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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권 미국기행 그 두 번째 이야기 남형두
안녕하세요? 출판문화 12월호에 실린 글 보내드립니다. 남형두 올림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 허리케인 샌디의 위력은 대단했다. 맨해튼의 월가(Wall Street)는 배가 다닐 정도로 물에 잠기어 뉴욕 증권거래소의 거래가 중단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샌디가 지나간 일주일 만에 뉴욕을 방문한다고 했더니 주변에서 말리는 사람이 많았다. 그도 그럴 것이 지하철이 물에 잠기고 전기 공급이 원활치 않은 이 거대도시가 정상으로 회복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됐기 때문이다.
그런데 브로드웨이에 들어선 순간 필자의 우려는 싹 가셨다. 수많은 인파와 휘황찬란한 네온사인은 이 도시에 수마가 지나갔는지 오히려 의문이 갈 정도였다.
나는 뉴욕에 체류하는 동안 이틀 연속 웨스트엔드(West End)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과 브로드웨이 뮤지컬 <라이언 킹>, 두 편을 보았다. 브로드웨이 머제스틱 극장에서 25년째 장기 공연 중인 <오페라의 유령>은 2006년 뮤지컬 <캣츠>가 갖고 있던 장기 공연의 기록을 깬 후 하루하루 역사를 새로 쓰고 있다. 필자는 목요일 저녁 공연을 보았는데, 허리케인으로 쑥대밭이 된 후 일주일만이라고는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빈 좌석이 거의 눈에 띄지 않았다.
<오페라의 유령>은 1909년 프랑스 작가 가스통 르루(Gaston Leroux)의 동명 소설에 기반한다. 소설 이후 동명의 오페라가 만들어지기도 했으나 둘 다 흥행에 성공하지 못했다. 그런데 1986년, 뮤지컬이라는 장르를 공연예술의 하나로 확고하게 자리 잡게 한 일등 공신이라 할 수 있는 앤드류 로이드 웨버(Andrew L. Webber)에 의해 뮤지컬로 재탄생된 후, <오페라의 유령>은 전작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게 성공을 거두고 있다.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은 원작인 소설이나 오페라를 재활용한 셈인데, 저작권법적으로 말하자면 “2차적 저작물”에 해당한다. 원저작물을 번역·편곡·변형·각색·영상제작 그 밖의 방법으로 작성한 창작물은 “2차적 저작물”이라고 하는데, 이는 원작과 별개의 독자적인 저작물로서 보호된다(저작권법 제5조 제1항).
“2차적 저작물” 성공의 대표적인 예는 <맘마미아>다. 스웨덴의 전설적인 팝그룹 ABBA는 현재까지의 누적된 음반판매량이 4억 장이 넘는다고 한다. 그룹은 해체되었고 두 커플의 부부도 이미 이혼하여 활동을 하지 않은 지 오래지만, 지금도 스웨덴의 수출상품 10위 안에 버젓이 들고 있다.
이런 ABBA의 노래에는 전혀 나오지 않는 그리스 해변의 한 외딴 섬에 사는 두 모녀를 중심으로 스토리라인을 만들고, ABBA의 주옥같은 노래만으로 대사를 대신한, 뮤지컬 <맘마미아>는 그야말로 대박을 터뜨렸다. 지금도 웨스트엔드, 브로드웨이에서 장기공연을 이어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여러 차례 장기공연을 거듭하고 있다.
그런데 이 뮤지컬의 바통을 이어 뮤지컬을 영화로 만든 동명의 영화가 수년 전 제작되어 뮤지컬이라는 무대 예술이 갖는 한계를 뛰어넘는, 표현이 다채로운 영상 예술로 또 한번 세상을 들었다 놓았다. ABBA의 팝송을 원작으로 보면, 뮤지컬과 영화는 “2차적 저작물”이고, 뮤지컬을 원작으로 보면 영화는 또 “2차적 저작물”에 해당한다.
이런 추세라면 앞으로 발레 <맘마미아>가 나올지도 모른다. 실제로 필자는 작년 워싱턴 DC 케네디 센터에서 피츠 제럴드의 소설 “위대한 개츠비”를 원작으로 하는 발레를 보고 원작 소설 이상의 감동을 느낀 적도 있으니, 발레 <맘마미아>가 나오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는 나의 예상은 근거가 없는 것이 아니다.
이처럼 2차적 저작물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좋은 원작이 필요하다. 문화콘텐츠 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이를 OSMU (one source multi uses)로 부르기도 한다. 하나의 좋은 콘텐츠를 여러 가지 형태로 개발하여 사용하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나는 일찍이 OSMU는 순수한 우리말로 “우려먹기”에 다름 아니라는 견해를 일간지 칼럼에 발표한 적이 있다 (“‘우려먹기’와 저작권”, 한국일보 2009. 6. 11.자).
어렵게 창작된 좋은 원작을 그 원작만으로 생명을 다하게 할 이유가 없다. 이를 토대로 여러 장르의 문화와 예술로 승화, 발전시키는 것은 굳이 벤담(Jeremy Bentham)의 공리주의를 들 필요도 없이 만인의 행복을 위해 필요하다.
그런데 아무나 다른 사람이 창작한 원작을 변형하여 새로운 작품으로 만드는 것을 허용해서는 곤란하다. 특히 그렇게 만들어진 “2차적 저작물”이 시장에서 원작을 뛰어넘는 성공을 한 경우에는 더욱 불편한 상황이 초래된다. 그래서 저작권법은 “2차적 저작물”을 통해 시장에서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기회를 원작자에게 먼저 부여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저작권자(원작자)가 갖는 “2차적 저작물 작성권”이다.
그러니 저작권이 살아 있는 ABBA의 노래를 원작으로 하는 뮤지컬의 제작자는 ABBA 노래의 저작권자들에게 허락을 받았던 것이다. 한편 가스통 르루의 소설 <오페라의 유령>은 1909년작으로서 웨버가 뮤지컬을 만들 때인 1986년에는 저작권이 소멸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원작자의 허락 없이도 뮤지컬이나 영화와 같은 “2차적 저작물”을 만들 수 있었을 것이다.
문화예술 분야에서 창작행위란 이전에 없던 완전히 새로운 것의 창작일 필요는 없다. 그럴 능력이 없다면 기존의 것 중에서 원작자의 허락을 얻거나, 아니면 저작권보호기간이 지난 것을 원료로 재활용하여 새로운 창작물을 만들 수 있는데, 이는 문화콘텐츠 산업에서 흔히 있는 일이다.
저작권법은 오히려 이런 행위를 적극 보호하고 있다. 바로 저작권보호기간이라는 제도를 통해 저작권자를 일정 기간 동안만 보호하고, 그 이후에는 일반이 얼마든지 이를 원재료로 하여 제2, 제3의 창작물을 만들 수 있도록 보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원작의 저작권보호기간이 지나기까지 기다릴 수 없는 경우도 있다. 보호기간이 너무 길기도 하지만(현재 우리나라의 보호기간은 저작자 사후 50년인데, 한EU FTA에 의해 개정된 저작권법에 의해 2013. 7. 1.부터는 사후 70년으로 늘어남), 원작의 여운이 가시기 전에 바로 “2차적 저작물”이 나와서 일반의 관심과 수요를 이어갈 필요가 있는 경우가 있기도 하다.
예컨대 공지영의 소설 <도가니>는 책 출판 이후 얼마 안 되어 동명의 영화로 만들어져 대박을 터뜨렸을 뿐만 아니라 “장애인 인권”이라는 사회적 관심을 폭발시켰다.
박범신의 소설 <은교>도 영화에서 크게 성공한 예에 속한다. 이처럼 원작과 “2차적 저작물”의 시차가 매우 짧아지다 보니 원작자는 애초에 자신이 만든 창작물의 2차적 활용까지 염두에 두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소설, 음악, 영화를 만들 때, 그것이 다른 장르의 예술로 변형·이용될 것을 사전에 생각하기도 하고, 그렇지 않다면 창작이 완료된 후 공표(publication) 과정에서 이를 고려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다른 쪽에서 보면, 창작물의 공표를 업으로 하는 대표적인 것이 출판인데, 요즘 의욕적인 출판사들은 종래 종이책을 출판하는 것을 넘어 해당 출판물의 2차적 활용 쪽에도 눈을 돌리는 경우가 많다. 즉 저자와 출판계약을 할 때, 종이책 출판에 관한 권한을 넘어 2차적 활용에까지 저자로부터 권한을 부여받기를 원하여 이를 계약에 반영하려고 한다.
그런데 출판할 수 있는 권리 외에 저작재산권을 통째로 양도받는 경우에도 저자와 출판자 사이에 특별히 “2차적 저작물” 작성에 관한 권리를 포함시키겠다는 특약이 없다면, “2차적 저작물 작성권”은 양도되지 않는다는 법 조항이 있다(저작권법 제45조 제2항).
이 조항을 둔 이유는 앞서 본 바와 같이 원작을 뛰어넘는 “2차적 저작물”의 상업적 성공이 발생하는 경우를 예상하여 원작자를 보호하려는 것도 있지만, 원작자가 원작에 대해 갖는 작풍(作風)을 유지하도록 보장하기 위함도 있다.
즉 “2차적 저작물”은 원작을 변형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 과정에서 원작의 훼손이 필수적으로 수반된다. 그 변형의 결과가 새로운 창작물로서 더 높은 가치를 갖게 되더라도 원작자의 작풍에 원치 않는 훼손을 가져오는 경우, “2차적 저작물”을 만들도록 할 것인지에 대해 원작자에게 재차 물어보라는 취지로 해석할 수 있다.
따라서 영화라는 “2차적 저작물”을 작성하여 이용할 권리는 작가와 출판사간에 저작권 양도계약에 포함하기로 한다는 특약이 없는 이상, 출판사는 저작권을 양도받았다고 하더라도 영화제작자에게 영화로 만들 것을 허락할 지위에 있지는 못한다.
즉 이 경우 영화사에게 소설을 영상화할 수 있도록 허락할 수 있는 사람은 오로지 작가들뿐이다. 그러니 저자와 출판계약을 함에 있어 출판을 넘어 원작의 영화화를 포함한 2차적 활용을 염두에 두고 있는 출판자들은 단지 저작재산권을 양도받는 것 외에 “2차적 저작물” 작성에 관한 권리까지 양도받는 것인지를 명확히 함으로써, 저자와의 갈등을 사전에 방지할 필요가 있다.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 25주년 기념 공연이 지난 2011년 런던의 로열 알버트홀에서 성황리에 개최되었다. 이 날 공연은 그 자체가 영상으로 만들어져 전 세계에 상영되었는데 우리나라에서도 올해 초에 삼성동 코엑스 메가박스 극장에서 기존 영화 티켓가의 세 배에 육박하는 25,000원에 상영되었다.
현장성은 떨어지지만 뮤지컬과는 또 다른 감동에 많은 관객들이 눈물을 훔치는 장면을 목격할 수 있었다. 12월과 내년 1월까지 우리나라에도 웨스트엔드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이 공연될 예정이다. 뮤지컬 애호가들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 연말연시가 될 것 같다.
만약 저작권을 침해하여 파생 문화상품이 나온다면 저작권분쟁은 끊이지 않을 것이다. 그 점에서 “2차적 저작물”이라고 하는 “우려먹기”에는 질서가 있어야 한다. 창작물의 보호와 유통은 언뜻 충돌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지속 가능한 성장 산업으로 삼고자 하는 의지가 있다면 얼마든지 조화가 가능하다.
<남형두/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대한출판문화협회 저작권자문위원>
오페라의 유령( Phantom of the Opera) 작곡,앤드류 로이드 웨버(Andrew Lloyd Webber)' Sarah Bright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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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2차적 저작물에 대한 공부 잘 했습니다.
성장하기 위해서는 배움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