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ursday, May 2, 2024
도화지에 담은 나의 삶
수필교실에 입회신청서를 낸지 몇개월이 훌쩍 지나갔다. 몇번 만나지는 못했지만 수필교실의 한 일원이 되어 있는 것이 행복하다.
어느날 글을 쓰는 것이 나의 품성을 성숙시키는 열쇠가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서 글쓰기에 관심이 생겼다. 모난 나 자신을 변화시키는 작업이 되면서 고달픈 삶에서 자신과의 대화를 통해 힐링이 되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고 나만의 좋은 피난처가 되는 것을 경험하였다.
수필교실을 소개한 그녀를 만난 것은 미술반에서 고호의 ‘별이 빛나는 밤’을 복사하고 있던 때였다. 미술반에서 그림을 열심히 그리던 그녀는 언니 소개로 수필교실에서 글을 쓴지 몇개월이 되었다고 한다. 귀가 솔깃했다. 어린시절부터 그림그리기에 취미가 있던 나였지만 아이 일곱을 키우고 시부모님을 모시던 내게 취미생활을 한다는 것은 분에 넘치는 참으로 호화로운 일이었다. 이제 아이들은 모두 자라서 내곁을 떠나고 시아버님은 주님안에서 잠이 드셨다. 시어머님은 막내가 있는 가까운 곳의 양노원으로 가셨다. 이제는 좀 한가하게 나의 시간을 가질 수 있을까 생각하던 때 친정 어머님의 병고로 다시 친정 어머님을 돌보아야 될 입장이 되었다. 오랜만에 남편하고 단촐하게 살던 오하이오 삶의 터전에서 친정 어머님과 네 아이들이 살고 있는 캘리포니아로 이사를 오게 되었는데 생각외로 좋은 것이 많다.
때마침 둘째 사돈이 미술반에서 그림을 그리자고 했다. 이제는 그럭저럭 단순한 삶을 살 수 있고 늘 꿈꾸던 일이라 주저함없이 미술반에 참석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림 그리기 외에 마음속에 다른 꿈이 또 하나 자라고 있었던 것 같다. 미국으로 이민을 오고 세월이 흘렀지만 언어능력이 어눌한 나는 아이들과 소통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살았다. 마음 한구석에는 늘 채우지 못한 어떠한 아쉬움이 도사리고 있음을 느끼며 살아왔다.그것을 해결할 수 있는 것이 바로 글쓰기라는 것을 어느날부턴가 생각하게 되었다.
하얀 종이위에 나의 마음을 채워간다. 문자로도 채울 수 있고 그림으로 표현할 수도 있다. 전하지 못했던 나의 인생관을 자녀들에게 제대로 전할 수 있는 통로를 발견한 것이 얼마나 기쁜일인지 모르겠다. 들려주고 싶던 신앙 내지 인생관의 많은 이야기를 이제는 글로 남기고 통역해서 아이들의 언어로 전해줄 수 있는 세상에 살고 있다니 참 멋지다. 그림도 그리고 글도 쓸 수 있는 넓은 세계가 나에게 손짓을 한다. 내 마음은 한 장의 도화지 같다.
그곳에 나는 몽당 연필로 한 글자, 두 글자 나의 삶을 스케치할 수 있다. 간단하게 스케치를 한 뒤 가느다란 붓으로 선을 긋는다 빨강, 노랑, 파랑 색으로 오늘의 일들을 옮겨간다. 나의 일상을 말로 표현할 수 있는 것도 재미있고 한 폭의 그림으로 오늘의 추억을 담아 둘 수 있는 것도 흥미롭다.
사람들이 나에게 글을 쓰느냐고 물은 적이 있다. 글을 쓴다는 것이 무엇일까? 나는 서슴없이 글을 써본 일이 없다고 대답했다. 글을 쓴다고 생각하면서 글을 써본 일이 없으니, 그건 정직한 대답이었다. 초등학교 다닐 때 특별활동 시간에 글짓기반에 들어갔다가 "여기에 왜 이렇게 표현을했느냐"며 친구들 앞에서 창피를 주신 선생님께 마음의 상처를 입고는 글짓기반을 나왔던 경험이 있다. 중학교 다닐 때는 반에서 글을 모아 책을 내었던 때가 있었다. 나도 편집원의 한 사람으로 원고 들을 정리하는 도중에 선생님께서 나의 글을 보시고는 어디서 베껴온 글이라고 빼버렸는데 그때 수줍음이 많았던 나는 용기 있게 내가 직접 쓴 글이라고 말씀드리지 못했다. 아직도 내용을 기억하고 있는데 한 개구쟁이 아이가 한여름의 마루에서 낮잠을 자고 있다가 친구들과 전쟁놀이하다가 그만 막대기 칼에 맞아서 쿵 하고 넘어지면서 그만 마루에서 떨어지는 사건과 접목이 되는 글이었다. 인기 있던 총각 국어 선생님이었지만 그 일후로 나에겐 실망을 주신 선생님이셨다. 덕분에 나는 좋아하는 노처녀 미술 선생님을 따라 미술반 활동을 하게 되었다.
이제 느지막이 머리가 희끗희끗한 노년 학생이 되어 수필교실에서 공부하게 되었다. 수필 선생님이 일기부터 쓰라고 하셨다. 글을 쓰는 것은 다른 어떤 특별한 일이 아니라 일상의 기록부터 시작하는 것이 바로 글쓰기라는 것 배우면서 글을 쓰지 않았다는 내 답이 정답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럼 나도 글을 쓰고 있었구나”라는 새로운 발견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한시름 마음을 놓게 된다. 갈 길이 멀다고 느꼈었기 때문이다. 가든수필교실에 와서 몇 번 강의를 받았지만, 한 말씀, 말씀이 새롭고 흥미롭기만 하다.
수필이란 기억과 해석의 글쓰기라고 한다. 나의 삶을 되돌아보는 문학이며 자기 삶을 성찰하고 반성하는 사실적인 기록이라고 한다. 지난 나의 삶을 다시 되돌아 볼 수 있고 구체적인 사건으로 경험과 체험을 기억속에서 꺼집어 내서 현재 경험으로 변형시키는 것으로 새로운 구성의 작업이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한다. 선생님의 말씀으로 “수필의 소재가 된 경험은 과거라는 시간에 정지되고 화석화 된 것이 아니라, 현재의 감정이나 가치관에 의해 새롭게 지각되므로 현재화된 과거다.” 이렇듯 멋지게 정의해 주셨다. 나의 삶이 한단계 업그레이드 되는 특권속에 들어와 있다는 생각으로 자랑스런 마음으로 어깨를 으쓱 추겨본다.
그동안 편지도 썼고, 간증문도 썼고, 목사님의 설교를 요약할 때도 있었고, 메세지 창에 인삿말도 올렸었다. 특별한 일은 남편에게 ‘예수 바라기’라는 월간지에 원고 청탁이 들어왔을 때 남편이 나에게 글을 대신 쓰라고 하는 바람에 두번 글을 올린 적도 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글쓰는 훈련을 받아온 것이 틀림없는 사실이다. 글을 쓴다는 것은 어떤 특별한 행위가 아니라 일상 일어나는 간단한 생활을 문자로 기록하는 것이다. 참 멋지고 신나는 일이다. 나에게 과거의 일이 모두 글을 쓰는 훈련이 되었다는 것을 확인하며 흥미를 더해주고 용기를 얻게한다.
다듬어 지지 않은 나의 인격을 다듬으면서 아이들에게 좀 더 멋진 엄마의 인생관을 전해 줄 수 있다는 기대로 마음이 부풀어 오른다. 한 장의 도화지에 여러개의 문체로 나를 기록하고 그려 넣는 작업이 진지하게 진행되고 있다.
글쓰기는 과거, 현재, 미래를 뛰어넘는 참으로 신나는 인생의 여행이다.
첫댓글 하루를 시작하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한 장의 도화지를 주시고
그 하얀 도화지에 무엇을 그리는지는 우리 몫이죠.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며 삶을 아름답게 그려가는 공샘의 도화지는 분명
밝고 따스한 행복이 가득할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