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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당집 제12권[3]
[보봉 화상] 寶峰
구봉九峰의 법을 이었고, 홍주洪州에서 살았다. 선사의 호는 연무延茂이며, 천주泉州 선유현仙遊縣 사람으로 성은 곽郭씨이다. 삼회사三會寺에서 출가하여 나이가 차서 계를 받고, 더 이상 경론經論을 배우려 하지 않고 조문祖門을 흠모하여 구봉九峰에게 참문했다.
뒷날, 불시에 다음과 같이 물었다.
“두루 살펴보아도 전혀 아무것도 없을 때는 어찌합니까?”
구봉이 대답했다.
“오너라. 이 일을 알고자 한다면 마치 바람과 같아야 하느니라.”
이에 선사가 의심을 단번에 쉬고는 더 이상 다른 곳으로 가지 않았다. 그러다 임진년壬辰年부터 보봉에 주석했다.
선사가 법당에 오르자 대중이 모였는데,
이때 어떤 스님이 물었다.
“대중이 구름같이 모였는데, 스님께서는 어떤 상賞을 내리시겠습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추하고 약함을 꺼리지 않노라.”
“그렇다면 말씀해 주십시오.”
“어디를 갔다가 왔는가?”
“어떤 것이 옛 부처님의 마음입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끝끝내 흙이나 나무나 기와 조각이라 말하지 않느니라.”
“대중이 구름같이 모였으니, 예부터 전해 오는 종승宗乘을 스님께서 거양擧揚해 주십시오.”
선사가 대답했다.
“거양하지 않겠노라.”
“어째서 그러십니까?”
“나라를 위해 현인賢人을 아끼기 때문이니라.”
“어떤 것이 부처입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머리에는 보름달을 이고, 발에는 한 송이의 연꽃을 밟았느니라. 그가 원만히 이룬 경지를 살펴보는 것이 오히려 스스로 집으로 돌아가는 것만 못하니라.”
[광목 화상] 光睦
구봉九峰의 법을 이었고, 도궐都闕에서 살았다. 선사의 호는 행수行修이며, 복주福州 복당현福唐縣 사람으로 성은 임林씨이다.
서암산瑞巖山에 출가하여 나이가 차자 계를 받았고, 곧 민월閩越을 떠나 구봉으로 갔더니, 구봉이 보자마자 물었다.
“요즘 어디서 떠났는가?”
“아직 화상의 이곳에는 이르지 못했습니다.”
“만일 제방諸方이었다면 스무 방망이는 때렸을 것이니라.”
“화상께서 용서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이에 구봉이 꾸짖으면서 말했다.
“대중 방에 들어가서 공부하라.”
선사가 대답하고, 이로부터 마음의 근원을 활짝 깨친 뒤에 제방으로 두루 돌아다니면서 인연 따라 자연에서 머물렀다. 처음에는 청에 의하여 남원南源에서 살았는데,
어떤 사람이 물었다.
“어떤 것이 화상의 마지막 한 구절입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지금 무엇을 찾는가?”
“그렇다면 학인의 다리가 짧아지겠습니다.”
이에 선사가 말했다.
“여전히 두 번째 질문이니라.”
선사가 한 번 남원에 주석한 뒤로 2기(紀:1기는 12년)를 지나 신해년辛亥年이 되었다. 황제께서 조칙을 내려 부르자 서울로 나아가니, 혜관慧觀 선사라는 호를 하사하였다.
[동안 화상] 同安
구봉九峰의 법을 이었고, 홍주洪州 건창建昌에서 살았다. 선사의 호는 상찰常察이며, 복주福州의 장계현長溪縣 사람으로 성은 팽彭씨이다. 나이가 차서 계를 받고는 민월을 떠나 구봉을 뵈었다. 현묘한 관문을 남몰래 깨닫고는 봉령鳳嶺에 머물렀다.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봉령의 경지입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그대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어떤 것이 예로부터 전해 오는 일입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예로부터 제창할 수 없는 것이니라.”
“오늘의 방편은 또 어떠하십니까?”
“만 사람이 토해내지 못하는 것이니라.”
[늑담 화상] 氻潭
구봉의 법을 이었고, 홍주洪州의 건창建昌에서 살았다. 선사의 호는 광오匡悟이며, 천주泉州 선유현仙遊縣 사람이다. 보복원保福院에 출가하여 나이가 차서 계를 받았고, 구봉의 비밀한 법[密旨]을 깨달은 뒤로부터는 성정대로 자유로이 소요하다가 신해년에 청에 따라 늑담에서 살았다.
어떤 이가 물었다.
“향 연기가 온 누리를 덮고, 법연法筵이 크게 열렸습니다. 예로부터 전하는 종승을 어떻게 들어 제창하시렵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남에게 잘못 이야기하지는 말라.”
“그렇다면 한결같이 그렇게 해야 하겠습니다.”
이에 선사가 대답했다.
“역시 맞지 않는 소리로다.”
“여섯 잎새의 향기가 그윽한데 스님은 어느 잎새를 전하셨습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여섯 잎새가 상속相續하지 않으니, 꽃은 피어도 열매는 맺지 않느니라.”
“어찌 오늘의 일이야 없겠습니까?”
“만일 오늘이라면 있느니라.”
“오늘 일은 어떻습니까?”
이에 선사가 말했다.
“이어진 가지마다 잎새가 빼어나고 곳곳에 핀 꽃이 찬란하니라.”
[후운개 화상] 後雲蓋
선운개先雲蓋 화상의 법을 이었고, 담주潭州에서 살았다. 선사의 호는 경선景禪이며, 천주의 선유현仙遊縣 사람으로 성은 전田씨이다. 상운사祥雲寺에 출가하여 나이가 차자 계를 받고는 민월閩越을 떠나 소상蕭湘에 머무르면서 운개의 참법을 깨달으니, 초왕이 흠모하고 공경하여 자의紫衣와 초법超法 대사라는 호를 내렸다.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화상의 가풍입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천하[四海]에 통한 적이 없느니라.”
“옛사람이 말하기를,
‘한 티끌이 법계를 머금는다’ 하였는데, 어떤 것이 한 티끌이 법계를 머금는 소식입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온몸의 체體가 원만하지 않느니라.”
“어떤 것이 9세世가 찰나에 나뉘는 것입니까?”
“번성하지만 문채文彩를 펴지는 않느니라.”
“어떤 것이 종문의 분명한 뜻입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만 리 밖의 호승이 파란(波瀾:風波) 속에 들지 않느니라.”
[황룡 화상] 黃龍
현천玄泉의 법을 이었고, 호주號州에서 살았다. 선사의 휘는 회기誨機이고, 성은 장張씨이며, 청하淸河 사람이다. 선사가 강하江夏에서 살면서 무리들을 지도하니, 오조吳朝가 흠모하고 공경하여 초혜超慧 대사라는 호를 하사했다.
선사는 언젠가 대중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한 구절은 산악과 같고, 한 구절은 그물을 벗어난 고기와 같고, 한 구절은 백 갈래 개울의 물과 같으니, 이를 한 구절이라 해야 되겠는가, 아니면 세 구절이라 해야 되겠는가?”
어떤 스님이 이 일을 들어 복선福先에게 물었다.
“옛사람이 말하기를,
‘한 구절은 산악과 같고, 한 구절은 그물을 벗어난 고기와 같고, 한 구절은 백 갈래 개울의 물과 같다’ 하였는데, 어떤 것이 산악과 같은 구절입니까?”
복선이 대답했다.
“범부도 성인도 가까이할 수 없느니라.”
“어떤 것이 그물을 벗어난 고기와 같은 구절입니까?”
“그대가 긍정하지 않으니, 또 어찌하겠는가?”
“어떤 것이 백 갈래의 개울과 같은 구절입니까?”
“서로 작용함이 천차만별이니라.”
“어떤 것이 화상의 한 구절입니까?”
“잘못 전하지 말라.”
선사가 향엄香嚴에게 물었다.
“어떤 것이 무표계無表戒입니까?”
향엄이 대답했다.
“그대가 환속하면 일러 주리라.”
선사는 또 언젠가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여러 화상들이여, 군왕의 검劍과 열사烈士의 칼이 있다. 만약 군왕의 검이라면 온갖 생명들을 해치지 않고 열사의 칼이라면 못을 끊고 무쇠를 자른다. 비록 그러한 작용이 없지 않지만, 함부로 차지 말라. 어째서 그런가? 충성스러운 말은 혀가 잘리는 것을 피하지 않고, 날카로운 칼은 그 피가 범천까지 튀기 때문이니라. 오래 서 있었다. 잘 가라.”
이때 어떤 사람이 물었다.
“어떤 것이 군왕의 검劍입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온갖 생명을 손상하지 않느니라.”
“검을 차는 이는 어떠합니까?”
“피가 범천까지 튀느니라.”
“온갖 생명을 손상시키지 않는다니, 참으로 좋습니다.”
이에 선사가 20방망이를 때렸다.
“밝은 거울이 경대에 놓였을 때 물건을 비춥니까?”
“물건을 비추지 않느니라.”
“갑자기 오랑캐나 한인이 나타나면 어찌합니까?”
“오랑캐나 한인 모두 비춰진다.”
“사물을 비추지 않는다니, 참 좋습니다.”
이에 선사가 때렸다.
“어떤 것이 보배 병입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한 물건도 없느니라.”
“어떤 것이 병 안의 보물입니까?”
“설명할 수 없느니라.”
“한 물건도 없는 것이 좋습니다.”
이에 선사가 때렸다.
“어떤 것이 크게 의심하는 사람입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반석 가운데 마주 앉으니, 활[弓]이 잔에 떨어지는구나.”
“어떤 것이 크게 의심하지 않는 사람입니까?”
“다시 반석 가운데 마주 앉으니, 활이 잔에 떨어지는구나.”1313『진서晋書』 「낙광전樂廣傳」에 나오는 고사. 활에 새겨진 뱀의 그림자가 술잔에 비친 것을 진짜 뱀이라고 오해하여 의심하다가 그림자인 줄 알고 병이 씻은 듯이 나았다는 이야기이다.
“어떤 것이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파사(波斯:페르시아) 사람이 수건을 잃었느니라.”
[용광 화상] 龍光
나산羅山의 법을 이었고, 금릉金陵에서 살았다. 선사의 호는 은미隱微이며, 길주吉州의 신감현新淦縣 사람으로 성은 양楊씨이다.
여덟 살에 석두원石頭院에 출가하여 16세에 홍주洪州 대안사大安寺에서 구족계를 받았고, 17세에는 조사의 법연을 흠모하여 민閩으로 들어갔다.
처음에 나산을 뵈었는데,
나산이 선사를 보자마자 그릇이 특이함을 알고 다음과 같이 물었다.
“그대는 어느 곳 사람인가?”
선사가 대답했다.
“강외江外의 사람입니다.”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가?”
“퉤퉤[吒吒].”
이에 나산이 꾸짖었다. 그러자 선사는 곧 병과 바랑을 걸어 놓고 몇 해 머물렀다. 뒷날, 하직을 고하는데 나산이 갑자기 선사의 몸에서 누더기를 벗겨다가 승상 위에 깔아 놓고 앉아서 말했다.
“떠나려거든 누더기를 가져가라. 그러면 그대를 놓아주리라.”
선사가 동쪽에서 방 한복판으로 와서 세 번 절하고 다시 서쪽으로 가서 거기서부터 앞으로 다가서면서 말했다.
“화상께 누더기를 주시길 청하옵니다.”
나산이 기뻐하면서 선사에게 돌려주니, 선사가 그것을 받아 들고 물러나 나오는데, 나산이 문득 선사를 붙들고 말했다.
“돌아와서 한마디 일러 주오.”
선사가 말했다.
“화상을 멀리 떠나게 되지 않는다면 바로 오겠습니다.”
이로부터 계합하여 활짝 개어 의심이 없게 되었다. 민 지방을 떠나 두루 제방을 돌아다니다 처음으로 용천사龍泉寺에 주석하게 되었다. 신해년辛亥年에 조칙으로 서울에 불려 올라가 용광사龍光寺에서 법을 열라는 분부를 받았고, 각적覺寂 선사라는 호號도 하사 받았다.
선사가 상당하여 다음과 같이 말했다.
“여러 겁 동안의 일이 여기에 있을 뿐인데 지금의 일은 어떠한가?
소식을 전해 보아라.
무슨 까닭이 있는가?
있는가, 있는가?
여러 화상들이여, 이 일은 예나 지금이나 말하지 못하고, 노호(老胡:달마)도 토해내지 못한 것인데, 조사가 무어라 말하겠는가?
조사를 위해 이 일을 처리해 줄 수 있는 이가 있는가?”
이때 어떤 사람이 막 절을 하자, 선사가 문득 말했다.
“진중珍重하라.”
“어떤 것이 황매黃梅의 한 구절입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지금은 어떠한가?”
“어떻게 소식을 전합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구강九江의 길이 끊겼느니라.”
어떤 스님이 물었다.
“나라 안이 안녕한데 어째서 밝은 구슬이 나타나지 않습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어디에 떨어져 있느냐?”
“어떤 것이 용천의 검입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칼집에서 나오지 않느니라.”
“보여 주십시오.”
선사가 대답했다.
“별들이 법도를 잃었느니라.”
[용회 화상] 龍廻
나산의 법을 이었고, 고안高安에서 살았다. 선사의 호號는 종성從盛이며, 복주福州의 민현閩縣 사람이다. 장생산長生山에서 출가하여 계를 받자마자 곧 조사의 도를 흠모하여 나산을 찾아가 뵙고, 현현한 법을 깨달았다. 후에 민 지방을 떠나 용회에 머물러 살았다.
어떤 스님이 물었다.
“범왕梵王이 부처님께 일체 중생을 다 제도하기를 청하였고, 상서尙書가 오늘 정성껏 스님의 발 앞에 머리를 조아려 예를 올리니, 스님께서 들어 제창해 주십시오.”
이에 선사가 대답했다.
“곳곳에 태양이 빛나느니라.”
“그러시면 완전히 오늘 때문이겠습니다.”
선사가 대답했다.
“지금 절을 하지 않고 어느 때를 더 기다리는가?”
선사가 초경원招慶院에 이르니,
도度 상좌上座가 물었다.
“나산께서 평소에 말씀하시기를,
‘제방에서는 보리밥을 먹지만 나산만은 맛이 좋은 쌀밥을 먹는다’ 하셨는데, 사형께서는 나산에서 오셨다지요?”
그리고는 손을 불쑥 내밀면서 말했다.
“쌀밥을 조금만 주시오.”
이에 선사가 손을 들어 두어 주먹 때리니, 도 상좌가 말했다.
“쌀밥을 자시는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보리밥을 자시는 스님이었군요.”
이에 선사가 말했다.
“어리석은 사람은 방망이로 때려도 죽지 않소.”
도 상좌가 말했다.
“오늘 이 상좌가 주먹질을 했습니다.”
이에 도 상좌가 나서서 말했다.
“주먹질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저 그 경지 안에서 한 말씀만 내려 주십시오.”
선사가 대답했다.
“그 경계 안의 일도 말했소이다.”
도 상좌가 아무 말이 없자, 선사가 다시 말했다.
“여러분들을 한꺼번에 묶음으로 묶어서 더러운 곳에 거꾸로 세워 두었다가 내일 아침에 만나 보겠다. 잘 있으시오.”
선사가 천태산을 돌다가 자응紫凝에 이르니, 대중들이 모두 마중을 나왔다.
선사가 두 손으로 주장자를 짚고 서서 물었다.
“국사의 본래 자리가 어디인가?”
어떤 스님이 대답했다.
“위쪽 암자입니다.”
이에 선사가 말했다.
“그렇게 말하다니 자응의 밥을 헛먹었구나.”
어떤 사람이 물었다.
“옛사람이 말하기를,
‘전삼삼前三三 후삼삼後三三’이라 한 뜻이 무엇입니까?”
선사가 말했다.
“서산西山에서 해가 뜨고, 동산東山에 달이 진다.”
“옛사람이 샛별을 보고 도를 깨쳤다는데, 그 뜻이 무엇입니까?”
선사가 손으로 눈썹을 쓰다듬었다.
“단하丹霞가 목불을 태운 뜻이 무엇입니까?”
선사가 불을 쪼였다.
“취미翠微가 나한(羅漢:나한 계침 선사)을 맞이한 뜻이 무엇입니까?”
선사가 꽃을 뿌렸다.
선사가 나산羅山의 어린 스님에게 물었다.
“돌아가신 스승에게 음성 이전의 한 구절이 있었는데, 그대가 다 이야기할 수 있는가?”
스님이 옷자락을 들어 올리니, 선사가 말했다.
“그대는 꿈에서조차 화상의 진영을 뵙지 못했도다.”
선사가 임종할 때쯤에 상당하여 양구했다가 말했다.
“무슨 때인가? 여러 상좌들이여, 백 년 동안 오직 오늘만을 기대해 왔다. 오늘의 일이 어떠한가? 내가 40년 동안 홀로 이 산문을 지키면서 항상 한 자루의 검劍으로 무수한 인간과 하늘 무리를 살렸느니라.”
그리고는 수건을 번쩍 들어 올리면서 말했다.
“오늘 순타純陁의 공양이 또 있으니, 다른 곳으로 들고 가 마음대로 펴 보라.”
그리고는 던져 버렸다.
이때 어떤 이가 불쑥 물었다.
“스님께서는 돌아가신 뒤에 어디로 가십니까?”
선사가 한 발을 들고 말했다.
“발밑을 보라.”
선사가 시자에게 물었다.
“옛날 영산회상에서 석가모니부처님께서 두 발을 뻗어 수백 줄기의 보배 광채를 놓으셨느니라.”
선사가 다시 발을 뻗으면서 말했다.
“나는 지금 몇 줄기의 광채를 놓으랴?”
시자가 대답했다.
“옛날은 영산이요, 오늘은 화상이십니다.”
이에 선사가 손으로 눈썹을 뽑으면서 말했다.
“이를 저버리지 않을 수 있겠느냐?”
[청평 화상] 淸平
나산의 법을 이었고, 길주吉州에서 살았다. 선사의 휘는 유광惟曠이며, 복주福州의 민청현閩淸縣 사람으로 성은 황黃씨이다. 선림원禪林院에서 출가하여 나이가 차자 계를 받았다. 그리고는 바로 나산에게 참문하여 현현한 관문을 남몰래 깨닫고 더는 다른 곳으로 갈 생각을 내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민령閩嶺을 떠나 청평淸平에 머물렀는데, 경술년庚戌年에 왕명을 따라 서울로 가서 용광사龍光寺에 머물라는 조칙을 받고 그곳에 주석하니, 왕이 적조寂照 선사라는 호를 내렸다.
어떤 이가 물었다.
“어떤 것이 제1구입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내 머리를 원하면 베어 가라.”
“고금을 거치지 않는 것은 어떠합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어디에 떨어져 있느냐?”
“고금의 일은 어떠합니까?”
“함부로 지껄이지 말라.”
[중탑 화상] 中塔
현사玄沙의 법을 이었고, 복주福州에서 살았다. 휘는 혜구慧救이며, 천주泉州의 보전현莆田縣 사람이다. 구양산龜洋山에서 출가하여 나이가 차자 계를 받고 바로 현사를 만나 마음 근원을 비밀히 깨달아, 다시는 다른 곳으로 갈 생각을 내지 않았다. 훗날 민왕이 그를 흠모하고 공경하여 법륜法輪을 굴려 주기를 청하였고, 위에 주청하여 자의紫衣를 하사하게 하였다.
선사가 언젠가 상당하여 다음과 같이 말했다.
“고금에 편안하니, 법이 으레 그렇다. 이렇게 말하면 허물이 있겠는가?”
어떤 사람이 이 말을 가지고 장경長慶에게 가서 이야기하니, 장경이 말했다.
“허물이 없을 수 있겠는가?”
“어떤 것이 대유령大庾嶺의 일입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그대가 알아듣지 못할 것이라 짐작한다.”
학인이 다시 물었다.
“무게가 얼마나 됩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그러한 것은 겁을 두고 말해도 어찌할 수 없는 것이다.”
선사가 요了 원주院主에게 물었다.
“돌아가신 스승께서 말씀하시기를,
‘시방세계가 모두 진실한 사람의 몸이다’ 하셨는데, 그대는 그러한 승당僧堂을 본 적이 있는가?”
원주가 대답했다.
“화상께서는 눈을 가물가물거리게 하지 마십시오.”
이에 선사가 말했다.
“그리한다면 이마가 찢기도록 돌아가신 스승을 바라본다 해도 꿈에서조차 뵙지 못할 것이다.”
선사가 상당하여 말했다.
“여기서는 죽이건 밥이건 간에 인연에 따르겠지만, 여러분을 위하여 종승을 들어 제창함에는 끝내 한결같지 않다.
지금 간절한 곳을 얻고자 한다면 산하대지山河大地가그대들을 위하여 분명히 밝혀줄 것이다. 그 일은 항상하고 또한 완벽하다.”
그리고는 또 말했다.
“만일 문수의 문을 따라 들어간다면 온갖 유위有爲의 흙ㆍ나무ㆍ기와ㆍ조약돌이 모두 그대의 깨달음을 도울 것이요,
만일 관음觀音의 문을 따라 들어간다면 온갖 좋고 나쁜 음성과 나아가서는 개구리ㆍ지렁이들까지도 그대들의 깨달음을 도울 것이며,
만일 보현普賢의 문을 따라 들어간다면 걸음을 떼지 않고도 이를 수 있느니라.
내가 이 세 가지 방편으로써 그대들에게 보이나니,
마치 젓가락 한 개로 큰 바다를 저어서 그 속의 어룡魚龍들로 하여금 물이 생명임을 알게 하는 것과 같다.
알겠는가?
만일 지혜의 눈 없이 자세히 살피려 한다면, 그대들 마음대로 백 가지 재주를 부린다 해도 끝내 완전하지 못하리라.”
어떤 이가 물었다.
“불법의 대의는 어떤 방편의 문이어야 들어갈 수 있습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들어가는 것이 방편이니라.”
선사가 어떤 스님에게 물었다.
“그대는 전展 사형師兄이 아닌가?”
소사가 대답했다.
“외람됩니다만 그렇습니다.”
“그대의 스승이 그대더러 행각하라 하던가?”
그리고는 어이없다는 듯이 말했다.
“그대 스승께서는 무슨 마음을 이렇게 쓰는가?”
선사가 언젠가 말했다.
“한 눈 가득 보아도 보이지 않으니, 눈이 어두운 것이요, 온 귀로 들어도 들리지 않으니, 귀가 등진 것이다. 두 가닥 길을 깨닫지 못하면 그저 졸고나 있는 놈이니라.”
선사가 요일송曜日頌을 읊었다.
물건을 보기에 분명하나 눈의 티끌 끊겼고,
소리를 듣기에 요란스러우나 또한 원인 아니다.
종사가 듣고 보는 것 없음을 바로 보여 주지만
깨닫지 못한 이는 수고로이 새로 달이 떴다 하네.
현사玄沙가 백지白紙를 봉하여 설봉雪峰에게 보냈는데, 설봉이 보고 말했다.
“군자는 천 리 밖에서도 풍취가 같도다.”
그 스님이 다시 돌아와서 현사에게 이야기하니, 현사가 말했다.
“그렇다면 첫봄인데도 아직 춥다는 말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어떤 사람이 장경長慶에게 와서 이야기하니, 장경이 말했다.
“글을 보낸 사람이 좋고 나쁨을 알기나 하던가?”
어떤 사람이 다시 선사에게 이야기하니, 선사가 말했다.
“글을 올렸으면 물러나야 하느니라.”
[선종 화상] 仙宗
장경長慶 화상의 법을 이었고, 복주에서 살았다. 선사의 휘는 빈선玭禪이다.
나한羅漢을 뵙고는 물었다.
“옛사람이 말하기를,
‘차라리 마음의 스승이 될지언정, 마음을 스승으로 삼지는 않겠다’ 하였는데, 어떤 것이 스승입니까?”
선사가 손으로 가리켰다.
“학인이 항상 혼침昏沈에 빠져 있사오니, 스님께서 깨워 주십시오.”
선사가 주장자로 때리면서 말했다.
“만일 아픔과 가려움을 알면 옛 부처님과 어깨를 가지런히 하리라.”
선사가 개울물을 보다가 말했다.
“이 물이 저렇게 급하게 흐르는구나.”
스님이 대꾸했다.
“예, 그렇군요.”
“손과 발이 있는가?”
“있습니다.”
“어떤 것이 손과 발인가?”
스님이 손가락으로 가리키니, 선사가 말했다.
“작용이 때를 맞추지 못하는구나.”
이에 스님이 도리어 물으니, 선사가 물을 뒤집어 씌웠다.
선사가 어떤 스님에게 물었다.
“어디서 떠났는가?”
“절중浙中 지방에서 떠났습니다.”
“여기에 온 지 얼마나 되는가?”
“화상께서 말씀해 보십시오.”
“그대는 올 여름 고산鼓山에 있었던 이가 아닌가?”
“겨울이면서 여름이었습니다.”
그러자 선사는 다르게 말했다.
“시골 중 하나 속이기는 쉽구나.”
선사가 어떤 스님에게 물었다.
“그대는 평소에 어떤 공부를 이루었는가?”
스님이 대답했다.
“예전에 대중에 있을 때에는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들었는데,요즘에는 이룰 공부가 없으니, 전혀 일이 없습니다.”
“요즘 생계는 어떻게 꾸리는가?”
스님의 대답이 맞지 않으니, 선사가 대신 대답하였다.
“죽은 있으나 밥이 없고, 소금은 있으나 식초가 없도다.”
“옛사람이 말하기를,
‘말의 길이 끊기고 마음의 길이 사라졌다’ 했는데, 스님께서 말씀해 주십시오.”
선사가 말했다.
“아미타불이니라.”
“어째서 이렇게 되었습니까?”
이에 선사가 말했다.
“그대가 자세히 점검해 보라.”
“옛사람이 말하기를,
‘밤마다 부처를 품고 자고 아침마다 함께 일어난다’ 하는데, 어떤 것이 부처입니까?”
선사가 말했다.
“그대는 아직도 옛사람을 믿는가?”
“학인은 절대로 옛사람을 어기지 않습니다.”
이에 선사가 말했다.
“그대가 만약 옛사람을 믿으면서 합장하고 묻는다면, 그것이 부처가 아니고 무엇이랴?”
“오랫동안 윤회에 빠져 있으니, 스님께서 건져 주십시오.”
선사가 대답했다.
“그대는 얼마 동안이나 윤회에 빠져 있었던가?”
“그렇다면 윤회에 빠질 필요가 없겠습니다.”
이에 선사가 말했다.
“또 저렇게 하는구나.”
“말로써 미칠 수 없고, 알음알이로써 도달하지 못한다 하는데, 어떤 사람이 이를 수 있습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누가 너더러 칼을 쓰고 오라를 받으라 하던가?”
“오늘 밝은 스승의 비판을 받아서 다행입니다.”
“내가 그렇게 비판하여 그대는 어떤 경지에 이르렀는가?”
“더우면 신령한 샘에 가서 물을 떠먹고, 추우면 불을 피우고 화롯가에 둘러앉습니다.”
그리고는 물었다.
“시방세계가 온통 해탈문이라 하는데, 여기에 다시 의심을 내는 이는 어찌하여야 들어갑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나는 그대처럼 교묘하고 악랄하지는 않다.”
“화상께서도 이런 기회를 틈타는 데 익숙하십니다.”
이에 선사가 말했다.
“먼저 집적거리는 이가 천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