로 바뀌었다.
바울은 지금도 이 지하 감옥에 갇혀 세계교회, 특히 한국교회에게 편지를 보내고 있다. ‘주님의 종 나 사도 바울은 한국교회에게 경고합니다.
높은 곳에서 대접받기를 좋아하는 목사와 장로들, 초기 기독교 정신인 사랑과 희생의 낮은 곳으로 내려오시오. 그렇지 않으면 주님께서 한국 교회의 금 촛대를 옮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