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본기(百濟本紀)] 수수께끼】(7).hwp
【[백제본기(百濟本紀)] 수수께끼】(7)
【29. <사반왕(沙伴王)> <고이왕(古爾王)> 수수께끼】
[백제본기(百濟本紀)]는 <고이왕(古爾王)>이 <개루왕(蓋婁王)>의 둘째 아들로써 <구수왕(仇首王)>이 AD.234.에 사망하자 그의 맏아들 <사반(沙伴)>이 왕위를 이었으나 나이가 어려 정사를 잘 처리하지 못하였으므로 <초고왕(肖古王)>의 동복아우(母弟) <고이(古爾)>가 왕위에 올랐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삼국유사(三國遺事)]에는 <사반(沙伴)>이 5년 동안 재위(在位)하다가 AD.239.에 죽고, <고이(古爾)>가 왕위(王位)를 이었다는 다른 기록이 있어서 수수께끼입니다.
[삼국유사(三國遺事)] 다른 기록의 <낙초 2년 기미(樂初二年己未)>는 AD.239년입니다.
<낙초(樂初)>는 AD.238년에 개원(改元)한 <온다라(百濟)>의 연호(年號)입니다.
<온다라(百濟)>는 <졸본부여(卒本夫餘)> 시조(始祖) <동명성왕(東明聖王)>의 후예(後裔) <구태왕(仇台王)>이 <요동태수(遼東太守)> <공손탁(公孫度)>과 결혼동맹(結婚同盟)한 후 <졸본부여(卒本夫餘)> 백성(百姓)을 나누어 <대방고지(帶方故地)>에 개국(開國)한 나라라고 [지나사서(支那史書)]인 [수서(隋書)]와 [북서(北書)]에 기록되어있습니다.
<온다라(百濟)>가 개국(開國)한 <대방군(帶方郡)>은 <구태왕(仇台王)>과 결혼동맹(結婚同盟)한 <공손탁(公孫度)>이 독립(獨立)하여 세운 <요동국(遼東國)>의 제2대 왕 <공손강(公孫康)>이 <건안(建安=AD.204~219)> 중(中)에 <둔유 남쪽 황지(屯留南荒地)=지금의 천진(天津) 지역>를 나누어 설치한 곳입니다.
[지나사서(支那史書)]는 <졸본부여(卒本夫餘)>의 <구태왕(仇台王)>이 <대방고지(帶方故地)>에 <온다라(百濟)>를 세웠다고 했으나, <구태왕(仇台王)>이 <현토성(玄菟城)>을 포위(包圍)한 <고구려(高句麗)> 연합군(聯合軍)을 물리친 것이 AD.121.인데, <공손강(公孫康)>이 <대방군(帶方郡)>을 설치한 때는 빨라야 AD.204년이므로, <구태왕(仇台王)>이 직접 <온다라(百濟)>를 세우기에는 나이가 너무 많고, <구태왕(仇台王)>의 아들이나, 손자가 <대방군(帶方郡)>에 <온다라(百濟)>를 세운 것입니다.
<공손강(公孫康)>의 아들, <공손연(公孫淵)>이 <위(魏)>나라 태위(太衛) <사마의(司馬懿)>의 공격(攻擊)을 받아 멸망(滅亡)한 AD.238년에 <요동국(遼東國)>과 결혼동맹(結婚同盟)한 <온다라(百濟)>도 <대방고지(帶方故地)>를 떠나, <고마성(固麻城)=지금의 공주(公州)>으로 옮겼습니다.
<고마성(固麻城)=지금의 공주(公州)>으로 천도(遷都)한 AD.238년에 <온다라(百濟)> 왕은 <고이왕(古爾王)>입니다.
그러니까 <고이왕(古爾王)>은 <개로왕(蓋鹵王)>의 둘째 아들이 아니라, <구태왕(仇台王)>의 아들이나, 손자가 되는 것입니다.
<고이왕(古爾王)>은 AD.238년에 연호(年號)를 <낙초(樂初)>로 개원(改元)하고, 이듬해인 <낙초(樂初)> 2년 기미(己未), AD.239년에 <백아강(白牙岡)=지금의 대동강(大同江)>에 있던 <사반왕(沙伴王)>의 <열다라(十濟)>를 <담로(擔魯)>로 통합(統合)한 것입니다.
<열도(列島)>에서 <이즈모쿠니(出雲國)>를 다스리다가 AD.234.에 아버지 <구수왕(仇首王)>의 뒤를 이었던 <사반왕(沙伴王)>은 AD.239.에 <열다라(十濟)>를 <고이왕(古爾王)>의 <온다라(百濟)>와 통합(統合)시키고, <열도(列島)>로 다시 건너가 <쿄코텐노(孝昭天皇)=고토시로누시노가미(事代主神)>가 되었습니다.
<사반왕(沙伴王)=쿄코텐노(孝昭天皇)=고토시로누시노가미(事代主神)>는 딸 <이스케요리>를 <일본(日本)>의 초대천황, <신무텐노(神武天皇)>에게 시집보내 부마(駙馬)가 되었습니다.
<사반왕(沙伴王)=쿄코텐노(孝昭天皇)=고토시로누시노가미(事代主神)>는 <열도(列島)에서 여생(餘生)을 마치고 <掖上博多山上陵>에 묻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