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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論語) - 옹야편(雍也篇) 11 ~ 17 장(章)
논어(論語) 필사(筆寫) / 해석(解釋)
<해서는 구양순, 초서는 손과정의 서풍(書風)으로 썼다. 字의 크기는 약 1.8Cm이고 7호(毫) 겸호면상필(兼毫面相筆)을 사용했다.>
論語集註大全
논어집주대전
論語 : |
공자(孔子)가 제자들이나 당시 사람들과 논란(論難: 어떤 문제에 대해서 옳고 그름을 따져 논하는 것) 하고 힐문(詰問: 잘못된 것을 따져 물음) 한 말을 제자들이 기록한 것이다. |
集註 : |
주자(朱子)가 서술한 주(註)를 명칭하는 것으로 송유십일가(宋儒十一家)의 주석(註釋)에서 좋은 점을 초출(抄出) 하고 논어 주소본(註疏本)에서 주(註)를 모아 자신의 학설을 덧붙여서 집주(集註)라는 이름을 붙인 것이다. |
大全 : |
명(明) 나라 성조(成祖)가 영락 년(永樂年) 중에 주자(朱子)의 집주(集註)를 근간(根幹)으로 하여 국가에서 발간을 한 영락대전본(永樂大全本)이다. 이 영락대전본은 명나라는 물론이고 우리나라에서도 교과서로 채택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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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雍也篇(옹야편) 11 ~ 17 章(장)
[十一章]
子謂子夏曰 女爲君子儒요 無爲小人儒하라。
자위자하왈 여위군자유요 무위소인유하라。
★ 유(儒)는 옛 성인(聖人)의 도(道)를 배우는 사람을 儒라고 한다. 儒는 시서예악, 전장법도(詩書藝樂, 典章法度)를 배우는데 군자유(君子儒)는 배운것으로 백성들을 깨우치려고 하고, 소인유(小人儒)는 이것을 가지고 자기 자신의 이름을 드러내는데 사용한다. |
【章下註】
謝氏曰 君子小人之分은 義與利之間而已라 然 所謂利者는 豈必殖貨財之謂리오 以私滅公하고 適己自便하여 凡 可以害天理者 皆利也라 子夏文學雖有餘나 然 意其遠者大者는 或昧焉이라 故 夫子語之以此니라.
사 씨(謝良佐)가 말하기를 군자와 소인의 구분은 의리(義理)와 이익(利益)의 사이에 있을 뿐이다. 그러나 이익이라고 말하는 것이 어찌 반드시 재화(財貨)를 증식(增殖) 시키는 것만을 말하겠는가, 사사로운 이익 때문에 공적인 이익을 헤치거나 자신에게만 맞게 하고 스스로 편하게 해서 모든 천리(天理)를 헤칠 수 있는 것들은 모두 이익이다. 자하가 문학은 비록 넉넉하였으나 그러나 그(義理의) 원대한 것에 뜻을 두는 데는 아마도 어두웠던 듯하다. 그러므로 공자께서 이 말씀을 가지고 말씀해 주신 것이다.
[十二章]
子游爲武城宰러니 子曰 女得人焉爾乎아 曰 有澹臺滅明者하니 行不由徑하며 非公事어든 未嘗至於偃之室也이로이다。
자유위무성재러니 자왈 여득인언이호아 왈 유담대멸명자하니 행불유경하며 비공사어든 미상지어언지실야이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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不由徑이면 則動必以正하야 而無見小欲速之意를 可知요 非公事어든 不見邑宰면 則其有以自守 而無枉己徇人之私를 可見矣니라.
지름길로 다니지 않았다는 것은 움직일 때는 반드시 정도를 써서 작은 이익을 보거나 빨리 이루고자 하는 뜻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공적인 일이 아니면 읍재(고을의 재상) 를 만나지 않았다는 것은 그가 자수(自守其身: 스스로 자신의 절개와 지조를 지킴) 하는 것이 있어서 자신의 뜻을 굽혀서 남을 따르는 사심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飮射讀法 : 飮은 향음주례(鄕飮酒禮: 향 대부가 주연을 베풀어서 길례로 대접하는 것)이고, 射는 향사례(鄕射禮: 경 대부가 하는 활 쏘기)이고, 讀法은 목탁을 치면서 법령을 읽어주는 것이다. 枉己 : 자신의 뜻을 굽히는 것. 맹자 등문공에『자신의 뜻을 굽히는 사람은 남을 곧게 할 수가 없다[枉己者未有能直人者也]』 徇人 : 맹자 진심편에 『천하에 도가 있을 때는 도로써 자신을 따르게 하고, 천하에 도가 없을 때는 자신으로써 도를 다르게 한다[天下有道 以道殉身 天下無道 以身殉道]』※ 徇(주창할 순)은 자신의 뜻이 없이 맹목적으로 따라 행하기 때문에 殉(따라죽을 순)과 같다고 했다. |
【章下註】
楊氏曰 爲政에 以人才爲先이라 故 孔子以得人爲問하시니 如滅明者는 觀其二事之小로도 而其正大之情을 可見矣라 後世에 有不由徑者면 人必以爲迂하고 不至其室이면 人必以爲簡하리니 非孔氏之徒면 其孰能知而取之리오.
양 씨(楊時)가 말하기를 정사를 다스리는 데에는 인제를 얻는 것을 우선으로 삼는다. 그러므로 공자께서는 인재를 얻는 것을 질문으로 삼았으니 담대멸명과 같은 사람은 그에 작은 두 가지 일을 살펴보아도 그의 공명정대한 마음 씀씀이를 알 수 있다. 후세에서는 지름길로 다니지 않는 사람이 있으면 사라들은 반드시 그를 세상 물정에 어둡다고 여기고 <수령의>집에 이르지 않는 자가 있으면 사람들은 반드시 그를 오만하다고 여길 것이니 공자의 문도가 아니면 그 누가 알아보고서 취재(取才:인재를 뽑음) 할 수 있었겠는가.
愚는 謂 持身을 以滅明爲法이면 則無苟賤之差하고 取人을 以子游爲法이면 則無邪媚之惑이라.
나는(朱子) 생각건대 몸가짐을 담대멸명을 본보기로 삼으면 구차해서 천시당하는 수치가 없게 되고 인재를 취하는 것을 자유를 본보기로 삼게 되면 바르지 못한 일로 아첨을 받는 미혹(迷惑)이 없게 될 것이다.
[十三章]
子曰 孟之反은 不伐이로다 奔而殿할새 將入門에 策其馬曰 非敢後也라 馬不進也라하니라。
자왈 맹지반은 불벌이로다 분이전할새 장입문에 책기마왈 비감후야라 마부진야라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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戰敗而還(선)에 以後爲功이어늘 反 奔而殿이라 故 以此言으로 自揜其功也라 事在哀公十一年이라.
전쟁에 패하여 돌아올 때에 후미에 있는 것을 공으로 여긴다. 맹지반은 전쟁에 패하여 후퇴할 때에 군대의 후미에 있었다. 그러므로 이 말을 가지고 스스로 자신의 공로를 엄폐하였으니 이일은 춘추 좌전 애공 십일년조(哀公十一年條)에 있다.
【章下註】
謝氏曰 人能操無欲上人之心이면 則人欲日消하고 天理日明하여 而凡可以矜己誇人者를 皆無足道矣라 然 不知學者는 欲上人之心을 無時而忘也라 若孟之反은 可以爲法矣라.
사 씨(謝良佐)가 말하기를 사람이 남보다 올라가려고 하는 마음이 없는 것을 가질 수 있다면 인욕이 날마다 사라지고 천리는 나날이 밝게 되어서 모든 자신을 뽐내고 남에게 과시할 수 있는 것들을 모두 말할 것도 없게 될 것이다. 그러나 배움을 모르는 사람은 남보다 올라가려고 하는 마음을 어느 때고 이긴 적이 없게 된다. 맹지반과 같은 사람은 본보기가 될 수 있는 것이다.
[十四章]
子曰 不有祝鮀之佞과 而有宋朝之美면 難乎免於今之世矣라。
자왈 불유축타지녕과 이유송조지미면 난호면어금지세의라。
《논어 주소(註疏)》
子曰 不有祝鮀之佞하고 而有宋朝之美면 難乎免於今之世矣니라。
★ 有祝鮀之佞 有宋朝之美를 不 자가 다 부정해준다 그리고 이럴 때 而 자는 與의 뜻을 가지고 있는 글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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言 衰世에 好諛悅色하여 非此難免하니 蓋傷之也라.
쇠퇴한 세상에서는 말로 아첨하는 것을 좋아하고 외모가 잘생긴 것을 좋아해서 이러한<말솜씨나 외모를> 지니지 아니하였으면 화를 면하기 어렵다고 말한 것이니 당시는 상심(傷心) 한 것이다.
[十五章]
子曰 誰能出不由戶리오마는 何莫由斯道也오。
자왈 수능출불유호리오마는 하막유사도야오。
★ 방의 입구를 戶라고 하고 堂의 입구를 門이라고 하고, “內曰 戶 外曰 門”이라고 해서 안에 있는 문을 戶라고 하고 밖에 있는 문(대문)을 門이라고 하고, 형태로는 한 짝으로 된 문을 戶라고 하고 두짝으로 된 문을 門이라고 한다. ※ 토(吐)의 “리오마는” 을 “그런데, 그러나”로 해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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言 人不能出不由戶언마는 何故 乃不由此道耶하니 怪而歎之之辭라.
사람이 나갈 때는 방문을 경유하지 않을 수 없는데 무엇 때문에 마침내 이도를 경유하지 하려 않는가라고 말씀하였으니 괴이하게 여겨서 탄식하신 말씀이다.
【章下註】
洪氏曰 人知出必由戶호되 而不知行必由道니 非道遠人이요 人自遠爾니라.
홍 씨(洪興祖)가 말하기를 사람들이 나갈 때는 반드시 방문을 경유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다닐 때(행할 때)에 반드시 도를 경유하여야 한다는 것을 알지 못하니 도가 사람을 멀리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스스로 멀리할 뿐이다.
[十六章]
子曰 質勝文則野하고 文勝質則史니 文質彬彬 然後에 君子니라。
자왈 질승문즉야하고 문승직즉사니 문질빈빈 연후에 군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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言 學者는 當損有餘하고 補不足이니 至於成德이면 則不期然而然矣리라.
처음 배우는 사람들은 넉넉한 것은 덜어내고 부족한 것을 보완해야 되니 덕을 완성하는 군자에 이르게 되면 그렇게 되기를 기약하지 않아도 그렇게 되는 것이 있게 될 것이다.
【章下註】
楊氏曰 文質은 不可以相勝이라 然 質之勝文은 猶之甘可以受和요 白可以受采也어니와 文勝而至於滅質이면 則其本亡矣니 雖有文이나 將安施乎아 然則 與其史也론 寧野니라.
양 씨(楊時)가 말하기를 문채와 질박은 서로 지나쳐서는 안된다. 그러나 질박이 문채보다 지나친 것은 단맛은 화(調味)를 받아들일 수 있고 흰색은 채색을 받아들일 수 있거니와 문채가 지나쳐서 질박을 헤치는 데에 이르게 되면 그 근본이 없어지게 될 것이니 비록 문채가 있다고 해도 어디에 시행하려 하겠는가? 그렇다면 <문채가 지나친>관리보다는 차라리 <질박한> 시골 사람이 낫다.
[十七章]
子曰 人之生也直하니 罔之生也는 幸而免이니라。
자왈 인지생야직하니 망지생야는 행이면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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程子曰 生理本直이라 罔은 不直也로되 而亦生者는 幸而免耳니라.
정자(明道)가 말하기를 사람이 태어나는 이치는 곧은 것에 근본 한 것이다. 망은 곧지 않은 것인데 그렇게 하면서도 살아가는 사람은 요행히 죽음을 면한 것뿐이다.
※ 출처 : 권경상 선생의 강의 내용을 요약 정리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