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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정보방 스크랩 < 김포 문수산(文殊山, 376m) 산행기-1 >
이재근 추천 0 조회 0 13.11.28 20:18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 김포 문수산(文殊山, 376m) 산행기-1 >

           남문-문수산성-홍예문-정상-문수사-풍담대사부도탑-북봉-북문


   문수산은 한강 하류, 김포반도 서쪽 끝자락, 경기도 김포시 월곳면 포내리와 성동리에 걸쳐 있다. 김포에서 가장 높은 산으로 경치가 사계절 아름다워 ‘김포의 금강’이라 불리고, 서울 쪽에서 강화도로 갈 경우, 강화대교를 건너기 직전 우측에 보이는 산이다. 비록 높이 376m의 작고 야트막한 산이지만 지표면의 해발 고도가 ‘0’에 가까운 곳에 있어서 수치상의 고도에 비해 육안으로는 꽤 우람하게 보인다. 실제로 산행도 내륙의 500~600m 급의 산을 오르는 수고로움이 요한다.

 

   산줄기로는 한남정맥의 끝단에 위치한다. 한남정맥(漢南正脈)이란 우리나라 13정맥 중의 하나인 한남금북정맥(漢南錦北正脈)의 한 갈래이다. 즉 한강과 금강을 나누는 분수령이 되는 한남금북정맥이 속리산의 천황봉(1,057.7m)에서 백두대간으로부터 분기해 안성의 칠장산(492.4m)에 이르러 한남정맥과 금북정맥으로 갈라진다. 그리고 그 중 한남정맥은 칠장산에서 북쪽으로 치달아 수원의 광교산(582m)으로 이어온 후 의왕시 백운산(564m)에서 서쪽으로 꼬부라져 안양/군포의 수리산(489.2m)을 지나 이곳 문수산(376m)에 이르러 그 여맥이 한강 하류에 가라앉는다.

  

   문수산은 휴전선 최북단, 서울의 관문이자 수도 서울을 지키는 주요 길목이라는 전략적 요충지이고, 임진강과 한강이 만나며, 강화도가 지척에 있는 특이한 지형으로 인해 늘 역사의 현장이 돼 왔다. 멀게는 고려시대 몽고의 침입 때 문수산 일대가 격전지였고, 가까이는 1866년(고종 3) 병인양요 때는 프랑스군과의 일대 격전이 있었다. 이때의 격전으로 성벽과 문루가 파괴되고, 성내가 크게 유린됐다.

 

   그리고 6 ? 25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분단의 최전선이어서 북한과 지척에 대치하고 있다. 맑은 날에 문수산의 북단에 서면 북한 땅이 강 건너 손에 닿을 듯 가까이 있으며, 연백평야와 예성강 하구를 희미하게 볼 수 있고, 개성의 송악산까지도 시야에 들어와 국토분단의 현장에서 깊은 감동을 느낄 수 있다.

   이런 엄청난 전략적 무게에 비해 문수산은 경사가 낮고 산행로가 가기자기하며, 걷기도 편해서 여유롭게 가까운 사람들과 오손도손 아름다운 산행을 산책처럼 즐기고 싶다면 이곳을 찾아갈 일이다.

 

 

   산행 내내 염하강(鹽河江)을 사이에 두고 강화도를 바라볼 수 있고, 마니산(469m), 고려산(436m) 등은 아주 가까이 조망할 수 있으며, 조강(祖江)을 사이에 두고 북녘 땅을 볼 수 있는가 하면, 시원한 김포평야도 시야에 들어온다. 문수산이 있는 김포평야의 토양이 비옥해서 주요 쌀 경작지대를 이루고 있으며, 김포시 통진읍의 이름을 딴 ‘통진미(通津米)’라 하면 예로부터 좋은 쌀의 대명사로 알려졌다.  

                                               염하강

 

                                         염하와 조강이 만나는 곳

 

  ※염하(鹽河)---염하는 강화도와 김포사이 강화해협을 흐르는 물. 한강의 민물과 서해의 바닷물이 뒤섞였다 해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

    ※조강(祖江)---한강과 임진강이 만나는 한강 하류 끝의 한강 물줄기, 즉 한강과 임진강이 교하에서 만나서 서해로 들어가는 부분인 한강하류를 별도로 조강이라 부른다. 경기도 김포시 월곶면 조강리 앞에 조강나루터가 있었다.


   그리고 문수산의 바로 염하강 건너에 있는 강화도는 몽고의 침입으로 핍박받던 39년간(1232-1270) 고려의 수도였다. 그때 왕궁은 고려산 아래 있었고, 강화도를 방호하느라 삼중의 강화성이 축조됐으며, 그때 문수산도 요새화됐다. 그때 축조된 산성은 높이 2.7m에 길이가 6,129m. 성벽은 강화도와 마주한 서사면의 산등성에 ‘u’자 형태로 삼면뿐이었다. 나머지 한 면은 물이 대신했다. 강화도 갑곶(강화대교 옆)을 잇던 갑곶나루의 염하가 그것이다.

 

<대중교통편>

 

 

 

   *신촌역의 경우---전철 2호선 신촌역 ⑧번 출구로 나가서 바로 현대백화점 쪽으로 건널목을 건넌 후, 현대백화점 앞에서 왼편 양화대교 쪽으로 250m 정도 걸어가면 길가에 강화행 직행좌석버스(3000번) 정류소가 있다. 배차시간 10~15분 간격이며, 차비는 현금으로 2,100원임. 단, 3000번 버스는 산행기점이 될 성동검문소 삼거리엔 정차하지 않으므로 그 전에 포내2리에서 내려야 하는데, 하차 지점에서 산행기점인 성동검문소 삼거리까지 10여분 거리를 걸어가야 하는 불편이 있다. 

 

 

 

    ※잘못된 정보---전철 2호선 신촌역 ⑦번 출구로 나가서 나간 방향(신촌로터리 - 서강대교 사이, 그랜드마트 쪽에서 서강대교 쪽)으로 직진 200여m 걸어가서 강화운수 3000번 직행버스를 타고, 성동검문소에 내리면 된다.---→이 정보를 믿고 그대로 했다가 한참 헤맸다. 아마 이 정보는 예전 정보인 듯함. 지금은 전혀 다르고, 3000번 버스는 성동검문소에 정차하지도 않는다. 

 


   *송정역의 경우---전철 5호선 송정역 ①번 출구로 나가서 88번 시내버스를 이용해 성동검문소 삼거리에 하차하면 바로 거기가 산행기점이다(요금은 현금으로 1,600원).

    

   <산행>

 

                                         성동검문소 삼거리 버스 정류소

 

 

   문수산 산행은 남문(南門) 쪽에서 시작해서 북문(北門) 쪽으로 내려가는 것이 정석이다. 성동검문소 삼거리 버스정류장 바로 뒤에 ‘푸른 숲 수목장’이란 가게가 있다. 그 가게 앞에서 왼편(서쪽)을 보면 숲 속에 남문이 보인다. 그쪽으로 가도 되고, 그 가게 오른편 산불조심 프랑카드가 걸려 있는 곳으로 올라가도 되지만 대개 ‘푸른 숲 수목장’ 오른편 길로 올라간다.

 

 

 

   이 길에 들어서면 바로 능선 길이 이어지고, 2~3분 올라가면 소나무 숲 속에 토지신(土地神) 비석이 서 있다. 이후 호젓한 길이 이어져서 기분 좋게 올라갈 수 있다. 그리하여 20여분 올라가면 문수산성 성곽에 올라서면서 남문 쪽에서 올라오는 길과 만난다. 거기 이정표에 ‘문수산성 0.6km, 정상 1.7km’라 적혀 있다. 여기서 문수산성이란 남문을 일컫는 것 같다.


   <문수산성(文殊山城)>---사적 제139호

 

 

   문수산성은 조선시대에 바다로 들어오는 외적에 대비해 강화도를 방어하고, 강화도를 거쳐 임진강과 한강을 통해 서울로 진입하려는 외적과 선박들을 통제하고 감시하기 위해서 조성된 것이다.

   문수산성의 면적은 203,511㎡, 둘레는 약 6.1km이다. 1694년(숙종 20) 구축한 것으로, 강화 갑곶진(甲串鎭)과 마주보는 김포 쪽에 위치해 갑곶진과 더불어 강화도 입구를 지키는 성이다.

   

   1812년(순조 12) 대대적으로 중수했고, 1866년(고종 3) 병인양요 때는 프랑스군과의 일대 격전지였다. 축성 당시에는 북문, 서문, 남문이 있었으나 병인양요 때 모두 불탔다. 이때의 격전으로 해안 쪽 성벽과 문루가 파괴되고, 성내가 크게 유린됐다. 지금은 해안 쪽 성벽과 문루가 없어지고 마을이 들어섰으며, 문수산 등성이를 연결한 성곽만 남아 있다.

 

  

   1993년부터 다시 복원하기 시작해서 현재 430m 정도 복원하고, 잔존구간은 4.6km 정도 된다. 산행을 하다가 보면 성곽이 발 아래로 이어지는 광경을 볼 수 있어서, 구한말 외세의 침략에 저항한 역사의 산 교육장으로 역사의 흔적을 더듬기에 더없는 장소라 하겠다. 

                                      다리 건너가 갑곶임

 

    ※갑곶(甲串)---강화읍의 염하 쪽, 강화도와 육지 사이가 가장 가까운 곳, 현재 강화대교 시작점 부근의 지명으로 고려 23대 고종 때 몽골군이 침입하자 집권자였던 최우(崔瑀)가 조정을 이끌고 건너간 곳으로 군사의 갑옷만 벗어 쌓아도 건널 수 있다는 말에서 유래함.

 


   이후 성곽 오른편을 따라 올라가는데, 올라갈수록 염화와 강화 일대가 시야에 넓게 들어온다. 그리고 산행기점에서 30여분 올라갔을 즈음 성곽 위에 영문과 숫자가 새겨진 삼각점이 보인다. 아마 군용이거나 6?25 때 미군이 설치한 것인 것 같다.

 

   오르는 경사도 알맞고, 올라가는 도중 시야가 열려 있어서 지루한 줄 모르고 올라가게 되는데, 산행기점에서 40여분 올라가면 8각 정자가 나타난다. 8각 정자 전망대에 올라서면 한강 하류와 염화가 만나는 지점이 선명하게 시야에 들어온다. 

 

 

   8각 정자에서 10여분 올라가면 홍예문이 있다. 문수산성의 동쪽 중간지점에 위치한 작은 문으로 성 안팎을 왕래할 수 있다. 여기 등산로에서 홍예문을 나서면 탁 트인 모습으로 펼쳐진 문수산과 문수산성의 모습을 한눈에 관망할 수 있다. 특이하게 성곽의 암문 속 벽에 홍예문이란 현판이 걸려 있다.

   

   성곽 밖에는 문수산성 안내문이 있으며, 성곽 안에는 문수산 등산안내도와 성곽복원 안내문, 그리고 이정표에 ‘정상 0.4km, 문수사 0.5km, 김포대학, 청룡회관 0.8km, 전망대 0.4km, 주차장, 산림욕장 1.2km, 관리사무소 1.8km’라 적혀있다. 이곳은 김포대학 쪽으로 이어지는 길과 만나고, 문수사로 이어지는 길이 갈라지는 4거리인 셈이다.

   ※홍예문(虹霓門)---문 윗머리가 무지개 모양으로 반원형(半圓形, 아치형)이 되게 만든 문(門)을 말한다.

 

 


   홍예문에서 5~6분 올라가면 널따란 헬기장이 있고, 헬기장 한쪽엔 문수제단(文殊祭壇)이 설치돼 있다. 거기서 2~3분 올라가면 정상으로 향하는 길과 북문으로 이어지는 길이 갈라지는 곳에 이른다. 정상에 들렸다가 북문 능선으로 향하려면 이곳으로 다시 내려와서 북문 능선으로 향해야 한다.

   

   이후 가파른 길이 이어지는데, 4~5분 숨 가쁘게 올라가면 정상에 닿는다. 문수산 정상에 이르니 정상은 올라가지 못하게 빙 둘러서 철책을 쳐 놓았다. 처음엔 군사시설인가 했더니 그 게 아니라 보수를 위해 발굴 중이라고 한다. 정상은 옛날 장대(將臺)가 있었던 곳이라서 장대지(將臺址)라고도 한다.

  

   정상에 올라가지 못해 아쉽기는 하지만 전망을 즐기는 데는 전혀 지장이 없다. 서-북쪽으로 탁 트여 있어서 아래를 바라보면 가까이에 염화강과 한강물이 유유히 흐른다. 날씨가 쾌청한 날에는 강 건너 북녘 땅이 손에 닿을 듯 가깝고, 멀리 개성의 송악산 까지도 시야에 들어온다고 하나 가는 날 연무가 심해 볼 수 없었다. 철조망 사이로는 정상 표지석이 보이고, 삼각점도 보인다.

  

   이처럼 문수산 산행은 다른 산에선 볼 수 없는 아름다운 산수의 어울림과 분단역사의 현장을 처절하게 느낄 수 있다. 헌데 문수산을 오르면서 보이는 암석들이 특이하게 역암(礫岩)이다. 전북 마이산(686m)의 석질과 닮았다. 정상엔 간이매점이 있어서 막걸리 한 잔을 마시고, 문수사로 향하기 위해 도로 홍예문 쪽으로 내려가다가 보면 중간에 문수사 가는 길이 있다, 문수사로 향하는 산 사면은 온통 서어나무 군락지이다.   

 

      ※역암(礫岩, conglomerate)---쇄설성 퇴적암이라고 하는데, 퇴적된 암석 중에 크기 2mm 이상의 입자인 자갈이 많은 암석을 가리킨다. 마치 자갈이 섞인 콘크리트인 레미콘과 같이 생겼다.   


   <문수사(文殊寺)>

 

 

   신라 혜공왕 때 창건됐다는 설이 전해지는 문수사는 한 동의 전각(비로전)과 요사체 한 동만 있는 작은 암자이다. 조선중기 당대의 고승이었던 풍담대사(楓潭大師)는 어려서 출가해 전국을 돌며 불교를 전파하다가 산수 좋은 이곳 문수산 문수사에 이르러 여생을 보내면서 문수사를 번성케 해 당시에는 많은 승려와 신도들이 찾았다고 한다. 문수사 한쪽에 위치한 작은 삼층석탑은 이런 세월의 흔적을 말해주고 있다.


   문수사를 살피고 이어서 서남 방향으로 4~5분 진행하면 풍담대사 부도탑이 있는 곳에 닿는다. 풍담대사 부도탑 자리는 천하명당인 것 같다. 문수산은 크게 남문 능선(남릉)과 북문 능선(서릉)이 있고, 그 두 능선 가운데에 작은 능선이 불거져 있다. 풍담대사의 부도탑은 바로 가운데 능선 상에 있다. 마치 오대산(1,563m) 적멸보궁이 있는 지형이나 문경 공덕산(913m)의 사불암(四佛岩)이 위치해 있는 지형과 아주 유사하다.


   <풍담대사 부도(楓潭大師 浮屠)>---경기 유형문화재 91호

 

 

 

   풍담대사의 사리를 모신 묘탑 1기와 그의 행적을 기록한 비석 1기가 있다. 묘비의 기록에 따르면 부도가 현종 8년(1668)에 건립됐다. 부도는 8각의 하대석 위에 중대석이 있고, 그 위에 8각 상대석을 올려놓았으며, 상대석 위에 원형의 탑신을 설치하고, 8각의 옥개석을 얹었다. 옥개석 꼭대기에는 보주석(寶珠石)이 있다. 이러한 형태는 고려시대 부도의 형태를 계승한 조선시대의 부도 양식이다. 양주 회암사지(檜巖寺址)에 있는 나옹선사 부도(懶翁禪師浮屠)와 많이 닮았다.

   일반적으로 부도에는 대개 탑비가 세워져 있듯이 이 부도에도 비가 함께 세워져 있다. 이것은 풍담대사 개인의 행적은 물론이고, 다른 승려와의 관계와 당시의 사회문화 등을 엿볼 수 있는 귀중한 사료로 평가된다.

 


   풍담대사 부도를 살펴보고 20여분이면 북문 능선(서릉)에 닿는데, 거기서 하산하지 않고

다시 오르막을 10여분 올라가면 북봉(321m)에 올라선다. 북봉에서 서북쪽으로 뻗은 능선이 한남정맥으로서 이 능선 끝이 보수곶이다.

   이 북봉 역시 서-북 쪽으로 시야가 활짝 열려 있어서 조강과 염하가 만나는 곳을 뚜렷이 볼 수 있다. 북봉에서 쉬면서 조망을 즐기다가 하산을 시작하면 북문 능선이 꽤 길어서 40여분 걸려 내려가면 북문에 이른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북문에 닿기 8~9분 전 길섶에 예의 영문과 숫자로 된 삼작점이 하나 있다. 이곳의 삼각점은 글씨도 선명한데, 왜 이런 곳에 삼각점이 있는지 이상하다.

                                              북문

 

   그건 그렇고, 북문에 이르면 북문은 최근 복원된 듯 정갈하게 자리 잡고 있다. 헌데 북문에서 남문을 지나 성동검문소 삼거리까지 1.5km 조금 넘는, 20여분 거리의 아스팔트길을 걸어 나오는 부담이 있다. 북문을 출발해서 6~7분 나가다가 보면 삼림욕장 들어가는 입구를 지나고, 이후 13~4분 더 걸어 나가면 남문 아래를 지나 성동검문소 삼거리 버스 정류소에 이르러 산행을 마감하게 된다.

                                            남문

 

   이렇게 할 경우, 산행거리는 약 7.2km 정도 되고, 산행시간은 볼거리가 많아 3~4시간 걸려서 알찬 하루해를 보낼 수 있다.


    ---너무 속도전을 하듯이 산행을 하지 맙시다. 힘만 들고, 재미도 없고, 자칫 스트레스를 받을 수도 있어서 역효과입니다. 천천히 사방을 관상하며, 여유를 가진 산행을 합시다. 그렇게 하면 육체적 건강뿐만 아니라 정신 건강에도 이롭답니다.


2012, 4월 13(금요일) 둘 산악회   아미산

*스크? 해 가시는 분은 출처를 분명히 밝히며 이용해 주세요.

  아니면 저적권법에 저촉됩니다. 감사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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