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식은 나연과 헤어지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지금 다니는 운전학원을 그만 둘 결심을 하였다. 특별히 다른 계획은 없었지만 그곳을 관두고 일을 찾아 볼 생각이었다. 그는 그곳에 그만둔다는 전화를 하고 집에 며칠 있다가 강릉으로 향하였다. 혜진을 잊기 위해서 그가 고등학교를 나온 또 그녀 있는 곳과 멀리 떨어진 바다가 있는 강릉으로 가서 직장을 구하고 한동안 있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는 강릉 교동에다가 하숙을 정하고 일은 하지 않으면서 그간 모은 돈을 야금야금 쓰면서 긴 겨울을 보냈다. 거의 매일 술이었으며 강릉에 있는 고등학교 동창들과 주로 마셔댔다. 겨울이 끝나고 봄이 되었을때 그가 모아논 돈은 바닥을 보였고 어쩔 수 없이 현식은 그의 빨간 스포츠 세단에다가 짐을 싣고 고향 집으로 향했다. 그가 집으로 향했을때 엉덩이에 큰 종기가 생겨서 그 통증 때문에 차에 앉아서 운전을 하기가 너무 힘들었다. 진통제를 몇알을 먹어도 별효과는 없었다. 거의 세시간을 그 통증과 치열하게 싸우면서 집에 간신히 도착한 후 현식은 소주를 한병 마시고 스스로 엉덩이의 종기에 날카로운 칼을 대어서 그것을 터트렸다. 칼날로 한번이 아니라 세번이나 곪은 부분을 그을때는 세상의 통증이 아닌 것 같은 너무나 심한 고통에 거의 기절할 것 같았다. 현식의 입에서는 비명 같은 신음소리가 몇번이나 터져 나왔다. 병원에 가면 될 일이었지만 그는 미련한 방법을 택했던 것이다. 말로 못할 통증끝에 종기의 피고름이 터져나왔고 현식은 지독한 고통이 어느정도 나아졌음을 알았다. 하지만 곪은 것들이 다 빠져 나온 것이 아니라서 현식은 며칠을 두고 피고름을 짜내야 했다.
종기가 완치된 후 현식은 동네에 친한 후배 집에 놀러갔는데 그 후배가 뜻밖에 래프팅 가이드를 한다는 것이었다. 그 당시 동강에는 래프팅이 활성화 되었다. 현식 역시 귀에 솔깃해서 그 후배를 통하여 지역의 래프팅 업체에서 일을 시작했다. 몇달을 가이드로 일하다가 장사가 잘되는 것을 본 현식은 직접 업체를 차리게 되었다. 업체는 6월달에 차렸는데 장사가 잘되어서 몇개월만에 직장에서 1년동안 버는 돈보다 훨씬 많은 돈을 벌게 되었다. 그러다가 어느 하루 일을 밑의 팀장에게 맡기고 전에 근무했던 영월 운전학원을 들러보았다. 그런데 학원 정문을 들어서자마자 거기에는 혜진이 혼자 앉아있었다. 현식은 그녀의 옆에 가서 앉았다. 그런데 학원장이 날보고 반가움을 표하며 현식의 옆에 앉았다. 현식 그동안의 래프팅 사업을 얘기하며 그와 대화했다. 둘의 대화를 옆에서 혜진은 가만히 듣고 있었다. 대화가 끝난후 학원장이 떠나고 현식은 혜진을 아는 체를 했다.
"어! 혜진씨 운전면허 따러 오셨나 봐요?" 혜진은 그 전의 냉랭했던 태도가 아닌 반갑다는 듯이 미소를 지었다. 어머! 현식씨. 여기서 다 뵙게 되네요. 잘 지내셨어요?" 현식은 마음 속으로 혼란이 오고있음을 느꼈다. 그렇게 자신을 매몰차게 거부했던 혜진이 이런 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누군가 사귄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그럼 그 사람과 헤어졌다는 의미일까? 어쨋든 현식으로서는 꿈만 같은 일이었다. 그토록 그리워 하던 혜진을 우연히 여기에서 만나다니. 그리고 그녀가 자신에게 친절하게 대하는 것이 정말 믿어지지 않았다. "전 잘냈어요. 오늘 장내시험인가 본데 혜진씨도 시험 보세요?" "네. 그런데 시간이 두시간이나 남아 있어서. 혹시 차 가지고 오셨어요?" "네. 차를 몰고 왔습니다." "그럼 괜찮으시면 저 좀 드라이브 시켜주실래요?" 정말 의외였다. 현식은 기쁨으로 마음이 흥분되었다. "그럼요. 제가 드라이브 시켜드릴게요." 현식과 혜진은 헤어지기 전까지 서로 말을 놓지 않았다. 그래서 지금 계속 말을 높이고 있는 것이다. 현식은 혜진을 자기 차에 태우고 자신의 집이 있는 신동읍으로 향했다. 둘이는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현식은 그녀와 대화를 하면서 그녀가 사귄다는 남자와는 벌써 헤어졌고 그녀가 자신을 그리워 한다는 것을 알았다. 현식은 혜진의 운전면허 장내시험이 끝난후 다시 그녀의 집에까지 태워주기로 하고 운전학원 의자에서 그녀를 기다렸다. 그녀는 무난히 합격했다. 현식은 그녀를 태우고 그녀의 집쪽으로 가려고 하였다. 그런데 그녀가 여월 시내쪽으로 가자고 제의했다. "오늘 시험도 붙었는데 제가 현식씨 밥사드릴게요." "저야 너무 좋죠. 어디로 갈까요." "어디 잘 아시는데 있어요?" "아귀찜 잘하는데가 있긴 한데." "그럼 그리로 가요." 현식은 신이 나서 그녀와 함께 그가 몇번 가본 적 있는 영월 아귀찜 집으로 향했다. 건물 2층에 있는 아귀찜 집은 안의 시설이 소박하면서도 아주 깔끔했다. 둘만 들어갈 수 있는 작은 방을 정한 후 아귀찜을 시켰다. 둘이서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고 있던 얼마후 아귀찜이 나왔다. 그런데 혜진이 소주 1병을 시키는 것이었다. 그리고 현식에게도 술을 권했다. 현식은 소주 때문에 혜진과 헤어지게 된 계기가 되었기에 술을 거부했다. "현식씨가 왜 술을 안마시는지 그 이유를 알아요. 하지만 대리 불러서 가면 되는데...... 그때는 왜 그 생각을 못하고 제가 화를 내고 갔는지 후회되네요." "네. 저도 그때 일을 백번이고 천번이고 후회 했어요. 술을 안마시던가 마시면 대리 불러 가면 되는건데...... "미안해요. 현식씨. 제 옆으로 와서 술 마셔요. 이제는 화안낼게요." 예전에 술로 인한 사소한 의견차이로 이별의 트라우마가 있던 현식은 어떻게든 술을 안마시려고 했으나 이렇게 된 이상 어쩔 수 없었다. 그는 혜진의 옆으로 가서 앉은 다음 소주를 받았다. "자. 우리 쭉 한 잔 해요!" "네. 혜진씨. 너무 반가워요." 현식은 한 잔을 원샷으로 마셨다. 혜진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소주 한 잔을 마신 다음 갑자기 현식의 입술에 자기 입을 대었다. 현식은 그녀의 돌발적인 행동에 놀라기는 했지만 달콤한 그녀의 입술이 너무 좋았다. 식당의 작은 방에는 둘밖에 없었기에 그 키스는 길어졌다. "현식씨! 미안해요. 제가 잘 못 했어요. 그동안 너무 그리웠어요."
''저도 혜진씨가 너무 그리웠어요. 사랑해요. 너무너무.'' 그들은 술과 아귀찜을 마시고 먹으며 키스를 했다. 그러다가 혜진은 자신이 입에 넣은 아귀찜을 현식과 키스를 하며 그의 입에 넣어주었다. 소주도 자신의 입에 넣었다가 그런식으로 현식의 입에 넣었다. 좀 남사스러웠지만 현식은 그런 것이 너무나 행복했다. 그들은 아귀찜 집을 나와서 모텔로 향했다. 혜진은 그날 집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그리고 며칠 후에 둘은 혼인신고를 하고 동거에들어갔다. 그러다 날을 잡아 조촐한 결혼식을 올렸고 신혼여행은 가까운 제주도로 다녀왔다. 현식은 진정한 행복에 잠겨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혜진과의 잠자리도 너무나 좋았고 그녀를 안고 잠이 들때도 한없이 행복했다.
현식은 래프팅 사업도 하면서 농사를 지었다. 혜진과 밭에 나가 일을 하며 소박한 행복을 맛보았다. 얼마후 혜진은 현식의 아기를 낳았고 아버지가 된 현식은 더할나위 없이 기뻤다. 현식은 영춘강변의 안개 속에서 나누었던 사랑이 그저 추억으로 끝나지 않고 이렇게 결실을 맺었다는 것이 너무나도 좋았다. 그는 가끔 혜진의 집근처 안개 자욱한 강변의 둑이 나오는 꿈을 꾸었다. 꿈 속에서 그 안개 자욱한 강변의 둑에 차를 세워놓고 혜진과 밤새워 사랑을 속삭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