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하이 통신 37보> - 남자 과외 선생 드디어 취직하다!
겨울 방학이라 한국에 돌아와 여기저기 바쁘게 인사를 다니고 있는 어느 날 메일 한 통이 날아왔다.
“아저씨, 아주머니, 저 드디어 취직했어요. 축하해 주세요. 기분이 너무 좋아서 아저씨, 아주머니께 먼저 이렇게 소식 전하는 겁니다.”
나는 첫 번째 줄을 읽어 내려가다 말고 그만 가슴이 울컥해져 버렸다.
남자 과외 선생이 그 동안 얼마나 마음고생을 해 왔는지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우리가 방학이라고 한국으로 돌아오는 하루 전날까지, 취직하면 제일 먼저 소식 전하겠다고 다짐을 하던 그였다.
그만큼 절박하기도 했거니와 면접만 가면 떨어지는 본인이 점점 자신감이 사라지는 것에 대해 엄청 겁을 먹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 남자 과외 선생은 경북대학교 경영학과를 나왔다.
경일대에서 어학코스 1년을 다닌 후 경북대에서 졸업을 하였으므로 한국에 유학 온 지 횟수로 치면 5년이 걸린 셈이었다.
그리고 졸업하자마자 작년 8월에 바로 중국 상하이로 귀국을 하였던 것이다.
그때까지만 해도 우리 나이로 치면 아직 25세밖에 안 되었으므로 취직에 대한 열망이 그다지 크지도 않았다.
중국은 우리나라처럼 군복무가 개병제가 아닌 지원병제이므로 대학을 졸업해도 그만큼 급할 것은 없어보였다.
그래서 우리와 만나게 되어 중국어 과외를 하며 여유롭게 생활하고 있었던 것이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1331163B4D7365F52B)
(중국 서열 3위 정도라는 푸딴대학 학생들의 야외 수업 모습. 졸업 후 일자린 다 있겠죠?)
그런데 우리와 과외 수업을 한 지 한 달이 지나고 두 달이 지나면서 천 선생의 심경에 뭔가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어느 날 얼굴은 웃고 있는데 왠지 기가 죽어 보이는 듯한 모습이 눈에 들어왔던 것이다.
“천 선생, 오늘 무슨 일 있어요? 얼굴색이 영···.”
“아뇨, 특별한 일은 없는데···. 그냥 밥 해 먹고 설거지 하고 오느라···.”
“왜요? 밥은 어머니가 안 해 주시고?”
“하하하, 우리 어머닌 여권운동 하는 분이라, 우리 집 남자들은 스스로 밥 해 먹어야 해요.”
물론 농담이었지만, 그런 일이 있은 이후로 왕왕 천 선생 얼굴에 그림자 같은 것이 점점 드리우기 시작했다.
“오늘은 무슨 일 있었어요?”
“말도 마세요. 한국에 유학까지 다녀왔는데 취직할 생각은 안 하고 뭐 하느냐고 부모님이 한 말씀 하시는 바람에···.”
하기야 대학을 졸업하고도, 아니, 유학까지 다녀오고도, 과외나 한답시고 어영부영 시간을 보내고 있었으니 부모 입장에서 얼마나 속에 천불이 났으랴.
“그럼, 취직하면 되잖아요?”
“그래서 지난주부터 원서를 수십 군데나 내 놓았는데 아직 아무런 연락이 없네요.”
중국 전체가 다 그렇지만 상하이에서도 취직하기란 바늘구멍에 낙타 지나갈 만큼 어렵다.
물론 대학 들어가는 것은 더 어렵다.
현재 같은 나이 또래의 25%만이 대학을 갈 수 있으니 우리의 85%와 비교하면 정말 하늘의 별따기라고나 할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수업준비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천 선생 앞으로 전화 한 통화가 왔다.
드디어 어느 한 회사에서 반응을 보인 것이다.
“여보세요? 이번에 원서 내셨죠? 내일 아침 9시까지 우리 회사 2층 면접실로 와 주시겠어요?”
뭐 이런 내용이었다.
“어떤 회사에서 전화를 준 거예요?”
“모르겠어요. 하도 많이 원서를 내 놓는 바람에···. 집에 가서 찾아봐야죠.”
“하하하, 어떤 회사인지도 아직 몰라요?”
하지만 그 전화를 받고 난 직후라 그런지 천 선생의 얼굴에 화색이 돌기 시작했다.
그 날 수업은 어떻게 진행했는지 모를 정도로 얼굴빛이 상기되어 있었던 것이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204AEB3B4D73660F02)
(상하이외대 어학연수반에서. 일부는 이 과정을 마치면 본과생으로 들어갑니당. 그럼, 난?)
하지만 다음날 오후 수업시간에 보니 전과 달리 이번엔 화가 나 있었다.
“왜 그래요? 오늘은? 어제 면접이 잘 안 되었어요?”
“뭐 그런 회사가 다 있어요? 아침부터 긴장해서 서둘러 갔더니만 안내하는 관리자가 말은 똑바로 안 하고 턱으로 이리가라 저리가라 하잖아요? 그래서 뭐 이런 회사가 다 있냐면서 한 바탕 싸우고 왔지요.”
“하하하, 성질 하고는···.”
그리고 또 어떤 날은 한국의 CGV 회사에서 면접 보는데 면접관이 ‘만일 일하다가 내가 당신을 때리게 되면 당신은 어떻게 대응하느냐’ 라고 묻더란다.
그래서 뭐 이런 사람이 다 있나 싶어서 흥분한 나머지 자기도 같이 때릴 거라고 답했단다.
물론 그 이후로 그 회사에서 연락이 없는 것은 당연지사였다.
또 어떤 날은 한국의 LG화학에서 면접을 봤는데 면접을 참 잘 봤단다.
왜 그렇게 생각하느냐고 물으니, 면접관의 질문 내용이 ‘가족은 몇 명이냐, 아버지는 뭐 하시냐, 한국 유학생활은 어떠했느냐, 교우 관계는 어떠했느냐, 장래 꿈이 뭐냐’ 등등 모두가 아주 평이한 것들이어서 대답을 잘 했으니 면접을 잘 봤다는 것이었다.
물론 그 회사에서도 다음에 연락이 없었다.
이런 일을 여러 번 겪고 난 이후로는 매일 같이 수업시간에 만나게 되면, ‘취직이 안 되어서 스트레스가 쌓인다. 잠이 안 온다. 마음이 불안하고 초조하다. 부모님 뵙기가 면목이 없다.’ 등등의 말을 입에 달고 있었다.
더군다나 사귀고 있는 여자 친구는 그럴 듯한 외국계 회사(예를 들어 IBM 같은)에 면접만 보면 다 합격하여 골라 갈 수 있을 정도라고 하니 상대적으로 위축되지 않을 수가 없단다.
그걸 옆에서 지켜보고 있는 우리 또한 측은지심에 이루 말을 할 수가 없을 정도였다.
한국이나 중국이나 대학졸업하고도 취직이 안 되면 죽고 싶은 심정은 다 마찬가지일 터.
![](https://t1.daumcdn.net/cfile/cafe/1930253B4D7366282E)
(수업 중 앞에 나가 발표하고 있어요. 상대는 인도네시아에서 온 공주(?). 내 일자리도 좀...)
그리하여 나는 이래서 안 되겠다 싶어서 적극적으로 코치를 해 주기로 마음먹었다.
우선, 입사원서 내는 방법부터 바꾸자고 했다.
인터넷으로 원서를 그냥 던져 놓으면 누가 당신을 눈에 띄게 보겠느냐.
자기소개서는 남들과 같은 모양으로 적어서는 안 된다.
면접관이 아무리 쉬운 질문을 하더라도 거기엔 다 목적이 있으니 대답을 쉽게 해 버리면 안 된다.
한국의 대기업들은 다 적성검사라는 걸 하는데 거기에 대비하자.
회사에 근무하게 되면 한국인의 리더십의 특성을 알고 있어야 한다.
한국 기업들이 원하는 인재상이란 무엇인가.
등등 내가 경험하고 알고 있는 모든 것에 대해 며칠에 걸쳐서 설명을 해 주었다.
특히 천 선생 같은 세대는 중국에서 빠링세대(80년대 출생한 독생자 세대)라고 불리며 작은 황제나 작은 공주로 자라났기 때문에 세상의 어려움을 모르고 자란 특징이 있다.
그래서 세상이 그들을 어떻게 보고 있다는 것을 말해 주며, 기성세대의 눈높이에 맞추는 연습을 해야 한다고 알려 주었던 것이다.
그런지 얼마 안 있어 SK에너지(지금은 SK이노베이션)에 면접 보러 간다는 것이었다.
난 재삼재사 강조했다.
내가 한 말 명심하라고···.
그리고 특히 적성검사는 솔직하게 하라고···.
그 후 날짜가 얼마 지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천 선생은 마음이 조급해졌는지 안달을 하고 있었다.
왜 아직도 연락이 없느냐며···.
그러더니 급기야 전화를 해서는 합격자 발표를 언제 하느냐고 물어보기까지 하고 있었다.
그 합격자 발표라는 것이 적성검사결과와 면접결과를 한국에 보내서 결재를 받아야 하니 어디 그렇게 빨리 날 수가 있기는 한 거란 말인가.
그런 일들이 있은 후 바로 오늘 나는 천 선생한테서 반가운 메일을 받은 것이다.
본인은 얼마나 기뻤겠는가.
그리고 얼마나 자랑하고 싶었겠는가.
그리고 또 그 이메일 아래 줄에는 빨리 상하이에 와서 좋은 말씀 해 달라고 부탁하고 있었다.
“아저씨, 아주머니, 저는 직장생활에서 꼭 성공하고 싶어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먼저 번 면접 때처럼 코치 바랍니다. 상하이 오시는 대로 바로 연락 바랍니다. 빨리 뵙고 싶습니다.”
키 185cm에 몸무게 85kg, 잘생긴 외모에 겸손하기까지 한 천 선생의 앞날이 희망으로 가득 찼으면 한다.
그나저나 내 중국어 과외 선생은 또 어디서 구해야 할고?
천 선생만큼 호흡이 잘 맞는 사람은 잘 없을 건데···.
2011년 2월 16일
상하이에서 멋진욱 서.
<참고>
멋진욱 중국 상하이 직통 전화 : 159-0042-7896
한국휴대폰 요금 정도로 싸게 전화하는 방법 : 1688-0044 연결후 86-159-0042-7896-# 하면 됩니다.
그래도 연결이 안 되면 한국 로밍폰 011-530-1479로 문자 주세용.
비용 때문에 전화는 못 받아용.
제가 전화 드리겠습니다.
첫댓글 우와!!~ 상하이에서도 여전히 코칭에 열중하시는 우리 이사님!!~~ 취업에 성공한 천모군에게 축하한다고 전해 주세요.. ㅋㅋㅋ SK이노베이션이면 한국에서도 스카이대 아니면 잘 취업 안되는 곳 아닌가요??? 이사님과 사모님께 정말 큰 턱 내야할 것 같네요..~~ 건강히 잘 지내시죠?? 오랜만에 들어왔는데, 두분 여전하세요.ㅋㅋ 사모님 미모는 상하이에서도 빛나시네요~~*^^* ㅋㅋ
안 그래도 상하이 오자마자 만나자고 해서 만났는데, 고맙다고 네스카페 커피잔과 커피가 들어있는 커다란 선물박스를 들고 왔어요. 얼굴이 확 피어 있는 걸 봤습니다. 역시 직장이 있어야 행복한가 봅니다. 히히.
김선생의 이야기와 글이 완전히 일치하는 것을 보고 놀랐습니다.
대단한 화술과 문장력입니다. 아주 큰 자본이라 생각합니다.
칭찬해 주시니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중국어 실력이 잘 늘지를 않습니다. 제가 계획했던 시간 3년 중 1년이 벌써 지났습니다. 남은 기간이나마 뜻대로 되어야 할 텐데요. 그저 저의 바람일 뿐입니다만. 히히.
거것참,참..,잘~하시는..? 가이드 역활은 국경을 넘나드시는 군요,,역쉬~! 멋진욱 이십니더~
멋진욱님이여! 마~내친김에,
중국에 가 있는 나의 딸네미 한테도 좋은 쌤이 좀 되어 주이소~예...,,
아이가 중국 방송국에 연예인으로 진출할 계획도 있고.., 공부도 해야하고..그캅니더~
좋은일인지, 번잡한 일이지...??,기쁨반 걱정반..,그렇습니더~
미륵한~ 지는요, 아이에게 좋은 조언자가 못되고있슴니더~ 이쁜옥,청탁헙니더~...ㅎㅎ
먼저번에 기사 보니까 스스로 잘 하고 있던데요 뭐. 그저 부러울 뿐입니다. 히히.
국위선양 ?? 이라고 해도 되나요 ^^
저도 그렇고 이사님 도움 받는 분이 한두분이 아니예요 ^^
상하이 통신 너무 재미있습니다.~
헤헤헤. CS전문가 답게 항상 좋은 말씀만 하시는구려. 행복 만땅 하슈... 히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