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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구미불교포교사회 원문보기 글쓴이: 대덕
여섯째 가름: 영혼이 없다는 교리: "나 없음"(無我) -- 5
부처의 가르침에 자아의 관념을 도입하려고 시도하는 다른 예는 유명한
말, 'Attadipa viharatha, attasarana anannasarana'이다. 이것은 《마하
빠리닙바나-경》의 구절에서 취한 것이다. 이 구절은 직역하면 '네 자신
을 너의 섬(의지처)로 만들어서, 네 자신을 너의 피난처로 만들어 살아가
라. 그리고 다른 이를 너의 피난처로 만들지 말아라'를 뜻한다. 불교에서
자아를 보고 싶어 하는 사람은 '앗따디빠attadipa'와 '앗따사라나attasar
ana'라는 말을 "자아를 등불로 삼아라", "자아를 피난처로 삼아라"로 해
석하고 있다.[각주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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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1] 여기서 'Dipa'는 등불을 뜻하지 않고 분명히 '섬'을 뜻한다. 《
디가-니까야》의 주석서(DA. Colombo ed., p.380)에서는 여기 'Dipa'
라는 단어에 다음같이 주석을 붙이고 있다. '네 자신을 섬, 마치 망
망대해에 섬같은 의지처(쉼터)로 만들어서 살아가라.' (Mahasamuddag
atam dipam viya attanam anam dipam patittham katva viharatha) 윤
회輪廻(samsara), 즉 "존재의 지속"은 보통 바다(samsara-sagara)에
비유된다. 그리고 대양에서 안전을 위해 필요한 것은 섬 같은 단단한
땅이지 등불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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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이 단어들이 말해진 배경과 문맥을 고려하지 않고서는 부처가
아난다에게 해준 충고의 완전한 의미와 중요성을 이해할 수 없다.
그때 부처는 벨루바Beluva라고 부르는 마을에 머물고 있었다. 그것은
그의 죽음(반열반)전에 석달 동안이었다. 이때 그는 여든 살이었고 매우
심한 병으로 괴로워하고 있어서 거의 죽게(mara-nantika) 되었다. 그러나
그를 가까이하고 사랑하는 제자들에게 자아를 없애 주지 않고 죽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용기를 내어 마음을 단단히 먹고 모든 고
통을 참고 병세를 호전시켜 회복이 되었다. 그러나 건강은 여전히 좋지
않았다. 회복이 된 뒤, 하루는 거처 밖의 그늘에 앉아 있었다. 부처의 가
장 헌신적인 시자 아난다는 사랑하는 스승에게 다가가서 곁에 앉아 말하
였다. '선생님. 저는 세존의 건강을 보살펴 왔습니다. 저는 세존께서 편
찮으셔서 돌보아왔습니다. 그러나 세존의 병색은 가망이 없어 보입니다.
그래서 제 능력으로는 더 이상 낫게 할 수가 없습니다. 그렇지만 작은 위
안이 있습니다. 저는 세존께서 "동아리"를 감동시키는 가르침이 남아있는
동안엔 떠나시지 않으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부처는 연민에 가득 차 인간적인 정으로, 헌신적이고 사랑하는
시자侍者에게 조심스럽게 말하였다. '아난다야. "동아리"가 내게서 무얼
기대하느냐? 나는 드러낼 것과 감출 것을 구분하지 않고 법을 가르쳐왔
다. 진리(法)에 있어서 여래에게 스승의 움켜쥔 주먹(師拳)같은 것은 없
다. 물론, 아난다야. 동아리를 이끌어가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동
아리는 그에게 기대야 한다. 그의 가르침을 펴게 하라. 허나 여래는 그럴
생각이 없구나. 그러면 왜 그가 동아리를 지도해야 하는가? 나는 이제 늙
었다. 아난다야. 내 나이 여든이다. 낡은 수레는 수선해야 다닐 수 있듯
이 내게도 그러하구나. 여래의 몸은 수선해야 계속될 수 있다. 그러하니
아난다야. 네 자신을 너의 섬(의지처)으로 만들어서 살아가라. 다른 누구
도 아닌 네 자신을 너의 피난처로 만들어라. 법法을 너의 섬(의지처)으로
만들어라. 법을 네 피난처로 만들어라. 다른 어떤 것도 네 피난처가 아니
니라.'
부처가 아난다에게 전하려 한 것은 아주 명백하다. 아난다는 슬프고 우
울하였다. 아난다는 위대한 스승이 죽은 뒤에 제자들이 피난처도 없고 지
도자도 없이 모두 외로워하고 도움 받지 못하게 되리라고 생각했다. 그래
서 부처는 제자들이 자기자신들에게, 그리고 자기가 가르친 법法에 의존
해야하고 남이나 다른 어떤 것에 의존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해서 아난다
에게 위안과 용기와 확신을 주었다. 여기서 분명 형이상학적 아뜨만이나
'자아'의 문제는 그 관점을 완전히 빗나간 것이다.
더 나아가, 부처는 아난다에게 자기자신이 어떻게 자기의 섬이나 피난
처가 될 수 있는가, 어떻게 법을 자신의 피난처나 섬으로 삼을 수 있는가
를 설명해 주었다. 그것은 몸과, 감각과, 마음과, 마음의 대상들(사염처
四念處;Satipatthana)에 마음을 두는 것, 즉 일깨우는 수련을 통하여 그
렇게 하는 것이다. 여기서 어느 곳에도 아뜨만이나 자아에 대해서 말한
바가 없다.
자주 인용되는 또 다른 문헌이 있다. 부처의 가르침에서 아뜨만을 찾으
려 애쓰는 사람은 그것을 이용하곤 한다. 부처는 바라나시에서 우루벨라U
ruvela로 가는 길목의 숲속에서 한 나무 밑에 앉아있었다. 그날, 젊은 왕
자들이 서른 명의 친구로 모여 아내를 데리고 그 숲으로 소풍을 왔다. 아
직 총각이었던 한 왕자는 기생을 데려왔다. 다른 사람들이 즐겁게 노는
동안, 그 기생은 값나가는 물건을 훔쳐서 도망가 버렸다. 그들은 그 숲에
서 기생을 찾다가 나무 밑에 앉아있는 부처를 보고는 한 여자를 보지 못
했느냐고 물었다. 부처는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그들이 자초지종을 설명
하자 부처는 그들에게 물었다. '젊은이들이여. 어떻게 생각하시오? 무엇
이 그대들에게 더 나은가요? 여자를 찾는 것과 그대 자신을 찾는 것과?'
여기서도 역시 소박하고 자연스러운 질문이다. 그리고 거기에는 일부러
형이상학적인 아뜨만이나 '자아'라는 멀리서 가져온 관념을 도입하고 있
다는 증거가 없다. 그들은 자기자신을 찾는 것이 더 낫다고 대답하였다.
그래서 부처는 앉으라 권하여 설법을 해 주었다. 현존하는 증거로는 그가
가르쳐 준 것의 원전에 아뜨만에 대해 언급한 말이 없다.
여섯째 가름: 영혼이 없다는 교리: "나 없음"(無我) -- 6
밧차곳따Vacchagotta라는 "방랑수행자"(Parivrajaka;遊行者)가 아뜨만
이 있는지 없는지를 물었을 때 부처가 침묵하였다는 소재에 대해 쓴 것이
매우 많다. 그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밧차곳따가 부처에게 와서 물었다.
'고따마 선생님. 아뜨만이 있습니까?'
부처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면 고따마 선생님. 아뜨만이 없습니까?'
역시 부처는 묵묵부답이었다.
밧차곳따는 일어나서 가 버렸다.
그 방랑수행자가 가 버린 뒤에 아난다는 부처에게 왜 밧차곳따의 질문
에 대답하지 않았냐고 물었다. 부처는 자기 입장을 설명하였다.
'아난다야, 방랑수행자 밧차곳따가 "자아가 있습니까?"라 물었을 때 내
가 "자아는 있다"라고 대답했다면 영원주의 이론(sassata-vada;常住論)에
집착하는, 사문과 바라문의 편을 드는 것이다.'
'그리고 아난다야, 그 방랑수행자가 "자아가 없습니까?"라 물었을 때
내가 "자아는 없다"고 대답했다면 소멸주의 이론(uccheda-vada;斷滅論)
[각주1]을 신봉하는 사문과 바라문의 편을 드는 것에 불과하다.'[각주2]
[각주1] <역주> 상주론常住論은 형이상학적으로 영원한 실체가 있다고 하
는 이론이다. 단멸론斷滅論은 반대로 세상의 모든 것은 소멸되어 없
어지게 되어 있다고 보는 이론이다.여기에 대해서는 水野洪元, 김현
옮김, 《原始佛敎》(서울:지학사) 71~76쪽을 보라.
[각주2] 다른 기회에 부처는 그 밧차곳따에게 '여래에겐 학설이 없다. 사
물들의 본성을 보았기 때문이다'라고 말해 주었다.(M. I PTS, p.486)
여기서도 부처는 어떤 이론가들에도 부응하려 하지 않았다.
'또 아난다야, 밧차곳따가 "자아가 있습니까?"라고 물었을 때 내가 "자
아는 있다"라고 대답했다면 모든 법에는 자아가 없다는 내 앎과 일치하겠
느냐?'
'분명 아닙니다, 선생님.'
'그리고 또 아난다야, 그 방랑수행자가 "자아가 없습니까?"라고 물었을
때 내가 "자아는 없다"라고 대답했다면 이미 혼란스러워하는 밧차곳따에
게 더욱 엄청난 혼란을 줄 것이다.[각주3] 그는 이렇게 생각할 것이기 때
문이다. "이전에 정말 나는 아뜨만(자아)을 가지고 있었는데 지금은 그걸
잃어버렸다."'
[각주3] 사실은 그 이전이 분명한 다른 때에 부처가 어떤 깊고 미묘한 문
제―아라한이 죽은 뒤에는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에 대한 문제―를 설
명해 주었을 때 밧차곳따는 말했다. '고따마 선생님, 여기서 저는 무
지에 빠져 버렸습니다. 저는 혼란스럽습니다. 제가 고따마 선생님과
이야기를 시작할 때 가졌던 아주 작은 믿음 마져도 지금은 달아나 버
렸습니다.'(S. IV PTS, p.487) 그래서 부처는 그를 또다시 혼란시키
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부처가 왜 침묵하였는가는 명백하다. 그래서 우리가 전체적인 배경을
고려한다면, 그리고 부처가 질문과 질문자들을 다루는 방법―이런 문제를
논하는 자는 완전히 무시해 버린다―을 고려한다면 더욱 명확해질 것이
다.
부처는 누가 질문하건 간에 어떤 문제가 주어지더라도 아무 생각도 없
이 대답을 해주는 컴퓨터가 아니었다. 그는 자비와 지혜 가득한 현실적인
스승이었다. 그는 자기 지식과 지성을 내세우려고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
으며, 깨달음의 길을 가는 질문자를 도와주기 위해 대답하였다. 그는 항
상 사람들에게 그들의 발달 수준과 경향, 정신의 완성도, 성격, 특별한
문제를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을 염두에 두고서 말하였다.[각주4]
[각주4] 부처의 이 앎을 '감관을 초월하여 아는 지혜'(Indriyaparopariya
ttanana)라고 부른다.
부처에 의하면 질문을 다루는 데는 네 가지 방법이 있다. ⑴어떤 질문
은 바로 대답해 주어야 한다. ⑵다른 것은 그것들을 분석하는 방법으로
대답하여야 한다. ⑶그러나 다른 것은 반문하여서 대답하여야 한다. ⑷그
리고 마지막으로 제쳐놓아야 할 질문이 있다.
질문을 제쳐놓는 데는 몇 가지 방법이 있을 수 있다. 그 하나는 특정한
질문은 대답되거나 설명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이다. 부처가 바로 이 밧
차곳따에게 이런 말을 해준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듯이, 우주는 영원한가
아닌가 등등의 유명한 문제들을 부처에게 질문했을 때 그렇게 대답한다.
같은 식으로 부처는 말룽꺄뿟따와 다른 이들에게 대답해왔던 것이다. 그
래서 부처는 아뜨만(자아)이 있느냐 없느냐라는 질문에 대해 같은 것을
또 말할 수 없었다. 그것을 항상 논하고 설명했었기 때문이다. 부처는
'자아는 있다'라고 대답할 수 없었다. 그것은 '모든 법에는 자아가 없다'
라는 그의 앎과 상반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자아는 없다'라고 말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것은 예전에 자아가 없음을 받아들여서 이미 혼란스러
워하는 불쌍한 밧차곳따를 같은 문제를 가지고 불필요하게, 아무 목적도
없이 혼란스럽게 하고 동요를 일으키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아직
"나 없음"이란 개념을 이해하는 경지가 아니었다. 그래서 이 특별한 경우
에는 침묵으로 질문을 제쳐두는 것이 가장 슬기로운 것이었다.
우리는 또한 부처가 밧차곳따를 오래 전부터 아주 잘 알고 있었음을 잊
지 말아야 한다. 캐묻기 좋아하는 이 방랑수행자가 그를 보러온 것이 이
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지혜롭고 자비로운 스승은 이렇게 혼란스러워하는
구도자를 위하여 많은 사상을 가르쳐주고 엄청난 배려를 해주었다. 빨리
원전에서는 이 밧차곳따 같은 방랑수행자들이 돌아다니다 자주 부처와 부
처의 제자들을 만나러와서 같은 종류의 질문을 자꾸자꾸 던지는 것을 많
이 언급하고 있다. 분명히 그들은 이 문제들에 거의 강박관념이 되어서
아주 심히 고민하고 있었다. 부처의 침묵은 밧차곳따에게 그 어떤 웅변적
인 대답이나 토론을 해주는 것보다도 훨씬 큰 효과가 있었을 것이다.[각
주5]
[각주5] 그 이유는 나중에 밧차곳따가 다시 부처를 만나러 오지만 이번에
는 늘 하던 질문을 하지 않고 다음과 같이 말하는 것을 보기 때문이
다. "제가 고따마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눈지가 오래되었습니다. 고따
마 선생님께서 좋고 나쁜 것(kusala kusalam)을 간단히 가르쳐 주신
다면 도움이 되겠습니다." 부처는 그가 설명해 달라고 간청한 그 좋
고, 나쁜 것을 간단하게, 그러면서도 상세히 말해주었다. 그래서 밧
차곳따는 그것을 실천하였다. 결국 밧차곳따는 부처의 제자가 되어,
그의 가르침에 따라 "아라한의 지위"(阿羅漢果;應供位)에 도달하였으
며 '진리', 즉 열반을 실현하였다. 그리고 아뜨만에 대한 문제와 다
른 문제들은 더 이상 밧차곳따를 괴롭히지 않게 되었다.(M. II, PTS,
p.489과 그 아래.)
여섯째 가름: 영혼이 없다는 교리: "나 없음"(無我) -- 7
어떤 사람은 일반적으로 '자아'가 일반적으로 '마음'이나 '의식'으로
알려진 것을 의미한다고 여긴다. 그러나 부처는 사람이 마음(心)이나 사
상(意)이나 의식(識)보다는 육체적 몸(kaya;身)을 자아로 여기는 것이 더
낫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몸은 마음 같은 것보다는 고정적이기 때문이다.
마음이나 사상, 관념은 몸보다 빨리 밤낮을 가리지 않고 늘 변화하기 때
문이다.[각주1]
[각주1] 어떤 사람들은 대승불교의 '아뢰야식阿賴耶識'( laya- vijnana),
즉 "저장의 의식"(藏識:여래장如來藏;Tathagatagarbha)을 '자아'와
같은 어떤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능가경楞伽經》은 그것이 아뜨
만이 아니라고 단호히 말한다.(Lanka. pp.78~79)
<역주> 지은이는 아뢰야식과 여래장을 같은 것으로 보고 있다. 학파에 따
라서는 그 둘을 다르게 보는 경우가 있었으나, 원효를 비롯하여 우리
의 전통에 이어지는 사람들은 그 둘이 같다고 말한다. 아얄라식은 세
간의 망상과 번뇌들이 쌓이는 "저장의 의식"이다. 여래장이란 중생
모두가 감추고 있는 본래 성품(즉, 부처)을 말한다. 이 둘이 현상적
으로는 다르게 보이지만 근본에 있어서는 다른 것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가 사는 현실세계를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적극적인 실천에 임할
수가 있게 된다. '흙덩이와 흙먼지는 다른 것도 아니고 다르지도 않
은 것도 아니다. 금과 금세공품도 이와 같다.'(譬如泥團微塵 非異非
不異 金莊嚴具亦如是) [《大乘起信論疏記會本》, 韓國佛敎全書 1책 7
46쪽b]
원효의 여래장사상에 대하여 더 자세한 것은 이기영, 《元曉思想》
(서울:홍법원,1967) 127~140쪽을 참고하라.
대응되는 실재가 없는 자아관념을 만들어 내는 것은 '나는∼'[각주2]이
라는 막연한 느낌이다. 이 진리를 깨닫는 것이 열반을 깨닫는 것인데 그
렇게 쉽지는 않다. 《상윳따-니까야》에 케마까Kemaka라는 비구와 한 무
리의 비구들 간에 이 점에 대한 깨달음의 대화를 한 것이 있다.
[각주2] <역주> 원문은 'I AM'.
이 비구들은 케마까에게 "다섯 가지 모임" 중에 자아나 자아와 관계된
어떤 것이 보이는지 아닌지를 물었다. 케마까는 '안 보인다'라고 대답했
다. 그래서 비구들은 만약 그렇다면 케마까가 모든 더러움에서 벗어난 아
라한이 분명하다고 말하였다. 그러나 케마까는 자기에게는 "다섯 모임"
속에서 자아나 자아와 관계된 어떤 것을 어떤 것을 찾아 볼 수는 없지만,
'내가 모든 더러움에서 벗어난 아라한은 아니다'라고 고백하였다. '오!
벗들이여. "집착하려 하는 다섯 가지 모임"(五取蘊)에 있어서 '나는∼'이
란 느낌이 있다. 그러나 '이것이 나다'라고 보는 것은 분명 아니다.' 그
리고 나서 케마까는 자기가 '나는∼'라 부르는 것이 물질(色)도, 감각
(受)도, 지각(想)도, 정신이 형성한 것(行)도, 식(識)도, 또 그 밖에 어
떤 것도 아니라고 설명했다. '이것이 나다'라고 보는 것은 분명 아니더라
도, 그는 "다섯 가지 모임"에 있어서, 단지 '나는∼'이란 느낌이 있었다.
[각주3]
[각주3] 이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오늘날에도 자아를 일컬어 말하는 것
이다.
그는 그것이 꽃향기와 같다고 말한다. 그것은 꽃잎의 향기도, 색깔의
향기도, 꽃가루의 향기도 아니다. 단지 꽃의 향기일 뿐이다.
케마까는 더 나아가 깨달음의 처음 단계에 도달한 사람에게도 '나는∼'
이란 느낌이 여전히 남아 있다고 설명하였다. 그러나 나중에 그가 더욱
발전하였을 때 '나는∼'이란 느낌이 완전히 사라진다. 마치 깨끗하게 빨
래한 옷감의 세제 냄새가 상자 속에 넣어두고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듯이.
이 토론은 아주 쓸모가 있어서 토론이 끝나자 그들은 깨닫게 되었다.
경經에서 말하길 케마까를 포함한 그들 모두가 모든 더러움에서 벗어난
아라한이 되었다. 결국, '나는∼'이란 느낌이 제거되었다.
부처의 가르침에 의하면 "나는 자아를 가졌다"(상주론자常住論者의 이
론)라는 견해를 주장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나는 자아를 가지지 않았다"
(단멸론자斷滅論者의 이론)라는 견해를 주장하는 것도 그릇 되다고 한다.
왜냐하면 그 둘 다 족쇄이고 그 둘 다 '나는∼'이라는 거짓된 관념에서
발생되어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나 없음"의 문제에 대한 올바른 태도는
어떤 주장이나 견해도 취하지 말고, 단지 사물들을 정신을 내어 비추는
일없이 있는 그대로 객관적으로 보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나' 또는
'존재'라고 부르는 것을 단지 육체적, 정신적 "모임"(蘊)들의 결합체로
보는 것이다. 그 모임들이 순간적인 변화의 흐름 속에서 원인과 결과의
법칙에 따라 서로 상호의존하며 작용하는 것이라고 아는 것이다. 그리고
모든 존재하는 것 중에 영원하고, 늘 그러하며, 변화하지 않고, 무궁한
것이 없음을 아는 것이 "나 없음"의 문제에 대한 올바른 태도이다.
여기서 자연스레 한 의문이 일어난다. "아뜨만이나 자아가 없다면 누가
업(작용)의 결과를 받게 될까?" 아무도 이 질문에 부처 자신보다 나은 대
답을 할 수 없을 것이다. 한 비구에게 이 의문이 일었을 때 부처가 말하
였다. '나는 너희들을 이렇게 가르쳐왔다. 오! 비구들이여. 모든 것이 그
어디서나 조건에 따라 있음을 보아라.'[각주]
[각주4] <역주> 과거에 만들어진 조건에 따라서 현재의 상태가 존재한다.
현재의 조건에 따라서 미래의 상태가 존재하게 된다. 사물은 단지 원
인에 의한 결과로서 존재할 따름이고 존재를 결정하거나 부여받는 근
본실체란 없다. 즉, 사람에게 있어서 업의 결과를 받는 실체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현재 그 사람의 존재 자체가 과거에 지은 업의 결
과이다.
"영혼 없음" 또는 "자아 없음"에 대한 부처의 가르침을 부정적인 것이
나 단멸론적인 것으로 여겨서는 안 된다. 열반과도 같이 그것은 진리이고
실재이다. 그리고 실재는 부정적일 수 없다. 부정되는 것은 존재치 않는
허구적 자아에 대한 거짓된 믿음이다. "나 없음"(Anatta;無我)에 대한 가
르침은 거짓된 믿음의 어둠을 몰아내고 지혜의 빛을 발한다. 그것은 아상
가가 아주 적절히 말한 대로 부정적이지 않다. '나라고 할 만한 것이 없
다는 사실이 있다.'(nairatmyastita)[각주]
[각주5] <역주> 아상가Asanga(약 4세기)는 간다라 지방의 바라문 출신으
로 처음엔 소승교단에 출가했으나 나중에 마이뜨레야Maitreya(彌勒尊
者;약 4세기 초)를 만나 대승에 귀의한다. 아상가의 동생 바수반두Va
subandhu(世親;약4,5세기)는 원래 소승불교철학(俱舍論)의 대가였으
나 형 아상가의 영향을 받아 대승으로 전향하게 된다. 이들을 요가짜
라Yogacara(瑜伽師)라 불렀는데, 이 말은 곧 '요가', 즉 명상수련을
뜻한다. 바수반두는 이 학파의 교의를 유식唯識(Vijnaptimatra)이라
이름 붙였다.
유식철학은 워낙 방대하고 난해하여 여기서 간단히 말할 수 없으
나, 거츨게 말해서 이 세상의 어떤 것에도 실체가 없으며 인식작용으
로 말미암아 존재하는 것으로 보이게 된다는 철학이다. 이를 '지각되
는 것은 존재하는 것'(esseestpercipi)이라는 버클리Berkely류의 주
관적 관념론과 혼동하는 경우가 많으나, 여기서의 '인식'이란 서양철
학에서의 그것과는 전혀 다르다. 무엇보다도 대상을 지각하는 주체로
서의 '자아'가 없기 때문이다. 실체로서의 내가 실체로서의 대상에
접하여 인식작용이 있게 된다거나, 이 세계는 내 사유의 투사에 불과
하다는 생각은 '자아'가 있다고 여겨야만 가능해진다. 유식학에서는
인식의 성립이 실체와 실체의 만남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가
유假有(幻色)와 가유의 만남으로 이루어진다. 고정된 실체끼리의 만
남이 아니기 때문에 그 관계는 역동적이며, 상호적이며, 능동적일 수
있게 된다.[김용옥, 《동양학 어떻게 할 것인가》(양평:통나무,198
6), 83~84쪽 참고]
유식학은 탕唐에 유학한 원측圓測(613~696)을 거쳐 신라에 유입되
었고, 원측과 같은 시기에 원효도 화엄학을 연구하면서 독자적으로
유식학을 깊이 연구하여 그의 교학을 풍부하게 하고 있다. 그리하여
유식철학은 한국불교사상의 큰 줄기의 하나로서 이어지게 된다. 이렇
게 아상가의 생각은 오늘의 우리에게까지 이어지고 있다. 사상의 역
사는 단절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