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베소서 6장 5-9절. 주인과 종에 대한 교훈
5절. 종들아 두려워하고 떨며 성실한 마음으로 육체의 상전에게 순종하기를 그리스도께 하듯 하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Slaves, be obedient to those who are your masters according to the flesh, with fear and trembling, in the sincerity of your heart, as to Christ;
종들아 두려워하고 떨며---육체의 상전에게 순종하기를--하라
Οἱ δοῦλοι, ὑπακούετε τοῖς κατὰ σάρκα κυρίοις μετὰ φόβου καὶ τρόμου
the slaves, obey the according to flesh masters with fear and trembling
직역하면 ‘종들아, 두려움과 떨림으로 육체의 상전들에게 순종하라’는 뜻입니다.
‘순종하라’(ὑπακούετε)는 현재 명령형입니다(obey).
성실한 마음으로 그리스도께 하듯
ἐν ἁπλότητι τῆς καρδίας ὑμῶν, ὡς τῷ Χριστῷ,
in sincerity of the heart of you, as to Christ
1. 주종간의 윤리도 ‘성령 충만하라’는 말씀(에베소서 5:18)과 ‘피차 복종하라’는 말씀(에베소서 5:21)의 연장선상에서 이어지는 말씀입니다.
앞에서는 같은 원리로 부부간의 윤리와 부자간의 윤리를 교훈했는데, 여기서는 주종간의 윤리에 대해서 교훈합니다.
2. 당시 로마 사회에는 6천만 명의 노예가 있었고, 자유민이 1천 5백만명인데 비해서 4배나 많은 노예가 있었습니다.
이 노예들은 빚 때문에 노예가 되거나 대부분 전쟁 포로로서 노예가 된 사람들이었습니다.
당시 노예들은 법적인 보호를 받지 못한 짐승 취급을 받았는데, 교회에는 많은 노예 출신의 신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교회에서는 제도적인 노예 해방을 주장하지는 않았고, 단지 원리면에서 노예와 자유인이 그리스도 안에서는 동일한 하나님의 자녀라고 주장했습니다.( 갈라디아서 3:28).
이런 기독교 윤리가 기초가 되어서 기독교를 공인한 콘스탄틴 황제 때(312년)는 노예의 인격권을 인정하고, 노예 해방을 위한 기초석을 놓았습니다.
그 후에 링컨 대통령이 노예 해방을 위한 남북전쟁에서 승리하고 기독교 정신에 의해 1963년에 노예 해방을 선언하게 되었습니다.
3. 바울은 노예라도 그리스도 안에서는 자유인인 그리스도인과 동일하게 하나님의 자녀라고 주장했는데(갈라디아서 3:28), 반면에 자유한 그리스도인도 영적으로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했습니다.
고린도전서 7:22. 주 안에서 부르심을 받은 자는 종이라도 주께 속한 자유인이요 또 그와 같이 자유인으로 있을 때에 부르심을 받은 자는 그리스도의 종이니라.
4. 먼저 종들에게 주시는 교훈은 눈가림만 하지 말고, 성실한 마음으로 주님께 하듯이 섬기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성령님과 동행하면서 주님을 섬기는 마음으로 육신의 상전을 잘 섬기라고 하신 것입니다.
당시 노예들은 작품 <분노의 포도>에서처럼 마음으로 부글부글 끓었고, 기회가 되면 상관을 살해하거나 강간하는 일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 종들은 성령님 모시고 주인을 단 마음으로 충성스럽게 섬기라고 교훈하고 있습니다.
5. ‘두렵고 떨리는 자세’란 인간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가리키는데, 여기서는 주인을 지극히 공경하는 마음 자세를 가리킵니다.
‘성실한 마음’이란 겉으로 외식하는 태도가 아닌 충성스럽고 진심 어린 태도를 가리킵니다.
6. 제가 연대 군목을 하던 시절에 겪었던 일입니다.
전방에서 근무하다가 서울에 갈 일이 있어서 버스를 타려고 읍내로 나갔습니다.
그러나 마침 그날에 버스가 결석을 해서 제가 다시 부대 교회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연대 군종병은 삽을 가지고 비에 패인 교회 주변을 정리하고 있었고, 나머지 대대 군종병들은 웃통을 벗고 까부는 모습이 가관이 아니었습니다.
그 후 제대하고 그 충성스런 연대 군종은 목회를 잘하고, 노회장이 되었고, 지금도 연락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불 충성하던 대대 군종들은 다 잘 되지 못하고, 연락도 끊어졌습니다.
7. 요셉은 주인 보디발의 집에서 충성하니까, 그 보디발도 요셉을 가정 총무를 시켰습니다.
요셉이 감옥에서도 충성하니까, 간수장이 요셉을 감옥 총무를 시켰습니다.
아람 장군 나아만의 집 소녀 여종은 주인에게 충성하여, 주인이 그 말을 신뢰하는 여종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나아만 장군이 여종의 말을 듣고, 아람 나라 임금님에게 말을 하니까, 아람 왕이 여종의 말을 신뢰하고, 많은 재물과 군사를 파송하여 이스라엘 나라로 보냈습니다.
그 결과 나아만 장군은 문둥병을 고침받고 하나님을 섬기게 되었습니다.
8. 오늘날 직장인은 노예가 아니지만, 이 원리에 의해서 성령님 모시고 상관에게 충성해야 합니다.
어느 교회에 두 안수 집사님이 같은 도청에 근무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배 집사님은 근무 시간 중에 틈만 나면, 동료들이나 민원인에게도 전도했습니다.
그리고 직원들 회식 때는 술 먹지 말고 방탕하지 말라고 지적하면서 전도했습니다.
그래서 그 배 집사님은 도청에서 ‘예수 계장’이라고 소문이 났습니다.
한편 김 집사님은 근무 시간에 옆자리 동료에게 교회 가자는 말을 한 마디도 안 했습니다.
단지 매사에 성실히 일하고, 직원들의 모범이 되었고, 회식 때는 분위기를 맞춰주었으나 술은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힘들어하는 동료들을 도와주었습니다.
그러면서 ‘나도 자네 같은 한계 상황을 만나서 절망했는데, 천만다행으로 교회에 가서, 기도하고 위로를 받아서 다시 재기를 했다네’하고 하면서 자기가 기도로 도와주겠노라고 위로해주었습니다.
그런데 과장 승진 발령이 나면서, 배 집사님은 불성실한 근무 평점 때문에 승진을 못하고, 김 집사님만 과장 승진을 했습니다.
그리고 전도도 배 집사님이 전도한 사람은 다시 떨어져 가버렸는데, 김 집사님이 전도한 사람은 기도하면서 신앙생활을 잘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직장인들은 눈가림만 해서는 안 되고, 주님 모시고 성실한 마음으로, 충성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6:8. 이는 각 사람이 무슨 선을 행하든지 종이나 자유인이나 주께로부터 그대로 받을 줄을 앎이라.
6절. 눈가림만 하여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처럼 하지 말고, 그리스도의 종들처럼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New American Standard Bible: not by way of eyeservice, as men-pleasers, but as slaves of Christ, doing the will of God from the heart.
눈가림만 하여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처럼 하지 말고
μὴ κατ’ ὀφθαλμοδουλίαν ὡς ἀνθρωπάρεσκοι,
not with eye-service as men-pleasers,
직역하면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들처럼 눈가림만 하지 말고’란 뜻입니다.
동사는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종들처럼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ἀλλ’ ὡς δοῦλοι Χριστοῦ, ποιοῦντες τὸ θέλημα τοῦ Θεοῦ ἐκ ψυχῆς,
but as slaves of Christ, doing the will of the God from heart
‘행하고’(ποιοῦντες)는 현재분사로서(doing) 계속적인 행위를 가리킵니다.
‘마음으로’(ἐκ ψυχῆς)는 문자 그대로는 ‘영혼으로부터’(from soul)를 가리키는데, ‘마음으로’는 좋은 번역입니다.
1. ‘눈가림만 하여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처럼 하지 말라’고 했는데, 바울은 자기가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였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갈라디아서 1:10)
2. 하나님께서는 은밀한 중에 하는 기도도 다 들으시고, 사람 앞에서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은밀하게 행하는 일도 다 알고 계십니다.
마태복음 6:4-6. 네 구제함을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또 너희는 기도할 때에 외식하는 자와 같이 하지 말라. 그들은 사람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큰 거리 어귀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들은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그리고 하나님은 외모를 보시지 않고, 각자가 행한 대로 상을 주신다고 했습니다.
로마서 2:6-11.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시되, 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는 영생으로 하시고, 오직 당을 지어 진리를 따르지 아니하고 불의를 따르는 자에게는 진노와 분노로 하시리라. 악을 행하는 각 사람의 영에는 환난과 곤고가 있으리니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며, 선을 행하는 각 사람에게는 영광과 존귀와 평강이 있으리니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라. 이는 하나님께서 외모로 사람을 취하지 아니하심이라.
하나님께서는 멀리서도 우리의 안고 일어섬을 다 아시고 멀리서도 우리의 생각까지도 다 알고 계신다고 했습니다.
시편 139:1-4.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살펴보셨으므로 나를 아시나이다. 주께서 내가 앉고 일어섬을 아시고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밝히 아시오며, 나의 모든 길과 내가 눕는 것을 살펴보셨으므로 나의 모든 행위를 익히 아시오니, 여호와여 내 혀의 말을 알지 못하시는 것이 하나도 없으시니이다.
나의 동료와 상관은 보지 못해도, 하나님은 다 보고 계시고, 듣고 계신다고 했습니다.
시편 94:9. 귀를 지으신 이가 듣지 아니하시랴. 눈을 만드신 이가 보지 아니하시랴.
아브라함의 여종 하갈이 여주인 사라의 학대를 피해 광야로 도망했으나, 하나님께서는 그 정황을 다 보고 계셨고, 광야에서 하갈을 만나 여주인에게로 돌아가서 살아라고 하셨습니다. (창세기 16:6-10)
또 하갈과 아들 이스마엘이 여주인 사라에게서 쫓겨나서 광야에서 목말라 죽게 되었을 때도, 하나님께서는 하갈의 눈물의 기도를 들으시고, 샘물을 주시고, 하갈의 아들 이스마엘을 번성케 축복해 주셨습니다. (창세기 21:10-21)
그러므로 노예 신분의 성도들도 사람이 보든지 안 보든지 하나님 앞에서 충성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왜냐하면 은밀히 보시는 주님이 갚으시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6:6.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3. 그리스도의 종들처럼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노예 신분의 성도들은 사람의 종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했습니다.
또 자유인 신분의 성도들도 똑같이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했습니다.
고린도전서 7:22. 주 안에서 부르심을 받은 자는 종이라도 주께 속한 자유인이요 또 그와 같이 자유인으로 있을 때에 부르심을 받은 자는 그리스도의 종이니라.
그러므로 성도들은 마음에 성령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라는 것입니다.
즉 육신은 노예 신분일지라도,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종의 신분으로 당당하게 살아가라는 놀라운 말씀입니다.
골로새서 3:23-24.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 이는 기업의 상을 주께 받을 줄 아나니 너희는 주 그리스도를 섬기느니라.
이 말씀은 오늘날 직장인 성도들에게도 해당되고, 심지어 목회자에게도 해당되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상관의 눈치 보지 말고 주님 앞에서 충성해야 하고, 주님 앞에서 당당해야 합니다.
어떤 교회에서는 장로님들이 목회자를 자기가 월급 주고 고용하는 일군으로 생각하는 곳도 있습니다.
그럴지라도 목회자는 사람의 눈치 보지 말고, 주님 앞에서 충성하고 당당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직장인이나 목회자나 일군들은 일군들이 먹을 것을 받는 것이 당연하다고 하시고, 밭 가는 소의 입에 망을 씌우지 말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디모데전서 5:18. 성경에 일렀으되 곡식을 밟아 떠는 소의 입에 망을 씌우지 말라 하였고 또 일꾼이 그 삯을 받는 것은 마땅하다 하였느니라.
하나님께서는 공중의 새도 먹이시고, 들의 백합화도 입하시고, 당신의 자녀들을 돌보실 것이기 때문에, 염려 말라고 하셨습니다. (마태복음 6:25-30)
4. 돌을 다듬고 있는 세 사람의 석수가 있었습니다.
한 사람은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서 일하고 있었습니다.
다른 사람은 죽지 못해서 일한다고 불평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한 사람은 하나님이 만드신 귀한 돌을 잘 다듬어서 귀한 집을 짓는 보람과 기쁨을 가지고, 온갖 정성과 지혜를 써가면서 일하고 있었습니다.
똑같은 일을 하면서 누가 가장 행복한 일을 하고 있습니까?
5. 먹고 사는 것을 위해서 염려하고 근심하면, 마음의 평안도 잃고, 건강마저도 해칩니다.
성령님을 모시고 단 마음으로 일하면, 마음도 행복하고, 좋은 결과가 발생합니다.
마음이 없는 음식은 살로 가지 않습니다.
마음이 없는 말은 위로가 되지 않습니다.
마음이 없는 친구는 행복을 주지 못합니다.
그러나 노예 신분의 그리스도인이 마음을 드려 일하면, 하나님이 복을 주시고, 인간사도 요셉처럼 복된 길이 열릴 것입니다.
비록 요셉처럼 노예 생활이나 감옥생활일지라도, 하나님 모시고 성령님과 동행하는 삶은 그 어디나 하늘나라입니다.
찬송가 438장. 내 영혼이 은총 입어 중한 죄짐 벗고 보니 슬픔 많은 이 세상도 천국으로 화하도다. 할렐루야 찬양하세 내 모든 죄 사함받고 주 예수와 동행하니 그 어디나 하늘나라.
7절. 기쁜 마음으로 섬기기를 주께 하듯 하고 사람들에게 하듯 하지 말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With good will render service, as to the Lord, and not to men
기쁜 마음으로 섬기기를
μετ’ εὐνοίας δουλεύοντες,
with good will rendering service
‘섬기기를’(δουλεύοντες)은 현재분사로서(rendering service) ‘항상 섬기면서’란 뜻입니다.
주께 하듯 하고 사람들에게 하듯 하지 말라.
ὡς τῷ Κυρίῳ καὶ οὐκ ἀνθρώποις,
as to the Lord and not to men
1. 성도들은 나를 위해서 목숨 버리신 주님을 위해서는 단 마음과 온전한 사랑을 가지고 충성하고자 합니다.
그러나 사람에 대해서는 언제 상처받을지 모르니까, 쉽게 마음을 열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겉으로만 친한 척하고, 돌아서서는 남 대하듯 합니다.
2. 어떤 나라의 통치자는 ‘나는 제 아내 외에는 아무도 믿지 않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백성의 지도자도 백성을 불신하면서 살아가는데, 일반 사람들이야 얼마나 이웃을 불신하면서, 마음을 닫고 살아가겠습니까?
3. 직장에서 자기의 목숨을 쥐고 있는 상관에 대해서는 얼마나 마음을 열지 못하고, 외식하면서 살아가겠습니까?
<죤 쉬타인백>이라는 작가는 근로자들이 고용주에 대해서 ‘분노의 포도’처럼 분노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고 했습니다.
특히 노예 제도가 정착되어 있던 성경시대에는 종의 신분을 가진 사람들이 자신의 생사여탈권을 가지고 있는 주인에 대해서 얼마나 분노하고, 겉으로만 순종하는 척하면서 살아갔을 것입니까?
그래서 어떤 노예는 주인을 죽이고 도망가고, 어떤 노예는 여주인을 성폭행하고, 주인의 재산을 훔쳐서 달아나기도 했습니다.
성경에 오네시모라는 노예도 주인 빌레몬의 재산을 도적질하여 로마로 도망갔습니다.
그런데 로마 감옥에서 오네시모는 바울을 만나서 예수님을 믿고 변화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골로새 교회의 빌레몬 장로에게 편지를 써서 오네시모를 용서하고 바울을 섬기게 해달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빌레몬서 1장)
4. 오늘 말씀에 그리스도인 노예는 주인 섬기기를 마치 예수님을 섬기듯이 단 마음으로 섬기라고 권면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살아계신 예수님을 참된 주인으로 섬기고 있기 때문에, 말을 하든지 무슨 일을 하더라도, 성령님의 감동을 따라 처신해야 합니다.
베드로전서 4:11.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 같이 하고,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 같이 하라. 이는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니, 그에게 영광과 권능이 세세에 무궁하도록 있느니라. 아멘.
5. 장로교 시조인 칼빈은 ‘교회의 목사만 성직자가 아니라, 모든 직장인은 하나님이 맡겨주신 청지기이므로, 하나님께 받은 성직에 충성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거리의 청소부도 하나님이 만드신 아름다운 지구를 관리하는 마음으로 청소하고, 공무원도 밥벌이가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을 잘 돌보아야 하고, 아이를 기르는 엄마도 하나님이 주신 기업을 관리하는 마음으로 아이를 기르라고 했습니다.
의사들도 돈벌이만 생각하지 말고, 교회의 목사처럼, 하나님이 주신 사명인 줄 알고, 환자들을 어린양들처럼 잘 돌봐주라고 했습니다.
따라서 모든 직장인, 학생들, 농업인, 주부들도 교회의 성직자처럼,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청지기로서, 하나님 앞에서 맡은 일에 충성을 다하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칼빈의 ‘청지기 사상’입니다.
6. 그러기 때문에 어떤 이원론자들처럼 교회 일만 열심히 하고, 직장일이나 사업이나 가정사나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일에 불 충성하는 것입니다.
즉 직장인이 교회 일을 열심히 하면서 직장에서 욕을 먹으면, 올바른 신앙생활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교회에서 찬양대원이고 주일학교 교사를 하고 구역장을 하면서, 동네에서 이웃과 불화하고, 동네 사람들이 ‘저 사람 때문에 나는 예수 안 믿겠다’고 하나님께 욕을 돌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교회에서 직분자를 세울 때는 반드시 불신자들에게서도 칭찬 듣는 사람을 세우라고 했습니다.
디모데전서 3:7. 또한 외인에게서도 선한 증거를 얻은 자라야 할지니 비방과 마귀의 올무에 빠질까 염려하라.
7. 직장생활에서 상관을 섬길 때, 주님이 그 직장을 내게 맡겨주신 것으로 알고, 단 마음으로 충성하시기 바랍니다.
한 직장에서 칭찬 듣지 못하고 자꾸 직장을 옮겨 다니는 사람은, 어디를 가도 칭찬을 듣지 못합니다.
아무쪼록 요셉처럼 노예 생활을 하더라도 주님께 충성하고, 주인에게도 충성하는 성도님들 되시기 바랍니다.
8절. 이는 각 사람이 무슨 선을 행하든지 종이나 자유인이나 주께로부터 그대로 받을 줄을 앎이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knowing that whatever good thing each one does, this he will receive back from the Lord, whether slave or free.
이는 각 사람이 무슨 선을 행하든지-- 앎이라.
εἰδότες ὅτι ἕκαστος, ἐάν τι ποιήσῃ ἀγαθόν,
having known that each one, if whatever he might have done good
‘앎이라’(εἰδότες)는 완료분사로서(having known) 이미 알고 있다는 뜻입니다.
‘행하든지’(ποιήσῃ)는 부정과거 가정법 동사로서(he might have done) 확고한 의지로 선을 행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주께로부터 그대로 받을 줄을
τοῦτο κομίσεται παρὰ Κυρίου,
this he will receive back from Lord
직역하면 ‘그가 주께로부터 이것(선행)을 되돌려받을 줄을’이란 뜻입니다.
즉 선행에 대해서 주님께 보상받는다는 뜻입니다.
‘받을 줄’(κομίσεται)은 미래형입니다(he will receive back).
종이나 자유인이나
εἴτε δοῦλος εἴτε ἐλεύθερος.
whether slave or free
1. ‘이는’이란 종들이 주인에게 눈가림만 하지 말고, 하나님 앞에서 충성해야 할 이유를 설명한 것입니다.
즉, ‘종이든지 자유인이든지 각자가 행한 그대로 주님이 보상해주시기 때문이다’는 뜻입니다.
2. ‘종이든지 자유인이든지 각자가 행한 선에 대해서는 주님으로부터 그대로 보상받는다’는 뜻입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의 재림 때, 각자가 행한 대로 보상받는다는 뜻도 있지만, 현 세상에서도 각자가 행한 대로 주님이 보상해주신다는 뜻도 있습니다.
물론 이 말씀은 우리의 선행으로 구원받는다는 뜻이 아니고, 이미 구원 받아서 예수님을 참 주인으로 섬기는 그리스도인들이 각자가 행한 선행에 대해서 예수님이 행한 대로 보상해주신다는 뜻입니다.
이런 보상은 자유인이든 종이든 차별이 없습니다.
구원도 자유인과 종의 차별이 없지만(골로새서 3:11), 행위 보상에 있어서도 자유인과 종의 차별이 없습니다(에베소서 6:8).
왜냐하면 하나님은 사람을 외모로 보시지 않기 때문입니다(베드로전서 1:17).
3. 예수님이 우리를 구원하신 목적 중의 하나는 우리가 선을 행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에베소서 2:10.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4. 하나님께서는 각 사람이 행한 대로 보응하신다고 했습니다(로마서 2:6-7).
즉 참고 선을 행한 자에게는 영광으로 보상하시고, 불의를 행한 자는 분노로 보응하신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장차 심판 때나 현 세상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최후의 심판 때도 선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고 하셨습니다(요한복음 5:28-29)
5. ‘종이나 자유인이나’란 말씀은 하나님의 심판과 보상은 신분의 차별이 없다는 것을 뜻합니다.
즉, 각 사람이 행한 대로 하나님께서 갚으신다는 것입니다(마태복음 16:27).
종은 종의 위치에서 행한 대로 보상을 받고, 주인은 주인의 위치에서 행한 대로 보응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6. 이와같이 하나님의 심판은 최후의 심판 때나 현 세상에서도 신분의 고하에 차별이 없고,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교회 안에서도 종이나 자유인이나 신분의 차별이 없다고 했습니다. (갈라디아서 3:27-29, 골로새서 3:10-11)
그러므로 종의 신분을 가진 그리스도인은 자기 주인을 주님을 섬기듯이 성실한 마음으로 섬겨야 한다고 했습니다(에베소서 6:5).
왜냐하면 상을 주님께로부터 받을 것이기 때문입니다(에베소서 6:8, 골로새서 3:24).
7. 그렇습니다.
섬기기는 육신의 상전을 섬겼지만, 상급은 주님께 받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육신의 상전을 단지 사람으로만 보지 말고, 하나님께서 섬기라고 맡겨주신 대상으로 보고, 예수님을 섬기는 청지기의 마음으로 충성하면, 그 상급은 주님께 받는다는 것입니다.
이 원리를 잘 알아야 세상을 믿음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가 교회에서 성도들을 섬기는 것도 그 성도들이 주님의 백성들이기 때문에, 주님을 섬기는 마음으로 성도들을 잘 섬기면, 주님께서 상급을 주십니다.
성도들이 눈에 보이는 목사를 섬기는 것도 목사가 허물이 많은 사람이지만, 예수님이 세우신 목사이기 때문에, 예수님을 생각해서 목사를 잘 섬기면, 예수님께서 친히 성도들에게 상급을 주십니다.
김 집사님 댁 아들을 사랑하면 누가 좋아합니까?
네, 어머지 되는 김 집사님이 좋아하지요.
김 집사네 어머니에게 잘하면 누가 좋아하지요?
네, 김 집사가 좋아하지요.
마찬가지로 목사한테 잘하면, 하나님이 좋아하십니다.
또 목사도 성도들한테 잘하면, 하나님이 복을 주십니다.
8. 우리가 이 원리를 잘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소자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결단코 상을 잃지 않으리라’고 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0:40-42)
그리고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거짓말 하는 자라’고 하셨습니다(요한일서 4:20).
어떤 사람은 목사가 잘못했을 때, 함부로 욕하고 싸움을 하는데, 정말 두려워해야 합니다.
다윗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사울 왕이 다윗을 죽이려고 찾아다닐 때, 다윗은 사울을 죽일 기회가 두 번이나 있었어도, 사울이 하나님께 기름 부음 받은 종이라고 해서 죽이지 않고 살려주었습니다.
이처럼 다윗이 하나님을 존경한 것 때문에, 다윗의 자손은 대대로 복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존중히 여기면, 하나님께서도 우리를 존중히 여기신다고 했습니다. (사무엘상 2:30)
그러므로 사울 왕처럼 목사가 잘못하더라도, 다윗처럼 하나님을 생각해서, 자기가 복수하지 않으면, 그 자손이 복 받는 것을 꼭 아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목사가 잘못했을 때는 개인적으로 찾아가서 말하고, 그래도 말을 듣지 않으면, 두 세 사람을 데리고 가서 말하고, 그래도 듣지 않으면, 공회에서 처리하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마태복음 18:15-17).
어떤 교회를 보면, 평신도가 목사에게 욕하고, 내쫓는 경우가 있는데, 이런 죄인의 길에 서지 말아야 합니다.
시편 1:1.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9. 이것이 장로교 칼빈주의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인도 세워주셨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 충성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상관도 세워주셨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 충성하는 것이고, 하나님께서 국가 권력자들도 세워주셨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 충성하는 것입니다.
9절. 상전들아, 너희도 그들에게 이와 같이 하고 위협을 그치라. 이는 그들과 너희의 상전이 하늘에 계시고 그에게는 사람을 외모로 취하는 일이 없는 줄 너희가 앎이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And masters, do the same things to them, and give up threatening, knowing that both their Master and yours is in heaven, and there is no partiality with Him.
상전들아, 너희도 그들에게 이와 같이 하고
Καὶ οἱ κύριοι, τὰ αὐτὰ ποιεῖτε πρὸς αὐτούς,
and the masters, the same things do to them
‘하고’(ποιεῖτε)는 현재 명령형입니다(do).
‘이와같이’(τὰ αὐτὰ)는 직역하면 ‘동일한 것들을’ 행하라는 뜻입니다.
위협을 그치라.
ἀνιέντες τὴν ἀπειλήν,
giving up the treating,
‘그치라’(ἀνιέντες)는 현재 사로서(giving up) 항상 위협을 ‘그치면서’란 뜻입니다.
이는 그들과 너희의 상전이 하늘에 계시고--- 너희가 앎이라.
εἰδότες ὅτι καὶ αὐτῶν καὶ ὑμῶν ὁ Κύριός ἐστιν ἐν οὐρανοῖς,
having known that also of them and of you the Master is in heaven
‘상전’(ὁ Κύριός)이란 문자 그대로는 ‘주님’(the Lord)이란 뜻입니다.
‘계시고’(ἐστιν)는 현재형으로서(is) 언제나 항상 계시는 것을 가리킵니다.
‘너희가 앎이라’(εἰδότες)는 완료분사로서(having known) 이미 알고 있는 것을 가리킵니다.
그에게는 사람을 외모로 취하는 일이 없는 줄
καὶ προσωπολημψία οὐκ ἔστιν παρ’ αὐτῷ.
and partiality not there is with Him
‘외모로 취하는 일’(προσωπολημψία)이란 ‘편파심, 편애’(partiality, favoritism)를 가리킵니다.
‘없는 줄’에서 동사(ἔστιν)는 현재형입니다(ther is).
1. 상전들아, 너희도 그들에게 이와 같이 하고
‘이와같이’(τὰ αὐτὰ)란 문자 그대로는 ‘동일한 것들을’(the same things)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상전들도 주님의 종으로서 종들이 섬기는 모든 자세를 동일하게 가지고, 상전들도 자기 종을 주님을 섬기듯이 잘 섬기라는 뜻입니다.
이처럼 성경은 당시의 노예 제도라는 사회제도를 혁명적으로 뒤집어엎으라고 말씀하지 않았으나, 상전이 노예를 주님처럼 섬기라고 함으로써, 정치 개혁보다는 정신 개조를 하라고 가르쳤습니다.
2. 성경에서 오네시모는 원래 빌레몬 장로의 종이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전도하여 빌레몬 장로에게 오네시모를 ‘사랑받는 형제’로 대접해라고 했습니다.
빌레몬서 1:16-18. 이 후로는 종과 같이 대하지 아니하고 종 이상으로 곧 사랑 받는 형제로 둘 자라. 내게 특별히 그러하거든 하물며 육신과 주 안에서 상관된 네게랴. 그러므로 네가 나를 동역자로 알진대 그를 영접하기를 내게 하듯 하고, 그가 만일 네게 불의를 하였거나 네게 빚진 것이 있으면 그것을 내 앞으로 계산하라.
우리나라에도 이런 놀라운 역사적 사실이 있습니다.
전북 김제 금산교회의 조덕삼 장로는 자기 집 머슴인 이자익을 신학공부를 시키고, 1915년에 자기 교회 담임목사로 청빙하여, 머슴이었던 이자익 목사를 주님처럼 잘 섬겼습니다.
3. 위협을 그치라
당시에 종은 주인의 재산으로만 여겼는데, 성경에서는 위협하지 말고 ‘사랑받는 형제’로 대접하라는 말씀은 과연 종을 인격적인 존재로 대접하라는 가히 정신적인 혁명에 해당하는 말씀이었습니다.
4. 이는 그들과 너희의 상전이 하늘에 계시고, 그에게는 사람을 외모로 취하는 일이 없는 줄 너희가 앎이라.
종이나 상전이나 모든 인간들의 참된 주인은 하늘에 계신 주님이라는 사실입니다.
즉 하나님 앞에서 볼 때, 상전이나 종이 다 똑같은 하나님의 종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외모로 사람을 심판하시지 않고, 각 사람이 무슨 선을 행하든지 종이나 자유인이나 주께로부터 그대로 심판 받을 줄을 알기 때문입니다. (에베소서 6:8)
세상에서는 사람의 외모나 재산이나 신분을 따지지만, 하나님께서는 이런 외모를 보시지 않고, 그 사람의 인격과 마음을 보십니다(야고보서 2:1-9, 갈라디아서 3:28, 골로새서 3:11).
그러므로 성령님을 모시고 사는 성도들은 사회적 신분이 종이라고 함부로 위협해서는 안 되고, 예수 믿는 종을 하나님의 자녀로 소중한 인격으로 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성령으로 살아가는 성도는 다른 사람을 사랑으로 겸손히 대하면서 살아갑니다. (갈라디아서 5:22, 25).
5. 앞에서 종들은 상전들에게 세 가지를 행하라고 하셨습니다.
즉 그리스도께 하듯 하라(5절),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라(6절), 주님을 섬기듯 하라(7절).
그런데 본 절(9절)에서는 상전들도 종들에게 이와같이 행하라고 했습니다.
즉 상전들도 종들을 하나님이 자기 자녀를 사랑하듯이 지극한 사랑으로 대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와같이 하고 위협을 그치라’고 했습니다.
오늘 말씀에 ‘위협’을 이전 성경에는 ‘공갈’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상전들은 자기 종들에게 공갈 협박을 하지 말고, 자기 형제처럼 사랑으로 대하라는 것입니다.
6. 보통 직장에서 상관들은 부하 직원을 부릴 때, 복지 정책이나 처우를 잘 해 줄테니까 일을 잘하라고 하기보다는, 목표를 달성하지 않으면 연장 근무를 해야 한다든지, 봉급을 깎는다든지, 아니면 퇴직시키겠다고 위협을 합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은 연장 근무나 봉급 삭감이나 퇴출보다는 할 수 있는 대로 함께 살 수 있는 길을 모색하고, 직원에게 건강 문제나 가정 문제가 있다면, 함께 해결해보려는 자세를 가지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직원이 마음을 다해서 충성하고 함께 잘 살아갈 수 있게 하라는 말씀입니다.
7. 이처럼 상전들이 종들에게 위협을 하지 말아야 할 이유는 ‘이는 그들과 너희의 상전이 하늘에 계시고, 그에게는 사람을 외모로 취하심이 없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즉 지상에서 상전이나 종들은 모두 하나님 앞에서 동일한 종들에 불과하다는 뜻입니다.
이는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외모로 심판하시지 않고, 각 사람의 행위대로 심판하기 때문입니다.
즉 상관이 살인이나 도적질이나 간음을 하거나, 종들이 살인이나 도적질이나 간음을 하면, 하나님께서는 동일하게 처벌하신다는 것입니다.
상관이 간음이나 살인을 했는데 봐주지 않으시고, 종이 도적질이나 간음을 했다고 봐주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당시 사회 제도상으로는 상관이 종을 소유재산으로 취급하기 때문에, 간음이나 살인죄로 처벌을 받지 않았으나, 하나님 앞에서는 처벌된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그들과 너희의 상전이 하늘에 계신다’는 것은 상전이나 종이 다같이 믿는 성도인 것을 뜻합니다.
이처럼 상전이나 종이나 동일한 주 예수님을 섬기고 살아가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 성령님을 따라 겸손히 사랑으로 섬기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당시 일반 불신사회에서는 상전들이 종들에게 포악을 행했고, 종들도 주인에게 극단적인 보복을 하곤 했습니다.
8. 초대교회 부자들은 가난한 성도들을 외모로 차별하다가 책망을 받았습니다.
즉 부자가 예배당에 들어오면 좋은 자리에 앉도록 권했고, 가난한 종이 들어오면 서 있든지 바닥에 앉으라고 차별대우를 했습니다. (야고보서 2:1-4)
그러나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종이나 자유인이 차별이 없다고 했습니다. (갈라디아서 3:28, 골로새서 3:11)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천한 자 가난한 자를 택하여 부하고 높은 자들을 부끄럽게 하신다고 했습니다.
야고보서 2:5.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들을지어다. 하나님이 세상에서 가난한 자를 택하사 믿음에 부요하게 하시고 또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나라를 상속으로 받게 하지 아니하셨느냐.
고린도전서 1:27-29.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오늘 말씀의 요지는 각 사람의 사회적 신분이 어떠하든지 하나님께서는 각 사람이 행한 대로 보상하신다는 것을 명심하여, 참된 주인이시고 심판주 되시는 하나님 앞에서 겸손히 사랑으로 살아가라는 말씀입니다.
에베소서 6:8. 이는 각 사람이 무슨 선을 행하든지 종이나 자유인이나 주께로부터 그대로 받을 줄을 앎이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회적 신분에 따라 사람을 차별하지 마시고, 하나님 앞에서 사람들을 존경하고, 사랑하면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칭찬하시고 복된 삶을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