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중 위 헌정회 홍보편찬위원장, 영토문제 특별위원회 위원장, 12∼ 15대 국회의원, 전 환경부 장관, UN 환경계획 한국부총재, 한강문학회 상임고문, 한국문예학술저작권협회 회장
어떤 한 사람을 놓고 여러 갈래의 재미있는 얘기가 따라다니는 사람으로 기게스(Gyges)라는 사람이 있다. 플라톤(Platon)은 무엇이 정의인가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기게스의 반지>얘기를 다루고 있고 헤로도토스(Herodotus)는 왕조가 바뀌는 역사적 사실 중에서 어리석은 한 왕의 얘기와 더불어 기게스에 대한 얘기를 들려주고 있다. 플라톤의 기게스와 헤로도토스의 기게스가 같은 사람인지는 알 수 없다. 우선 헤로도토스가 그의 <역사>에서 말하고 있는 기게스는 리디아의왕 칸다울레스(Candaules)가 가장 아끼는 시종이었다. 어리석은 왕 칸다울레스는 자신의 부인인 왕비가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자랑하기 위해 기게스로 하여금 몰래 왕비의 알몸을 보도록 유도한다. 기게스는 왕이 시키는 대로 할 수 없이 침실에 들어가 문 뒤에 숨어서 왕비의 알몸을 보고 나오는 순간 그가 나가는 뒷모습을 그만 왕비에게 들키고 말았다. 그 다음날 왕비는 기게스를 불러 불호령을 내린다. “왕비의 알몸을 볼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왕 한 사람뿐! 그대가 죽든지 아니면 왕을 죽이고 리디아왕국을 책임지든지 한 가지만 선택하라!” 새파랗게 질린 기게스는 결국 왕비의 명에 따라 왕 칸다울레스를 죽이고 왕위를 찬탈한 다음 왕비와 결혼했다. 죽음을 자초한 어리석은 왕의 얘기와 더불어 새로운 왕국의 탄생을 알리는 역사 얘기다. 플라톤의 <국가론>에서의 기게스는 리디아사람의 조상으로 양치기였다. 어느 날 양치기 기게스가 양을 치는 풀밭에 느닷없이 폭우가 쏟아지고 지진이 일어나면서 땅이 갈라지고 깊은 굴이 생겼다. 호기심 많은 양치기는 그 굴속으로 내려가 주변을 살피던 중에 손에 금반지를 낀 알몸의 시체 하나를 발견하였다. 양치기는 남이 볼세라 얼른 그 금반지를 빼서 밖으로 가지고 나왔다. 그러고 얼마 후 이 양치기 기게스는 자신이 끼고 있는 반지의 흠집 난 곳을 안으로 돌리면 자신은 투명인간이 되고 밖으로 돌리면 자신의 모습이 다시 나타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 사실을 발견한 그는 새로운 삶을 위해 왕궁에 들어가 왕비와 내통하고 왕을 죽이고 왕위를 찬탈한다. 이 얘기를 두고 학자들은 “익명성에 숨은 폭력성이나 부도덕성”을 설명하는 상징어로 <기게스의 반지(Ring of Giges)>를 예로 들면서 “가장 의롭지 못한 사람이 더 정의로운 것처럼 행동한다”는 일반이론을 도출해 낸다. 이 얘기는 우리를 두고 하는 것 같다. 자신의 침실에 기게스를 불러들 이는 칸다울레스의 어리석음과 자신이 마치 <기게스의 반지>라도 끼고 있는 듯이 익명의 너울을 쓰고 가장 정의로운 척하면서 갖은 불의를 다 저지르고 있는 무리들이 판을 치고 있는 것이 오늘의 우리 현실이 아닌가 싶어서다. 노무현 정권 때는 ‘과거사 진상 규명’이라는 미명하에 그리고 문재인 정권이 들어서서는 ‘적폐청산’이라는 이름으로 과거 정권의 세력들을 뿌리째 뽑아버리고 자파세력으로 물갈이하는 데에 온 정성을 다 기울였다. 이해찬이라는 이는 드러 내놓고 “보수세력을 궤멸시키겠다”고 까지 말하는 상황이 되었다. 과거사 진상규명에서는 과거 남로당 사람들이 대한민국 정부수립을 반대하기 위해 일으킨 제주 4.3폭동 사건을 마치 민주항쟁인 것처럼 분칠하기에 이르렀고 적폐청산에서는 고위급 전직은 마치 모두가 적폐의 온상이란 듯이 몰아, 닥치는 대로 모조리 감옥에 처넣었다. 급기야는 전 정권의 대법원장까지 감옥에 넣고 자파정권의 구미에 맞는 대법원장을 임명하자 새 대법원장은 한일 간의 협정은 고려하지도 않은 채 일본에 대한 노무자 임금문제를 제기함으로써 의도적으로 반일감정을 우리네 안방 깊숙이 불러 들였다. 그리고 이는 즉각적으로 일본으로 부터의 반한감정을 불러일으켰다. 기게스를 우리의 침실에 불러드린 셈이 된 것이다. 어디 그 뿐인가! 김정은을 판문점 남쪽으로 불러 트럼프와 회담하도록 하면서 대통령은 그 근처에도 가지 못하면서 구경만 하고 있었다. 어찌 그 어리석음이 칸다울레스와 닮은꼴이 아니라 할 수 있을까? 북한 편을 들어주고 나서 돌아오는 반응은 “겁먹은 개”라느니 “오지랍”이니 “삶은 소대가리”네 하는 소리를 듣고도 아무소리도 못하고 있는 형국을 보면 영락없는 칸다울레스다. 플라톤이 말한 기게스의 반지는 어떤 불의도 마음대로 자행할 수 있도록 고안된 반지다. 그리고도 자신의 행동이 마치 정의로운 것처럼 보이게 할 수도 있는 반지다. 과거의 문정권이 바로 그런 기게스의 반지를 끼고 있는 정권이 아니었던가 싶다. 입만 열면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할 것이며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고 하면서 정작 현실에 가서는 그렇지 않았다는 사실을 우리는 보아왔다. 얼마나 염치없는 정권이었으면 다른 장관도 아닌 법무부 장관에 각종 의혹에 휩싸여 있는 인물을 임명했을까 싶다. 위선도 이런 위선이 없다. 우리 안의 일부 시민단체 또한 예외가 아니다. 처음에는 “양심법관 지켜내자”고 응원했다가 자신의 뜻과 다른 판결이 나면 언제 그랬더냐 싶게 표변하여 “권력의 시녀” “정권에 아부하는 법관” “법관의 양심을 버린 판사”등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욕설과 협박으로 저주하기에 이른다. 정의로운 척 시민운동이라는 간판을 앞세우고 나서 그 뒤에서는 무소불위의 행패나 기득권 행사에 혈안이 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과거 미국산 쇠고기 수입문제나 사드 배치, 세월호 진상규명과 같은 문제를 놓고 광란에 가까운 시위를 주도한 좌파 반미세력들과 자신들의 뜻에 맞지 않는 판결을 했다고 제멋대로 폭력을 휘두르는 반지세력들이야 말로 적폐세력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과거정권 당시에 얼마나 많은 적폐세력을 양성하고 있었는지 알고나 있는지 모를 일이다. 칸다울레스의 어리석음과 기게스의 반지에 대한 유혹에서 하루빨리 벗어나기를 기대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