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장균은 그 단순한 구조와 생태로 인해 많은 연구와 실험의 대상이 되고있습니다. 하지만 대장균의 생태를 관찰하던 중, 1944년에 발견된 이래, 아직도 과학자들이 풀지 못한 숙제로 남아있는 과제가 있습니다. 바로 퍼시스터(persister)의 존재입니다.
먹을 것이 없는 군체는 각 개체들의 생체활동을 최소화한채 정체상태에 들어가게 됩니다. 만약 사람의 세포가 정체상태가 되면 100% 죽음으로 이어지지만 대장균은 간단하므로 먹이가 다시 공급되면 원래상태로 되돌아오게 되지요. 굶주리던 군체에게 유당이 공급되면 대장균은 베타-갈락토시데이즈(beta-galactosidase)를 이용해 유당을 소화흡수하게 됩니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다른 개체들이 게걸스럽게 유당을 먹어치우고 있음에도 베타-갈락토시데이즈를 전혀 사용하지 않는채 계곧 굶는 개체들이 있습니다. 이들을 관찰한 과학자들이 발견한 것은 이들의 행동이 느리다는 것입니다. 신진대사활동은 물론 분열속도나 생체활동도 모두 느렸습니다. 과학자들은 이들을 퍼시스터라고 불렀습니다.
보통 이 퍼시스터들은 다른 빠르게 활동하는 개체들에 의해 도태되지만 항생제에 대한 생존률이 상당히 높았습니다. 군체에 항생제를 접하게 하면 대부분의 개체들은 죽지만 상당수의 퍼시스터들이 살아남은 것입니다. 처음에는 이들이 돌연변이로 항생제에 대한 저항성을 획득한 것이라 생각했지만 뭔가 이해하기 어려운 현상이 뒤따랐습니다. 살아남은 퍼시스터들은 분열하여 군체를 형성했는데 군체 전체가 퍼시스터가 아닌 소수만 퍼시스터이고 대다수는 정상적으로 활동하는 개체들이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이들에게 다시 항생제를 투여하면 다 죽고 퍼시스터들만 살아남는 패턴이 계속 되었습니다.
물론 항생제에 대항하는 메커니즘의 대부분이 박테리아에게 부담이 되고 따라서 항생제의 위협이 없어지면 저항성이 없는 박테리아들이 자연선택되는 것이 정상이지만 퍼시스터에 의해 일어나는 이런 현상은 과학자들이 생각하는 돌연변이의 개념이 아니었습니다. 돌연변이가 이리도 빠르게 순식간에 일어난다면 항생제라는 것들이 그리도 지난 수십년간 효과를 본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되었기 때문입니다. 과학자들의 예상대로 항생제로 인한 전멸 후 퍼시스터에 의해 새로 형성된 군체들은 저항성이 전혀 없던 예전 군체들과 유전적으로 동일했습니다. 과연 어떻게 된 것일까요?
항생제의 뭔가 알려지지 않은 작용으로 인해 일부 개체들이 퍼시스터가 되었다는 주장도 있지만 헤브라이 대학의 내털리 밸러밴은 여러차례의 실험으로 퍼시스터들은 이미 항생제에 접하기 전에 퍼시스터가 되었음을 밝혀 항생제의 작용과는 전혀 상관없음이 드러났지요. 과학자들을 더웃 혼란스럽게 만든 것은 이 퍼시스터들이 다른 정상개체들과 유전적으로 동일했다는 것입니다. 유전적으로 동일한데 대체 퍼시스터들은 왜 행동의 차이가 나는 것일까요?
아직까지 정확하게 밝혀진 사실은 없습니다. 다만 현재 가장 유력한 가설은 일부 박테리아 내부의 어떤 생화학적 밸런스가 우연히 무너져 독소의 양이 늘어났다는 것입니다. 노스이스턴 대학의 킴 루이스는 퍼시스터와 정상개체가 만들어내는 단백질을 비교분석하여 퍼시스터가 더 많은 독소를 만들어낸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우연히 무너진 생화학적 밸런스로 인해 늘어난 독소가 해당개체의 생체활동을 방해해 퍼시스터로 만든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퍼시스터는 계속 그상태로 남는 것이 아닌 적은 확률로 정상개체로 돌아오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는 내부의 수복기능으로 인한 것이라 추측됩니다.
비록 우연히 사고로 만들어진 퍼시스터지만 이들의 느린 생체활동은 항생제가 작용하기 쉽지 않게 만들어 오히려 항생제에 대한 생존력을 높여주었고 항생제의 위협이 사라지면 다시 원래대로 군체를 회복하게 되는 것입니다. 유당이 있어도 계속 굶은 퍼시스터의 경우에도 유리한 점이 있는데 더 영양가높은 먹이가 나타날 수도 있고 먹이가 어느순간 사라져버릴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유당을 먹다가 다른 먹이를 소화흡수하기 위해, 혹은 다시 정체상태로 돌아가기 위해 전환하는 과정은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하는데 어느순간 정상으로 되돌아올지도 모를 이 퍼시스터들은 이 에너지를 아끼고 있는 셈입니다.
퍼시스터들과 비슷한 작용으로 만들어지는 것으로 추측되는 특이한 현상의 개체로는 콜리신 메이커(colicin-maker)가 있는데 이들은 콜리신이라는 바늘같은 단백질을 만들어 자폭과 함께 발사합니다. 같은 스트레인의 개체들은 여기에 대한 면역 때문에 괜찮지만 대신 경쟁상태에 있는 다른 스트레인들은 콜리신에 맞아 죽게 되지요.
인간으로 치면 발육부진아라고 할 수 있는 퍼시스터나 콜리신-메이커나 비록 우연과 사고로 만들어지고 정상적인 환경에서는 도태되지만 대신 해당종족의 미래를 위해 예비되거나 자신의 희생으로 다른 종족들을 돕게되는 역할을 맡게 되는 것입니다.
첫댓글 생물학은 신기하군요. 퍼시스터는 처음 들어 보네요.
정말 신기하네요. 저도 처음 들어봄;
저도 처음듣네요. 일종의 보험. 고로 인간도 루저를 인정하라 !!! ㅠㅠ
제 인생이 남에게 아무리 도움이 된다해도 저에게 돌아오는것이 없으면 그냥 자살하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