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특히 국민학교 때까지)에 나는 두려움이 특히 많았었다.
어두워지면, 밖에 있는 화장실에도 못가고, (한여를에) 잠 잘 때도 이불을 푹 뒤짚어 쓰고 자고,
.....
두려움이 아주 많았었다.
학창시절 내내 대부분의 아이들보다 두려움이 아주 많았었다.
왜였을까를 생각해본다.
선천적이었다는 정도로 얘기되기도 하는데, 정말 왜 그렇게 특히 심했을까?
그냥 특히 심했었다는 정도로만 생각했었지, '왜 그랬지?' 에 대해서 생각한 것은 최근의 일이다.
얼마 전에 형에게 투정을 한 적이 있었다.
왜 그렇게 나에 대해서 관심이 없는가를 말하며, 몇 십년 전부터를 들춰내며 짜증을 냈었다.
그러면서 '왜였을까' 를 생각하게 됐었다.
나는 아주 특별한, 아주 귀한 막내 아이(태어나서 전산학을 하기까지 http://cafe.daum.net/heiheihei/5eKL/5 참조)였고,
형은 그렇지 않았었다.
형은 학창시절에 대부분 1등을 유지할 정도로 영리한 아이였다.
특별한 대접을 받는 동생에 대해서,
영리한 아이(형)가 자연스레, 무관심으로, 함께 어울리지 않음으로 갈등의 소지를 없애는 버릇이 생겼고,
그것이 훗날 자연스런 형제간의 관계가 되지 않았을까?
자주 의아해했었다.
형은 우등생, 동생은 낙제생.
중학교부터는 서울로 전학와서 둘이서 방 하나를 얻어서 자취하는 생활을 했었는데,
내가 공부를 전혀 안해도 아무런 간섭이 없었던 모습.
(공부해라 라는 말을 들어본 기억이 없다. 공부하는 모습을 보여준 적이 없었는데도 공부 좀 해라 식의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형이 내 성적표를 처음 본 것이,
학교에서 "이 아이는 진학이 불가하다" 고 보호자를 호출했을 때였다는 것에 대해서 평범하지는 않은 것으로 생각한 것도 아주 오랜 후의 일이었지 당시에는 나에 대해서 간섭하지 않는 형이 좋았다.
자율을 인정해주는 모습으로 지금의 내가 있게하는데, 형의 그런 도움이 컷다고 생각했었다.
지금도
가장 좋아하는 사람을 꼽는다면, (아내와 아이들을 빼고나면) 어머니, 아버지 다음에 형이고
가장 도덕적이고 믿을 수 있는 사람의 순서를 말할 때도, 아버님과 어머니에 형을 꼽는다.
그런데 왜 그렇게 무관심했을까에 대해서는
그렇게 많이 생각하지 않았었는데,
얼마 전에 내 글을 프린트해서 보여주려고 전했는데, 보지도 않고 그냥 무시하는 듯한 모습에서 화가나서 짜증을 내고 나서야
왜 그렇게 내 일에 무관심한가를 생각하게 됐고
어쩌면
아주 어렸을 때, 우리의 관계에서 비롯된 모습이지 않을까를 생각해본 것이다.
그리고
내가 두려움이 많았던 이유를
아주 특별했던 나의 성장과정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를 생각해본 것이다.
-------------------------
나는 아주 귀하게 자랐다.
'꼰다지' 와 '지청아' 를 안다면, 내가 어렸을 적에 얼마나 귀하게 자랐는가를 아는 것이다.
두 단어 모두, 어릴 적에 내가 만든 단어이고, 나를 알지 못하는 사람은 알지 못하는 단어이다.
-------
꼰다지 :
밥 그릇에 나 있는 숫가락 자국.
꼰다지가 있는 밥은 내가 먹을 수 없는 밥.
나는 항상 수북히 쌓여서 처음 받을 받았을 때의 모습인 밥그릇에만 숫가락을 댔다.
지청아 :
(내가 심술부릴 때 요구하는) 내가 요구하는 것.
내 기분이 나쁠 때는 그 어느 것도 아니고,
내 기분이 풀어지거나, 더 이상 울기가 힘들어질 때는, 그 어떤 것도 모두 지청아.
꼰다지 :
나는 꼰다지가 있는 밥그릇에서는 밥을 먹지 않았다.
즉, 꼰다지가 있으면, 바로 옆에서 그 자리를 다른 밥그릇에서 떠서 메워줘야 숫가락으로 밥을 떴었다.
결국 내가 아무리 밥을 많이 먹어도, 내 밥그릇은 원래의 모습대로 있었다.
달리 말하면, 옆에서 시중드는 사람이 꼭 있어야 밥을 먹었다는 것.
지청아:
특히 내가 찌뿌등해서 심술부릴 때 나오는 단어로, 나는 그냥 "지청아 줘!" 라고 떼쓰며 운다.
그러면, 내가 울음을 그칠 때까지, 계속 그 '지청아' 가 무엇인지를 계속 갖다 주면서, 울음을 그치도록 시도하는 사람이 꼭 있었다.
문제는 '지청아' 가 내 기분이 나빠서 그냥 떼쓰기 위해서 만들어 낸 단어로, 내 기분이 풀리기 전까지는 찾아낼 수 없는 물건이라는 것.
결국, 기분이 풀어지거나, 더이상 울기가 힘들어졌을 때(우는 것도 힘든 일이라는 것을 나는 잘 안다),
아무거나 "어! 그거야" 하면서 울음을 그쳤었다.
지청아라는 단어는 5살인가 6살 때 만들어졌다. 무엇인가를 말하려다가 '지청아'라고 말했던 것. 쥐창아( = 쥐덧)와 비슷해서 쥐덧으로 시작해서 온갖것들이 동원됐었다.
결국 첫번째의 지청아는 짱아치 였슴. 처음부터 짱아치를 요구했던 것이 아니고, 떼를 그만쓰고 싶었는데, 그 때 짱아치를 가져다 주며, "이것?" 하니까, "응" 하고 울음을 그친 것.
내가 국민학교를 들어가기 전까지는 언제나
"지청아 줘!" 라고 떼를 쓰면, 내가 울음을 그칠 때까지 내 울음을 그치게 하기 위해서 노력하는 사람이 있었다는 것.
-------
이런 아이였었다.
운다고 매를 맞지 않았었다. 적어도 국민학교 들어가기 전까지는 그랬었다.
그런 아이를 통제할 방법이 뭐였을까?
'울면, 호랑이가 잡아간다'
'울면, 귀신이 잡아간다.'
식으로 겁주는 것으로 나를 통제하려 했을 것이다.
어쩌면, 그런 어린 시절이 내가 특히 무서움이 많았던 이유일수도 있겠다는 생각.
어쩌면, 그런 동생과 어린 시절을 보내면서,
자연스레 동생에게 관심을 많이 갖지 않는 형의 모습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
그냥 막연히 생각해본다.
--------------------------------------
내가 형에게 짜증을 낸 이유.
화 때문만은 아니었다.(나는 화가 나면, 그 상대와 말 안하고 관계를 끊는 경우가 더 많다.)
처음에는 왜 그렇게 나에게 무관심할까 에서 출발했지만,
내가 표현을 한 이유는 과거가 아닌 미래를 생각해서였다.
이제부터라도 서로 관심을 갖고 많은 대화를 하는 관계여야 하겠다는 생각에서, (어쩌면 일부러) 짜증을 냈다.
물론 형이 나에게만 특별히 그런 것이 아니다.
가정에서도 그런 모습이다.
간섭 잘 안하고, 말이 없고, ... 하는 모습은 나에게나, 다른 사람에게나 마찬가지로 보인다.
그것이 성장과정과 관계가 있든 없든 중요치 않다는 생각이다.
이제부터는 그러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에서, 처음으로 '부관심' 에 대해서 문제거리로 말한 것이다.
좀더 많이 표현하는 모습이기를 바라면서, 내 요구를 말한 것이다.
--------------------------------------
이 나이에 '학창 시절에 내 성적표 본 적 있는가?' 를 말하며 따지는 모습 자연스럽지 않을 것이다.
그것이 그리 큰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았었고, 또 나와의 관계에서 갈등하는 기회가 없었고, 또 형에 대해서 크게 불만이 없었고, ....
등등으로 설명한다.
꽁하고 마음에 몇 십년 마음에 품었던 것이 아닌,
지금에 와서야 새삼스럽게 느낀 것이어서, 오히려 편하게 말한 것이었다.
내 두려움의 원인을 순전히 '성장과정' 으로 돌리는 것에는 문제가 있지만
관련성은 충분하다는 생각.
--------------------------------------
두려움이 많았기 때문에 오히려 얻은 것도 있고, 그것 때문에 오히려 지금 편해졌다는 생각도 한다.
두려움이 특히 많았기 때문에, 죽음에 대해서 일찍(국민학교 때) 생각했고,
죽음에 대해서 비교적 일찍 (완전하지는 않지만) 자유로움을 얻었다는 생각이다.
--------------------------------------
과거를 고통으로 돌아보는 것은 '자신을 신에 견주는' 건방진 모습이라고 말하며
과거는 미래를 위한 좋은 경험으로, 참고사항으로만 생각하자고 스스로에게 자주 주문합니다.
첫댓글 이제 다섯 살인 아이의 울음을 그치게 하기 위해서
"그러면 호랑이가 잡아간다" 는 식으로 말하는 경우를 제재한다.
그런 것은 아이의 두려움을 키우는 것이고
너무 편하게 아이를 통제하려는 나쁜 짓이라고,
아이에게 그런 식으로 하는 것을 못하게 한다.
떼쓰는 아이가 가장 무서워하는 것은 매일수도 있지만,
무관심도 무서워한다.
떼를 쓰기 시작했는데, 스스로 그치기는 멋적어서 힘들다.
또한 계속 우는 것도 힘들다.
단호한 조치로 떼를 멈추게 하든지,
떼쓰다 지쳐서 스스로 그치게 하든지를 권합니다.
적당히 매를 든다든지
계속 무엇으로 달래려든다든지는 아이를 떼쓰는 아이로 키우는 지름길.
꼰다지 = 지청아... 같은뜻이네요....
내 맘대로라 뜻이네.. 아직도 "꼰다지"와 "지청아"를 그리워 하지는 않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