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암면 삼산리三山里 유래
마을의 동서남쪽으로 삼면이 산으로 둘러 싸여 있으며 마을 입구에는 두 아름이나 되는 느티나무 두 그루가 있다. 교통은 비교적 불편하여 주로 고추, 담배를 많이 재배한다.본래 진보현 북면의 지역인데 약 2백년 전에 춘천 박씨(春川朴氏) 삼산공(三山公) 박경문(朴慶門) 선생이 처음으로 이 마을을 처음으로 개척하였다. 당시에는 물 건너 섬마을이라 하여 섬촌으로 불렀다. 뒤에 삼면이 산으로 둘러 싸였다고 하여서 삼산이라고 고쳐 부렀다. 1914년에 행정 구역을 고칠 때 삼산동이라고 하여 입암면에 들게 했다.
[마을의 특징]
마을에서 널리 알려져 있는 것으로는 병풍암(마천석)과 폭포탕(湯)을 들 수 있다. 병풍암은 마을 앞 길가에에 있는 바위이다. 폭포탕은 삼산보(堡)안에 있는데 높이가 약 10 미터 되는 바위에서 찬물이 떨어져서 탕을 이루고 있으며, 남자탕과 여자탕이 있다. 이 곳에 해가 들면 정오가 되며 이 마을에는 주로 춘천 박씨(春川朴氏) 일문이 살고 있다.
[자연부락의 이름과 유래]
*고그름ㆍ고루럼ㆍ고구령(高邱嶺)ㆍ안현(鞍峴)
이 마을은 약 150여년 전에 안동 김씨(安東金氏)가 살았는데 높은 고개 바로 밑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고구령이라 하였다 한다(김후동(49) 제보).
*삼산(三山)
약 200년 전 춘천 박씨(春川朴氏) 삼산공(三山公) 박경문(朴慶門)선생이 일가를 이끌고와 처음 이마을을 개척하여, 당시 물건너 섬마을이라 하여 섬촌으로 불리기도 하였으나 박경문의 호를 따서 사후에 이 마을 이름을 삼산으라 불렀다는 이야기도 있고, 또 이 마을의 동서남쪽 삼면에 높은 수려한 산으로 둘러 싸여 있으므로 삼산이라 불렀다는 말도 전해 온다(박주열(70) 제보).
[참고문헌; 영영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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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양말캉 역사 알고 가시더/창태121, 198) 입암면 삼산리(三山里)가 궁금니껴?
※되집어 보는 영양말(사투리)※
알개, 맹근, 때백, 게잡은, 맨치러, 디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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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산리(三山里)는
그랑(반변천) 건네 있는 마실이라꼬
섬마실(섬촌)이라꼬 하다가.
춘천 박씨(春川朴氏)들이
마실을 맹글때
높은산이 삼면으로 마실을 둘러싸고
있따꼬 삼산(三山) 이라꼬 카게 된니더.
삼산은 본대 진보현(북면) 땅이었꼬
1914년 행정구역 바낄때
영양군(입암면)으로 들어오게 된니더.
(고그름ㆍ고루럼ㆍ고구령ㆍ안현)
안동김씨(安東金氏)가
산 때백이캉 게잡은 재 바로 알개(아래)
마실을 맹근 후,
재 바로 알개있는 디게 높은
고개에 있는 마실이라꼬
고구령(高邱嶺)이라 카다가.
마실 뒷 재(고개)가 소 또는 말에 언지는
안장 맨치러 생겼따 케가
안현(鞍峴) 이라꼬도 카니더.
(삼산)
맹 처음에는 물 건네가 있는 마실이라꼬
섬마실(섬촌)이라 카다가.
높은산이 마실을 삼면으로 싸고 있따꼬
삼산이라꼬 바까 부르게 된니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