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6년 1월 11일로 기억되는 날...
내가 난생 처음 해외 출장을 갔던 날입니다.
이 날짜를 기억하는 더 큰 이유는 그 바로 전날이 첫 아이가 태어난 날이기 때문입니다.
오래 기다리던 첫 아들을 품에 안아 보자마자, 나는 공항으로 달려가 방콕행 TG (Thai Airways) 항공기에 몸을 실었습니다.
약 6시간의 비행이 지루해 질 무렵, 비행기는 방콕의 돈 무앙 공항에 착륙을 했는 데, 공항입국 수속을 마치고
밖으로 나온 시간이 예정시각보다 약 1시간 이상 늦은 밤 10시가 넘었던 것 같습니다.
공항에는 분명히 나를 마중나온 사람이 있었어야 했는데, 비행기가 너무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그냥 돌아간 것 같았습니다.
내가 가야 할 곳은 힐튼호텔이었고, 여기서 4박5일간의 Marketing Conference에 참여한 후 이틀의 자유시간을 가질 에정이었죠.
공항 청사를 나와서, 죽 늘어서 있는 택시를 하나 잡았습니다.
말이 안 통하더군요...영어를 못 알아들을 뿐 아니라, 기사는 영어를 한 마디도 할 줄 모르는 것 같았습니다.
힐튼호텔!! 이라고 몇 번을 말했더니, 그 기사는 마치 알아 들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미터기를 꺾었습니다. 그리고, 방콕 시내쪽으로 달리기 시작했죠. 나는 한국의 거리와는 완전히 다른 방콕의 야경을 차창으로 즐기고 있었습니다.
약 30분 정도 달렸을 까요...택시는 어느 호텔 입구로 들어서고 있었습니다.
저는 고개를 들어 호텔을 쳐다 봤죠. 그런데...힐튼호텔이 아니라, 무슨 다른 호텔이더라구요..
그래서, 기사에게 말했습니다. No!! Not this hotel. Hilton !!! 이라고 말했죠.
기사는 다시 고개를 끄덕이더니, 그 호텔을 나와서 또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약 10분쯤 후에 기사는 속도를 늦추면서 또 다른 호텔건물쪽으로 차를 갖다 댔고, 내 눈치를 보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또 호텔건물 간판을 확인했고, 힐튼호텔이 아님을 발견하고는 ... 다시 말했습니다.
힐튼호텔...힐튼..H. i. L. T. O. N.이라고 스펠링까지 또박또박 말했습니다.
기사는 다시 달리기 시작했고, 또 힐튼이 아닌 다른 호텔로 나를 안내했습니다. 이렇게 들른 호텔이 무려 6개였습니다.
첫 출장에서 내가 묵을 호텔을 못 찾는 불상사가 일어날 지도 모른다는 초조감이 엄습하기 시작하더군요.
어쨌든 택시기사는 또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번화가를 지나서 약간은 한적하게 보이는 거리에 다달았을 즈음,
나는 멀리서 HILTON 간판을 봤습니다. 그래서, 기사의 등을 쳐서 손가락으로 That Hotel~ 이라고 말해 줬습니다.
공항을 출발한 지 2시간 가까이 지나 밤 11시를 훌쩍 넘어서야 나는 내 호텔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택시기사가 한심하다는 마음이 들었지만, 말도 전혀 통하지 않으니까 따질 수도 없었습니다. 택시를 내리기 전에 미터 요금을 보고 200 Baht를 꺼내 주려고 하는 데, 기사가 손사래를 치는 것이었습니다.
호텔 보이가 내 짐을 내리고, 나도 따라서 내렸습니다. 그리고, 기사에게 다가가 돈을 주려는 순간,
기사는 내립다 차를 출발시키더군요. 돈을 주지도 못했는 데......
택시기사가 택시요금을 받지 않았던 것은 한번에 제대로 손님이 원하는 목적지에 데려다 주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내가 모르던 것이 또 있었습니다. 운이 매우 좋았다고나 할까요...
당시 방콕에는 힐튼호텔이 두 군에 있었습니다. 지금은 서울에도 힐튼이 두 군에 있는 것 처럼 말이죠.
내가 묵었던 곳은 Hilton at Nai Lert Park라는 resort형 호텔이었고, 다운타운에는 Bangkok Hilton이란 호텔이 있습니다. 만일 운이 더 나빴더라면, 엉뚱한 호텔에서 체크인하느라 고생했을 겁니다.
*사진은 없음...
*호텔에 도착해서 알게 된 거지만, 태국사람들은 힐튼을 '일딴' 비스무리하게 발음합니다.
내가 묵었던 호텔은 '일딴 에뜨 나이렅 빠크'라고 하더군요.
반포에 있는 Palace호텔을 팔레스호텔로 부르는 것과 같죠.
*다음에 기회되면...87년도에 방문했던 Pattaya 에피소드를 소개해 드릴께요..
첫댓글 그 시절 태국은 현재와 같이 신혼여행지로 인기가 있었나요?
그 당시에는 신혼여행을 외국으로 가는 경우가 거의 없었지요.
해외여행자유화가 89년도인가 시행되었으니까..지금이야 자유롭게 해외여행을 가지만
이때만 해도 많은 제한이 있었답니다.
그때 방콕힐튼으로 가서 고생 더 했어야 하는데. 그랬으면 그 고생이 더 피가 되고 살이되고---
심술 선배님~~ ㅎㅎㅎ
그 당시에 해외여행 좀 처럼 흔한것이 아니지요?? 지금이야 조직에서 또는 개인적으로 해외여행 일상 처럼 느끼지만
그 당시 만해도 해외 출장 다녀오면 무슨 선물들을 그렇게 바라는지!!!!! 정말 입국 날짜가 다가오면 머리에서 서서히 쥐가 날 정도 였으니 ㅎㅎㅎㅎ
선물 명단을 작성했어야 할 정도였지요. 귀국 며칠 전에는 선물 사러 다니느라 시간 다 뺏기고..ㅎㅎ
79년도에 반공연맹에 가서 교육받고 출장가는데, 식구들이 김포공항으로 전송나올 때였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코미디.
여행자유화 이후, 일본은 14년만에 7%가 여행다녔는데, 한국은 7년만에 14%가 여행다니고. 중국이 여행자유화되어 10%가 움직여
일년에 1억5천만명이 나간다면 A300 이 500,000번 왕복해야하는데, 인천허브와, LA,NY,HK,TOKYO등이 일순위로 문제될 것 같슴. 식당, 호텔, 카라오케,택시,교통수단.제반 인프라 구축해얄 것 같고, HK는 섬이 가라앉릉 수도 있을 것 같슴.
중국이 개방되면서 원자재 뿐 아니라 생활물가가 모두 뛰는 영향이 있는 거 아닌지요? ㅎㅎ
중국인들이 아직 참치를 본격적으로 먹기전에 참치 많이 먹어둬야겠습니다. ㅎㅎㅎ
지금의 태국은 한국사람이 봉된지 오래 됐죠.
그때 택시 미터가 있었나요??? 제기억엔 네고해서 한걸로 알고 있는데 미터는 몇년뒤에 고급택시에 나왔었는데..기억이 맞는지 ㅋㅋㅋ
네고도 하고 미터기도 꺾고 ... ㅎㅎ 저도 네고한다고 듣고 갔었는데, 이 택시기사가 영어가 안되서 그랬는지, 제가 너무 잘 생겨서 그랬는지 몰라도ㅎㅎ 그냥 미터기를 꺾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