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도송(悟道頌)
金烏千秋月 洛東萬理波
漁丹何處去 依舊宿蘆花
<龍城禪師>
금오산 천년의 달이요,
낙동강 만 리의 파도로다,
고기잡이 배는 어느 곳으로 갔는고
옛처럼 갈대꽃에 머무는구나.
견도송(見道頌)
五蘊山中尋牛客 獨坐虛堂一輪孤
方圓長短誰是道 一團火炎燒大天
<龍城禪師>
오온 산중에서 소 찾는 객이여!
텅빈 집에 홀로 앉았으니, 일륜월이 고고하구나!
모나다 둥글다 길고 짧다 누가 이르는고?
한 무더기 불꽃이 온 누리를 태우는구나!
이 두 게송(偈頌)은 근래 선지식(善知識)이었던 백용성(白龍城) 선사(禪師)의 오도송(悟道頌)과 견도송(見道頌)이다. 위의 게송은 오언절구(五言絶句) 평기식(平起式) 게송(偈頌)이고. 압운(押韻)은 파(波)는 하평성(下平聲) 우통(虞統)이고 화(花)는 하평성(下平聲) 마통(麻統) 운족(韻族)으로 작게(作偈) 했다. 아래 견도송(見道頌)은 칠언절구(七言絶句) 측기식(仄起式) 게송(偈頌)이다. 압운(押韻)은 객(客)은 입성(入聲) 맥통(陌統) 운족(韻族)이고, 고(孤)는 하평성(下平聲) 우통(尤統) 운족(韻族)이고, 천(天)은 하평성(下平聲) 선통(先統) 운족(韻族)으로 작게(作偈) 했다. 대체적(大體的)으로 용성선사(龍城禪師)는 근체시(近體詩) 작법(作法)에 구애(拘礙)받지 않는 듯하다. 오도송(悟道頌)과 견도송(見道頌)이 있는 것도, 특이점(特異點)이다. 선사는 3,1 운동에 앞장섰던 독립운동 대표 33인 중에 한 분이다. 상해 임시정부에 독립운동 자금을 김구 선생에게 은밀하게 조달했고, 해방되자 김구 선생이 대각사로 찾아왔으나 용성스님은 열반 하신지 5년이 지난 후라 용성스님을 만나지 못하고 용성선사 덕분에 독립운동을 할 수 있었다고 고마움을 표했다고 한다. 상해 임시정부로 윤봉길 의사를 만주로 보낸 것도, 용성 선사라고 한다. 선사는 중국백장(中國百丈) 선사와 같이 용성선사도 함양 백운산에 화과원(華果院) 농장을 만들어서 선농(禪農) 일치(一致)를 주창하신 선지식(善知識)이다. 화과원에서 선화(禪話)다. 봄이 와서 복사꽃이 화사하게 만발할 때다. 하루는 용성선사(龍城禪師)가 제자 고봉(高峰)에게 물었다, 화과원(華果院)의 도리원(桃梨院) 소식을 일러 보아라. 고봉스님이 화과원에 도리가 만발하니, 이대로가 화장세계입니다, 했다. 그 말을 듣고 용성 선사께서 불호령이 떨어졌다. 네 이놈! 이놈이 공부가 좀 된 줄 알았더니, 오늘 말하는 것을 보니, 순전히 밥이나 축내는 밥 도둑놈이 아니냐? 하고 죽비로 타작(打作)을 했다. 경책(警責)을 맞고 고봉스님, 생각하기를 내가 이치에 맞게 대답을 하였는데 뭣이 잘못, 되었단 말인가? 하고 의심이 생겼다. 자기가 한 말에 대한 확신(確)이 없다. 그래서 스승님께서 한 말씀 일러 주십시오, 했다. 용성스님께서 이르기를 화과원에 도리가 만발하니, 이대로가 화장세계로구나! 하셨다.
고봉스님 말과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똑같은 말이다. 법을 이치로만 아는 해오(解悟) 수행자(修行者)와 법을 자내증(自內證)으로 체득(體得)한 증오(證悟) 선지식(善知識)의 경지(境地)가 이렇게 다르다. 고봉(高峯) 스님과 용성(龍城)선사 차이는 해오(解悟)와 증오(證悟)의 차이(差異)다. 이치(理致)로 보면 똑같은 말인데, 고봉스님은 자신이 한 말에 확신(確信)이 없는 머리로 이치로만 말한 해오(解悟)의 경지라 의심(疑心)이 남았다. 그러나 용성선사는 똑같이 화과원에 도리가 만발하니 이대로가 화장세계(華藏世界)로다, 하고 확신(確信)에 찬 증오(證悟)의 소식을 이른 말이다. 대혜종고(大慧宗杲) 선사는 서장(書狀)에서 이런 경지를 해오(解悟), 증오(證悟)로 나누어 점검(點檢) 설파(說破)하셨다. 불교 수행은 증오(證悟)가 되어야 한다. 머리로 생각으로 이치로 분별로 헤아려서는, 안된다는 말이다. 수행(修行)은 자내증(自內證) 깨달음으로 확신(確信)을 해야 하고, 그 경지를 몸소 얻어(得) 체험하고, 대각(大覺)의 경지에 이르러(及)야, 된다고 해서 대혜 선사는 신득급(信得及)의 오척(悟尺)을 제시(提示)했다. 용성선사와 제자 고봉스님과의 화과원(華果院) 선화(禪話)다. 옛 시론(詩論)과 주역(周易)에도 이런 말이 있다. 글은 말을, 다하지 못하고(書不盡言), 말을 뜻을 다하지 못하고(言不盡意), 뜻은 상을 세워 뜻을 다 한(立像盡意)다, 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도 영산회상에서 염화(拈華)로 법의 근본 당처(當處)를 불립문자(不立文字) 언어도단(言語道斷) 심행처멸(心行處滅)이라 연꽃을 들어 보인 것이다.
장자(莊子)도 그래서 득어망전(得魚忘筌)이라 했고, 부처님께서는 사벌피안(捨筏彼岸)이라고 하셨다. 수행의 목적지에 이르면 뗏목은 버리고, 뜻을 얻으면 말을 잊으라는 득의망언(得意忘言)의 법문(法門)이다. 용성선사는 서울 대각사(大覺寺)를 창건하고 주석하시면서 대각교운동(大覺敎運動)으로 도시 불교 포교(布敎)와 역경(譯經) 사업(事業)에도 찬불가를 처음 만들어 도심 포교당 운동에 선각자(先覺者)의 길을 걸으셨다. 저서(著書)로는 『심조만유론(心造萬有論), 각해일륜(覺海日輪), 석가사(釋迦史), 팔상록(八相錄) 등을 저술하였고, 화엄경 80권을 한글로, 번역(飜譯)하였다. 용성조사(龍城祖師) 유훈(遺訓)인 가야, 고구려, 백제, 신라 등, 우리나라 최초 불교 전래지 성역화 사업과 부처님의 인도 성지에 한국 사찰 건립과 경전 100만 권 번역과 100만 명 불자에게 불계를 받도록 하는 유훈 사업 실현(實現)에 평생 받친 분이 전북(全北) 순창(淳昌) 출신(出身) 도문(道文) 선사(禪師)다. 용성선사 탄생 출생지인 전북 장수에는 죽림정사(竹林精舍)를 도문선사께서 창건(創建)하셨다고 한다. 오늘은 용성선사님의 오도의 세계 오도송과 견도송의 운목(韻目)을 맞춰보았다.
여여법당 화옹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