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zjoITz52FZc?si=Ky-UibFDjGglOZX9
서유석 / 담배. 1970
🐞
타는 가슴
오 상순
쥐어 뜯어도
시원치 못한
이 내 가슴
애매한 궐련초에
불을 붙인다
피울 줄도 모르면서
나의 가슴 속
무겁게 잠긴
애수 , 억울 , 고뇌
뿌연 안개가루
묻혀 내어다
허공 중에 뿌려다오
씻어 내다오
나의 입 속에
빨려 들어오는
연기야
나와 함께 사라져다오
유완(柔緩)히 말려 올라가는
가늘고 고운 은자색의
연기야
나의 가슴 속 깊은 곳에
질서없이 엉긴
피 묻은
마음의 실뭉텅이
금새 스러져 버릴
너의 고운
운명의 실 끝에
가만히 이어다가
풀어다오
허공중에 흔적도 없이
담배는 다 탔다
나의 가슴은 여전하다
또 하나
또 하나
연달아 붙혀 문다
그러나
연기만 사라지고
나의 가슴은
더욱 무거워진다
아
불
불
나의 가슴에
불을 질러라
불을 질러라
🐞🐞
" 허무 虛無 "
허무로 대표되는 시인 공초 오상순 !
詩의 밭을 헤치다 정말 오랫만에 공초 선생을 만났다.
당시의 담배는 지금처럼 고급 담배가 아니라 , 품질 낮은 담배가 대부분이었다
시대를 함께 하신 나의 부친이 피우셨던 '백양' 담배를 기억해 낸다
휴전선 넘어 고향을 떠나와 타향에서의 삶이 녹녹치 않으셨던 분은 가끔 집의 장독대 위에서 북녘 하늘을 바라보시면서 , 담배 한 개비에 恨과 그리움을 담아 길게 연기를 내 뿜으셨다.
어린 내게 고향의 하늘을 보여주셨고
너른 논과 그 사이를 가르는 젖줄같은 강가를 그려 주셨다.
통일이 되서 그리던 고향으로 가시기를 그토록 바라셨는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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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 !
길게 내뿜는 연기에 타는 가슴을 비워내는
잠깐의 시간은 행복하다
사람들은 그깟 담배로 마음의 안정을 얻느냐고 묻는다.
담배를 사랑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1~2분의 짧은 시간에 느끼는 평정. 평안함을 담배로 찾아야 할 만큼 나약하냐고 한다면 할 말이 없다
물론 습관이 되어버려 무심히 입에 물고마는 지독한 중독성에 빠지게 되는
도저히 끊을 수 없게 만드는 담배.
담배 끊는 놈한테는 딸을 맡겨도 좋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독종이라는 뜻이니 제 아내, 제 가정을 탈없이 꾸며갈 거라는 말이다
나 역시 몇 번 아니 그 이상을 시도했으나 물렁한 탓에 그 독종의 선을 넘지 못했다
해마다 년초엔 禁煙 이라고 벽에다 떡 써붙혀 스스로 맹세를 하지만 작심삼일이 길기만 하니 어차피 끊을 수 없다면 칠성판 짊어질 때까지 곁에 두고말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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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쓰고 독하고 백해무익한 담배를 왜 피냐고 묻는다
글쎄 거기에 대한 답은 나도 모르겠다
습관이 되다시피 했으니 담배에 대해 변호의 말은 삼가겠다
흡연의 피해야 모르는바 아니나 , 곁에 있는 사람에게 냄새로 인한 불쾌감 유발.
본인의 건강 . 무시할 수 없는 경제적 부담등 많은 피해가 있다만 , 그렇다고 그 많은 손해를 상쇄할 만한 그 무엇이 있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굳이 핑게라도 대야한다면 적적한 생활에
무언가에 골몰해야 할 일이 있을 때
집중력이 (신체적으론 아니겠지만) 모아진다는 정도 아니겠나 ?
담배 예찬론자는 아니다
담배 한 개피를 피우며 안식을
느낀다면 혹자들은 나약한 자의 변명이라고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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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쨋건 詩의 해변을 걷다가 공초 선생의
발자취를 만나다보니 세상은 꼭 허무한 것도 아닌데 그 양반 허무 하나로 세상을 문단을 잘 후려먹었구나 싶은 생각이 든다
선생이 살아 계실적의 세상은 충분히 그런 시상 속에서 사실 수도 있겠거니 하면서도 세상은 충분히 살아갈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 !
며칠간 이 글을 쓰면서 나는 몇 개피의 담배를 태웠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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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잔 술
오 상순
나그네 주인이여 평안하신고 ,
곁에 앉힌 술단지 그럴법 허이 ,
한 잔 가득 부어서 이리 보내게 ,
한 잔 한 잔 또 한 잔 저 달 마시자
오늘 해도 저물고 갈 길은 머네
꿈 같은 나그넷길 멀기도 허이!
나그네 주인이여 이거 어인 일 ,
한 잔 한 잔 또 한 잔 끝도 없거니 ,
심산유곡 옥천玉泉 샘에 홈을 대었나
지하 천척 수맥水脈에 줄기를 쳤나 ,
바다를 말릴망정 이 술 단지사 ,
꿈 같은 나그넷길 멀기도 허이!
나그네 주인이여 좋기도 허이 ,
수양은 말이 없고 달이 둥근데 ,
한 잔 한 잔 또 한 잔 채우는 마음
한 잔 한 잔 또 한 잔 비우는 마음
길가에 피는 꽃아 서러워 마라
꿈 같은 나그넷길 멀기도 허이!
나그네 주인이여 한 잔 더 치게 ,
한 잔 한 잔 또 한 잔
한 잔이 한 잔
한 잔 한 잔 또 한 잔 석 잔이 한 잔
아홉 잔도 또 한 잔 한 잔 한없어
한없는 잔이언만 한 잔에 차네 ,
꿈 같은 나그넷길 멀기도 허이 !
나그네 주인이여 섪기도 허이,
속 깊은 이 한 잔을 누구와 마셔 ,
동해바다 다 켜도 시원치 않을
끝없는 나그넷길 한恨 깊은 설움 ,
꿈 인냥 달래 보는 하염없는 잔,
꿈 같은 나그넷길 멀기도 허이!
시선집 < 아시아의 마지막 밤 풍경 >
( 한국문학사 .1983 )
T 스토리 / 碩田. 제임스 님께 감사드립니다.
그림 / Edvard Munch. 에바드르 뭉크
첫댓글 아마 내가 살던 삼양동에서 멀지 않은 북한산 골짜기에 빨래골이라는 곳에 선생의 묘소가 있는 걸로 안다.
까까머리 시절 우이동을 다녀오며 안내 이정표 팻말을 기억한다 .
참 잊었던 기억이 살아난다는 일이 신기하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