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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안>
제목: 성경이 말하는 말세란 무엇일까?
일자: 2023년 8월 6일 주일
아이들아 지금은 마지막 때라 적그리스도가 오리라는 말을
너희가 들은 것과 같이 지금도 많은 적그리스도가 일어났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마지막 때인 줄 아노라
요한일서 2:18
설교의 목적:
기독교 신앙의 특징은 마지막 때가 임박했다는 확신입니다. 마지막 때라는 말은 세상의 끝을 의미합니다. 성경은 왜 이런 메시지를 주는 것일까요? 성경이 말하는 말세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저는 지금까지 이 주제에 대하여 여러 번 글을 썼습니다. 그리고 이번 설교에서 그것을 종합하고자 합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창조 이야기로부터 시작합니다. 그리고 성경 이야기가 끊임없이 들려주는 주제는 하나님이 이 세상의 문제에 대하여 깊은 관심을 가지고 계시다는 점입니다. 성경이 가장 중요하게 전달하는 메시지는 하나님이 이 모든 것을 결국 바로잡으실 것이라는 약속입니다. 그것은 부활의 희망으로 주어집니다.
성경이 말하는 말세나 마지막 때에 대하여 이해하려면 필수적으로 하나님이 이 모든 것을 지으시고 주관하시는 분이라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 믿음이 없이는 말세에 대한 언급은 의미를 상실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알파와 오메가십니다. 처음 시작을 하셨고 마지막 완성을 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하나님은 계속 일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의 저자들과 하나님의 백성들은 자기 시대의 사람들에게 주님이 곧 오신다거나 세상의 끝이 임박했다는 말을 사용하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었습니다. 오히려 그것은 그들에게 매우 자연스러운 언어활동이었습니다!
저는 이 설교에서 이전에 풀지 못했던 ‘말세방정식’을 풀어보겠습니다. 그것은 창조와 부활이라는 요소가 포함되어야 풀리는 종합방정식입니다. 이 방정식을 보면 예수께서 당대의 사람들에게 ‘인자가 오는 것을 보리라!’고 하셨고 초기교회는 주님이 곧 오신다고 고백했는데 2천년이 지나도록 주님은 오지 않으셨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 문제를 이 설교에서 풀어보겠습니다.
이 설교를 통해서 결국 우리는 말세에 대한 바른 이해를 가지게 되고 주님이 속히 오셔서 모든 것을 바로잡으실 것을 기대하게 될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모든 썩어질 것들이 썩지 않을 것을 입을 그날을 기대하며 현실에서 빛나는 삶을 살 수 있을 것입니다.
설교 개요
1. 아직도 말세인가?
2. 옷이 없어서?
3. 인자가 오리라
4. 말세방정식
5. 성경이 말하는 말세란?
1. 아직도 말세인가?
기후위기로 지구촌이 난리입니다. 지금 우리나라 새만금에서는 세계 청소년들의 야영축제인 훈련인 제25회 세계스카우트 잼버리대회가 열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더위로 인하여 온열환자가 계속 나오고 있다고 합니다. 올해는 전기세를 아끼느라 여름을 선풍기로만 지내고 에어컨을 켜지 않던 사람들도 견딜 수 없다고 하소연합니다. 그만큼 우리들은 지금 기후위기를 체감하고 있습니다.
지구 온난화에 대한 위기감이 고조되어 온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오래 전부터 학자들과 환경운동가들은 지구온난화로 인한 기후변화의 위기를 경고했습니다. 그 경고가 하도 많았으므로 우리는 이처럼 고온의 날씨 속에서 고통을 겪으면서도 별다른 불평을 늘어 놓지 않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이 현상이 지구적인 것이므로 어쩔 수 없다고 체념하는지도 모릅니다.
불행 중 다행인 점은 이런 상황에서 말세에 대한 불안감을 선동하는 무리가 없다는 점입니다. 양치기소년의 이야기에서 보듯이 여러 종교집단이 일어나 말세소동을 외치는 바람에 이제 누가 말세가 임박했다고 외친다 해도 그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을 것임이 분명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설령 성경에 말세에 대한 언급이 있다고 해도 성경이 기록된 지 2천년이 된 지금까지도 세상의 끝은 오지 않았으므로 사람들은 이제 성경이 말하는 말세를 더 이상 믿지 않는 것 같습니다. 어쩌면 그것은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 제사제도와 같이 낡아져 없어진 이야기로 여겨지는 것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분명한 것은 오늘날 말세나 세상의 끝에 대하여 성경으로 설명하고 주장하기는 어려워졌습니다. 우리들은 누군가 말세에 대하여 말한다면 마음 속에 이런 생각이 일어날 것입니다. ‘2천년 전부터 말세라고 했는데 아직도 말세란 말인가!’ 말세에 대한 성경의 언급은 이제 잊어도 좋다는 생각이 우리들 가운데 확산되어 있다는 느낌입니다.
그런데 요한일서 2장에서 보듯이 당시의 사람들은 ‘지금이 마지막 때’라고 굳게 믿고 있었습니다. 그뿐 아니라 신약성서에는 그것이 기록되던 시기의 사람들이 자기 시대가 말세라고 확신한 구절이 여러 곳에 나타납니다. 신약성서가 기록되던 초기 기독교회에서 말세에 대한 확신은 그들의 삶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이었습니다. 말세 신앙은 초기교회의 모든 가르침과 행동에서 근간이 되었습니다. 주님이 곧 오신다는 믿음과 주님의 오심이 가까웠다는 확신은 신자들에게 이 세상을 구별되게 살아갈 이유를 제공했습니다.
2천년 전, 초기교회는 왜 자기 시대가 말세라고 굳게 믿었을까요?
2. 옷이 없어서?
오래 전에 부교역자 시절에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예배 시간에 설교자의 기도가 끝나고 신자들이 헤어지는 시간이었습니다. 청년 하나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우리 목사님은 왜 자꾸 옷이 없다고 하시는 거에요?’ 기도 시간에 ‘옷이 없어서’를 여러번 말씀하셨다는 것입니다. 저는 그 말을 듣고 한참을 웃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 기도는 사실 성령이 오셔서 우리들을 붙드시고 이끌어 주실 것을 비는 기도였습니다. ‘성령님, 오시옵소서!’를 ‘옷이 없어서’로 비틀어 들은 것입니다.
세월이 지나서 그때 일을 다시 생각해 보니 우리들은 기도 가운데 하나님이 우리에게 오실 것을 늘 바라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깨달았습니다. 우리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구약의 백성들도 하나님이 오실 것을 간구했습니다. 광야에서 이동하던 이스라엘 민족은 하나님의 언약궤를 들고 한 자리에 머물러 진을 친 후에는 이렇게 간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여호와여 이스라엘 종족들에게로 돌아오소서
민수기 10:36
시편 기자의 기도에도 이런 간구가 나옵니다:
여호와여 돌아오소서 언제까지니이까
주의 종들을 불쌍히 여기소서
시편 90:13
성경을 보면 하나님의 백성들은 늘 하나님이 함께해 주시기를 간구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시면 전쟁에서도 승리하며 어디에 가든지 형통했습니다. 요셉이 그랬고 다윗이 그랬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이 전쟁에 패하거나 포로로 끌려갔을 경우에는 하나님이 그들을 떠나셨다고 생각했습니다. 에스겔 10장은 하나님이 자기 백성들의 성전을 떠나시는 장면을 묘사합니다. 하나님이 그들을 떠나시면 그들은 심판을 받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한편으로는 하나님이 그들을 떠나시는 것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하나님이 악인들을 벌하시는 것입니다. 그런 일이 일어나는 날에 하나님은 심판을 실행하실 것입니다. 그런 심판이 일어나는 날을 성경은 여호와의 날이라고 부릅니다. 여호와의 날에 대한 예언자들의 언급은 아래와 같습니다:
슬프다 그 날이여 여호와의 날이 가까웠나니
곧 멸망 같이 전능자에게로부터 이르리로다
요엘 1:15
화 있을진저 여호와의 날을 사모하는 자여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의 날을 사모하느냐
그 날은 어둠이요 빛이 아니라
아모스 5:18
예언자들이 말하는 여호와의 날은 심판의 날이며 멸망의 날입니다. 그 날은 어둠이 온 세상을 덮을 것입니다(이사야 60:2). 바로 그날에 하나님의 영광은 구원받을 백성 위에 임할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모하고 하나님의 뜻에 충실한 사람들은 여호와의 날을 사모하고 또 기다렸을 것입니다. 그 날은 악인에게는 심판이며 의인에게는 보상의 날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이 오시기를 구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오셔서 이 모든 것을 바로잡아 주시고 주님께 신실한 백성에게 상을 주시리라 믿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살아계시고 모든 것을 주관하신다고 믿는 신자들에게는 당연한 신앙이었습니다.
3. 인자가 오리라
예수께서 자주 하신 말씀 중에 ‘인자가 오리라’가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오셔서 모든 것을 바로잡으실 것을 믿는 신앙을 바탕에 두고 하신 말씀이었습니다. 악인이 심판을 받고 의인이 보상을 받는 날이 반드시 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신실하게 믿는 사람들에게는 당연한 믿음이었고 모든 것을 받혀주는 기초였습니다.
예수께서 인자가 오리라는 말씀을 하신 때는 아래의 몇 가지 경우입니다. 우선 예수께서는 복음을 전하는 제자들에게 그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들의 수고가 보응을 받는 날이 곧 온다는 의미였습니다:
이 동네에서 너희를 박해하거든 저 동네로 피하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의 모든 동네를
다 다니지 못하여서 인자가 오리라
마태복음 10:23
이러므로 너희도 준비하고 있으라
생각하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마태복음 24:44, 누가복음12:40
예수께서는 자신의 복음을 거절하고 회개하지 않은 완악한 지도자들을 향하여 인자가 오리라는 말씀으로 경고하셨습니다:
그 날 환난 후에 즉시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리라
그 때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그 때에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하며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마태복음 24:29~30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말하였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후에 인자가
권능의 우편에 앉아 있는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 하시니
마태복음 26:64
이 말씀에서 보듯이 ‘인자가 오리라’는 말씀은 예루살렘에 대한 심판의 선언이며 제자들에게는 그들의 수고가 결실을 할 것이라는 약속이었습니다. 이런 믿음으로 우리도 주님이 오실 것을 간절히 구합니다. 주님이 오셔서 우리의 억울하고 답답한 상황을 해결해 주시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이런 간구에 대하여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은 내가 속히 오리라는 것입니다. 그 상황이 잘 묘사된 것이 요한계시록의 마지막 부분입니다:
이것들을 증언하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요한계시록 22:20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다시 올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또한 예루살렘의 기득권자들에게도 다시 올 것이라고 경고하셨습니다. 그 말씀대로 교회는 흥왕해졌고 예루살렘은 파괴되었습니다. 그것을 본 사람들은 하나님이 심판하셨고 하나님이 보응하셨다고 깨달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동시에 인자가 오리라고 하셨는데 과연 그대로 되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이런 질문을 해 볼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인자가 오리라!’고 말씀하신 대로 오셨다면 예수님의 재림은 지나간 것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위에서 말한 것처럼 인자가 오리라는 말씀은 하나님이 심판하신다는 말과 같습니다. 그런 점에서 하나님의 심판이 예루살렘에 대해서 이루어졌으며, 동시에 하나님의 보응은 교회에 성취되어 교회는 온 세상에 복음을 전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교회의 순종과 희생이 맺은 결실입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세상을 관리하시고 바로잡으십니다. 이 말은 하나님의 심판은 모든 세대에게 현재적이라는 의미입니다. 즉, 하나님은 모든 세대에게 말씀하십니다: ‘인자가 오리라!’ 또는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리라!’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리라!’
그러므로 모든 세대는 주님이 오실 것을 기다리면서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에 충실할 것입니다. 그때 주님은 각 세대에게 말씀하실 것입니다: ‘내가 속히 오리라!’ 또는 ‘인자가 오는 것을 보리라!’ 또는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가 행한 대로 갚아 주리라’(요한계시록 22:12).
여기서 우리는 재림이나 주님의 나타나심이 어떤 의미인지를 새롭게 이해하게 됩니다. 재림은 지구상에 단 한번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 각 세대에게 주님이 오시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것은 심판이며 보상입니다. 주님은 그렇게 각 사람과 각 세대에게 나타나십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주님이 속히 오실 것을 기쁨과 기대를 가지고 기다릴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주님이 오셔서 모든 것을 바로잡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제자들에게 오리라고 말씀하신 것은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예루살렘에 대하여 인자가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보리라고 말씀하신 것도 이루어졌습니다. 그들에게 심판이 임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의 세대에 대해서는 재림이 이미 이루어졌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각 세대는 자신의 삶에 대한 주님의 심판이나 보응이 있을 것을 기다립니다. 그런 점에서 각 세대는 주님이 오실 것을 기다립니다. 즉, 재림을 기다립니다.
지나간 세대에게는 이미 심판이 있었듯이 그들에게는 재림이 이미 지나갔습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에게는 심판이 남아 있으므로 주의 재림은 아직 오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이 옳습니다. 그런데 재림이 지나갔다는 표현은 우리에게는 매우 낯섭니다. 우리에게 재림은 온 세상이 낙원으로 바뀌고 새 하늘과 새 땅이 이루어지며 모든 사람이 부활에 동참하는 날이라는 의미이기 때문입니다.
주의 재림이 심판이라는 점에서는 각 세대가 기다리는 일이며 지나간 세대에게는 그들이 과거에 살았던 것처럼 그들에게 재림도 과거의 일이 됩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에게는 미래의 일입니다. 우리들도 각 사람이 행한대로 보응을 받을 것입니다. 그런 보응을 기다리면서 우리들은 주님이 속히 오시기를 기다립니다. 그날에 주님은 오셔서 우리가 행한대로 갚아 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또 시간이 흘러갈 것입니다. 그렇게 다음 세대는 자기들에게 다시 오시는 주님을 기다릴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행한 대로 보응을 받을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이 오셔서 세상을 바로잡으시는 일은 마침내 최종적으로 완성될 것입니다. 그 날에 대한 판타지가 예언자들의 노래에 담겨 있습니다. 그리고 요한계시록에 찬란한 그림으로 제시됩니다.
사도 바울은 그것을 가리켜 썩어짐의 종노릇한데서 벗어나 하나님의 아들들이 누리는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라고 설명했고, 사망에게 영원한 사형선고를 내리는 날이라고 했습니다(고린도전서 15:55). 그 날에는 우리의 몸도 부활하여 썩지 않는 영광의 몸을 입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와 같은 영광의 모습으로 변화될 것입니다. 그것은 부활의 영광이며 심판이 완성되는 날이며 재창조가 완성되는 날입니다.
4. 말세방정식
주님이 오셔서 세상을 심판하실 날이 가까이 왔다고 믿는 사람들은 자신이 마지막 때를 살고 있다고 확신합니다. 요한일서 2장에서는 적그리스도가 일어나는 모습을 보면서 그에 대한 심판이 임박했음을 깨닫고 즉시 지금이 마지막 때라는 사실을 확신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주권을 믿는 사람들에게는 자연스러운 반응입니다.
그런 점에서 초기교회는 자신들이 말세를 살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사망이 죽고 모든 성도들이 부활하는 의미에서 말세는 언제일까요? 부활의 때는 언제이며, 또 그것이 의미하는 것으 무엇일까요? 우리의 삶에 대한 심판을 위하여 주님이 다시 오신다는 의미에서 재림은 곧 있을 것입니다. 주님이 속히 오실 것입니다. 이런 표현을 우리는 사용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몸이 부활하고 모든 것이 새롭게 되는 세상은 언제 올까요?
사실 우리는 우리의 행위에 대한 심판과 보응의 날이 언제일지 알 수 없습니다. 다만 도적같이 그 날이 올 것은 분명합니다. 하물며 온 세상이 새롭게 되는 날에 대해서 우리가 어떻게 알 수 있겠습니까? 여기서 저는 질문을 바꾸어 생각해 보았습니다. 즉, 우리가 부활하는 날이 언제인지에 대하여 물어보지 말고 우리가 부활한다는 이야기가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물어보자는 것입니다.
저는 몇 년 전에 존경하는 장로님의 장례식을 마치고 화장장에서 돌아오는 길에 부활에 대하여 생각한 적이 있습니다. 슬픔에 잠긴 유족들에게 부활에 대하여 설교를 하고 나서 돌아오는 길이었습니다. 유족들은 장례식의 마지막 날이라 지쳐 있었습니다. 저의 마음 속에 일어나는 질문은 이것이었습니다:
‘기독교의 성경이 가르치는 부활신앙이란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그때 제가 깨달은 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부활신앙은 마치 창조의 이야기와 같은 역할을 합니다. 창조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우리는 이 세상의 주인이 하나님이시며 인간은 이 세상의 관리자와 청지기로 지음을 받았음을 깨닫습니다. 즉, 창조 이야기는 우리에게 인간과 세상의 존재 목적을 일깨워줍니다. 그리고 우리가 어떻게 이 세상을 살아야 하는지를 보여줍니다.
마찬가지로 부활 이야기는 우리에게 현실에 대한 절망을 이길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모든 사람은 죽습니다. 모든 것은 결국 썩어지고 맙니다. 그렇기에 모든 것은 헛되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부활 신앙은 여기에 다른 대답을 합니다. 죽음을 맞이하는 모든 생물은 다시 살아나는 날이 옵니다. 썩을 것이 썩지 않을 것으로 다시 일어나는 날이 옵니다. 그리고 그렇기에 우리는 지금 이 자리에서 희망을 잃지 않고 끝까지 절망을 몰아내고 인간의 삶에 대한 가치를 부여하고 존엄을 지킬 수 있습니다.
부활신앙은 창조신앙과 마찬가지로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삶의 의미와 희망을 제공합니다. 거기에 기독교의 성경이 들려주는 이야기의 진가가 있습니다. 그 무엇이 암울한 현실에 희망을 줄 수 있을까요? 그 무엇이 허망함을 느끼는 인생에게 묵직한 의미와 찬란하게 빛나는 가치를 덧입혀 줄 수 있을까요? 그것이 바로 성경 이야기가 하는 위대한 역할입니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창조와 부활로 시작하고 완성됩니다.
물론 어떤 사람들은 이 이야기를 오독하여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신 증거를 찾으려고 노력합니다. 그리고 창조 이야기가 사실임을 입증하려고 과학적 증거를 제시합니다. 창조과학회가 하는 일이 그것입니다. 그들은 창조 이야기 그 자체가 사실임을 입증하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야기는 그 이야기 자체의 사실성에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이야기가 담고 있는 의미 때문에 가치가 있습니다.
부활에 대해서도 우리는 같은 실수를 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사실 성경에서 사두개인들은 예수께 부활에 대하여 질문을 했습니다. 그 질문의 의도는 부활이란 곤란한 일이므로 결코 사실일 수 없다는 것을 입증하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의 이야기대로 상상을 해본다면 정말 곤란한 상황이 한 둘이 아닙니다. 그 많은 사람들이 다시 살아나면 어디에서 살 수 있을까요? 그리고 그들의 인간관계는 또 어떨까요? 이 땅에서 맺어진 인연들이 그 때에는 어떻게 될까요? 그래서 차라리 육체의 부활을 믿기보다는 영적인 부활을 믿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요?
이런 생각은 모두 성경 이야기가 담고 있는 의미를 오해한 결과로 일어납니다. 말세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말세는 세상의 끝이며 우리가 지금 마지막 날을 살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하나님의 심판과 보응을 믿는 사람들의 삶 속에서 신실함과 충성됨으로 나타날 것입니다. 또한 더 큰 말세는 몸의 부활과 새로운 세상이 열리는 것이며 그것은 창조의 이야기와 마찬가지로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죽음 앞에서도 절망하지 않도록 붙들어 줍니다.
저는 드디어 말세에 대한 방정식을 풀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수께서 하신 말씀 ‘인자가 오리라’는 것과 요한계시록에서 여러 번 반복된 약속인 ‘내가 속히 오리라!’는 말씀들이 무슨 의미인지를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몸의 부활과 새로운 세상이 열리는 약속에 대해서도 창조 이야기와 연동하여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스스로에게 ‘너는 말세 방정식을 풀었다!’고 말해 주었습니다.
5. 성경이 말하는 말세란?
이제 성경이 말하는 말세가 무엇인지 정리할 차례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말세란 지구 멸망의 날이 아닙니다. 그렇게 되도록 하나님이 버려 두지 않으십니다. 도리어 하나님은 항상 일하십니다(요 5:17). 하나님은 자기 손으로 지으신 세상을 새롭게 하려고 늘 일하십니다. 그래서 결국 이 피조세계는 새 하늘과 새 땅이 될 것입니다. 그것은 완성될 세상입니다.
그 과정에서 인간은 살아갑니다. 즉, 창조와 새 창조 사이에서 살아갑니다. 물론 그 둘 사이에서 하나님은 늘 새로운 창조를 하십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새로운 창조를 하려고 일어나실 때마다 세상은 두려워 떨었습니다. 예언자들은 그 날을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라고 불렀습니다. 악인들이 심판을 받는 날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잠깐 동안 왕성하고 형통했겠지만 이제 그들의 세상은 끝납니다!
그것을 잘 알고 있었으므로 적그리스도가 일어나는 모습을 볼 때마다 신자들은 이제 하나님이 일어나셔서 심판하실 것을 확신했습니다. 그렇게 그들은 자기 시대가 마지막 때라는 사실을 굳게 믿었습니다. 그들에게 말세신앙은 자신들의 세대에서 일어나는 적그리스도의 행위에 가담하거나 동조해서는 안 된다는 다짐이었습니다. 그리고 자신들의 수고와 충성됨에 대하여 보상을 받을 것을 기대하는 희망이었습니다. 성경의 기록자들에게 말세란 바로 그런 의미였습니다.
그런 이유로 사도들은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베드로전서 4:7)고 교회를 격려했으며, 또한 ‘너희가 말세에 재물을 쌓았도다!’(야고보서 5:3)고 자기만 위해 살아가는 부자들을 책망했습니다. 또한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구원하려고 일어나셨음을 일깨우려고 예수님에 대하여 사도들이 기록하기를, ‘이제 자기를 단번에 제물로 드려 죄를 없이 하시려고 세상 끝에 나타나셨느니라’(히 9:26)고 소개했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말세신앙은 각 세대의 사람들에게 신실하신 하나님 앞에서 충성되게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일깨워줍니다. 그리고 죽음과 썩어짐이 있는 세상에서 절망과 허무에 빠지지 않고 희망 가운데 선을 행할 수 있도록 우리를 붙들어줍니다. 건강한 말세신앙은 불의 앞에서 타협하지 않게 지켜주며 동시에 그 불의를 극복할 수 있는 용기를 줍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속히 오셔서 이 모든 불의를 바로잡으실 것이기 때문에 신자는 그 날을 기다리며 지금 선을 행하고 악을 대적하며 어그러진 것을 바로잡기 위하여 노력할 수 있습니다.
기독교인의 말세신앙은 결코 도피주의가 아닙니다. 도리어 그것은 현실을 바로잡으려는 적극적인 노력을 할 수 있도록 격려합니다. 기독교의 말세신앙은 오늘과 같은 기후위기로 인한 지구적인 위기 앞에서 더욱 책임있는 자세로 대응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우리 주님이 우리와 함께하시므로 우리는 절망할 수 없고 자포자기해서도 안 됩니다. 도리어 우리는 주님께서 피할 길을 주시고 다같이 살 수 있는 길을 주시리라 믿고 그 길을 찾기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성경이 창조 이야기를 들려주어 우리에게 세상과 인생의 가치와 목적을 이해하고 붙들 수 있게 하는 것처럼 말세 신앙은 현실이 때로는 암울하게 느껴질 때에도 절망하지 않도록 우리를 붙들어 줍니다. 특히 악한 세력이 무섭게 일어날 때에도 그것에 굴복하거나 좌절하지 않고 계속 선을 행할 수 있도록 끊임없는 용기와 희망을 제공합니다. 왜냐하면 주님이 속히 오셔서 이 모든 것을 바로잡으시고 주님의 뜻에 충실한 우리들에게 영광의 면류관을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말세신앙입니다.
<끝>.
참고 자료:
2023년 6월 4일 설교
마지막 날에
2022년 대림절에 쓴 말세신앙에 대한 글
https://cafe.daum.net/Wellspring/8SB1/701
현대인을 위한 복음에서 다룬
성경이 말하는 말세나 종말의 의미에 대한 글
https://cafe.daum.net/Wellspring/W7qr/18
위의 글을 보충한 글
https://cafe.daum.net/Wellspring/W7qr/23
말세에 대한 신천지 집단의 주장을 반박한 글
https://cafe.daum.net/Wellspring/8SB1/641
말세에 대한 나의 생각을 정리한 글과 영상(2000년도)
https://cafe.daum.net/Wellspring/VwUl/5
말세에 대한 재정의(2019년도)
https://cafe.daum.net/Wellspring/VmpI/18
마지막날, 말일, 그리고 말세에 대한 글(2019년도)
https://cafe.daum.net/Wellspring/VmpI/16
교회생활 용어사전: 말세(2017년도)
https://cafe.daum.net/Wellspring/VP9d/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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