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악산 공룡능선 무박산행기
지난 8월 9일(토)-10일(일)에 한 인터넷산악회를 따라 설악산 공룡능선을 무박산행으로 갔다왔습니다. 밤 11시 반에 서울을 출발하여 다음 날 새벽 3시 30분부터 한계령~서북능선~끝청~중청대피소~희운각대피소~공룡능선~마등령~비선대~설악동의 코스로 산행했는데, 거리는 22.1 km이고 시간은 13시간 20분 가량 걸렸습니다.
이 코스는 오래 전부터 공룡능선을 타는 대표적인 코스로 굳어졌는데, 홍진영 동기는 이전에 12시간 걸려 갔다왔다고 했고, 임상녕 동기는 대구동기홈페이지를 검색해보니 벌써 4번(2번은 순종주, 2번은 역종주)을 종주했었네요. 저는 물론 이번이 처음입니다.
지금으로부터 불과 서너 달 전만 해도 저는 공룡능선을 무박으로 갔다올 생각은 아예 엄두도 못내었고, 기껏해야 설악산의 봉정암이나 대피소에서 1박하고 갔다올 생각만 했는데, 최근에, 특히 지리산 성대종주 후부터, 갑자기 자신감이 상승하여 하루에 14-15시간까지는 산행(휴식 포함)을 할 수 있다고 생각되어 무박산행을 시도했습니다.
그런데 같은 코스를 산행할 바에는 이왕이면 1박보다는 무박산행이 훨씬 간편하고 부담이 적고 집중도가 높아서 재미도 있습니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공룡능선을 갔다온다고 하면 무박으로 (그것도 한계령-설악동의 표준코스로) 갔다옴을 말합니다...ㅋㅋㅋ...만일 공룡능선을 1박으로 갔다온다면 나중에 등산 이야기가 나올 때 명함도 내기 어렵습니다...ㅋㅋㅋ
한계령에서부터 처음에는 캄캄한 산길을 헤드랜턴의 불빛에 의지하여 올라가다가 서북능선 삼거리에 도착하니 약간 먼동이 트는 듯했고, 이후 서서히 여명이 밝아오면서 능선길의 좌측으로는 내설악, 우측으로는 남설악의 경치가 펼쳐졌는데, 깨끗하고 부드러운 솜과 같은 雲霧가 곳곳에 끼어서 뾰죽한 봉우리와 조화를 이루면서 기막힌 絶景을 연출했습니다.
등산객 모두가 이런 경치는 처음 본다면서 감탄했는데, 저도 평생 보기 힘든 절경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絶景이 끝청을 지나 중청대피소 직전까지 2-3시간 이어졌으니 이날 景致運은 大通했던 셈입니다...ㅋㅋㅋ
중청대피소에 도착하여 지척인 대청봉에 갔다오는 사람이 많았지만 저는 공룡능선에 쓸 힘을 아끼느라고 가지 않았습니다. 여기서 여러 명이 라면을 끓여 나누어 먹고 한참 쉬었다가 희운각대피소로 가서 샘에 내려가 물을 보충한 후에 바로 공룡능선으로 들어갔습니다.
저는 산에 가기 시작한지 불과 1년 3달밖에 되지 않습니다만, 한국의 일반 등산객에게 두 가지의 영원한 꿈 내지 뚜렷한 랜드마크가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 중 하나는 지리산의 1박2일 성대(성삼재-천왕봉-대원사)종주이고, 다른 하나는 설악산의 공룡능선(한계령-중청대피소-희운각-마등령-비선대-설악동)주파입니다.
첫번째인 지리산의 1박2일 성대종주는 제가 신영목 김지표 동기와 함께 지난 7/11-12에 무사히 마쳤고,
두번째인 설악산 공룡능선 무박주파가 바로 이날의 목표이자 과제였습니다. 만약 이것마저도 무사히 해낸다면 저는 산행을 시작한 지 비교적 짧은 기간에 보통 등산객의 두 가지의 꿈 내지 랜드마크를 모두 이루게 됩니다...ㅋㅋㅋ
" 공룡능선 가봤어? " " 안 가봤으면 아예 말을 하지 말어“ 산행 도중에 누군가가 이런 익살로 주변을 웃겼습니다만, 이런 말이 오갈만큼 보통의 등산객에게 공룡능선 무박산행은 하나의 기념비적인 標識가 됩니다...ㅋㅋㅋ
드디어 오전 10시 무렵에 공룡능선으로 처음 들어서니 유명한 무너미고개가 높고 험하게 앞을 막아서서 숨을 헉헉대게 하고 진땀을 흘리게 하여 정신이 아찔했으며 겁마저 덜컥 났습니다.
그럴 때는 제가 근래에 확립했던 산행법대로 무조건 짧게 쉬었다가 가고, 또 그런 현상이 느껴지면 또다시 짧게 쉬었다가 갔습니다. 심지어는 3-4 발자국을 옮겼다가 잠깐 쉬고 다시 5-6 발자국을 옮겼다가 잠깐 쉬기를 여러 번 반복하는 등, 힘들고 피곤하면 무조건 쉬고 또 쉬었다가 갔습니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이렇게 하면 예상외로 피로가 빨리 회복되어 얼마 후에는 정상적인 상태가 되곤 했습니다. 바로 이 때문에 제가 장거리 산행을 할 때는 더욱 쉬는 것에 중점을 두고 “자주 쉼으로써 멀리 간다”는 제 나름대로의 산행법을 확신하고 또 철저히 지켰습니다...ㅋㅋㅋ
초입의 무너미고개를 넘으니 그 이후부터는 별다른 險路가 없었고, 공룡능선 전 구간의 길바닥에는 큰 돌을 깔아서 다니기가 예전보다도 훨씬 수월해졌으며, 산행시간도 1시간쯤 단축되었다고 합니다. 요즘 공룡능선 주파는 보통 4시간 잡는데, 저는 이날 4시간 20분 걸렸습니다.
공룡능선을 걷다보면 왜 공룡능선이 유명한지, 또 왜 공룡능선에 꼭 와봐야 하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만큼 산세가 보통과 달리 유난히 奇異하고 險峻하고 첩첩하여 마치 어떤 特別한 구역이나 세계에 들어온 것 같았습니다. 또 좌측으로는 내설악, 우측으로는 외설악이 멋진 壯觀을 보여준다고 하는데, 이날은 구름이 많아서 잘 볼 수 없었으며, 특히 외설악쪽은 전혀 보지 못했습니다.
공룡능선에 들어오기 전에 먼저 서북능선을 6시간 반 동안 산행했기 때문에 이미 피로가 많이 쌓였고 무릎에 부담이 가해졌던 터라 공룡능선에서는 몸관리를 잘 하는 것이 아주 중요했습니다.
저와 일행이었던 40-50대의 사람들이 공룡능선에서 무릎이 아파서 쩔쩔 매거나 피로 때문에 녹초가 되는 일이 많았고 심지어 급경사에서 구른 사람도 있었습니다. 또 자신없는 사람들은 희운각에서 아예 공룡능선을 포기하고 거리가 가깝고 쉬운 천불동계곡으로 바로 내려갔습니다.
저도 무더위에 시달리고 피로가 쌓였지만 힘들게 참아가면서 걸어갔던 결과 마침내 공룡능선의 끝지점인 마등령에 도착하여, 비선대로의 하산길에 접어들었습니다.
그러나 이 하산길이 또 대단한 급경사의 돌길이어서 상당히 괴롭고 어렵다는 것을 미리부터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직접 걸어보니 역시 아주 힘들고 부담스러웠습니다. 또 자칫 잘못해서 급경사에서 구르기라도 한다면 다칠 우려가 있으므로 바짝 긴장해야 했습니다.
마등령 이후의 하산길은 외설악에 속하는데 산세가 特異하고 奇妙하여 예로부터 유명했음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날은 급경사의 돌길에 시달리고 시간마저 충분치 못하여 발걸음을 옮기는 데만 신경을 썼을 뿐, 주변의 산세와 경치 구경은 거의 하지 못했습니다.
끝없이 이어지는 급경사의 내리막 돌길을 끈기있게 하나하나 밟아 내려오니 마침내 비선대가 나오고 商街지대가 나왔으며, 한 음식점의 벤치에 앉아서 물을 마시고 얼마간 쉬었다가 다시 큰 바위가 많은 유명한 설악동계곡 옆으로 난 넓은 포장도로를 걸어서 설악동소공원의 버스정류장으로 걸어내려왔습니다.
이날 산행거리는 22.1 km 였고 시간은 13시간 20분 가량 걸렸습니다만 지리산보다 급경사의 오르막 내리막이 많은 등 전체적으로 험한 산길이어서 몸과 무릎에 피로와 부담이 더 쌓였다는 것이 저의 느낌이자, 산행경험자들의 공통된 의견이었습니다.
첫댓글 청옥 두타, 성대종주(예전에는 화엄사에서 간다고 화대종주라고 했던가? ) 드디어 무박2일의 공룡능선을 했군요. 축하합니다. 늦게 배운 도둑 날 새는 줄 모른다더니. 대단한 정력입니다. 나는 이제 그런 곳에 갈 용기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