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도창해!
아시다시피 황진이의 시조에 나오는 말이다. 냇물이 흘러 더 넓은 바다로 흘러간다는 말인데 엊그제 고산골 산성산에 오르며 불현듯 이 시조가 생각났다, 청산리 벽계수야 쉬이 감을 자랑마라, 일도창해하면 다시 오기 어려우니 명월이 만공산하니 쉬어 간들 어떠리, 평소 산행 초입에서 졸졸 흐르는 물은 가끔 봤지만, 이렇게 산 정상 가까이에서도 콸콸 흘러가는 저 물을 보니 저렇게 흘러 흘러 바다로 가는구나, 저 물은 언제 또 이 산꼭대기에서 마음껏 소리 내며 흐를 수 있겠나라는 생각이 든다. 전 날 온 비로 수량이 풍부하여 보슬비 흩날리는 가운데 산행을 시작하니 숲이 주는 상쾌한 공기와 더불어 뿜어져 나오는 피톤치드가 여인의 체취보다 더 진하게 내 마음을 흔든다. 역시 산행은 우중산행이 최고라 할 만하다. 비 오는데 무슨 산이냐고 하는 자들은 아직 이 기분을 느껴보지 못한 것이 분명하다. 비가 오락가락하는 날씨에도 자전거를 타고 편의점에 들러 물과 김밥을 배낭에 담아 나서 본다. 수성교, 희망교 밑을 지나 잘 정비된 자전거 도로로 페달을 밟아 오면서 늘 봐오던 신천이지만 오늘은 도도히 유장하게 흘러가는 강물을 보면서도 확 트인 시야와 강물에 쌓인 스트레스가 한꺼번에 싹 가시는 기분이다. 모처럼 큰 강을 보는 기분에 가슴이 뻥 뚫렸는데, 고산골 입구에 주차를 하고 성불사, 법장사를 지나 본격적으로 쾅쾅대는 물소리를 들으면서 한발 한발 올라가면서 비안개 자욱한 숲 사이를 바라보니 여기가 꼭 신선이 노니는 선계가 아닐까 하는 착각 마저 들 정도이다. 산행 내내 쾅쾅거리는 흘러가는 물소리는 베토벤의 운명교향곡 보다 더 장중하다면 좀 과장일까? 냇물 마다 폭포다. 설악산 비선대나 내연산 12폭포가 오늘 만큼은 조금도 부럽지 않다. 빗물을 머금은 물봉선이 더 없이 선명하다. 잣나무군락지를 지나 청룡산까지 쭉 가려다 오늘은 물소리만 감상하자는 선에서 내 마음과 약속하고 산성산 정상에서 김밥과 사과 한쪽을 베어 물면서 주변을 둘러보니 희뿌옇게 가린 베일 속에 진한 테르핀 향기가 말 할 수 없이 퍼져 나온다.
조금 더 올라 정상에 도달했다. 저 쪽 산 능성에 안개가 자욱하다. 한편의 동양화가 따로 없다. 이렇게 가까운 곳에서도 이런 멋진 자연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 새삼 누구라도 붙잡고 감사인사라도 하고 싶다. 아! 나만 이런 기분을 느껴 조금 미안한 마음도 든다. 이 글 읽는 여러분, 엄청난 폭우가 내릴 때가 아니면 우산이나 비옷 챙겨 가까운 숲이나 산으로 발길을 옮겨 보시지요, 그 곳에는 지금까지 느껴 보지 못한 대자연이 베푸는 가슴 깊은 울림이 있을 겁니다. 물론 앞산 가까이 살면 이곳 고산골로 오십시요.
--- 종전 쓴 글 올려 죄송합니다.
첫댓글 앞산 풍경을 잘 묘사했습니다. 글중에 무슨 산이냐고 하는 자들을 사람들로 바꾸어 보세요.
자연을 느끼고 맛을 알 수있다니 부럽습니다^^
우중 산행의 묘미를 실감나게 적어주셨네요. 비가 조금 오는 날 집 부근 산에서 체험해 보고싶네요
산행을 즐기는 작가의 호쾌한 심중을 읽을 수 있습니다. 비오는 날 산행 하는 분위기도 느낄 만 합니다. 고산골, 성불사, 법장사에 대한 설명도 설명도 곁들여 줬으면 합니다. 읽는 독자의 입장에서는 그 분위기를 감지하기 어렵군요.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