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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 그림 모음전 스크랩 퓰리처상 (Pulitzer Prize)
지킴이 추천 0 조회 28 06.09.15 20:33 댓글 1
게시글 본문내용
      퓰리쳐상[Pulitzer Prize]

 

  미국에서 가장 권위 있는 보도·문학·음악상.
 
  수상분야  : 보도, 문학, 음악
  주     최  : 컬럼비아대학 언론대학원
  개최원년  : 1917년
  개최시기  : 매년 4월
  시상내역  : 뉴스·보도사진 등 8개 부문, 소설·연극 등 6개 부문, 음악 1개 부문

  

저명한 언론인 J.퓰리처의 유산 50만 달러를 기금으로 하여 1917년에 창설되었다.

언론 분야는 뉴스·보도사진 등 8개 부문, 문학 분야는 시·소설 등 5개 부문, 드라마 1개 부문, 음악 1개 부문에서 수상자를 선정한다. 컬럼비아대학교 언론대학원에 선정위원회가 있으며, 매년 4월에 수상자가 발표된다. 수상자에게는 1만 달러의 상금을 지급하며, 공공봉사상 수상자에게는 금메달도 수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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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수상작 일람]

 

    


<안전지대로의 도피>
 
1966년 수상작품
 
1960년대 중반, 베트남 전쟁이 한창 치열할 때 UPI통신사의 사진기자로 종군한 사와다 교이찌는 전쟁의 와중에서 신음하는 베트남 국민들의 처참한 실상을 촬영했다. 이 사진은 그 중의 하나로 퀴논 부근에서 월남인 어머니와 어린이들이 미군기의 폭격을 받고 있는 마을에서 탈출, 필사적으로 강을 건너는 긴박한 상황을 포착한 것이다.

죽음의 공포 분위기가 감도는 전장속에서 안전한 곳으로 도피하려는 인간의 본능적인 몸부림과, 강인한 모성애가 휴머니스틱하게 표현된 이 사진은 사와다에게 1966년도 퓰리처상을 안겨 주었다.

사와다는 그후 사진의 주인공인 모자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몹시 궁금해 했다. 전선을 찾아 1년을 해메던 끝에 그는 그 주인공들과 극적인 상봉을 했다. 비교적 평화롭게 살고 있는 이들에게 그는 퓰리처상의 상금을 몽땅 털어 약 1년분의 생활비를 쥐어 주고 행운을 빌어 주었다.

사와다는 그후 미군을 따라 종군하다가 1970년 캄보디아 전선에서 전사했다. 피묻은 그의 종군기자증이 그의 시체 옆에서 발견되었다. 한 장의 역사적인 사진을 남기기 위해서 전쟁터에서 활약하다가 죽은 사진기자는 많이 있었다. 그러나 사와다처럼 따뜻한 인간애를 지닌 멋진 사진기자는 없었을 것이다.

1942년 퓰리처 사진 부문상이 제정된 이래 세 명의 일본인 사진기자가 수상을 했다. 그 중 한 사람인 사와다는 그의 사진과 함께 생생한 역사로 영원히 살아 있을 것이다....
 

     
<사이공식 처형>
 
에드워드 T. 아담스 , 1969년 수상작품
 
 
1968년 2월 1일, 사이공 서부의 초론 지역에서 취재하고있던 AP통신사의 아담스는 손을 뒤로 묶인 남베트남 민족해방전선 간부가 사이공 정부군 해병대와 경찰에 체포되어 연행되고 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
뒤쫓아가자 지프가 멈춰서 있고 그곳에는 남베트남 국가경찰장관이 기다리고 있었다. 장관은 연행되어온 남자가 바로 앞에 서자마자 허리에 찬 권총을 뽑아 남자의 우측 머리에 대고 방아쇠를 당겼다.
이 충격적인 길 위에서의 처형장면을 담은 한 장의 사진은, 그때까지 베트남 전쟁을 정의의 싸움이라고 간주하고있던 미국의 여론을 반전으로 돌아서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소녀의 절규>
 
현콩 닉 웃 ( Hyun Cong Nich Ut ), 1973년 수상작
 
전쟁의 아픔, 전쟁의 고통, 전쟁의 비극을 이 한 장의 사진만큼 실감나게 말해 줄수 있을까? 베트남 공군의 무차별 폭격으로 거리로 밀려나온 민간인들, 그 중의 한 소녀가 불타는 옷을 찢어 던지고 벌거벗은 몸으로 공포에 떨며 울부짖으며 내달리고 있다.
과연 누구를 위한 전쟁인가?

1972년 6월 8일의 일이다. 베트남 육군은 트랭 방에서 수도로 이어지는 1번 국도를 탈환하기 위해 사흘 동안 맹공을 퍼부었다. 그러나 베트공의 저항이 완강하자 남부 베트남 공군의 지원을 요청했다. 공군의 전폭기들은 트랭 방으로 이어지는 1번 국도 위를 저공 비행하며 빗자루를 쓸듯이 공격해 왔다.

세상을 온통 녹일듯이 불비가 쏟아져 내렸다. 판 틴 킴 퍽이라는 사진 속의 소녀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소이탄으로 불바다가 되어 버린 마을에서 벗어나 달려나오고 있었다. 
  
     
<미군포로의 귀환>
 
살 비더 , 1974년 수상작품
 
1973년 1월 27일 베트남 평화협정이 파리에서 조인되었다. 이에 따라 2월 12일부터 포로의 상호 석방이 개시되어 566명의 미군포로가 다시 고국 땅을 밟았다.
5년 이상이나 북베트남에서 포로 생활을 보낸 미국 공군 중령 로버트 스텀이 3월 18일, 고향 캘리포니아의 트래비스 공군기지에 내렸다. 그것은 아내와 4명의 아이들과의 감격어린 재회의 순간이었다.
그러나, 이 사진을 찍은 AP통신사의 비더는 중령의 돌처럼 굳은 얼굴이 인상적이었다고 전했다.


     

<이디오피아의 굶주림>

 

1985년 수상작품

 

스탠그로스펠드는 이디오피아의 기아와 맥시코에서 미국으로의 불법입국에 대한 사진으로 1985년 퓰리처상을 수상하였습니다..

'84년 가을 수단의 난민 수용소에서 굶주림에 지친 이디오피아인 모녀가 식량 배급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수십만명의 목숨을 앗아간 아프리카 대륙의 기아는 이날 저녁 이 소녀의 목숨마저 앗아가 버렸습니다...

  
     
<홈리스(Homeless)>
 
톰 그랠리쉬, 1986년 수상작
 
The Philadelphia Inquirer(필라델피아 인퀴어러)의 톰 그랠리쉬는 홈리스들의 사회적 문제를 사진에 담아 1986년 피쳐사진부분 퓰리처상을 수상하였습니다.
이 사진은 그 사진들중 가장 함축적으로 당시 사회문제를  보여주고 있는 사진입니다.


     
<아이를 구출하는 소방관>
 
론 올시왱어, 1989년 수상작
 
1988년 미국 세이트루이스의 한 아파트에서 화재가 발생했고, 소방관 한명이 2살난 아기를 구출해내 인공호흡을 하며 필사적으로 아이를 살릴려 하고 있는 사진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소방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기는 병원으로 옮긴지 6일만에 숨을 거두고 맙니다..


     
<르완다의 고통>
 
1995년 수상작
 
1995년 피쳐부분 퓰리처 상은.. 르완다에서의 고통과 파괴를 사진으로 기록한 AP사진기자들에게 수여가 되었습니다..
Jacqueline Arzt
한 르완다 어린이가 예방주사를 맞기위해 기다리는 동안..
서있기가 힘든 나머지 업드려 있습니다
  
     
<성인식>
 
1996년 수상작
 
성인식에 사용되는 유일한 도구입니다..
프리랜서 사직작가인 스테파니에 웰스는 케냐에서 이루어지는 여성들에게 행해지는 할례를 통한 성인식에 관한 사진으로 1996년도 피쳐사진부문 퓰리처상을 수상하였습니다
  
     
<홍수속의 소녀>
 
Annie Wells, 1997년 수상작

Annie Wells는 산타로자 소방구조대원인 Don Lopez가 물밑의 나뭇가지에 다리가 걸린 15세의 Marglyn Paseka를 구하려 애쓰는 상황을 카메라에 담아 1997년 퓰리처상을 수상했습니다..


     
<코소보의 슬픔>
 
2000년 수상작

워싱턴 포스티지의 Carol Guzy, Michael Williamson 그리고 Lucian Perkins는 코소보난민들의 비참한모습을 사진에 담아 2000년 퓰리처상을 수상하였습니다.
Lucian Perkins
 
     
<소녀와 독수리>
 
케빈카터

아요드의 식량 센터로 가는 도중에 힘이 다해 무릎을 꿇고 엎드려 있는 소녀. 그 뒤로 소녀의 죽음을 기다리고 있는 독수리. 이 사진은 전세계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던 한편,
사진가의 윤리에 대한 논란이 일었다. 촬영하기보다는 소녀를 먼저 구했어야 했다는 비판과, 사진이 가진 사회적인 영향력에 관해서였다.

항상 강렬한 감정에 몰려 극한의 세계를 취재해 온 카터는 자신이 찍은 다양한 현실의 공포를 가슴 밑바닥에 담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33살의 젊은 나이에...
 
 
아프리카 대륙에서 가장 큰 국토를 가진 수단 사람들은 세계에서 가장 심각하고도 장기적인 위기에 처해 있다.
민족과 종교적인 대립 때문에 벌어진 내전이 오랜 기간동안 계속되었을 뿐만 아니라, 가뭄과 전염병까지 겹쳐 1980년대부터 90년대 중반까지 1백만 명 이상이 죽었다.
국제적이고 인도적인 차원의 원조 프로그램도 독재정권 아래에서는 거의 제 기능을 못하고, 구조식량은 기아에 허덕이는 난민에게는 좀처럼 전달되지 않았다.
 



참고 : 퓰리처상 홈페이지(http://www.pulitzer.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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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작성자 06.09.15 20:38

    첫댓글 이땅 어디엔가 지금도 ~~~ 주여 ! 오늘도 저들이 예수를 바라보며 소망을 갖게하소서~~~~` 우리는 감사를 해야합니다. 감사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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