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917년 10월 #소비에트국회 에서 연설하고 있는 #레닌 의 모습을 그린 그림.
러시아 혁명으로 건설된 세계 최초의 사회주의 국가 소련은 1991년 붕괴했답니다.
게티이미지코리아
레닌은 곧바로 #4월테제 ( #April-Theses ) 를 발표했는데요. 여기엔 #소비에트공화국수립 토지몰수와 국유화 소비에트의 생산,분배,통제등 사회주의 강령을 담고 있었어요.
여기서 레닌은 #조국에게패배를 이라는 충격적인 #반전 (反戰)구호 를 외쳤답니다. 1차 세계대전은 자본주의 국가들이 식민지 경쟁에 뛰어들면서 터진 것인데, 이 때문에 러시아 노동자와 농민들이 피를 흘리고 있으니 차라리 조국이 빨리 패배해 전쟁을 끝내야 한다는 주장이었지요.
◇ 민주주의 무시하고 독재로 나가다
레닌을 필두로 하는 볼셰비키는 '무능한 임시정부에 봉기를 하자'고 결의합니다. 무기를 든 볼셰비키는 대중의 지지에 힘입어 1917년 11월 7일(러시아 달력 기준 10월 25일) 거의 #무혈 (無血)로 군사 작전을 완료합니다. #중앙은행 #전화국 #우체국 #중앙역 #발전소 #재무성을 차례로 접수했어요. 임시정부가 있던 황궁으로 쳐들어갔는데 이미 각료들은 도망간 뒤였지요. 이렇게 세계 최초의 사회주의 국가인 '소비에트 공화국(소련)'이 세워집니다. '10월 혁명'이 성공한 것이지요.
레닌의 볼셰비키는 전쟁 중단, 토지 무상몰수, 8시간 노동법, 신분제 차별 폐지 등 여러 가지 개혁 조치를 내놓았어요. 하지만 정작 의회를 구성하는 선거에서 온건파인 사회혁명당이 압도적 다수를 차지하면서 강경파인 볼셰비키는 어려움에 처했지요. 민주주의 원칙을 지키고 소수 급진세력에 머물 것인지, 의회를 무시하고 독재 정권으로 나아갈 것인지 선택의 기로에 놓입니다. 결국 다음해 1월, 볼셰비키는 사실상 의회를 강제 해산하고 독재 정권의 길을 걷습니다.
권력을 잡은 레닌은 전쟁에서 발을 빼기 위해 독일과 단독으로 강화 조약( #전쟁종료 #평화회복 을 선언하는 조약 ) 을 맺었어요. 하지만 상당한 배상금과 영토를 주고 맺은 조약이었기에 전쟁 중단을 반대하던 정치 세력들로부터 큰 불만을 사게 됐지요. 러시아의 전쟁 참여를 계속 원했던 영국·프랑스 등과의 사이도 나빠졌어요.
이렇듯 새로 출발한 소비에트 공화국은 사회·경제적으로 매우 낙후한데다 국제적으로 고립된 최악의 상황 속에서 출발합니다. 레닌은 이런 문제들을 생전에 해결하지 못하고 1924년 세상을 떠났고, 이후 소련은 스탈린 독재 체제로 이어졌지요.
20세기 역사는 자본주의와 한 축을 이뤘던 사회주의를 빼놓고는 논하기 어려워요. 노동자 계급 정당이 정권을 잡고 나라를 세운 최초의 사건이었다는 점, 혁명을 통해 노동자·농민·여성들의 지위가 그전보다 올라갔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랍니다.
하지만 대중의 자발적인 뜻과 민주주의 절차를 무시하고 소수 급진파 엘리트들이 독재를 했다는 점, 대중의 궁핍한 상황을 정치에 이용하고 적절한 대안을 만들어내지는 못했다는 점 등은 치명적인 한계로 지적되고 있어요.
☞마지막 황제의 최후
‘2월 혁명’으로 퇴위한 황제 니콜라이 2세는 가족과 함께 수도 근교 왕궁에 유폐·감금됐어요. 하지만 임시정부는 위험하다는 이유로 황제 일가를 시베리아로 이주시키기로 하지요.
‘10월 혁명’이 성공하고 볼셰비키가 권력을 잡았어요. 우랄 지방에 머물고 있던 황제 일가는 1918년 7월 볼셰비키 당원들에 의해 살해됩니다. 황제 일가가 처형됐던 집터엔 현재 ‘피의 사원’이 세워져 비극적 역사를 기억하고 있지요. 한때 니콜라이 2세 막내딸 아나스타샤가 생존해 있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지만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어요.
출처: 프리미엄조선|[이정하]천안 계광중 역사교사
기획·구성=박세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