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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천(원주)부원군 변안렬의 충절을 기려 만든 신도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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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조 이성계는 조선을 개국하자 변안렬을 복권시키고 그의 세 아들에게 모두 벼슬길을 열어주었다. 장남 변현은 판봉상사사(判奉常寺事), 둘째 변이는 태조 때 도총제(都摠制)를 지냈고 셋째 변예는 판훈련원사(判訓練院事)를 역임했다.
특히 변안렬의 증손 변처령과 4세손 변수, 그의 조카 변사겸
등 변씨네 일가는 중종반정에 가담하여 나란히 정국공신에
오르는 등 가문의 명예를 한층 드높였다.
시조의 4세손인 변수(邊修)는 호조, 병조, 형조, 공조 등 4조의 참의(參議;정3품직)를 차례로 거쳤다. 충청, 경상, 함경도 병사(兵使;정3품직)를 역임한 뒤 중종반정이 성공리에 마무리되자 임금이 그 공을 높이 치하해 가선대부(嘉善大夫;종2품 대우)로 예우했다. 말년에 관직을 놓고 경기도 양평읍
창대리로 낙향하자 나라에서는 그를 원천군에 봉했다.
1997년 11월 양평읍 신시가지 개발 문제로 원천군의 묘소를 홍천군 북방면 역전평리로 이장하게 되었다. 분묘를 파헤치자 수의와 목관 등 부장품 66점이 발굴되어 국립민속박물관에 기증 또는 기탁되었다. 현재 북방면 역전평리에는 원천군 수의 이장된 묘소와 지방보물로 지정된 영정, 신도비, 사당이 세워져 있다.
한국인 최초로 미국 유학길에 오른 인물 또한 원주 변씨
시조의 18세손인 변수(邊燧). 구한말 개화파 정치인으로 갑신정변에 참여한 후 1891년 6월 미국 마리안드 주립농과대학에서 이학사 학위를 취득하고 미국 농무성에서 연구활동을 했다.
한국인 최초의 파병대장 역시 원주 변씨 변급이다. 효종 5년(1654년)함경도 병마우후로 있다가 조총군 250여 명을 이끌고 청나라 군사를 도와 러시아 토벌 즉 나선정벌(羅禪征伐)에 출전하여 크게 전공을 세웠다.
문중을 빛낸 인물로는 변태섭 전 서울대 교수, 변시민 전
제주대 총장, 변웅전 전 국회의원, 변현기 전 춘천경찰서장,
탤런트 변우민 등이 있다.
◇도움말 주신 분;
변창선 원주변씨 중앙종친회장. 변종균 중앙종친회 총무.변태용 남양주 문화원 감사. 변영구 춘천종친회장. 변지량 춘천종친회 총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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