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글 본문내용
|
다음검색
41. 도깨비집 위소보는 목검병이 끊임없이 벌벌 떨고 있는 것으로 보아 지탱하기가 확실히 어렵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나 위소보은 방이의 앞에서 자신 의 겁먹은 표정을 보이고 싶지 않았고 유일주에게 지고 싶지도 않았기 에 다음과 같이 입을 열었다. "좋아요. 모두들 가보기로 합시다. 만약 고약한 도깨비를 만나게 되었 을 때는 모두 조심을 하기로 합시다." 일곱 명의 사람들은 조노삼이 말한 대로 서쪽으로 갔다가 골짜기로 꺽 어 돌았다. 어둠속이라 길을 찾을 수가 없었다. 다만 숲속에 희뿌옇게 보이는 것이 하나의 조그만 폭포가 내려 쏟아지 고 있는 듯한 감을 받았다. 위소보는 말했다. "우리가 길을 찾지 못하는 것은 바로 도깨비의 장난 때문이 아니고 무 엇이겠소. 이것은 고약한 도깨비가 사람들로 하여금 길을 잃게하는 것 이외다." 서천천은 말했다. "이 물이 흘러내려오는 길은 바로 산길입니다. 산속의 물은 계곡을 따 라 내려오기 마련이죠." 오립신은 말했다. "바로 보셨소이다." 그리고 그는 폭포물을 건너서 언덕 쪽으로 올라갔다. 나머지 사람들도 뒤따라 언덕 쪽으로 올라갔다. 그런데 왼쪽 숲속에서 말이 울부짖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이 아닌가. 바 로 그 쪽에 십여 필의 말을 탄 사내들이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서천천은 속으로 생각했다. (저 한 떼의 사람들은 어떤 내력을 가지고 있는지 모르겠구나.) 그러나 자기와 오립신이 손을 맞잡게 된다면 웬만한 무사 수십명쯤은 마음에 둘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그는 즉시 물을 첨벙첨벙 밟으며 울퉁불퉁한 길을 따라 숲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숲속으로 들어서니 더욱더 주위가 어두워졌다. 그런데 앞쪽에서 쾅쾅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니나다를까 집이있었다. 위소보는 놀 라움과 기쁨에 사로잡혔다. 그런데 갑자기 그 누가 손을 뻗쳐와 그의 손을 잡아 주었다. 그 손을 부드러웠다. 곧이어 귓가에 부드러운 음성이 들렸다. "두려워하지 말아요." 바로 방이의 음성이었다. 문을 두드리는 소리는 끊임없이 들려왔다. 그러나 시종 문을 여는 사람 은 없었다. 일곱 사람은 가까이 다가갔다. 그리고 보니 시커멓고 커다 란 집이 서 있는 것이 보였다. 이미 말을 타고 도착한 사람들이 큰 소리로 부르짖고 있었다. "문을 여시오. 문좀 열어 보시오. 비를 피하여 왔소." 한참을 불러도 집안에서는 아무런 동정도 엿보이지 않았다. 한 사람이 말했다. "사람이 살고 있지 않은 모양이외다. 다른 한 사람이 말했다. "조노삼이 도깨비집이라고 했으니 그 누가 감히 들어와 살겠소? 담장으 로 뛰어넘어 들어갑시다." 곧이어 허연 광채가 번쩍였다. 사람이 무기를 뽑아들고 담장으로 뛰어 넘어갔다. 그리고는 대문을 열었다. 뭇사람들은 우르르 떼지어 들어갔 다. 서천천은 속으로 생각했다. (이 사람들은 정말 무림에 몸을 담고 있는 사람들이었구나. 그러나 보 기에 무공은 별로 대단할 것 같지는 않은데......) 일곱 사람은 그들을 따라 들어갔다. 대문 안쪽은 바로 꽤 넓다란 뜨락이었다. 그리고 다시 안으로 들어가자 대청이 나왔다. 어떤 사람이 몸에서 기름 먹인 보따리를 꺼내더니 화도 와 화석을 꺼내서 불을 당겼다. 그리고 대청의 탁자 위에 초가 있는것 을 보고 초에다 불을 당겼다. 사람들은 갑자기 눈앞이 환해지는 것을 보고 모두 기뻐했다. 대청에 자단목으로 된 탁자와 의자 그리고 차탁자가 놓여 있는 것으로 보아 대가집의 기세였다. 서천천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탁자와 의자에는 전혀 먼지가 앉지 않았다. 그리고 바닥도 매우 깨끗 하게 청소되어 있다. 그런데 왜 집안에 사람이 없을까?) 이때 한 명의 사내가 말했다. "이 대청은 깨끗한 것으로 보아 집안에 사람이 살고 있는 것 같소이 다." 그러자 다른 한 사람이 큰소리로 외쳤다. "이것 보시오! 이것 보시오! 집안에 사람이 없소? 집안에 사람이 없 소?" 대청은 높다랗고 또한 넓어서 그가 소리치는 소리가 메아리 되어 돌아 왔다. 메아리치는 소리가 멎자 사방에서 그저 소나기 퍼붓는 소리만이 들려오 고 다른 기척은 들을 수가 없었다. 뭇사람들은 서로의 얼굴만 쳐다보며 매우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이때 한 명의 백발노인이 서천천에게 물었다. "당신네들은 강호의 친구들이오?" 서천천은 말했다. "불초의 성은 허(許)라고 하는데, 이 몇몇 사람들은 가족이거나 친척이 옵고 산서성으로 친척을 만나러 가는 길입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이곳 에서 큰비를 만나게 됐읍죠. 나리의 존성은 어떻게 되십니까?" 그 노인은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들 일곱 명 가운데 노인도 있고 또 어린애도 있고 여자도 있는 것을 보고 별로 의심하지 않는 듯 했다. 그 러나 서천천이 묻는 말에 대답은 하지 않고 중얼거렸다. "이 집은 좀 이상야릇한 점이 있군." 그러자 다른 한 명의 사내가 부르짖었다. "집안에 사람이 없소? 모두 죽었단 말이오?" 잠시 여유를 두고 기다렸으나 여전히 대답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 백발의 노인은 의자 위에 앉더니 여섯 명을 손가락질 하며 말했다. "너희들 여섯 명이 뒤로 가서 살펴보도록 하라." 여섯 명의 사내들은 무기를 손에 뽑아들고 뒤채로 걸어갔다. 여섯 사람 은 살짝 허리를 구부리고 매우 느릿하게 걸음을 옮겼는데 그 표정은 무 척 경계하는 것 같았다. 곧이어 문에다 발길질을 하는 소리, 호통치는 소리 등이 끊임없이 드려 왔으나 별 이상한 점은 없었고 그 소리도 점차 멀어져갔다. 아마도 집 이 꽤 넒은 모양이라 일시에 집 끝까지 가 볼 수는 없는 것 같았다.. 노인은 다른 네 명을 가리키며 말했다. "나무를 찾아와서 횃불을 더 만들어 뒤따라가 보도록 하라." 그 네 사람은 명을 받들고 나갔다. 위소보 등 일곱 명은 대청의 길다락 창문 문틀에 앉아 있었으며 그 누 구도 입을 열고 말하지 않았다. 서천천은 그 한떼의 사람들 가운데 열 명이 뒤채로 걸어 들어갔는데도 대청에 아직 여덟 명이나 남아 있는 것 을 볼 수 있었다. 그들은 모두 무명 베옷을 입고 있었다. 그 모양으로 보아 무슨 방이나 회의 제자들인 것 같기도 했고 또 어떻게 보면 표국의 사람들 같기도 했으나 호송하는 표화물이 없어 당장 그들의 내력을 알 수가 없었다. 위소보는 참을 수 없다는 듯 물었다. "누님, 이 집안에 도깨비가 있는 것이오, 없는 것이오" 방이가 미처 말하기도 전에 유일주는 서둘러 말했다. "물론 도깨비가 있지. 어느 곳이고 죽은 사람이 없겠소? 죽은 사람이 있는 곳에는 도깨비가 있기 마련이오." 위소보는 부르르 몸을 떨고는 몸을 움츠렸다. 유일주는 말했다. "천하의 고약한 도깨비들은 착한 사람들을 업신 여기고 고약한 자들은 두려워하는 법이다. 전문적으로 어린애들을 홀리는 경우가 있지. 어른 들은 양기가 성하기 때문에 목매 죽은 귀신이나 머리 잘린 도깨비들은 감히 어른들을 건드리지 못하는 법이지." 방이는 옷자락 안에서 손을 빼 위소보의 외손을 잡고서는 말했다. "사람들이 도깨비를 두려워 하지만 도깨비는 더욱더 사람을 두려워해 요. 불빛을 보기만 하면 도깨비는 달아나고 만답니다." 이때 발걸음 소리가 울려퍼지면서 먼저 뒷채를 살피러 갔던 여섯 명의 사내가 대청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그 얼굴은 매우 이상야릇한 표정을 띠고 있었고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한 사람도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곳곳에는 깨끗하게 청소가 되어 있었습니다." "침대 위에는 이부자락이 펼쳐져 있고 침대 아래에는 신발이 있는데 모 두 다 계집애의 것이었습니다." 유일주는 큰소리로 부르짖었다. "여자 도깨비다. 이 집안은 여자 도깨비로 가득차 있어요." 사람들은 일제히 고개를 들고 그를 바라보았다. 잠시 그 누구도 아무 말 하지 못했다. 그런데 별안간 뒷쪽에서 네 사람이 커다란 괴성을 지르는게 아닌가. 노 인은 벌떡 몸을 일으켜서 뒷쪽으로 달려가려 했다. 그러나 그 네 사람 은 이미 대청 안으로 달려 들어왔다. 손에 들려 있던 횃불은 이미 꺼져 있었는데 이렇게 부르짖는 것이었다. "죽은 사람들뿐입니다. 죽은 사람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 얼굴에는 놀랍고 당황한 빛으로 가득차 있었다. 노인은 얼굴을 굳히며 부르짖었다. "무슨 호들갑들이냐? 나는 또 무슨 적을 만났다구. 죽은 사람이 뭐가 그렇게 두렵단 말이냐?" 한 명의 사내가 말했다. "무서운 것이 아니라 저......저 이상야릇합니다." 그 노인은 물었다. "뭐가 이상야릇하다는 말이냐?" 다른 한 명의 사내가 말했다. "동쪽의 한 칸 되는 집안에는 모두...... 모두 다 죽은 사람들의 영당 (靈堂)인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모셔져 있는지 모를 정도입니다." 그 노인은 생각해 보더니 말했다. "죽은 사람이나 관은 보지 못했느냐?" 두 명의 사내는 서로 쳐다보더니 말했다. "똑똑히...... 똑똑히 보지는 못했습니다. 아마 없었던 것 같습니다." 노인은 말했다. "모두들 횃불을 몇 자루 더 준비하도록 해라. 모두 함께 가 보도록 하 자. 어쩌면 이곳은 한같 사당인지도 모른다. 만일 그렇다면 이거야말로 평범하기 이를 데 없는 노릇이 아니냐?" 그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말했으나 그 어조에는 매우 망설이는 빛이 서 려 있었다. 그는 이곳이 결코 사당에 불과한 곳이 아님을 분명히 알고 있는 것 같 았다. 그의 수하 사내들은 대청에서 탁자와 의자를 쪼개서는 횃불로 만들어 불을 붙이고는 뒷채로 몰려갔다. 서천천은 말했다. "내가 가서 보고 오리다. 여러분들은 이곳에서 기다리도록 하시오." 그리고 그는 뭇사람들을 따라 뒤로 갔다. 오표는 물었다. "사부님 이 사람들을 어떤 내력을 갖고 있는 것일까요?" 오립신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알아 볼 수가 없는걸. 말투로 미루어 볼 때 산동이나 관동(關東)일대 의 사람들인 것 같은데 관아의 포졸들 같지는 않아. 혹시 밀수꾼들이 아닌가 생각되는데 물건 따위를 가진 것을 볼 수가 없구먼." 유일주는 말했다. "이 한떼의 사람들이야 별로 대단할 것이 있겠소? 그러나 이 집안의 여 자 도깨비들은 무섭다고 하지 않을 수 없지요." 그러면서 그는 위소보에게 혀를 내밀어 보였다. 위소보는 몸을 부르르 떨며 방이의 손을 꼭 쥐었다. 자기의 손바닥에 식은땀이 고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목검병은 떨리는 음성으로 말했다. "유......유사형. 자꾸만 사람을 놀라게 하지 말아요." 유일주는 말했다. "소군주, 그대는 걱정할 것 없소. 그대는 금지옥엽이니 어떤 고약한 도 깨비들이라도 그대를 만나게 된다면 멀리 피하고 감히 침범하지 못할 것이오. 그러나 고약한 도깨비들이 가장 좋아하는 것은 남자도 아니고 여자도 아닌 태감들이지." 방이는 버들 같은 눈썹을 꿈틀하며 얼굴에 노기의 빛을 띠우고 무슨 말 을 하려다가 참는 것 같았다. 한참 후에야 발걸음 소리가 울려퍼지면서 사람들이 대청으로 돌아왔다. 위소보는 길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약간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서천천은 나직이 말했다. "일곱 내지 여덟 칸의 방안에 모두 삼십여 채의 영당이 모셔져 있는데 매 영당마다 오륙 명이나 칠팔 명의 영패가 모셔져 있소이다. 보기에 한집안에서 죽은 사람들인 것 같소이다." 유일주는 말했다. "흐흠, 그렇다면 이 집안에는 모두 몇 백이나 되는 고약한 도깨비들로 가득차 있는 것이 아닌가요." 서천천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는 견문이 넓었지만 이와 같이 괴이한 일을 한번도 들은 적이 없었다. 잠시 후 그는 느긋한 어조로 말했다. "가장 이상한 것은 영당 앞에는 모두 다 촛불이 켜져 있다는 것입니 다." 위소보와 방이, 그리고 목검병 세 사람은 놀라 동시에 소리를 내질렀 다. 어떤 사내가 말했다. "우리가 처음 들어갔을 때 촛불에는 분명히 불이 켜져 있지 않았소이 다." 그 늙은이는 물었다. "너희들 기억이 틀림없으렸다?" 네 명의 사내들은 서로 얼굴을 쳐다보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노인은 말했다. "도깨비가 아니라 우리들은 고인을 만난 셈이야. 삽시간에 삼십여 채나 되는 영당의 촛불에 불을 밝히다니 그 솜씨야말로 민첩하기 이를 데 없 군. 나리, 그렇지 않소이까?" 이 최후의 한 마디는 서천천에게 묻는 말이었다. 서천천은 짐짓 멍청하게 말했다. "우리들은 아무래도 이 집 주인의 비위를 거슬렸나 봅니다. 그러 니...... 그러니 영당 앞으로 나가...... 절을 몇 번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소이다." 빗소리 가운데 갑자기 동쪽 집에서 여자들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는 매우 처량했다. 큰비가 퍼붓고 있는데도 그 몇차례 울부짖는 소 리는 똑똑히 들을 수 있었다. 위소보는 놀라서 그만 입이 딱 벌어지게 되었고 안색이 크게 변하고 말 았다. 사람들은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았으며 모두 다 모골이 송연해져서는 어 찌할 바를 몰랐다. 잠시 후 다시 서쪽 집에서 여자의 울음소리가 흘러 나왔다. 유일주, 오표, 그리고 두 명의 사내가 일제히 부르짖었다. "귀곡성이다! 귀곡성이다!" 노인은 싸늘히 코웃음치더니 갑자기 큰소리로 부르짖었다. "우리들은 길을 지나다가 귀댁에 들려 비를 피하게 되었는데 함부로 들 어오게 된 점 사과드리오. 그런데 주인께서는 얼굴을 보여 주실 수 없 겠소이까?" 그 말에는 진기가 충만하여 멀리까지 퍼져나갔다. 그러나 한참을 기다 려도 뒷채에서는 아무런 동정도 보이지 않았다. 그 노인은 고개를 가로젓더니 큰소리로 말했다. "이곳 주인이 속된 손님을 접근하기 싫어한다면 우리들은 함부로 법석 을 떨거나 소란을 피울 수가 없소. 이 대청에서 비를 잠시 피하고 내일 날이 밝아 비가 멎으면 모두들 한시 바삐 떠나도록 합시다." 그리고 그는 연신 손짓을 사용해서는 뭇사람들에게 말하지 말라는 시늉 을 하고는 귀를 기울였다. 한참 동안 귀를 기울였으나 다시 곡성은 들 리지 않았다. 한 사내가 나직이 말했다. "장(章)세째 나리, 사람이고 도깨비고 내일 날이 밝으면 대뜸 불을 질 러 이 도깨비집을 태워 버리고 말지요?" 그러자 그 노인은 손을 저었다. "우리는 아직 요긴한 일을 처리하지 못했으니 달리 사고를 불러일으킬 필요가 없다. 앉아서 쉬기나 해라." 뭇사람들은 옷이 모조리 젖어 있는 상태였다. 그리하여 그들은 대청에 불을 피웠다. 어떤 사람은 술 호로를 꺼내서는 병마개를 뽑고 그 노인 에게 마시라고 건네 주었다. 노인은 몇 모금 술을 마시더니 곁눈질로 서천천을 잠시 바라보았다. 그 러더니 입을 열고 물었다. "허! 나리, 댁네들 몇 사람은 한집안 사람이라고 했는데 어째서 말투가 다 틀리시오? 나리는 경성 사람인 것 같고 이 몇 분은 운남 사람인 것 같소이다." 서천천은 웃으며 말했다. "나리는 꽤 귀가 맑소이다. 정말 노련한 강호인이외다. 우리 큰 누이는 운남성으로 시집을 갔죠. 이 분이 바로 나의 매부이외다." 그러면서 그는 오립신을 손가락질했다. 그리고 다시 말했다. "나의 매부와 생질들은 모두 운남 사람이오. 나의 둘째 누이는 또 산서 성으로 시집을 갔답니다. 그래서 서로 남북으로 뚝 떨어져서는 십여 년 이 지나도 한번 만나보기 힘들다오. 우리는 이번에 산서성으로 저의 두 째 누이를 찾아가는 길이외다." 노인은 고개를 끄덕여 보이더니 술을 한 모금 마시고는 실눈을 가늘게 뜨고서 물었다. "그럼 여러분들은 북경에서 오시는 길이오?" 서천천은 말했다. "그렇소이다." 노인은 물었다. "길에서 혹시 열 서너 살 되는 소태감을 만나지 않으셨소이까?" 그 말이 떨어지자 서천천 일행은 속으로 흠칫했다. 다행히 노인은 서천 천만을 주시했을 뿐이고 서천천은 얼굴에 어떠한 표정도 드러내지 않았 다. 그러나 오표와 목검병 등은 얼굴빛이 변했는데 그 노인은 다른 사 람에 대해서는 별로 유의하지 않았다. 서천천은 말했다. "나리는 태감을 말하는 것이오? 북경성 안에는 늙고 젊은 것들 할 것 없이 태감들이 많지요. 문을 나서면 몇 사람은 만나게 되지요." 그 노인은 말했다. "나는 그대에게 길에서 만나지 않았는가 물은 것이지 북경성 안의 태감 을 두고 말한 것이 아니외다." 서천천은 웃으며 말했다. "나리, 그 말은 그야말로 잘 모르시고 하는 말씀이외다. 대청나라의 규 칙에 의하면 태감이 경성에서 나서기만 하면 그야말로 죽을 죄를 짓는 것이외다. 오늘날 태감은 명나라 때처럼 위풍당당한 면이 없죠. 지금 어느 태감이 있어 감히 경성에서 한걸음 발을 내놓을 수 있겠소이까." 노인은 아! 하더니 말했다. "어쩌면 옷차림을 바꾸었는지도 모르겠구려." 서천천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럴 용기가 없을 것이외다. 암!" 그리고 잠시 여유를 두었다가 말했다. "나리, 나리가 찾는 것은 어떤 소태감이외까? 우리들이 산서성으로 갔 다가 친척을 만나 본 이후 경성으로 돌아가게 되었을 때 나리를 돕고저 알아보도록 하지요." 노인은 말했다. "흠, 고맙구려. 허지만 그때까지 명이 붙어 있을지 의심스럽구려." 그리고 그는 눈을 감고 더 말하지 않았다. 서천천은 속으로 생각했다. (열 너댓 살 먹은 소태감에 대해서 묻는다면 바로 위향주를 두고 묻는 것이 아닐까? 이 사람들은 천지회의 사람들도 아니고 목왕부의 사람들 도 아니다. 그렇다면 십중팔구 호의를 갖고 있지 않을 것이 분명하니 좀 똑똑히 알아보아야겠다. 그가 우리들에게 시비를 걸지 않는다 하더 라도 우리가 그를 한번 건드려 봐야겠다.) 그리하여 그는 말했다. "나리, 북경성 안의 소태감으로 말하면 오로지 한분만이 크게 유명하 죠. 그의 대명은 천하에 널리 알려졌기 때문에 역시 들어보았으리라 생 각됩니다. 그 소태감은 바로 간신 오배를 죽이고 대공을 세운 그 분이 랍니다." 노인은 눈을 뜨더니 말했다. "음, 그대가 말하는 것은 소계자 계공공이오?" 서천천은 말했다. "그가 아니고 또 누가 있겠소이까? 그 사람으로 말하면 담이 크고 용기 가 있으며 무예가 출중하니 실로 대단한 사람이라고 할수 있소이다." 노인은 말했다. "그 사람의 무술이 어떠한지 그대는 본 적이 있소?" 서천천은 말했다. "계공공은 매일같이 북경성 안을 이리저리 산책하지요. 북경에 살고 있 는 사람은 그를 보지 않은 사람이 별로 없답니다. 계공공은 얼굴이 시 커멓고 또 뚱뚱한 편이라 적어도 십 팔구 세는 되어 보이며 결코 열 다 섯 살로는 볼 수 없답니다." 방이는 잡고 있던 위소보의 손에 힘을 한번 주면서 그 손을 꼭쥐었다. 목검병은 팔굽으로 그의 등을 살짝 쳤는데 모두 다 우스꽝스럽게 생각 하는 눈치였다. 위소보는 줄곧 도깨비를 두려워하고 있었는데 그 노인이 자기에 대한 질문을 하게 되자 마음속으로 이리저리 궁리를 해보느라 도깨비를 두려 워하는 마음마저도 사라지고 말았다. 노인은 입을 열었다. "그렇소? 내가 남에게 들은 이야기는 전혀 다릅니다. 계공공은 그저 열 서너 살밖에 되지 않은 어린애로서 교활하고 눈치가 빠르다고 하더구 려. 아마도 그대의 저 생질과 삼촌쯤 닮았을게요. 하하하." 그리고 그는 위소보를 쳐다보았다. 유일주는 갑자기 입을 열었다. "소문에 들으니까 소계자는 비열하기 짝이 없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몽 혼약을 잘 쓴다고 합니다. 그가 오배를 죽인 것도 먼저 약을 써서 정신 을 잃게 해서 가능했다고 들었소이다. 그렇지 않다면 그 좀도적은 간이 적고 또 도깨비를 두려워하는데 어찌 오배를 죽일 수 있었겠소이까?" 그리고 위소보를 향해 싱글벙글 웃으면서 말했다. "외사촌 아우, 그렇지 않아?" 오립신은 크게 노해서 뒤로 일장을 날려서는 냅다 그의 얼굴을 향해 후 려쳤다. 유일주는 고개를 숙여 피하면서 왼발을 퉁기듯 하며 몸을 일으 켰다. 오립신의 냅다 후려친 일장은 바로 벽계전시(碧鷄展翅)라는 일초였고 유일주가 재빨리 피하며 몸을 퉁기듯 일으켜 세운 일초는 바로 금마사 풍(金馬사風)으로서 모두가 목가권의 초식이었다. 한사람은 급히 후려 치게 되고 한 사람은 급히 피하려고 부지불식간에 목가권을 펼치게 된 것이다. 그 장가라는 노인은 벌떡 몸을 일으키더니 웃으며 말했다. "여러분들의 변장술이 꽤 대단하시군." 그리고 그가 몸을 일으키자 수하들 십여 명도 덩달아서 몸을 일으켰다. 그는 호통을 내질렀다. "모조리 잡아라. 한 사람도 놓쳐서는 안 된다." 오립신은 품속에서 단도(短刀)를 뽑아들고 커다란 머리를 왼쪽으로 한 번 젖혔다. 그 순간 그는 한명의 사내를 내려찍어 쓰러지게 만들었다. 그리고 오른쪽으로 다시 한번 젖혔을 때 다시 한명의 사내 목을 찔러 쓰러뜨렸다. 노인은 두 손을 허리께로 가져가더니 한 쌍의 판관필을 뽑아들었다. 그 리고는 두 자루의 판관필을 한번 비볐다. 그러자 그 한 쌍의 판관필에서는 찍찍 하는 소리가 났다. 곧이어 그 노 인은 판관필을 쳐들고 왼쪽의 판관필을 쳐들고 왼쪽의 판관필로 오립신 의 목을, 오른손의 판관필로는 서천천의 가슴팍을 찌르고 했다. 일대 이로 공세를 취하는데 솜씨가 꽤 민첩한 편이었다. 서천천은 오른 쪽으로 달려들어 왼손으로 대한 한명의 눈을 할키려 들었다. 그 대한은 뒤로 몸을 급히 젖혀 피하려고 했다. 그 순간 그의 손에 들렸던 칼은 이미 서천천에게 빼앗기게 되었고 다음 순간 허리 부분에 격렬한 통증 을 느꼈다. 그는 자기의 칼이 이미 자기의 배로 파고들어간 것을 알아 차릴 수 있었다. 저쪽의 오표 역시 다른 사람과 손을 쓰게 되었다. 유일주는 잠시 망설이더니 연편을 뽑아들고 앞으로 나가 싸웠다. 상대 방의 사람 수는 많았으나 그저 그 노인만이 오립신과 막상막하의 싸움 을 벌일 수 있었을 뿐 나머지 노인의 수하들은 무공이 평범했다. 위소보는 이때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저 늙은이를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은 나로서도 상대할 수 있을 것 같 구나.) 그리고 그는 비수를 손에 뽑아들고 달려 들려 했다. 방이는 대뜸 그를 잡으며 말했다. "우리 쪽에서 틀림없이 이길 터이니 그대가 나설 필요는 없어요." 위소보는 속으로 말했다. (우리 쪽이 틀림없이 이긴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 내가 앞으로 나가는 것이 아닌가. 만약 틀림없이 지게 된다면 빨리 도망을 쳐야 할 것이 지.) 갑자기 찍찍 하는 소리가 잇달아 일었다. 그 노인은 어느덧 한편으로 물러서서는 두 자루의 판관필을 서로 비벼대고 있었다. 그러자 그의 수 하 사람들은 일제히 그의 등뒤로 모여 들었고 신속하기 이를 데 없이 하나의 네모난 진을 펼쳤다. 그들은 그저 몇 걸음 후다닥 옮겨서 각자 자기의 위치를 찾아섰다. 십 여 명의 사람들이 서로 밀거나 밀치지 않았고 또한 부딪히는 일도 없었 다. 이로 미루어 볼 때 평소 많은 훈련을 쌓은 것을 알 수 있었으며 또한 이 일에 대해서 적지 않은 노력을 기울였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서천천과 오립신은 깜짝 놀라서는 몇 걸음 물러섰다. 오표가 용감하게 앞으로 나갔다. 그런데 갑자기 네모난 진 안에서 네 자루의 칼이 일제 히 휘둘러졌다. 두 자루의 칼은 그의 어깻죽지를 내려치려 들었고 다른 두 자루의 칼은 그의 발을 베려고 들었는데 매우 교묘한 배합을 이루고 있었다. 그런가 하면 중간에는 두 자루의 창날이 툭 불거져서는 그가 후려친 칼 을 옆으로 밀어냈다. 오표는 아! 하는 소리와 함께 어깨에 칼을 맞고 말았다. 오립신은 급히 부르짖었다. "오표야! 뒤로 물러서라." 오표는 뒤로 물러섰다. 순식간에 싸움의 승부가 갑자기 역전되고 말았 다. 서천천은 위소보와 두 소녀 앞을 가로막고 지켰다. 그리고 상대방의 진 법이 어떻게 운용되는가를 살폈다. 이때 노인은 오른손에 판관필을 높 이 쳐들고 소리 높여 외쳤다. "홍교주는 만년이 지나도 늙지 않으시며 영원히 선복(仙福)을 누리게 될지어다. 수명은 하늘처럼 높을지어다." 그 세 명의 사내들은 일제히 무기를 들고는 큰소리로 외쳤다. "홍교주의 수명은 하늘처럼 높을지어다. 수명은 하늘처럼 높을지어다." 그 소리는 집안의 대들보가 들썩하니 흔들릴 지경이었고 그 모습은 미 친 사람들의 그것 같았다. 서천천은 그만 아연해져서 도대체 그들이 무슨 수작을 부리는지 알 수 가 없었다. 위소보는 홍교주라는 말을 듣고 도홍영이 지극히 두려워하 던 표정과 말을 번개처럼 머리에 떠올리고는 부르짖었다. "신룡교다. 그들은 신룡교다!" 노인은 안색이 변해서는 말했다. "너도 신룡교의 이름을 아는구나." 그리고 오른손을 높이 쳐들더니 다시 부르짖었다. "홍교주의 신통력은 광대하여라. 우리 교에서는 싸움에 이기지 못한 적 이 없으며 공격하여 무너뜨리지 않은 것이 없고, 아무리 견고한 것이라 도 떨어지며 또한 격파되지 않는 것이 없나니. 적들은 그야말로 추풍낙 엽처럼 우수수 떨어지며 도망치기에 급급하도다!" 서천천 등은 그들이 한번 주문을 외울 때마다 속으로 흠칫 했다. 그 사 람들의 행동이 이상야릇하여 일찌기 한번도 보지 못하던 터였다. 더군 다나 적과 상대할 때 크게 주문을 외우리라고 그 누가 생각이나 했겠는 가. 위소보는 부르짖었다. "이 사람들은 주문을 외울 줄 압니다. 그들의 수작에 넘어가지 않도록 하시오. 그리고 모두들 앞으로 나가 싸웁시다." 이때 그 노인과 뭇사람들은 더욱더 빨리 주문을 외우고 있었는데, 이젠 는 뭇사람들이 그 노인을 따라 한 마디씩 외우는 것이 아니고 십여 명 이 일제히 외는 것이었다. "홍교주께서는 신통력으로 우리를 보살피고 지키시니 뭇제자들은 용기 가 백배하여 한 사람이 백 명을 당하고 백 명이 만 사람을 당해내도다. 홍교주의 신목(神目)은 번개와 같이 사방을 비추도다. 우리 제자들은 적을 죽여 교를 지키니 홍교주는 친히 우리를 이끌어 주시고 성직(聖 職)의 직위를 높이는도다. 우리 교의 제자들이 교를 지키다가 죽게 되 면 모두 다 천당으로 오르게 될 것이다." 갑자기 소리를 지르면서 그들은 질풍같이 달려들었다. 오립신과 서천천 등도 무기를 뻗쳐 받았다. 그러나 그들은 삽시간에 무 공이 크게 정진된 듯했다. 강철칼을 마구 내리찍고 짧은 창을 마구 찔 러대는데 조금 전보다 공력이 수배나 불어난 것 같았고 마치 미친 듯 무기를 마구잡이로 내리찍고 찔러냈다. 몇 수를 싸우기 전에 오표, 유일주는 이미 칼을 맞고 쓰러졌다. 곧이어 위소보와 방이, 목검병은 팔에 상처를 입었다. 위소보는 등을 찔렸으나 다행히 보의가 있어서 몸을 보호해 주었기 때문에 그 창날이 몸을 뚫고 들어갈 수는 없었다. 그러나 그 기세가 너무나 무섭고 힘차 위소보는 제대로 서 있지를 못하 고 그만 앞으로 쓰러지고 말았던 것이다. 얼마 후 오립신과 서천천마저 도 차례로 상처를 입게 되었다. 그 노인은 잇달아 손가락을 뻗쳐 내어 서 여러 사람의 몸에 있는 요혈을 짚어 버렸다. 뭇사내들은 일제히 부르짖었다. "홍교주의 신통력은 광대하며 수명은 하늘처럼 높도다. 수명은 하늘처 럼 높도다." 그와 같이 고함을 지르기를 그치자 갑자기 일제히 주저앉았다. 그리고 각자의 이마에서는 땀이 비오듯 흘러내렸고 헉헉거리고 숨을 몰아쉬는 데 매우 지친 것 같았다. 이 싸움은 차 한잔 마실 시간도 되지 않아 그만 승패가 나게 되었는데 이들은 마치 몇 시간을 두고 싸운 사람들 같았다. 위소보는 속으로 야단났다고 생각했다. (이 사람들은 원래 요술을 알고 있었구나. 도 고모님이 신룡교를 들먹 이자마자 무엇에 놀란 사람처럼 벌벌 떨더니 아니나 다를까 신통력이 광대하구나.) 그 노인은 의자 위에 앉아서 눈을 감고 기운을 되찾느 듯하더니 한참 후에야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는 이마의 땀을 훔치고는 대청에서 서성 거렸다. 잠시 후 그의 수하 사람들도 다투어 말했다. "너희들도 함께 내가 읽는 대로 따라 읊도록 하라. 잘 들으라. 내가 한 마디 읊으면 너희들도 따라 읊어야 한다는 말이다. 홍교주는 신통력이 광대하고 수명은 하늘처럼 높더라. " 서천천은 욕을 했다. "사마의 도가 귀신처럼 행세를 하는구나. 이 늙은이야, 따라서 하라구? 잠꼬대 같은 소린 아예 하지도 말아라." 노인은 판관필을 들어서는 그의 이마를 한번 내리쳤다. 퉁하는 소리가 나면서 피가 흘러나왔다. 서천천은 욕을 했다. "이 괴도적! 요물 단지!" 노인은 오립신에게 물었다. "읊을 테냐, 읊지 않을 테냐?" 오립신은 미처 대답하기도 전에 머리부터 가로저었다. 그 늙은이는 판 관필을 들어서는 그의 이마를 내리쳤다. 그리고는 오표에게 물었다. 오표는 욕을 했다. "네 할미의 수명이 개와 같다고나 해라." 그 노인은 대노해서는 판관필을 아래로 내려치는데 더욱 힘을 주었다. 오표는 즉시 그만 정신을 잃고 말았다. 오립신은 호통을 내질렀다. "표아는 사내답다. 너희들은 그저 요술을 할 줄 아는 녀석들에 불과하 다. 빌어먹을, 사내라면 우리들을 모조리 죽여 봐라." 노인은 판관필을 들더니 유일주에게도 말했다. "너는 따라 읊을 테냐, 안 읊을 테냐?" 유일주는 말했다. "나는...... 나는...... 나는......" 노이은 말했다. "빨리 말해라. 홍교주의 신통력은 광대하며 수명은 하늘처럼 높도다." 유일주는 말했다. "홍교주...... 홍교주......" 그 노인은 판관필의 끝으로 그의 이마빡을 살짝 찌르고는 호통을 내질 렀다. "빨리 읽어랏!" 유일주는 말했다. "네, 네, 홍교주...... 홍교주의 수명은 하늘과 같이 높습니다." 그 노인은 껄껄 소리내어 웃었다. "하하하, 역시 때를 아는 자만이 득을 보게 마련이지. 네 녀석은 교육 의 고통을 덜 당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는 위소보 앞으로 가더니 호통을 내질렀다. "꼬마야, 나를 따라 읊어라." 위소보는 말했다. "그대가 먼저 읽어 줄 필요가 없소이다." 그 노인은 노해 부르짖었다. "뭐라구?" 그리고는 판관필을 들었다. "위교주의 신통력이 광대하며 수명은 하늘처럼 높고 영원히 선복을 누 릴지어다. 위교주는 싸워서 이기지 않는 때가 없고 승리는 싸우지 않고 도 얻더라. 위교주는 공격하여 무너뜨리지 않는 자가 없고 무너뜨리는 데는 공격하지 않아도 되더라. 위교주는 당신네들을 모두 다 이끌어서 함께 천상으로 오르더라......" 그는 위교주라는 위 자를 애매모호하게 발음했으며 그저 콧소리로 흥얼 거릴 정도로 읊었기 때문에 노인은 그가 수작을 부리는지 모르고 있었 다. 그저 그가 홍교주라고 말하고 또 잇달아 그와 같이 읊어대자 그저 기뻐서는 껄껄 소리내어 웃으며 칭찬했다. "하하하, 너 꼬마 녀석은 퍽 얌전하구나." 그리고 그는 방이 앞으로 다가가서는 그녀의 아랫턱을 어루만져 보더니 말했다. "오, 계집애의 얼굴 모습이 그럴 듯하구나. 순순히 내가 읊는대로 따라 읊도록 해라." 방이는 고개를 비틀며 말했다. "읊지 않겠어요." 그 노인은 판관필을 들어 내리치려고 했다. 그런데 촛불 아래 보니 그 녀의 아름다운 얼굴이 아까운 생각이 들어 판관필의 끝으로 그녀의 뺨 을 겨누고는 말했다. "읊겠느냐? 읊지 않겠느냐? 다시 한번 더 읊지 않겠다고 한다면 나는 너의 얼굴에다 세 번 줄을 그어 버리겠다." 방이는 고집스레 읊지 않으려고 했다. 그러나 읊지 않겠다는 말을 차마 입밖에 내놓을 수는 없었다. 노인은 물었다. "도대체 읊겠느냐, 못 읊겠느냐?" 위소보는 말했다. "내가 그녀 대신 읊어 드리리다. 틀림없이 그녀보다 더 멋지게 읊어 보 이겠소." 노인은 호통을 내질렀다. "누가 너보고 대신하라고 했느냐?" 그리고 판관필을 들더니 방이의 어깻죽지를 한번 내리쳤다. 방이는 아 파서 아! 하는 소리를 내질렀다. 갑자기 한 사람이 웃으며 입을 열었다. "장 세째 나리, 그 계집애가 만약 읊지 않는다면 우리들로 하여금 그녀 의 옷자락을 벗기도록 해주십시오." 나머지 사람들은 일제히 부르짖었다. "그것 참 멋진 생각이오. 그 생각이 그럴싸하구려." 유일주는 갑자기 입을 열었다. "당신네들은 어째서 그 소저를 못살게 구는 것이오? 그대들이 찾는 소 태감이 어디 있는지 나는 알고 있소." 그 노인은 재빨리 물었다. "네가 안다구? 어디 있느냐? 빨리 말해라. 빨리 말해." 유일주는 말했다. "저 소저를 괴롭히지 않겠다고 약속하시오. 그러면 나는 그대에게 말하 리다. 그렇지 않으면 당신이 나를 죽인다 하더라도 나는 말하지 않겠소 이다." 방이는 날카로운 어조로 외쳤다. "사형, 나를 상관할 것 없어요." 노인은 웃었다. "좋다. 저 소저를 괴롭히지 않겠다고 약속하마." 유일주는 말했다. "그대가 한 말에 신의를 지켜야 하오." 노인은 말했다. "이 장가는 한번 한 말에 대해서 물론 책임을 진다. 그 소태감으로 말 하면 바로 오배를 잡아 죽인, 황제께서 매우 총애하는 소계자이다. 너 는 정말 그가 어디 있는지 아느냐?" 유일주는 말했다. "멀리는 하늘 끝에 있고 가까이는 눈앞에 있소이다." 노인은 펄쩍 뛸듯 하면서 위소보를 손가락질 했다. "바로...... 바로...... 이 애로구나." 그리고 얼굴에 놀라움과 기쁨에 얽힌 빛을 띠었다. 방이는 말했다. "그 어린애 같은 모양으로 어찌 오배를 죽일 수 있겠어요? 그가 하는 터무니 없는 소리에 현혹되지 마세요." 유일주는 말했다. "그렇소이다. 만약 몽혼약을 사용하지 않았더라면 어찌 만주 제일용사 오배를 죽일 수 있겠소이까?" 노인은 반신반의하며 위소보에게 물었다. "오배는 바로 네가 죽인 것이냐?" 위소보는 말했다. "내가 죽인 것이면 어떻고 내가 죽이지 않았다면 또 어떻단 말이오?" 노인은 욕을 했다. "고얀, 내가 보기엔 이 꼬마 녀석은 아무래도 조금 요사한 데가 있구 나. 너의 몸을 뒤져 봐야겠다." 그리고 그는 즉시 두 명의 사내를 불러와서는 그들로 하여금 위소보의 등에 메고 있는 보따리를 풀어헤치게 하여 그 속의 물건들을 일일이 탁 자 위에 놓도록 하였다. 노인은 구슬이고 금붙이고 꺼내 놓은 물물들을 바라보더니 말했다. "아니, 이것들은 모두 황궁 안의 물건이 아니냐. 어..... 이게 뭐지?" 그러면서 그는 한 묶음의 은표를 쳐들었다. 모두가 오백 냥짜리가 아니 면 일천 냥짜리 은표인데 그 금액은 수십만 냥에 달해 그만 어리둥절해 졌다. "과연 틀림없구나. 과연 틀림없어. 네가 바로 소계자로구나. 그를 저쪽 방으로 데리고 가서 자세히 캐묻도록 해라." 방이는 다급해져서 부르짖었다. "당신네들, 제발 이 분을 괴롭히지 말아요." 목검병은 왁 하니 울음을 터뜨렸다. 한 명의 사내가 위소보의 뒷덜미를 잡았다. 그리고 다른 두 사람은 탁 자 위의 여러 가지 물건을 안아들었고 다른 한 사람은 촛대를 들고서 앞장을 섰다. 그리고는 후원 동쪽 상방으로 들어갔다. 노인은 손을 내저었다. "너희들은 모두 나가거라." 네 명의 사내들은 모두 방을 나가고는 방문을 닫았다. 노인은 얼굴에 기쁜 빛을 띠우고 연신 손을 비벼대며 방안에서 서성거 렸다. 그러더니 웃으면서 말했다. "그야말로 쇠신발이 닳도록 찾아 헤맸는데, 이제는 찾는데 전혀 수고를 들이지 않게 되었구나. 소계자 공공, 오늘 그대와 이곳에서 만나게 된 것은 그야말로 매우 영광스러운 일이라고 할 수 있네." 위소보는 웃으며 말했다. "불초가 나리와 이곳에서 만난 것은 그야말로 전생에 쌓은 덕 때문이고 이승에서는 가장 영광스러운 일이라고 할 수 있겠소." 그는 물건마저 모조리 수색당한 꼴이라 잡아떼도 소용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하여 임기응변으로 이 고비를 넘기고 보자는 생각이 들었 다. 노인은 약간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말했다. "뭐가 저승에서 쌓은 덕이고 이승의 영광이란 말이지? 계공공 그대는 오대산 청량사로 가는 길이시겠지?" 위소보는 속으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늙은 후레자식이 모두 다 알고 있구나. 그렇다면 쉽게 다룰 수 없겠는 데?) |
첫댓글 잼 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