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警友新聞 / 윤승원 칼럼】
‘수처작주(隨處作主)’와 경찰 문학
- 『경찰문학』 출판기념식에서 멋과 자존감 높여준 ‘축사’ -
윤 승 원 수필문학인, 전 대전수필문학회장, 경우회 홍보지도위원
‘수처작주 입처개진(隨處作主 立處皆眞)’. 이 문구를 가훈이나 좌우명으로 삼는 이들이 많다. 특히 사회적 지위를 가진 단체장이나 조직의 리더들이 언론 인터뷰할 때 이 말을 즐겨 쓰기도 한다.
중국 당나라 때 승려 임제선사의 법어로 알려져 있다. ‘내가 현재 처해있는 곳에서 주인이 되면 내가 서 있는 모든 곳이 진실될 것이다’라는 뜻이다. 어느 기관장은 “어떤 조직에서 어떤 일을 맡게 되든 주인의식을 가지고 사명감과 책임감을 다하면 내가 있는 위치가 진리, 참된 것”이라고 풀이하는 것도 보았다.
자신이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한마디로 표현하는 말이기도 하고, 다른 사람에게 인생을 이렇게 열정적으로 살아가라는 조언이기도 하다.
나는 이 글귀를 볼 때마다 김용인 재향경우회 중앙회장을 떠올린다. 대한민국 어느 기관 단체장도 경우회 중앙회장의 부지런함과 직무에 대한 열정을 따라가지 못한다. 취임 이후 전국 109개소의 현장을 찾았다고 한다.
◆ ‘주연 배우’로서의 적극적인 인생관
수행했던 경우회 임원의 말에 의하면 전국 어느 현장을 방문하든 ‘수처작주(隨處作主) 정신’을 강조한다고 한다. 얼굴만 살짝 비치고 사라지는 ‘단역’ 배우가 아니라 멋진 ‘주연’ 배우가 되어 열정적인 삶을 살아가자고 평소 생활철학을 강조하는 것이다.
나는 순수 문학을 즐기면서 애호해 온 사람이다. 어떤 의무감으로 특정 단체장의 직무수행 한 단면을 평가하고자 하는 뜻이 아니다.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정도로 바쁘게 뛰어다니는 경우회 중앙회장이 『경찰문학』 출판기념회에도 참석했다. 유튜브 영상을 통해 그분이 시를 낭송하는 모습을 보았다.
▲ 김용인 재향경우회 중앙회장 축사 모습(사진출처=경찰문학 카페 동영상 캡처)
이런 광경은 처음 보는 장면이었다. 멋진 일이었다. 경우회 중앙회장은 축사하면서 먼저 ‘양해’를 구했다. (‘문인들의 모임’이라는) “장소가 장소이니만큼 시를 한 편 낭송해도 되겠느냐?”라고 넌지시 물었다.
필자는 일찍이 경찰 초임 시절부터 지켜보았지만, 그분의 모든 언행에는 ‘겸손’이 먼저다. 늘 자신을 낮추는 미덕에서 순수와 진정성을 발견한다.
‘이 자리에서 시 한 편 낭송해도 되겠느냐?’는 양해의 언사에서는 말의 품격이 묻어난다. 다시 말하면 ‘이 자리를 위해 시 한 편 미리 준비는 했으나 문학을 전문으로 해온 여러분들 앞에서 당당하게 나서기는 좀 저어 된다’라는 정중한 예(禮)와 낮춤의 언사다.
단상(壇上)의 낮은 자세는 단하(壇下)의 상대를 존중하고 높여주는 뜻이 된다. ‘겸손’이란 이렇게 멋지고 아름다운 것이다. 보통 사람은 쉽게 외워지지 않는 짧지 않은 시(詩) 한 수. 한 자도 틀리지 않고 또박또박 외는 총기(聰氣)는 어디서 나올까.
◆ 새벽 산책길, 시를 암송하는 멋쟁이 노년의 삶
올해 연세가 몇인데 저렇게 건강한 정신력을 보이는 걸까. 새벽 운동 코스에 『정약용 시비』가 있다고 한다. 또다시 놀란다. 어딜 가나 흔히 볼 수 있는 것이 산책 코스에 내걸린 시(詩)다.
70대 후반으로 접어든 노년에 시를 암송하면서 새벽 운동한다는 사실이 놀랍다.
『해질 무렵 동작(銅雀) 나루를 건너며 - 정약용 -
해 저무는 동작나루 물결만 출렁이네 멀어지는 저 남산은 그리운 옛 동산
드리운 수양버들 비에 더욱 희고 연기 솟는 성안은 황혼에 젖어 있네
궁궐에서 다시 부르심 기다리는 것만 상책이 아니로다 성은으로 이 몸을 나루터에 보내졌노라
서학은 들었지만 참뜻을 모르는데 이 길은 머나먼 귀양길인가 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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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에 잔잔히 스며드는 시구(詩句)의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에 경우회장은 해설까지 덧붙였다.
“그냥 듣기만 해도 해설이 필요 없는 시”라고 짐짓 운을 떼고 나서, 이 시가 쓰인 시대적 배경과 시구에 담겨 있는 숨어 있는 의미까지 자상하게 해석해 주었다.
“바쁘게 사느라 문학을 공부하지 못했다”라고 말했다. “문학에도 깊이 있게 관심 두고 살았더라면 좋았을 걸, 그저 직무에 쫓겨 바쁘게만 살아왔다”라고 겸손해하면서도 문학평론가 못지않은 해박한 식견을 드러냈다.
유창하게 읊었던 한 편의 시 해설과 함께 역사적 인물의 일대기까지 줄줄 뀄다. 이런 진지함과 인간애가 담긴 따뜻한 성의의 축사는 어디서 나오는가. 바로 ‘수처작주(隨處作主) 정신’이었다.
◆ 존경하는 김소엽 원로 시인을 만나는 반가움
이어서 김소엽 시인이 축사했다. 문학작품과 누리소통망(SNS)을 통해 필자와도 다정하게 교감하고 있는 저명 원로 문인이다.
▲ 김소엽 원로 시인 축사 모습(사진출처=경찰문학 카페 동영상 캡처)
김소엽 시인은 앞서 김용인 회장이 언급한 옛 시에 대한 공감의 뜻을 표하면서 “정약용 선생이야말로 인고(忍苦)의 유배 생활 중 500여 권의 저술을 통하여 오늘날까지 세계적인 석학으로 인정받고 있으며, 유네스코에서 위대한 인물로 선정”했다고 덧붙였다.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 한국경찰문학회 발행 《한국경찰문학》 22호
“『경찰문학』지 제본도 아름답게 됐고, 내용도 좋고,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작품활동과 이렇게 같이 일할 수 있는 많은 ‘귀한 동지’들을 모았다는 것은 실로 대단한 일”이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면서 “성공의 출발점은 좋은 인간관계”라고 강조했다. “현재 남병근 경찰문학회장은 과거 영등포 경찰서장으로 재직 중일 때 직접 방문할 기회가 있었는데, 명령과 머리로서가 아니라 가슴으로 모든 행정을 이끌어가는 멋진 모습이었다.”라고 추억했다.
원로 시인은 경찰 문인들에게 특별히 들려주고 싶은 얘기가 넘쳤다. 그 가운데 빼놓을 수 없는 인상 깊은 말씀은 “우리나라가 세계를 주도하는 나라가 됐는데, 그 첫째 이유가 근면 성실하고 부지런한 <국민성>을 바탕으로 한 창의력이고, 두 번째는 높은 <교육열>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자랑스럽게 분석했다.
◆ 세계를 이끄는 주역으로서 위대한 국민의 정신력
원로 시인은 또 “놀라운 국가 발전과 세계를 이끄는 위대한 창조력은 어디서 나오느냐, 그 역할의 중심에는 어떤 정신이 있었느냐, 그 힘의 원천은 어디에 있느냐?”에 대해 학자적, 문학인의 견지에서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경찰 문학 출판기념회에서 우리 민족의 위대성과 자긍심을 높여주는 원로 문인의 ‘축사’를 듣는 것만으로도 가슴 뿌듯한 일이었다.
세계를 이끄는 주역으로서 위대한 국민의 정신력을 원로 문인이 설파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저력이야말로 결국 ‘조연’이 아닌 ‘주인공’ 의식을 바탕으로 한 ‘열정적 삶의 철학’에서 나오는 진취성이 아니겠는가.
‘수처작주 입처개진(隨處作主 立處皆眞)’의 인생철학은 멀리서 찾을 일이 아니었다. ■
---- 『警友新聞 』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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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훌륭합니다.
김용인 회장님의 인생철학과 멋진 시 낭송도 배울 점이 많고
김소엽 원로 시인님의 높은 이상과 꿈의 실현
그 바탕에는 근면 성실하고 부지런한 국민성에 있다는 말씀
듣기만 해도 국민적 자존감이 상승합니다.
두 분의 축사가 경찰문학 출판기념회를 더욱 빛나게 했군요.
그렇습니다.
경찰문학 출판기념회가 두 분의 축사로 하여금
더욱 풍성하고 아름답게 빛났습니다.
♧‘올바른 역사를 사랑하는 모임[올사모]’에서
◆ 낙암 정구복(역사가,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 23.3.21.04:58
문학인들의 모임은 언제나 아름다워 보입니다. 고려시대나 조선조나 유능한 사람을 뽑는 과거 제도가 문학적 재능을 테스트했다는 것이 이해됩니다. 참으로 멋진 행사인데 이를 서술하여 옮기는 분의 문학적 재능이 더욱 돋보입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답글 / 윤승원
문학모임에서 ‘축사’ 순서가 있어 얼마나 좋은지 모릅니다. 시 낭송도 있고, 축하 노래도 있고, 악기 연주도 있지만 저는 ‘저명인사의 축사’를 듣는 것이 큰 의미가 있고 배울 점이 많다고 느낍니다.
올해 ‘경찰문학 축제’에서 김용인 회장님과 김소엽 원로 시인님 두 분의 축사는 멋지고, 아름답고, 유익한 말씀이었습니다. 존경하는 낙암 교수님께서 칭찬해주시니 귀한 공간에 소개한 보람을 느낍니다. 감사합니다.
♧ 페이스북에서
◆ 김경옥(수필문학 독자) 23.3.21. 08:14
“서학은 들었지만 참뜻을 모르는데...”
초대 천주교인들이 받은 핍박과 수난 눈물겹네요.
천주교도의 피 흘린 순교 뒤에 기독교는 좀 덜한 박해가 있었다고 생각 합니다.
존경하는 역사적 인물을 꼽으라 할 때 다산 정약용을 말합니다.
‘해질 무렵 동작 나루를 건너며’
귀양살이 떠나면서도 성은이라니...
요즘 참 좋은 세상입니다.
▲ 답글 / 윤승원
저도 이 글을 쓰면서 “西學”에 대해 공부할 겸 살펴보았습니다.옛사람들은 알기 쉽게 ‘서양의 학문’ 또는 ‘新學’이라고 했다는데, 사전에서는 ‘조선조 때 천주교를 이르는 말’이라고 설명하고 있더군요.
옛 시를 감상하면서 ‘다산’이라는 역사적 큰 인물의 인품과 학문과 문학을 새삼 공부하게 됐습니다.
귀양살이임을 알면서도 ‘성은’이라고 하는 것을 보면 옛 선비들은 임금님을 하느님보다 높이 섬겼던 것 같습니다.
김경옥 선생님의 댓글 마지막 문장 “요즘 참 좋은 세상입니다”라는 표현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국가 원수인 대통령을 존칭도 없이 동네 강아지처럼 부르는 국민도 있으니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