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둥에 묶인 그리스도 (1479)
안토넬로 다 메시나
안토넬로 다 메시나(Antonello da Messina, 1430-1479)는
15세기 중엽 유럽 문화부흥의 중심에 있던 혁신적인 인물 중 하나다.
그는 시칠리아 섬의 메시나에서 태어나,
남이탈리아와 밀라노 등을 거쳐 1475년경에 베네치아에서 활약하였고,
자신의 작품에서 당시 널리 퍼져 있던 다양한 유화 형태를 하나의 방식으로 통합하여
이탈리아의 캔버스에 플랑드르 유화기법으로 그림 그리는 것을 전수하였다.
특히 1475년경 베네치아에 머무는 동안 플랑드르의 유화기법을 베네치아에 전수하여
이탈리아 전성기 르네상스 시대를 여는데 크게 공헌하였다.
그는 말년에 자기 고향인 메시나에서 활동했는데,
그가 1475-79년경에 그린 <기둥에 묶인 그리스도>는
고향에서 그린 손바닥만 한 크기의 만년 작 중 하나이다.
이 작품의 크기는 작지만
크기에 비해 등장인물의 표정이나 묘사를 사실적으로 극대화시킴으로써
플랑드르 화가들이 흉내 낼 수 없는 명작을 만들었기에
이 그림은 영향력을 지닌 작품이 되었고,
루브르 박물관은 이 작품을 소장함으로써
루브르의 이탈리아 회화 컬렉션의 가치를 더욱 높이게 되었다.
안토넬로는 가시관을 쓰고 채찍질을 당하기 전 기둥에 묶인 채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는 그리스도를 극사실적으로 묘사했는데,
그리스도의 형상을 머리를 중심으로 클로즈업 시켜
위를 올려다보는 그리스도의 옆얼굴을 통해 더욱 강한 인상을 남겼다.
미술사에서는 예수님께서 본시도 빌라도에게 재판을 받으실 때,
빌라도가 가시관을 쓰시고 계시는 예수님을 가리켜
“보라, 이 사람을.”(Ecce Homo) 라고 말하여
가시관을 쓰고 서 계신 도상을 ‘에체 호모’ 도상이라고 하는데,
예수님의 수난을 극적으로 표현한 이 장면은
중세 후기에 가장 활발히 그려진 종교도상이며,
이 작품은 약간 변형된 에체 호모 도상이고,
이 작품에는 복음서의 여러 구절들이 함축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빌라도는 예수님을 채찍질하게 한 다음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넘겨주었다.
그때에 총독의 군사들이 예수님을 총독 관저로 데리고 가서
그분 둘레에 온 부대를 집합시킨 다음,
그분의 옷을 벗기고 진홍색 외투를 입혔다.
그리고 가시나무로 관을 엮어 그분 머리에 씌우고 오른손에 갈대를 들리고서는,
그분 앞에 무릎을 꿇고 “유다인들의 임금님, 만세!” 하며 조롱하였다.
또 그분께 침을 뱉고 갈대를 빼앗아 그분의 머리를 때렸다.
그렇게 예수님을 조롱하고 나서 외투를 벗기고 그분의 겉옷을 입혔다.
그리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러 끌고 나갔다.(마태오 27, 26-31)
그리스도는 머리에 가시관을 쓰고,
목에 개처럼 밧줄이 묶여 있으며,
보이지는 않지만 기둥에 몸을 기대고 있어
사람들이 기둥에 묶여 있는 그리스도를 상상하게 한다.
화가는 그리스도의 희생을 효과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눈물방울과 핏방울, 밧줄의 그림자,
사실적인 양감 표현이 두드러진 돌출된 매듭과
땀에 절어있는 모발과
맥없이 듬성듬성 나 있는 수염과 눈썹 등을 매우 사실적으로 묘사했다.
미간을 찌푸리고 슬픈 눈빛으로 하늘을 우러러 보며
힘없이 입을 벌리고 있는 예수님의 모습에서
우리는 고난의 잔을 하느님의 뜻으로 받아들이는
인류에 대한 그리스도의 사랑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그 사랑의 위대함 앞에 무릎을 꿇게 된다.
그리고 우리도 군사들처럼 무릎을 꿇고 고백한다.
“유다인들의 임금님, 만세!”
그 외침이 조롱이 아니라 신앙고백이 되기 위해서는
우리도 예수님처럼 양 손이 묶인 채 모든 것을 하느님께 맡겨야한다.
그리고 이사야 예언자처럼 고백해야 한다.
“그에게는 우리가 우러러볼 만한 풍채도 위엄도 없었으며
우리가 바랄만한 모습도 없었다.
사람들에게 멸시받고 배척당한 그는 고통의 사람, 병고에 익숙한 이였다.
남들이 그를 보고 얼굴을 가릴 만큼 그는 멸시만 받았으며
우리도 그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렇지만 그는 우리의 병고를 메고 갔으며 우리의 고통을 짊어졌다.
그런데 우리는 그를 벌 받은 자, 하느님께 매 맞은 자, 천대받은 자로 여겼다.
그러나 그가 찔린 것은 우리의 악행 때문이고
그가 으스러진 것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다.
우리의 평화를 위하여 그가 징벌을 받았고 그의 상처로 우리는 나았다.
우리는 모두 양 떼처럼 길을 잃고 저마다 제 길을 따라갔지만
주님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이 그에게 떨어지게 하셨다.
학대받고 천대받았지만 그는 자기 입을 열지 않았다.
도살장에 끌려가는 어린 양처럼 털 깎는 사람 앞에 잠자코 서 있는 어미 양처럼
그는 자기 입을 열지 않았다.”(이사야 53,2-8)
세상의 병고와 고통을 짊어진다고 말했던 나의 고백이
이 그림을 보면서 무너져버린다.
작은 아픔에도 신음하며 저항하던 내 모습이
이 그림을 보면서 부끄럽게 느껴진다.
우리는 언제나 세속의 옷을 벗고 예수님처럼 고난의 벌거숭이가 될 수 있을까?
기둥에 묶여 깊은 한숨을 내쉬며 하늘만 쳐다보는 예수님을 바라보면서
우리도 예수님처럼 눈물을 흘리게 된다.
그리고 우리도 예수님처럼 피땀을 흘리며 기도한다.
“아버지,
하실 수만 있으시면 이 잔이 저를 비켜 가게 해 주십시오.
그러나 제가 원하는 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대로 하십시오.”(마태오 26,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