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딸과 양아들들
일경 한영탁
거대 야당의 대표를 지지하는 ‘개딸’과 ‘양아들’이라는 이름의 후원단체가 생겨났다. 그들의 지지를 받는 야당 대표는 ‘개아빠’로 자처한다. 정치 팬덤으로서는 이색적이고 파격적인 명명(naming)이다. 아마도 급팽창하고 있는 애견 인구의 핵을 이루는 미혼 여성, 중년층 여성들과 동물애호가들의 환심을 얻기 위해서일지도 모른다.
하긴 요즘 개, 고양이를 비롯한 동물사랑 풍조가 이만저만 하지 않으니 그럴만도 하겠다. 애견병원, 애견미용샵, 애견호텔, 애견유치원, 애견카페의 등장은 이미 한물간 이야기다. 애견펜션, 애견 동반 캠핑장, 애견 동반 풀빌라, 애견장의식장, 애견묘지공원까지 등장하고 있다. 고급의 개먹이 간식, 영양식, 명품 애견용품을 따로 파는 점포가 백화점에 입점, 성업 중이라 한다. 밍크와 여우털을 소재로 한, 한 벌에 100만-150만 원 나가는 개 옷이 팔린다는 소문도 돈다. 개 전용 침대가 물경 3,000만 원에 주문 제작된다니 정말 어안이 벙벙해진다. 개, 고양이들의 주가가 상종가를 치고 있다. 때는 바야흐로 ‘개들의 전성시대’인가 보다. 그야말로 ‘개 팔자가 상팔자’인 세상이 도래한 셈이다.
어디 그뿐인가, 요즘 젊은 주부가 매기는 집안 식구들 서열에서도 시어머니, 시아버지의 순위는 아이, 아빠, 개 다음으로 밀려 꼬라비 신세라 한다. 아침저녁 산책길에서는 별로 볼품도 없는 개를 유모차에 태워서 밀고 가거나, 아기처럼 강보에 싸안고 다니는 여인들을 마주칠 때가 부지기수이다. 그럴 때면 나는 개와 주인 중 누가 상전인지 의문을 품게 된다. 텔레비전의 애견 코너에서는 미혼 처녀가 개를 보고 “엄마한테 뽀뽀해줘.” 하며 입술을 대주는 장면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시집가서 아기 낳아 기를 생각 않고, 저러고 있으니 인구문제가 해소될 날은 요원하다.’는 탄식이 절로 나올 지경이다. 시집을 못가 외롭고 허전한 마음을 강아지를 상대로 한 육아 흉내로 대체충당하는 심리학적 행위일지도 모른다는 애잔한 마음이 일기도 한다.
개는 인간이 원시시대부터 최초로 길들여 함께 살아온 가축이다. 가장 가까운 가축으로 인간과 사냥을 같이하는 사냥개(狩獵犬), 집과 재산을 지켜주는 방범견, 양떼를 모는 목축견으로 주로 활용되었다. 그러다가 군대의 군견(軍犬). 경찰의 수색견을 거쳐, 최근엔 맹인과 장애인을 돕는 안내견, 사람들의 외로움을 달래주는 애완견으로 많이 이용된다. 동, 서양을 통해서 주인에게 충성을 다한 충견(忠犬), 인명을 구한 의견(義犬) 일화도 무척 많다. 그러나 오늘날처럼 개가 인간의 사랑을 받은 적은 일찍이 없었던 것 같다. 우리나라에서는 예전부터 사람들이 먹다 남은 음식 찌거기를 주로 먹였고, 아기 똥을 핥아먹게도 하다가, 다 자라면 보신탕으로 끓여 먹었다. 서양인과 일본인들은 흔히 한국인을 보고 개를 잡아먹는 사람들이라며 야만인으로 혐오하고 비하한다. 해외에서 만난 외국인들이 그걸 트집 잡으면, 나는 불교도로 개고기를 안 먹지만, 당당히 응수한다. “너네들은 말을 잘 부려먹다가는 잡아먹지 않느냐? 도쿄 한복판 뒷골목에도 일본인들이 찾는 개고기집이 있더라. 대부분 아시아 지역 사람들은 오래된 식습관의 하나로 개고기를 먹을 뿐이다. 문화적 차이를 이해해야 한다. 유대인과 아랍인들은 돼지고기를 안 먹는다. 그런데 너희는 햄이다, 소시지다, 베이컨이다, 하몽이다 하고 잘도 먹지 않는냐.”
옛부터 우리나라에선 개를 그리 우대하지 않았다. 우리말이 그걸 증언해준다, ‘개’가 접두어로 붙으면 욕이나 얕잡아보거나 깔보는 말이 된다. 개꿈, 개수작, 개죽음, 개망신, 개판, 개상놈, 개새끼, 개자식, 개망나니, 개똥, 개차반(개가 먹는 것=똥 같은 것), 개돼지(욕), 개년, 개기름, 개x같다, 개잡놈, 개잡년 등을 보면 알 수 있다, 질이 낮은 야생 살구를 개살구, 야생 복숭아를 개복숭아로 부르고 개꽃(진달래는 참꽃, 철쭉은 개꽃), 개쑥부쟁이, 개두릅 같은 말도 있다.
자칫하면 욕이 되기 쉬운 이런 사실을 염두에 둔 듯 이 대표 팬덤은 자기네 동아리가 ‘개혁의 딸’, ‘양심의 아들’의 준말이라고 해명한다. 이 대표 자신은 ‘개혁의 아빠’로 자처한다. ‘개혁’의 사전적 의미는 ‘새롭게 뜯어고치는 것, 합리적 절차를 거쳐 체제를 바꾸는 것.’이라고 자리매김 한다. ‘양심’은 ‘바르고 착한 마음. 도덕적인 가치를 판단하여 바르고 착함(正善)을 명령하고 사악(邪惡)을 물리치는 통일적 의식(意識)이라고 풀이하고 있다. 거짓말과 변호사법 등 선거법 위반으로 기소된 인물, 공금 유용, 공무원법 위반과 뇌물 수수, 7, 8건의 부동산 의혹으로 조사선상에 올라 있는 정치인과 개혁과 양심은 궁합이 멀어도 한참 멀다. 개혁, 양심이라는 좋은 말을 타락시킬가봐 우려된다. 정치판을 개판으로 희화화(戲畫化}한다. (2022. 10.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