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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몬테수마2세라 알려져있는 모테쿠소마 소쿄요트신(Motecuhzoma Xocoyotzin)은 1520년 6월 29일, 에스파냐 원정대 사령관 에르난 코르테스를 비호하다가 수수께끼와 같은 죽음을 맞이한다. 그의 죽음은 아스텍 정복 과정에서 가장 논란이 많은 사건중 하나이며, 이에 대해선 당시의 기록자들의 여러 증언을 토대로 하고 있다.
코르테스의 부관 페드로 데 알바라도(Pedro de Alvarado)가 생각없이 일으킨 '톡스카틀 축제의 학살'은 에스파냐인들에게 그간 쌓여왔던 아스텍인들의 분노를 폭발시켜주는 계기가 되었으며, 이는 코르테스를 포함한 반(反) 에스파냐 전쟁으로 확대되어갔다. 아스텍인들은 계략을 써서 코르테스의 군대를 수도인 테노치티틀란(Tenochtitlan)으로 유인하였으며, 동부해안에서 정적 정복자인 판필로 데 나르바에스(Panfilo de Narvaez)를 손쉽게 이긴 코르테스는 자만심으로 인해 범아가리와 같은 도시 안으로 들어가게 된다. 악사야카틀 궁전(Axayacatl)에 갇힌 코르테스의 군대는 어떻게든 아스텍인들의 포위망을 뜷을려고 했지만 모조리 실패하였고, 초유의 사태임을 어느정도 파악한 코르테스는 아스텍 사회는 제정일치라 틀라토아니(황제)는 신의 대리인이며, 명령을 거부할 수 없는 유일무이한 존재임을 잘 알았기에 몬테수마 2세를 불러 아스텍인의 공격을 잠시나마 중지시킬 수 있게 설득해 줄 것을 부탁하였다(일설에는 몬테수마 2세가 직접 나섰다고 한다).
이내 몬테수마2세는 코르테스의 간청을 듣고 요새의 흉벽위에서 수많은 신민들이 바라보는 아래 연설을 시작하려 하였다. 하지만 몬테수마2세는 이미 아스텍 신민들의 신뢰감을 잃었으며, 더이상의 씨알은 먹혀들지도 않았으며, 오히려 돌세례를 받고야 만다.
이후 몬테수마2세는 의문의 죽음을 맞이했는데, 여기서 여러 기록자들의 의견이 엇갈린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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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몬테수마2세가 흉벽위에서 아스텍신민들을 향해 전쟁을 중지해줄것을 당부했다는 것까지는 기록자들의 의견이 일치한다. 하지만 그 이후 몬테수마가 어떻게 죽었는지는 너무나도 다른 의견을 내놓고 있는데, 16세기 에스파냐 역사가였던 프란시스코 로페스 데 고마라(Francisco Ropez de Gomara)는 자신의 저서인 Historia de la conquista de Mexico에서 이렇게 당시 사건을 이렇게 전달하고 있다.
'아스텍인들이 몬테수마에게 던전 돌은 에스파냐인들에게 던진 것이며, 아스텍인들은 몬테수마 황제의 얼굴이 방패에 가려져 있었기 때문에 에스파냐인들과 같이 있는지 모르고 그랬다.'
하지만 코르테스의 아스텍 정복에 참여했으며 직접 상황을 목격한 역사가 베르날 디아스 델 카스티요(Bernal Diaz del Castillo)나 동시기 역사가 세르반테스 데 살라사르(Francisco cervantes de Salazar )의 저서 Cronica de la Nueva Espana에서는 로페스 데 고마라의 주장과 다르게, 아스텍인들은 이미 몬테수마2세가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며, 그의 부상은 치명적인것은 아니었으나 스스로가 치료받기를 거부해서 결국엔 죽었다고 한다.
원정대 사령관이자 정복자인 에르난 코르테스(Hernan Cortes)는 자신이 카를로스 국왕에게 쓴 편지에서 몬테수마2세가 아스텍인들을 직접 진정시키기 위해 나섰지만, 돌에 맞아 치명상을 입고 3일후 바로 사망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와 반대로 페르난도 알바 익스틀릴소치틀(Fernando Alva Ixtlilxochitl)같은 원주민 출신 기록자나 일부 다른 에스파냐 역사가들에 의하면 몬테수마2세는 돌에 맞아 죽은게 아니라 사실 코르테스에 의해 의도적으로 살해당했다는 기록도 존재한다.
특히 코르테스에 대해 부정적으로 썼던 16세기 역사가 베르단디노 사아군(Bernardino Sahagun)의 저서 Historia General de las Casas de la Nueva Espana에서는 코르테스의 명령에 의해 부상당한 몬테수마2세가 테노치티틀란으로 빠져나가기 바로 전날 살해되었다고 적는다. 같은 16세기 연대기 작가 디에고 두란(Diego Duran)의 저서 The History of the Indies of New Spain와 사아군과 같이 코르테스를 신날하게 비판했던 바르톨로메 라스카사스(Bartolome Las Casas)의 저서에서도 이와같은 내용이 보여진다.
하지만 이들은 몬테수마2세가 아스텍 신민들이 던진 돌세례를 맞은것을 부정하지 않으면서, 이에 대한 부상이 약화되었고 결국엔 코르테스가 그를 살해했다고 주장하는가 반면, 아스텍 정복당시 코르테스의 종군신부이자 기록자였던 프란시스코 데 아길라르(Francisco de Aguillar)는 몬테수마에게 있던 일련의 사건을 전부 부정하면서, 그는 의도적으로 코르테스의 명령에 의해 살해되었다고 전한다.
결론: 판단은 여러분의 몫이다.
첫댓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좋은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