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자신이 무언가를 받아들일 때 내 기억 속에 관련된 기억이 있어야 새롭게 받아들인 것이 무엇인지 이해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만약 무언가를 받아들일 때 내 기억에 그것과 관련된 기억이 없으면, 우리는 새로운 것의 정체가 무엇인지 이해하기 어렵거나, 자신의 기억만으로 분석 하면서 그 정체를 오해하기도 합니다.
우리는 이처럼 자신의 기억과 기준을 바탕으로 하여 인식되는 것들을 이해합니다. 그리고 그 기억과 기준을 바탕으로 하여 감정을 생성해 냅니다.
따라서 어떠한 현상에 대한 생각과 감정은 모두 자신만의 생각과 자신만의 감정입니다. 이 말인 즉 특정 현상에 대한 자신의 생각과 감정이 절대적인 것이 아닐 수 있다는 뜻입니다. 오히려 왜곡되거나 오류일 가능성이 거의 대부분입니다.
대중적인 생각과 감정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생각과 감정을 갖는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반드시 맞는 것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대중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갖는 그 생각의 기준이 틀린 것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대중적 오류는 과거에도 수많은 비극을 만들었습니다.
물론 각 개인마다 모두 생각기준이 다르기 때문에 누구의 생각이 맞고, 누구의 생각이 틀리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저 생각이 다른 것일 뿐입니다.
그러나 이때 자신의 생각만이 옳다고 주장하는 것은 자신과 타인에게 상처와 스트레스를 발생시키며, 갈등을 야기하기 때문에 그다지 썩 좋은 것은 아닙니다.
어차피 내 생각이 옳아봐야, 내가 살아온 기억을 바탕으로 한 그 안에서만 옳은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와 생각이 같지 않은 타인의 입장에서는, 또는 내가 살아본 적 없는 현상에 있어서 이러한 나의 생각은 절대적인 기준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상대와 갈등이 빚어졌을 때 ‘어떻게 저런 생각을 하지?’하며 화가 나는 이유는 상대의 생각을 나의 생각과 비교했을 때 내 생각과 맞지 않기 때문입니다. 단지 나의 생각과 맞지 않는 것인데, 내 생각과 맞지 않으면 틀린 것이고, 틀린 것을 자꾸 우긴다고 생각해서 나에게 스트레스와 상처가 발생합니다. 그런데 이것은 상대의 입장에서도 똑같습니다.
따라서 이러한 경우 ‘저 사람은 저렇게 생각하며 살아가는구나.’라고 인정하면 그만입니다. 또한 누군가가 자신의 생각을 강요하고 있는데, 자신이 그것을 도무지 받아들이기 힘들다면 겉치레로 알았다고 번번이 넘기면 그만입니다. 어차피 상호 생각이 다른 것이고 누구하나가 틀린 것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여기서 조금 더 여유가 있다면 상대의 생각을 통해 나의 생각을 보완할 수 있는 부분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자신과 상극인 상대일수록, 그것이 하나로 조화를 이루었을 때 양극의 모든 부분을 생각할 수 있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런 여유가 없다면 상대의 말로 인해 자신이 상처와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정도로 자신을 보호할 수 있으면 됩니다.
살아가다보면 ‘나의 생각만이 맞고, 나의 감정만이 정확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상처와 스트레스가 큽니다. 반면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지 뭐.’하는 사람들에게는 상처와 스트레스가 그다지 많지 않습니다.
이 두 가지는 모두 장단점이 있지만 내 자신의 입장에서 볼 때 자신을 더욱 힘들게 하는 것은 자신의 생각과 감정에 확신을 갖는 쪽입니다. 심지어 인간은 의식과 무의식이 정반대로 작용하기 때문에, 의식적으로 자신이 맞다고 생각하는 것의 이면에서는, 무의식에서 정반대의 작용이 동시에 일어납니다. 다만 말 그대로 무의식이다보니 그것을 느끼지 못하는 것일 뿐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여러분이 맞다고 느끼는 생각과 감정은 얼마나 맞는 것일까요? 한번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