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희왕 셔츠를 즐겨입는 아이가 있다.
이즈음 아이의 관자놀이엔 나뭇가지에 긁힌 해리포터를 닮은 연한 흉터가
생겼다. 까맣게 그을린 피부와 흉터는 모험을 즐기는 아이의 활력을 말해준다.
수족관 같은 방안에서 무기력 속에 침잠하는 그녀를
아이는 자신의 비밀 장소로 초대하였다. “엄마, 하늘이 무지 파랗고 높아요.
지금 공원에서는 축제를 하고 있어요. 떡을 나눠주고 노래도 하고...
엄마도 가서 구경해요.”
무료해서 무슨 일인가 일어나 주기를 바라는 한낮이다.
축제가 한창인 공원에서 그녀는 비바람에 낡은 나무벤치에 앉아
제제를 만나기로 한다. 저만치 아이가 웃고있다.
분양상가 앞 주차장 한 켠에는 모래가 가득 쌓여있다.
내 친구 창훈이와 나의 비밀 장소로 보물을 숨겨두곤 했던곳이다.
모래속에 보물을 묻어놓고 그 자리에 돌맹이를 얹어두었다.
우리는 주로 차도 방지턱에 있는 노란 선을 돌맹이로 긁어내
잘게 부수어 만든 금빛가루와 레고 장난감을 묻곤 하였다.
보물은 아직도 그 곳에 묻혀 있지만 창훈이는 먼 곳으로 이사를 가버렸다.
창훈이가 이사 간다는 말이 나오면서 다산공원이 만들어졌다.
공사중인 공원에 잠입해 들어가는 것은 스릴이 있었다.
공사장 아저씨에게 들키면 우리는 온 힘을 다해 도망을 쳤다.
잡으려는 어른들과의 숨바꼭질은 무척이나 재미있다.
제 아무리 긴 다리로 좇아 온대도 부서진 철창 너머엔 내가 좋아하는
모래가 가득 쌓여 있는데- 어떻게 그 곳을 포기 할 수 있단 말인가.
우리가 모래 장난으로 시간 가는 줄 모르는 사이에 슬그머니 미끄럼틀이
생겼고 벛나무와 느티나무가 새끼줄에 꽁꽁 묶여져 이사를 왔다.
가장 나중에 은빛으로 빛나는 철봉이 완성되었을 즈음 내 친구 창훈이는
멀리 떠나가 버렸다.
나는 과학상식과 마술에 흥미가 있다.
집에선 엄마 아빠의 귀염둥이이자 말썽꾸러기로 불린다.
커다란 만두쿠션을 좋아하고 자주색의 포근한 순면이불을 좋아한다.
예전엔 엄마를 두고 아빠와 신경전을 벌였지만 이젠 체념한지 오래다.
누나는 나에게 막강한 도전자이다. 두 살 터울임에도 중학생이라는
이유만으로 구분되어 인격적 대우와 편리를 누리고 있다.
내 방을 마음대로 들락거리고 내 물건을 함부로 만진다.
심지어는 만두쿠션까지 탐할때는 정말이지 싫다.
화가나면 소리를 지르고 말싸움을 하게 되는데 먼저 울먹이게 되고
삐질삐질 눈물이 나오는 것은 언제나 내가 된다.
그럴때마다 힐난하듯 나를 바라보는 엄마와 아빠의 눈빛이 나를 슬프게 한다.
이즈음 몸치인 누나에게는 체육 실기 시험인 앞구르기를,
엄마에게는 스트레칭을 지도해 주었다. 태권도 공인 3품인
나의 지도를 받을 때만큼은 엄마와 누나도 나의 진가를 인정해 준다.
운동과 노는 것은 나를 따를자가 없으리라고 엄마는 그랬다.
공부를 운동처럼 열심히 하는 것은 어떻겠냐며 안타까워 했다.
하지만 노는 것도 고도의 기술과 두뇌회전이 필요 함을 엄마는 왜 모르실까.
엄마는 내 생일을 그냥 지나쳤다. 아무도 기억해 주지 않았고
나 자신조차도 잊어 버렸던 생일을 생각하면 문득 서러워 진다.
한달전 누나는 자신의 생일을 친구들과 함께 피자집에서 2차는
노래방에서 신나게 보냈다. 엄마는 정말 나를 사랑하는 것일까.
서러울때는 공원으로 달려간다.
제일 먼저 로프를 타고 둥근 나무판으로 올라간다.
밧줄로 연결된 그물망을 건너 구름사다리 꼭대기에 서면 공원이
한눈에 보인다. 시원한 바람이라도 불어오면 나뭇잎이 노래하고
줄지어 서있는 빨간색 풍경열주의 8개의 풍경이 일제히 바람소리로 연주를 한다.
스피드를 즐기고 싶을때는 자전거 패달을 밟거나 롤러브레이드 위에
올라 바람을 느낀다. 속도가 붙을 수록 낡은 롤러브레이드와 자전거는
어느새 내 몸의 일부가 된다. 움츠렸다 몸을 솟구쳐 달려오는 바람과
만나면 창훈이가 내 옆에 있는것 같아 서운했던 마음도 모두 사라진다.
그리고 엄마를 다시 사랑 할 수 있을 것 같다.
저만치 밴치에 책과 하나가 된 엄마가 있다.
아이의 우주 속으로 그녀는 들어갔다.
주위가 아무리 고요해도 그 중심에는 거센 바람이 몰아친다는
바람의 언덕 구조물에서 아이는 미끄럼을 타고 아래 세계로 미끄러지고있다.
미끄럼틀을 역으로 타고 올라가 이번에는 바람의 언덕을 훌쩍 뛰어 넘는다.
아이의 머리 위로 자귀나무가 화려하게 빛나고 있다.
밤이면 잎을 접고 가지를 모으는 꽃의 잎사귀는 공작의 깃털 같다.
그녀는 문득 아이의 나무가 무엇일까 궁금하다.
제제에게는 라임오렌지나무와 뽀르뚜가 아저씨가 삶을 성숙하게
만들어준 친구였다. “왜 아이들은 철이 들어야만 하나요.”
말하던 제제는 바로 그녀의 아이였다. 누나와 다투어 야단을 맞고,
공부를 안한다고 매를 들었을때, 그리고 자신의 생일을 기억해 주지
않았을때 아이는 하루에도 몇 번씩 제제가 되었을 것이다.
바쁘다는 핑계로 아이가 하는 말을 끈기있게 들어주지 못했고
어른의 눈높이에서만 보려했다. 그녀는 말한다.
아이의 세계를 마음의 눈으로 볼 줄 아는 친구가 되어야 했어.
제제의 친구 라임오렌지나무와 뽀르뚜가가 그랬던것처럼-.
저만치 놀기대장 제제가 바람을 안고 달려오고 있다.
그녀는 바람의 언덕에서 아이를 향해 두 팔을 한껏 벌린다.
첫댓글 아이의 세계를 마음의 눈으로 볼려고 노력하는데 인내심에 한계를 느낄 때가 많아요..1인5역을 하며 혼자놀기에 진수인 울 막내..그 사유의 깊이를 알 수 없는 놀라운 언어구사력을 보일때도 있지만, 그렇게 노는 아이들이 머리가 좋다는데 우째 공부엔 신통력을 보이지 않으니...어쩌란 말인가요?..울며 겨자먹기로 두 팔을 벌려 뽀뽀 해주지만 걱정은 걱정이네요...^^
공부엔 신통력을 보이지 않는 막내에게로 흐르는 마음- 저 또한 그 죽일놈의 짝. 사. 랑.때. 문. 에 열병식을 치르는 중입니다.
풍부한 감성과 상상력이 아이들 세상에 아니 한편의 동화 속에 들어온 것 같네요..정아 님의 글세계에 놀라울 따름이네요~~
이를 어째...과찬의 말씀에 줄행랑中,,,,
제제가 바로 저였어요라고 느껴지는 걸 보니 글을 잘쓰셨네요. ^,.^
글이 어법에 맞고 간결하여 읽기가 쉽습니다. 내용도 무척 좋다는 생각입니다. 감사히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