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영탁 전 세계일보 논설위원 수필가 늙으면 고향 생각이 자주 나고, 자랄 때 즐기던 고향의 향토음식이 그리워진다. 동해를 낀 경북 영덕군이 내 고향이다. 영덕이라면 곧장 ‘영덕대게’를 연상할 것이다. 또 대게라면 언뜻 ‘큰<大>게’를 떠올릴 것이다. 그러나 대게는 다리에 대나무처럼 마디가 져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그래서 한자로 죽해(竹蟹)로 쓴다. 대게는 영덕 축산면 앞바다가 서식지로 강원 속초에서 구룡포, 경남 방어진까지 동해안에 널리 분포되어 잡힌다. 하지만 ‘영덕대게’라는 유명세 덕택에 강구항(江口港)으로 많이 집산된다. 해양수산수의 분석 결과, 맛도 영덕에서 잡히는 대게가 낫다고 한다. 그런 대게의 본고장 영덕군에서는 해마다 대게 축제가 열려 대성황을 이룬다. 전국에서 경제효과가 으뜸가는 관광 축제로 꼽히고 있다.
해수부(海水部)는 해마다 6월부터 10월까지를 대게의 금어기(禁漁期)로 정해 대게의 산란 성장을 보호한다. 11월이 돼야 잡게 한다. 대게가 가장 살찌고 맛있는 철은 3, 4, 5월이다. 영덕대게 맛 기행을 계획하시는 분들은 그 무렵 떠나시도록 권유한다.
필자가 중학생일 때까지는 해마다 대게가 풍어를 이뤘다. 어판장엔 꿈틀대는 싱싱한 대게가 무더기무더기 쌓여 있었다. 긴 겨울밤에 찐 대게를 큰 소쿠리로 방안에 들여놓고 식구와 이웃이 둘러앉아 세상에 둘도 없는 진미의 식도락에 빠지곤 했다. 그 무렵 대구시 같은 대도시엔 밤에 주택가 골목길에서 딸랑 종을 울리며, “영덕대게 사이소, 대게 사이소!” 외치고 다니며 찐 대게를 파는 행상들이 있었다. 그 시절 대게는 적은 돈으로도 서민들의 입맛을 즐겁게 해주는 겨울밤의 먹거리였다.
그러나 이제는 마음껏 먹기엔 너무 비싼 귀하신 몸이 되었다. 자원이 줄어들고 있어서 고가의 별식 먹거리가 되었다. 영덕군(郡)이 품질을 보증하는 최상품 ‘박달대게’는 현지에서도 한 마리에 10만 원 넘는다. 러시아산 대게는 6만 원 쯤 나간다. 맛은 비슷하지만 수송 기간에 맛있는 게장이 녹아서 맛볼 수 없는 게 탈이다. 등외품 대게도 잘 고르면 싼 값으로 사서 쩌 주는 가게에서 즐길 수 있다. 독도 부근 멀리 대화퇴(大和堆) 어장에서 잡히는 홍게도, 제수가 좋으면 대게 맛의 7-80%정도의 맛이 나는 걸 만날 수 있다. 필자의 경험에 따르면 러시아산 킹크랩이나, 샌프란시스코 피셔멘스 와퍼에서 맛본 태평양 대게 맛은 영덕대게의 감칠맛에 미치지 않았다.
영덕에선 또 해마다 5월에 ‘물가자미 축제’가 열린다. 물가자미란 가자미류의 한 어종인데 현지 말로는 ‘미주구리’라고 부른다. 다 자라야 손바닥 크기로 뼈를 뜨지 않고 칼로 썰어서 속칭 세꼬시회로 먹으면 그만이다. 고향 사람들은 이를 ‘막회’라고 한다. 물가자미는 바다에 아직도 어자원이 풍부한 편이라 돈을 들여 인공양식을 할 필요가 없다. 그래서 값싸고 맛있는 최고의 자연산 생선회가 된다. 수도권을 포함한 전국 각지에 ‘영덕 막회집’이란 간판을 걸고 횟집을 하는 고향 분들이 백여 명 넘는다. 그래서 ‘막회’라는 투박한 이름 대신 다른 멋진 이름을 지어주고 싶어서 생각해 왔는데, 아직 그럴듯한 아이디어를 떠올리지 못하고 있다.
1991년 남북총리회담 취재차 평양에 갔을 때다. 김일성의 영빈관인 백화원초대소 식당에서 아침을 먹고 있었다. 함흥의 명물 가자미식혜가 밥상에 올라 있었다. 동료들은 젓가락을 대지 않는데, 너무 맛이 좋아 나만 신나게 먹었다. 그게 뭐냐고 해서 함흥의 특산 가자미식혜라고 하자, 그제야 다들 덤벼들었다. 가자미를 무, 파, 마늘, 생강과 버무려 발효시킨 그것은 내 고향 영덕에서도 즐겨 먹는 별미 중 하나다.
이 글을 쓰면서 자랑하고 싶은 고향 특산품 먹거리가 하나 더 있다. 송이버섯이다. 대개 사람들은 자연산 송이라면, 강원도 양양이나 경북 봉화를 주산지로 알고 있다. 그러나 영덕이 제일 양질의 자연산 송이가 가장 많이 나는 곳이다. 북한산이나 중국산 송이보다 맛이 월등히 좋아서 일본에서 가장 인기 있다. 자연산 송이는 1kg에 50만, 100만원으로 값이 치솟을 때도 있다. 그러나 대개 1등품이 2-30만 원, 2등품이 15만 원, 3등품이 10만 원. 등외품은 6만 원 정도로 거래된다. 송이 따는 철이 되면 고향의 늙은 친구들이 송이 파티를 하러 오라고 연락을 한다. 야외에서 숯불에 송이를 굽고 있으면 30m 떨어진 곳에서도 향기를 맡을 수 있다. (『대한언론』2023.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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