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담과 해와의 타락이후 하나님은 사탄이 만들어 놓은 감옥에 갇혀서 꼼짝달싹 못하고 있었다. 하나님은 사탄이 만든 감옥에 갇혀 영어(囹圄)의 몸이 되셨고, 사탄의 졸개들은 그 감옥을 지키고 있었다. 하나님은 어쩔 수 없이 스스로 빛 가운데 숨어 계시며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계셨다. 하나님이 지상에 살고 있는 인간들에게 전달할 내용이 있으면 천사를 통해서 전달하고, 인간도 하나님께 보고할 내용이 있으면 천사를 통해서 보고해야 되었다. (1971.12.5)
감옥에 갇혀 계신 하나님께 최고로 기쁜 소식은 ‘해방과 석방’이다.(1987.5.30) 하나님이 해방돼야 인간도 해방될 수 있다. 문선명 선생은 2001년 1월 13일, ‘하나님 왕권 즉위식’을 통해서 하나님께 해방과 석방을 안겨주셨다. 아담과 해와의 타락이후 수 천 만년 동안 감옥에서 신음하시던 하나님이 해방과 석방을 맞아 완전히 자유의 몸이 되신 것이다. 그동안 베일에 쌓여있던 하나님의 본체가 지상에 그 모습을 드러낼 수 있게 되었다.
하나님의 본체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낼 수 있게 되자, 선생은 ‘절대 신본주의, 절대 인본주의, 절대 물본주의 시대’를 선포하셨다.(2001.8.10) 하나님의 4대 주류속성을 토대로 밝혀진 것이 절대 신본주의다. 절대 신본주의를 토대로 절대 인본주의가 나오고, 절대 신본주의와 절대 인본주의를 토대로 절대 물본주의가 나온다. 선생은 먼저 절대 신권을 인정하고, 절대 신권을 바탕으로 절대인권을 인정하며, 절대 신권과 절대인권을 바탕으로 절대물권을 인정해야 한다고 하신다.
지금까지는 절대 신권이 인권과 물권에 무시당한 적이 있었다. 인권도 물권에 의해서 무시당한 적이 있었다. 이제는 절대 신권을 인정한 토대위에 절대인권을 인정하고, 절대인권을 인정한 토대위에 절대물권을 인정할 때이다. 선생은 ‘절대 신본주의, 절대인본주의, 절대 물본주의 시대’를 선포한 기대위에 하나님을 본체적 존재로, 인간을 실체적 존재로, 만물을 형상적 존재로 규정하셨다. 하나님이 본체적 존재라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첫째로 하나님은 이성성상의 본체적 존재로 계신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성상과 형상의 이성성상과 남성과 여성의 이성성상의 중화와 통일의 본체이시다. 하나님을 인간과 구분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이성성상에는 ‘본(本)’자를 넣어서 표기한다. 그래서 하나님은 본성상과 본형상의 이성성상의 중화와 통일의 본체이시고, 본남성과 본여성의 이성성상의 중화와 통일의 본체이시며, 피조세계에 대해서는 본성상적 본남성격 주체로 나타나신다.(1986.5.11)
하나님의 4대 주류속성을 중심삼고 볼 때, 하나님은 사랑의 본체이시며, 생명의 본체이시며, 혈통의 본체이시고, 양심의 본체가 되신다. 하나님은 진리의 본체이시며, 이념의 본체이시고, 원칙의 본체가 되신다. 하나님은 힘의 본체이시며, 참의 본체이시고, 선의 본체가 되신다. 하나님은 지·정·의의 본체이시며, 말씀의 본체가 되신다. 하나님은 아담과 해와의 본체이시며, 동시에 삼대주체사상의 이상적 본체가 되신다. 하나님은 만유의 본체로서 모든 존재의 뿌리가 되시며, 모든 것은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되어졌다.
둘째로 이성성상의 본체이신 하나님은 무형으로 그 실체가 없으시다.(1979.10.21) 이성성상의 본체이신 하나님은 지상에서뿐만 아니라 영계에서도 그 실체가 없으시다. 하나님은 지상과 영계에서 무형으로 존재하신다.(1991.11.7) 그래서 하나님은 지상에서 그 본체가 보이지 않고 영계에서도 그 본체가 보이지 않는다.(1971.1.1) 인간이 눈에 힘이 보이지 않는 것과 같이 에너지의 본체이신 하나님은 영계에서도 보이지 않는다.
하나님의 본체가 인간의 눈에 보인다면 하나님을 서로 빼앗겠다고 싸울 것이다.(1971.2.17) 210억 광년이 걸려도 끝에 도달할 수 없을 정도로 광대한 대우주를 지배하기 위해서 하나님은 일정한 형체를 갖지 않고 무형으로 존재하신다. 좁은 바늘귀도 마음대로 오고 갈 수 있을 정도로 작은 존재로 계시기 위해서도 하나님은 무형으로 계신다. 이처럼 하나님은 크다면 무한히 크고 작다면 무한히 작은 본체적 존재로 계시기 위해서 무형으로 존재하신다.
셋째로 이성성상의 본체로 계시는 하나님은 무형으로 계시기 때문에 우주를 상대로 자극을 느끼지 못하신다. 같은 것끼리는 자극이 없는 것처럼 마음 자체만 가지고는 아무리 자극을 해도 느낌이 없다. 상충된 것이 나타나야 서로에게 자극이 온다. 더운 물에는 더운 물이 아니라 찬물이 합해져야 폭발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감각기관을 가지고 주체와 대상이 자극을 느끼기 위해서는 반드시 체를 입은 두 존재가 나타나야 한다.
이성상상의 본체이신 하나님은 혼자 하나 되어 있기 때문에 자극을 느끼지 못한다. 그것은 사람이 눈을 깜박거릴 때 의식하지 않으면 깜박거리는 것을 느끼지 못하는 것과 같다. 청진기로 들으면 고동소리가 나는 심장의 박동소리를 듣지 못하는 것과 같다. 가래침이 나올 때 도로 삼켜도 더럽지 않은 이치와 같다. 그것은 내 몸과 눈이, 내 몸과 심장이, 내 몸과 가래침이 서로 하나 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도 성상과 형상의 이성성상, 남성과 여성의 이성성상으로 되어있지만 혼자 하나 되어 있기 때문에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넷째로 이성성상의 본체로 계시는 하나님은 체(體)가 없으시기 때문에 실체세계를 지배할 수 없다. 무형으로 계시는 하나님은 실체세계를 지배할 수도 없고, 실체세계에 대해서 주관성을 행사할 수도 없다. 실체세계는 실체를 가진 존재가 주관하는 것이 원칙이기 때문이다. 하나님도 체가 없으면 광활한 심천(深天)의 세계에서 혼자 지내야 한다. 하나님도 무형으로만 존재하시면 홀로 외로움에 지쳐서 의미 없는 나날을 보내야 한다.
하나님이 이성성상의 본체로 계시지만 실체세계에 모습을 나타내기 위해서는 반드시 인간의 체를 쓰셔야 된다. 하나님이 감각기관을 통해서 자극을 느끼기 위해서는 인간의 체를 쓰셔야 한다. 하나님이 실체세계를 주관하기 위해서도 인간의 체를 쓰셔야 한다. 하나님은 당신의 본체를 닮은 실체 인간을 통해서 체를 쓰셔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은 천상과 지상에서 개념적인 존재로 홀로 머물러 있어야 한다.
그래서 하나님은 당신의 이성성상의 본체를 닮은 실체로서 아담과 해와를 창조하셨다. 하나님은 아담과 해와를 통해서 실체세계에 그 본체를 드러내신다. 인간창조는 하나님이 실체세계에 모습을 드러내기 위해서, 영적부모이신 하나님이 실체부모가 되기 위해서, 감각기관을 통해서 자극을 느끼기 위해서, 그리고 형체를 가진 인간과 만물을 주관하기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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