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의 7일
김규련
지난 한 주간은 죽음이 내 곁에 왔다는 현실에 몸을 떨었다. 일 년에 두 번 하는 정규 혈액과 소변 검사를 했다. 검사 결과는 다음 날 온라인으로 읽을 수 있었다. 다행히도 모든 검사가 정상으로 나왔다. 은퇴하고 병원에 정규적으로 가서 큰 병이 생기기 전에 막는다는 차원에서 열심히 검사도 받아왔다.
하루가 지났는데 류머티즘 의사가 연락이 왔다. 한가지 검사가 비정상으로 나왔는데 혈액 암 전문 의사를 만나보라는 문자가 왔다. 두 다리에 힘이 딱 빠진다. 온라인으로 의사에게 물었다. 어떻게 그런 무서운 진단을 내리면서 전화 한 통도 안 하고 컴퓨터로 문자만 보낼 수 있느냐고 돼 물었다. 의사는 즉시 연락이 왔다. 다음 날 아침 10시에 자기랑 병원에서 만날 약속을 만들어 놓았단다. 의사가 말한다. ‘네가 입속이 마르고 눈이 마른다고.’ 해서 특별한 검사를 했더니 그것이 혈액 질환에 이상이 생겼다고 나왔다. 자기는 류머티즘 의사라 혈액임 의사한테 가서 더 자세한 검사를 받아보라고 했다.
그 검사 이름은 혈청 내의 단백질에 대한 전기영동검사였다. 영어론 SPPE TEST (Serum Protein Electrophoresis)이다. 우리나라도 요즘 이 검사를 해서 다발성 골수종을 우연히 진단하는 경우가 있다고 나왔다. 류마티스 의사는 더 자세한 검사를 두개 더했다. 결과는 모든 게 정상으로 나왔다. 그래도 혈액임 의사를 꼭 한번은 가서 보라고 간곡히 부탁한다. 자기가 염려하는 다발성 골수종은 아니지만, 그 전 단계인 MGUS인 듯하다고 한다. MGUS는 감마글로불린 단백질에 이상이 온 것인데 이 진단이 난 사람 중에 암으로 발전하는 사람은 1년에 1%에 속한다고 한다. 많은 사람이 자기가 이런 병에 걸린 지도 모르고 살다가 죽을 수 있다고 의학서적에는 쓰여 있다.
혈액암 의사는 생각보다 약속을 빨리 잡아 주었다. 혈액 검사 결과가 나온 지 1주일 만이다. 정확한 병명을 모르고 기다림은 사람을 더 힘들게 한다. 20 년 전 남편이 대장암이라고 진단이 나왔을 때 수술 할 의사가 자기 여름휴가를 한 달 다녀온 후에 하자고 해서 그 한 달이 천년인 것 같이 느껴졌다. 대장암은 빨리 자라는 암이 아니라 한 달 사이에는 안 자라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던 기억이 난다
드디어 혈액암 의사를 만났다. 60이 넘어 보이는 백인 여의사다. 내가 일했던 대학 병원에서 그녀는 수련의 시절을 보냈다. 나랑 같은 시대에 일했다고 반가워한다. 우리는 병원 어디선가 한 번쯤은 옷깃을 스치고 간 인연이었을 거라고 했다. 예상대로 혈액암은 아닌 것 같고 그 전 단계로써 일 년에 3번 정도는 혈액과 소변 검사를 해 보자고 한다. 그리고 자기랑 지속해서 소통하며 질문도 하고 온라인도 찾아보자고 한다. 유전은 아니라고 한다. 휴! 참았던 숨이 한꺼번에 몰려나온다.
남편도 내가 의사 보기 하루 전에 눈 수술을 했다. 평소 운전은 남편이 담당해서 내가 혼자 의사 보러 가는 길이 낯설었다. 게다가 혈액암 의사가 암이라고 하면 어쩔까 하는 두려움에 혼자 찾아가는 길에 발이 무겁다. 의사 보러 가기 전에 누군가한테는 말을 해야 할 것 같았다. 큰딸한테 그 말을 하는 도중에 딴 데서 중요한 전화가 온다. 자세히 말도 못 하고 다시 걸을 게 하고 서둘러 끊었다. 그리고 딸한테 다시 걸으니 안 받는다. 딸은 더 자세히 알고 싶지 않은지 다시 전화도 없다. 나는 문자를 보냈다. ‘너무 바빠서 전화 못 했냐고 하고?’ 물었다. ‘엄마가 전화한다고 했잖아’ 한다. 다시 했는데 ‘안 받았잖아‘ 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큰딸은 자기 아들이 라스베이거스 라이더에서 인턴이 되었다고 다음날 베가스에 간다고 갔다. 둘째 딸은 사위가 암 치료 마쳤다고 하와이로 여행을 갔다. 아들도 마우이로 여행 갔단다. 자식이 3명이라도 필요할 땐 없다. 뭐도 약에 쓸려면 없다는 옛말이 꼭 맞다.
몇 년 전에 교회사람 몇 명이 암 치료 다닐 때 내가 운전 해 주었던 게 생각이 났다. 막상 이런 일을 당하니 도와달라고 할 친구가 없다. 놀러 다닐 땐 그렇게나 많던 주변 사람들이 다 어디로 갔지. 찾으니 진짜 친구가 없네. 이래서 아파서 누워 있으면 잊어버린 사람이 되는구나 싶었다. 내가 이 상황에 처해보니 이웃이 어려운 일에 처해 있을 때 내가 먼저 손을 내미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며칠 전 만해도 멀쩡하게 웃고, 얘기하고, 정상인과 똑같았는데 어느 날 하나의 검사 결과가 비정상으로 나와 내 몸에 암이 자라고 있다고 의사한테 들었다면, 얼마나 살얼음 위를 걷는 것 같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살아가는데 천천히, 조심하고, 살라는 경고라 생각하고, 아직은 암이 아니라고 하니 놀랐고 무서웠던 가슴이 가라앉는다. 세상이 달라 보이는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