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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3월 19일 Hurghade(후루가다)?, 사와킨?
장거리 외양 항해를 하니 내 뜻대로 되는 게 거의 없다. 그러나 어떻게든 한 단계씩 앞으로 나아간다. 어둠 속에 손을 뻗어 더듬거리며 한걸음씩 걸어가는 느낌이다. 내가 지나온 길은 돌아보니 밝다. 상황과 내용과 대처하는 방법을 알게 된 거다. 어제 밤, 어둠 속에 길고 긴 기도를 했다. 절대로 내 의지대로 안 되지만, 아내와 리나, 우리 가족 모두의 안전을 위해 자비를 소망하고, 온전히 의탁하는 수밖에 달리 방법은 없다. 나의 한계고, 인간의 한계다. 오전 7시. 누군가 쿵쾅거리며 배위를 지나간다. 오늘 떠나는 프랑스 알루미늄 배다. 나도 오늘 떠나지만, 일찍 떠날 필요가 없다. 후루가다까지 35시간 항해라 일찍 떠나면 한 밤에 도착하게 된다. 최대한 출항 시간을 늦추어 본다. 그래야 새벽에 도착하여 계류기 마리나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잠시 후 내다보니, 프랑스 배는 어느새 떠나고, 영국사람 배가 제네시스 곁에 계류되어 있다.
아침에 간곡히 기도한 탓일까? 갑자기 작은 희망이 보인다. 무스타파 말고 다른 마리나 관리자 핫산이 오전 11시에 같이 시내로 나가보잔다. 같이 가서 앵커체인을 보자고 하니, 그보다 더 기쁠 수 없다. 다시 정밀하게(?) 체인을 재보니 길이 5센티, 폭 3,5센티, 두께 1센티미터다. 옆의 영국 배에도 가서 재보니 같은 사이즈다. 수에즈 시내로 가서, 두세 가지 샘플을 가지고 온 뒤, 잘 맞으면 50미터를 사면된다. 그러면 수에즈에서 큰 걱정을 다 해소하고 떠나게 된다. 제발...
자세히 보니 영국사람 배가 상당히 단단하게 잘 만들어진 배다. 수제품이냐고 물으니 타이완에서 만든 배란다. 하드 탑도 있는 미드 쉽이다. 딱 봐도 대양항해에 적합하게 만들어진 배다. 타이완에서 세일 요트를 잘 만든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직접 보기는 처음이다. 만약 대양항해를 원하는 선장이라면 타이완 배를 한 번 고려해 볼만하다. 한국은 익숙한 브랜드를 선호하니 한국서 제값으로 거래되기는 쉽지 않을 거다. 영국 사람들은 한창 배 청소중이다. 이들은 지부티는 비싸서 절대 안 들어간다고 하니, 어떤 항로를 거쳐 왔는지 이들이 배청소를 마치면, 그들의 항해를 듣고 한 수 배우려 한다.
10시에 무스타파가 왔다. 그에게 디젤유, 연료필터, 미라미드 여행경비, 세탁비 900 이집션파운드 등을 합쳐 16,610 이집션파운드를 준다. 그리고 왓스앱으로 문자를 보낸다. 일종의 영수증이다. 일단 출항 전 비용은 정산이 된 거다.
10시 30분, 영국 배에 가니 마이크가 그들의 항로를 알려준다. 그들은 말레이시아에서 출항했고, 몰디브 울리가모에서 3주 동안 항해, 수단 사와킨으로 바로 왔다고 한다. 연료 필터는 3번 갈았다. 그리고 수에즈에 하루만 머물고 바로 사이프러스로 간단다. 포트사이드는 패스. 좋은 생각이다. 레이더는 작동하지 않는단다. 수에즈에서 만난 대양항해 배중에 레이더가 작동되는 배는 덴마크 톨스 배와, 영국 노부부 배, 그리고 제네시스 밖에 없다. 다른 배들은 다 고장 나거나 애초부터 레이더 없이 씩씩하게 돌아다닌다. 대신 이리듐 고를 가지고 다닌다. 영국 배는 총 1,000리터의 연료를 싣는다. 마이크는 만약 대양에서 바람이 안 좋으면 무조건 엔진으로 주파하라고 충고 한다. 윤태근 선장님의 충고와 같다. 프랑스 알루미늄 배도, 톨스의 배도 대개 1,000리터 씩 싣고 다닌다. 나는 300+200+350(연료 탱크) = 총 850 리터를 실었다고 하니, 자신들이 20리터 통 11개를 줄 테니 더 실으라고 한다. 너무 감사하다. 일단 11개의 빈 캔을 더 확보한다. 세계일주 세일러들은 절대로 기름 떨어지는 일은 없이 다닌다. 만약 220리터를 더 싣는다면 나도 850 + 220 = 1,070를 싣고 다니게 된다. 그러면 엔진만으로도 20일 이상 항해가 가능하게 된다. 상당히 마음 놓일 거다. 사와킨에 가서 마저 채우자.
영국배의 나이든 크루 한 분이 기타 연주를 멋지게 한다. Ella Fitzgerald 의 음성으로 듣던 Misty 다. 수에즈 운하에는 대형 컨테이너선이 소리 없이 지나고 이집트의 햇살아래 따스한 갑판에서 조용히 들리는 기타 소리, 만감이 교차 한다. 이 사람들은 내게 open cpn 이라는 해도 프로그램을 깔아주려 애쓰다 매킨토시라서 실패 했다. 다음에 Wifi 잘 되는데 가면 다시 해봐야 겠다.
11시가 되어 핫산과 이야기 하려는데, 핫산이 무스타파와 먼저 이야기 해 본다고 한다. 둘이 한참 뭐라 떠들더니, 무스타파는 자신의 보스가 다시 체인 건을 도와주러 온다고 한다. 그러나 몇 시에 온다는 말은 없다. 이집트인들과의 약속에 몇 시에? 라고 묻는 건 내 몫이다. 그래도 그 시간이 지켜진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저 짐작이라도 하고, 나중에 그들에게 약속을 확인시키기 위한 작은 장치일 뿐이다. 핫산에게 혹시 문제가 됐으면 미안하다고 한다. 역시 이권에 대한 문제 같네. 핫산은 만약 보스가 체인을 못 구하면, 여기 체인가게가 많고 자신이 다시 도울 테니까, 염려 말라고 한다. 그래도 염려가 되는 상황이다. 수에즈 같은 큰 도시에 체인가게가 없을 리 없지. 다만 새우 싸움에 고래 등 긁히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아무튼 체인을 구할 수는 있을 것 같네. 그러면 나는 후루가다로 가지 않는다. 바로 사와킨으로 출항 할 거다. 계획은 또 틀어졌다. 하지만 보다 긍정적 방향이다. 내일부터는 바람이 좋다.
1시 30분이 되어도 무스타파의 보스는 나타나지 않는다. 나는 무스타파에게 문자를 보낸다. 그래도 답이 없다. 전화를 한다. 받지 않는다. 나는 하산에게 이 상황을 말한다. 하산이 무스타파에게 전화한다. 받지 않는다. 하산이 무스타파의 보스에게 전화한다. 우리가 처리 할 테니 너는 신경 꺼! 라고 소리 지른단다. 하산이 중간에 입장 곤란한 모양이다. 나는 별도 비용 없이 너를 도와주고 싶은데, 내가 에이전트가 아니니 어렵다. 라고 한다. 그래도 오후 3시까지 기다려서 체인 건이 진행 안 되면, 내가 다시 너와 함께 체인 가게로 갈 거다. 라고 한다. 신빙성은 없지만 기다려 보기로 한다,
오후 2시 59분, 무스타파가 오고 있다며 체인 사진을 보냈다. 10분 후에 무스타파가 체인 샘플을 가지고 왔다. 앵커 윈치에 끼워보니 신기하게 잘 맞는다. 이제 이 체인을 50미터만 사면된다. 문제는 가격이다. 얼마나 할까? 납득할 수 있는 가격이면 좋겠다. 만약 오늘 내가 체인준비를 마친다면, 내일은 오전에 2시간동안 출국 수속하고, 여기서 택시로 5분 거리. 택시비 15 이집션파운드 하는, 가까운 마트에 가면 된다. 거기가 더 크고 싸다고 한다. 물과, 계란, 야채, 파리채, 냄비, 리나 수저포크 세트, 당근, 호박, 가지, 계란, 고기, 요거트, 양파 등을 최소 10일 치 이상 사야 한다. 이집트 수에즈 운하 통과도 이제 막바지다. 아내는 저녁에 장을 보러 가자고 하는데 괜찮은 생각일까? 무스타파에서 물어 봐야겠다. 나는 무스타파를 신뢰했다.
이집트는 체인을 무게로 판다. 1Kg에 6달러 50미터에 150Kg 900달러다. 너무 비싸다. 한국은 1미터에 6,700원이다.(실제로는 이거보다 엄청 비싸겠지만!) 핸드폰 화면을 보여주며, 못 사겠다 하니 무스타파가 그의 보스를 바꿔준다. 중고는 kg 당 4달러란다. 그래도 600달러. 난 깨끗하게 포기한다. 윤태근 선장님의 조언대로 예비 앵커와 로프를 사용하자. 끌어 올릴 때 마다 죽도록 힘들겠지만, 어떻게든 해결 할 수 있을 거다. 이 없으면 잇몸으로. 나는 너무 비싸 못 사겠다고 한다. 혼자 예비 앵커를 설치하고 밧줄을 체크해 본다. 역시 만만하지 않다. 50피트 배인 것이다. 뭐 어떻게든 되겠지. 그때 핫산이 다가온다. 앵커는 어떻게 됐나? 너무 비싸서 못 사겠다. 나와 같이 나가 볼래? 네가 직접 보고확인하면 된다. 오케이. 보는 눈이 많으니 따로 나가 기다려라. 혼자 마리나를 나가 잠시 기다리니 핫산이 왔다. 엄청 작고 낡은 차다. 핫산이 차가 작아 미안하다고 한다. 상관없다. 핫산 도와줘서 고맙다.
킴, 절대절대 무스타파에게 내가 도와줬다고 말하지 말라. 그럼 나는 X된다. 나는 바보가 아니다, 내가 왜 말하겠는가? 너는 이미 무스타파에게 말하지 않았나? 천만에, 오늘 아침 무스타파가 러시아 보트에 있는 것을 너와 내가 동시에 본거다. 나는 무스타파와 대화할 시간이 없었다. 나도 눈치가 있다. 네 입장이 곤란해지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그런데 무스타파가 네가 도와주는 것을 어찌 알았을까? 핫산이 의미심장하게 말한다. 무스타파가 눈치로 짚어 본 거로군.
무스타파에게 쇠사슬 가게 알려 준거도 나다. 너는 세탁비도 냈나? 당연하다. 오늘 오전에 모든 비용을 다 주었다. 얼마? 나는 무스타파에게 보낸 문자를 보여준다. 세탁비 900 이집션파운드를 함께 주었다. 디젤금액은? 다 줬다. 그런데 처음엔 1달러 30 이집션파운드라고 하더니 오늘 아침엔 35 라고 하더라. 말을 바꿔서 놀랐다. 그래? 35 라고 했다고? 그래 35. 하산이 쓴웃음을 짓는다. 아마 정식 에이전트라는 미명하에 무스파타 쪽에서 여러 가지를 멋대로 하나보다. 떠나기 직전 참 여러 가지를 다시 보게 된다. 이집트 에이전트는 역시 믿을게 못되나 보다. 절대로 한국식으로 생각하면 안 된다. 우리는 그들에게 그저 살찐 먹잇감을 뿐이다. 수에즈에서 조금 나아졌던 이집트의 이미지가 싹 사라지는 순간이다. 무스타파는 그저 좀 더 친절하게 착취행각을 한 것 뿐이다. 아무래도 조만간 에이전트와 관리자간에 갈등이 생길 조짐이다.
핫산과 함께 시내의 상가를 뒤진다. 서울의 청계천 같은 곳이다. 문제는 중고 쇠사슬도 15,000 이집션파운드를 부르는데, 이것들이 5미터, 10미터씩 조각조각 되어 있다. 이것을 이을 방법이 없다. 몇 군데 가게를 더 돌아 다녀도 방법이 없다. 4번째 가게에 갔다. 같은 사이즈의 쇠사슬을 발견하고 물어보니, 종업원이 22,500 이집션파운드 란다. 이젠 포기해야 하나보다. 하고 돌아서려는 순간. 가게 주인이 나타났다. 핫산이 상황을 설명하니 자신이 적극 돕겠다고 한다. 핫산과 열변을 주고받더니, 새 쇠사슬로 50미터에 16,000 이집션파운드를 부른다. 나는 고개를 젓는다. 핫산이 다시 중재에 나선다. 얼마면 사겠니? 14,000 이상은 안 돼. 핫산이 다시 주인과 열심히 토론한다. 주변 모스크의 은 빛 색종이들이 밤하늘에 날린다. 곧 라마단이라고 한다. 바람이 세고 날씨가 춥다. 참 열심히들 산다. 내가 외국인이니 이중가격일 것이고, 핫산의 중계료도 들어있겠지. 결국 14,500에 낙찰을 본다. 환율까지 60만원이 좀 넘는다. 좋은 가격이다. 이 이하로는 어디서도 새 쇠사슬 50미터를 살 수 없을 거다.
14,500 이집션파운드 는 돈이 한 뭉치다. ATM에서 찾아다 주니, 핫산이 돈 세느라고 눈알이 돌아간다. 대강 이집트 임금 수준은 생산직의 경우 숙련자는 월 300달러수준, 비 숙련자는 200달러 수준이라니, 이들의 한 달 반치 급여 정도는 된다. 택시를 타고 130Kg 쇠사슬을 더 싣는다 하니 150 이집션파운드를 부른다. 한화 7,000원 이다. 가게 종업원, 택시기사, 핫산, 나까지 넷이 쇠사슬 마대자루를 들고 옮긴다. 너무 무거워 마대자루가 툭 뜯어진다. 거의 굴리다시피 택시 트렁크에 싣는다. 택시 뒤가 푹 내려간다. 마리나에 도착한 뒤엔 아예 한 줄로 질질 끌어 이동한다. 입구 경찰이 보고 묻는다. 앵커용 쇠사슬이다. 이미 이야기가 다되었는지 그냥 모른 체 한다. 배에서 카트를 가져다 실으니 카트 바퀴가 안 굴러 간다. 바퀴 하나씩 들어 턱을 넘고, 기다시피 폰툰 끝으로 옮긴다. 거기서 체면불구 영국인들을 부른다. 나까지 세 명이 갑판에 상처가 나지 않게 들어서 옮기고 좌현에 쌓는다. 다 쌓은 뒤 또 선수 쪽 창고로 옮겨 놓는다. 내일 출항 한 후에 앵커와 연결해야지. 무스타파가 보면 핫산이 난리난다. 이게 뭔 난리들인지. 선장들의 호주머니를 노리는 에이전트들의 다툼에 내가 왜 조심해야 하는지! 진짜 몸과 마음 모두 불편한 수에즈다.
잠시 후 핫산이 왔다. 수금하러 온 거겠지. 마리나 입구경찰은 400 이집션파운드, 핫산에게는 50 달러를 주었다. 그랬더니 신발 같은 것 없냐? 고 황당한 소리를 한다. 당장 우리 신을 것 밖에 없다고 거절한다. 결국 새 쇠사슬 900달러, 헌 쇠사슬 600달러를 부르던 무스타파와 나의 흥정은 핫산의 어부지리로 끝났다. 혹시 수에즈를 지나는 한국 배들은 유럽에서 다 수리하고 오든지, 이집트를 지나 태국이나 필리핀에 가서 수리하든지, 이집트에서 수리는 절대 피하기를 강권하며 이집트에서의 해프닝을 마무리 한다. 내일 오전 출국 절차를 하고, 시장에서 장을 본 후, 아마 12시쯤 곧장 수단 사와킨으로 출항한다. 이제 수에즈운하는 끝나고 홍해다.
수단 사와킨 까지는 739 해리, 5일 14시간 거리다. 홍해 입구 지부티까지의 절반 거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