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마드뤼아스'는 나무의 요정들을 싸잡아 일컫는 이름이다.
'하마(hama)'는 '함께한다'는 뜻, '드뤼아스(dryas)'는 '나무'를 뜻하는 그리스 말이다.
영어 '트리(tree)'의 조상에 해당한다. '포모나'는 '사과' 혹은 '과일'을 뜻하는 라틴어다.
오른손에 전정가위를 들고 다니는 과실나무와 꽃의 님프 포모나는 아름다워서 신들에게 인기가 많았으나, 나무들을 돌보며 열매를 맺게 하는 데만 바쁠 뿐, 남자에게는 아무 관심이 없었다.
자기 과수원에 아무도 침범하지 못하도록 자물쇠까지 채워둔 그녀였다.
그러던 중 과일나무의 신 베르툼누스가 다른 신들보다 더욱 더 그녀를 열렬히 사모하게 되었다.
베르툼누스는 그녀의 마음을 얻기 위해 노력하다가, 어느 날 노파의 모습으로 변신하여 그녀를 찾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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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체스코 멜치 - 포모나와 베르툼누스>
거기서 그는 사랑에 냉담하면 어떤 결과를 맞이하게 되는지 들려주며 포모나의 마음을 돌리고자 마음먹었다.
노파로 변신한 베르툼누스는 과수원에 들어가자마자
"과연 아름답습니다, 아가씨."
어쩌고 하면서 포모나에게 입을 맞추는데, 그 입맞춤이 도무지 노파가 하는 짓으로 어울리지 않게 뜨거웠다.
노파는 과수원 둑에 앉아, 과일이 흐드러지게 열린 과일나무 가지를 올려다 보았다.
가지는 노파의 머리 바로 위까지 축 늘어져 있었다.
거기에서 좀 떨어진 곳에는 느릅 나무 한 그루가 있었는데 그 느릅 나무 가지에는 포도가 잔뜩 열린 포도덩굴이 뒤엉켜 있었다.
노파는 이 느릅 나무와 포도 덩굴을 또 한 차례 칭송하고는 말을 이었다.
이 때 등장하는 이야기가 이피스와 아낙자레테의 일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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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CKHOUT Gerbrand van den - 포모나와 베르툼누스>
"이피스라는 가난한 집 총각이 있는데, 어느 날 이 총각이 데우크로스 집안의 딸인 아낙사레테 처녀를 보고는 그만 한눈에 반해버렸더랍니다.
이피스는 오랜 짝사랑으로 애를 태우다 그래서는 되는 일이 없겠다는 걸 깨닫고는 애원이라도 해보아야겠다는 생각으로 이 처녀의 집을 찾아갔답니다.
처음 이 청년을 만난 사람은 처녀의 유모였더래요.
이피스는 유모를 붙들고, 이래저래서 왔으니까 힘 좀 빌려주십사고 부탁했더라지요.
그러다 안 되니까 하인들을 구워삶으려고 애를 써보기도 했지요.
사랑의 맹세를 줄줄이 엮어 편지를 써 보내기가 몇 번이며, 눈물 젖은 꽃다발을 그 집 문앞에 걸어둔 것이 몇 번인지 헤라릴수가 없었답니다.
현관 앞에 몸을 던지고 벗겨질 줄 모르는 대문 빗장을 원망도 해보았겠지요.
그런데도 처녀 쪽은 동짓달 질풍에 놀아나는 파도보다 무정했고, 마음은 게르마니아 무쇠 대장간 강철보다, 아직도 벼랑에 붙어 있는 바위보다 더 단단했지요.
그저 무정하고 단단하기만 했대도 좋게요? 때로는 몹쓸 말로 욕보이고, 무시하고, 조롱하기만 할 뿐 도무지 틈을 보이지 않았더랍니다.
이피스는, 아무 희망이 없는 이 사랑의 괴로움을 도저히 더 견딜 수 없어서 처녀집 대문 앞에서 이렇게 막말을 했답니다.
'아낙사레테여, 그대가 이겼으니 이제는 내 터무니없는 소원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없소.
오직 그대의 승리나 기뻐하시오. 승리의 노래를 부르시오.
머리에 월계관을 쓰시오, 드디어 그대가 승리를 얻었습니다.
나는 죽습니다. 철석같은 마음이여, 이제 마음껏 기뻐하시오.
나는 죽음으로써 그대를 만족시키고, 이로써 단 한 번이라도 그대가 나를 찬양하게 만들고 말 것이요.
그대를 향한 내 사랑이 내 목숨보다는 먼저 식지 않는 것임을 증명해 보일 것이오.
내가 죽었다는 소식이 그대에게 풍문으로 들리게 하지는 않으리다.
그래서 여기 이렇게 와 있소.
내 모습을 그대에게 보이고, 내가 죽는 관경으로 그대 눈을 즐겁게 해주려오.
그러나 신들이여, 인간의 슬픔을 내려다보시는 신들이여, 저의 운명을 낱낱이 굽어살피소서.
오직 한 가지 소원만 드리오니, 바라건대 후대에 이르기까지 제 이름이 사람들 기억에 남게 하소서.
이제 신들께서 거두어 가실 제 생명을 저의 명성에 더하여 주소서.'
이런 말을 남긴 이피스는 그 창백한 얼굴과 비탄에 젖은 눈을 들어 처녀의 집을 올려다보며 대문 기둥에다, 청년이 지금까지 여러 번 꽃다발을 걸었던 그 대문 기둥에 올가미진 줄을 매달아 목을 밀어 넣고 중얼거렸답니다.
'적어도 이 꽃다발만은 그대 마음에 들 것이오. 무정한 처녀여!'
그리고는 발을 떼니 청년의 목이 부러진 채 허공 중에 대롱거리더랍니다.
대롱거리던 청년의 몸이 문을 미니, 문에서 비명소리와 비슷한 소리가 났지요.
그 소리를 들은 하인들이 달려나와 문을 열고는 청년의 시체를 보았겠지요.
가엾다 불쌍하다고들 혀를 차면서 하인들은 이 시신을 수습하여 청년의 어머니에게로 운반했습니다.
아버지는 세상을 뜬 지 오래여서 집에는 어머니밖에는 없었다지요.
어머니는 하인들로부터 받은, 이제는 식어버린 아들을 끌어안고 울었겠지요.
그 어머니의 입에서는, 아들을 사별한 세상의 모든 어머니들의 슬픔이 말이 되어 나왔을 테지요.
슬픈 장례 행렬은 거리를 지났습니다.
창백한 시신을 상여에 올려 화장장으로 운반하는 행렬이었습니다.
아낙사레테의 집이 마침 그 거리에 있었으니, 장례식에 모인 사람들의 애곡 소리가 그 처녀의 귀에도 들어갔을테지요.
복수의 여신이 그 값을 물리려고 점을 찍은 바로 처녀의 귀에.
'슬픈 장례 행렬인 모양인데, 구경이나 하자.'
처녀는 이렇게 말하며 창문 곁으로 가 거리를 지나는 장례 행렬을 내려다 보았더랍니다.
그런데 처녀의 눈이, 상여 위에 누운 이피스 시신에 멎는 바로 그 순간 처녀의 눈은 딱딱하게 굳었고, 몸속을 흐르던 따뜻한 피는 싸늘하게 식었더랍니다.
놀란 처녀는 뒤로 물러서려 했지만 발이 움직이지 않는 데야 별수가 없었을 테지요.
얼굴을 돌리려 했지만 그것마저 여의치가 못했더랍니다.
처녀의 온몸은 그 마음처럼 단단하게 굳어 돌이 되었다지요. 이 이야기를 안 믿는 분이 있을까요? 아직도 그 석상이 남아있는데도요? 살라미스에 있는 아프로디테 신전에 가면 이 처녀가 굳은 석상이 있답니다.
그러니 아가씨께서도 이 이야기에 유념하시어 부디 남을 업신여기거나 주저하는 마음을 버리시고 아가씨를 사랑하는 자의 말을 귀담아 들으세요.
그렇게 하시면 봄 서리가 아가씨의 풋과일을 시들게 하는 일도 없을 터이고, 심술궂은 바람이 아가씨의 꽃잎을 흩날리게 하는 일도 없을 것입니다."
베르툼누스는 아낙사레테의 예를 들면서, 마음의 문을 닫고 남의 사랑을 거절하거나 조롱한 대가가 얼마나 큰가를 경고합니다.
베르툼누스는 이러한 이야기를 마친 후 신으로서의 본모습을 드러내고 포모나를 다시 설득하려 들지만, 포모나는 이미 그에게 반해 있어 그럴 필요가 없었다는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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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reelse - 포모나와 베르툼누스>
사람이 자기 마음도 마음대로 못하는데, 남의 마음은 말할 것도 없죠.
그러나 사랑을 되돌려줄 수는 없더라도 최소한 매정하게 굴거나 비웃는 일까지는 하지 않아야 한다고 이 이야기들은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스 신화가 아니더라도, 남의 눈에 눈물 나게 하면 내 눈에 피눈물 난다는 우리 말도 있습니다.
올해는 여러분들의 사랑의 고백이 상대방의 마음의 문을 열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