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의 가라반달에서 성모님께서는 선견자인 소녀들에게 나타나셔서
묵주의 기도 바치는 방법을 가르쳐주시면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내가 먼저 기도 할테니 너희는 나를 따라 하여라.
" 그리고 성모님께서 아주 천천히 기도를 바치셨다.
선견자 중의 한명인 마리 크루즈도 성모님께서는 천천히 기도하는 법을
가르쳐 주시기 위해 먼저 기도를 시작하셨다고 증언하였다.
그리고 그녀는 성모님과 함께 기도문들을 아주 천천히 바치고 나서 또한 매우 천천히 매우 올바르게 성호를 그었다.
또한 소녀들이 발현이 진행되는 동안 체험한 무아경 속에서 바친 기도를 녹음한 테이프를 들어보면,
성모님께서 소녀들과 우리에게 원하시는 기도의 방법을 정확하게 알 수 있다.
녹음한 테이프에서 소녀들은 성모송을 두 마디 또는 세 마디씩 묶어 천천히 또박또박 기도를 바쳤는데
성모송 전반부를 바치는 동안에만 여섯 번을 쉬었고, 또 20초 이상이 소요되었다.
-가라반달의 성모님-
"사람들이 기도할 때에는 신뢰로써 하느님께 의탁하여 자신의 모든 것을 말씀 드려야 한다.
영혼의 힘을 다해서 신심을 다해서 기도해야 된다.
주의 기도를 바칠 때에도 기계적으로 빨리해서는 안된다.
신심을 가지고 주의 기도를 천천히 바쳐야 한다. 중요한 것은
주의 기도문을 외운다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느끼는 것이다."
-메주고리에 메시지-
"언제나 빠르게 기도하던 그녀가 아주 천천히 로사리오를 염경하는 것이 이상해서 그 까닭을 묻자
'천사가 그렇게 염경하니까'라고 대답했습니다."
-아끼다의 선견자인 사사까와 수녀의 발현체험을 동료수녀가 회상하며-
"어떤 때 제 정신이 심한 무감각 상태에 있어서 천주께 결합할 수 있는 생각을 하나도
끌어내지 못하게 될 적에는 '아주 천천히' 천주경을 외우고 다음에 성모경을 외웁니다.
그러면 이 경문들은 저를 기쁘게 하고, 빨리 백 번을 외운 것보다도 훨씬 더 제 마음을 풍족하게 합니다."
-몽포르의 성 루도비꼬-
"사람들이 기도할 때에는 신뢰로써 하느님께 의탁하여 자신의 모든 것을 말씀드려야 한다.
영혼의 힘을 다해서 신심을 다해서 기도해야 된다. 주의 기도를 바칠 때에도 기계적으로 빨리 해서는 안된다.
신심을 가지고 주의 기도를 천천히 바쳐야 한다.
중요한 것은 주의 기도문을 외운다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느끼는 것이다." .
- 메주고리에 성모님-
"지혜를 비추고 의지를 움직이는 데, 기도 특히 진심으로 하는 묵상기도보다 더 효과적인 것은 없습니다."
-성 프란치스꼬 살레시오-
" 단 한 번의 성모송이라도 온전히 바치는 것이 시원치않게 150번을 바치는 것보다 더 가치가 있습니다."
"정신을 가다듬고 바치는 한 단은 그저 빨리, 조금도 쉬지 않고
경솔하게 수천 번 바치는 로사리오 기도보다 훨씬 가치가 있읍니다."
"여러분이 기도하기 귀찮고 어려움을 느낄때 때때로 더욱 천천히 로사리오를 한결같게 바치십시오."
-몽포르의 성 루도비꼬-
"어떤 때 제 정신이 심한 무감각 상태에 있어서 천주께 결합할 수 있는 생각을
하나도 끌어내지 못하게 될 적에는 '아주 천천히' 천주경을 외우고 다음에 성모경을 외웁니다.
그러면 이 경문들은 저를 기쁘게 하고, 빨리 백 번을 외운 것보다도 훨씬 더 제 마음을 풍족하게 합니다."
-성녀 소화 데레사-
"정성을 들이지 않고 분심하면서 주의 기도를 수천 번 바치는 것보다는 한 번이라도
정성껏 열절히 바치는 것이 더 낫습니다." .
-성 에드몬드-
나의 자녀들아, 너희가 기도할 때 입술로만 웅얼거리는 말투를 사용하지 말아라.
너희의 기도는 마음에서 나오는 감정과 어떤 목적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러기에 기도문 하나 하나의 뜻을 음미하며, 천천히 하여야 한다.
-성모님-
내가 이런 말로 이 메시지를 시작한 것은,
너로 하여금 사람들이 기도를 제대로 할 줄 모른다는 점을 알게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기도하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하지만 그런 이들마저 제대로 기도하지 못하니 말이다.
기도할 줄 아는 사람이 매우 적은 것은 첫째 계명을 몰라서 기도할 수 없기 때문이거나,
더욱 나쁘게도 첫째 계명을 알면서도 잊어버리기 때문이다.
하느님 앞에 있다는 것은 훌륭하고 효과적인 기도를 위해 꼭 필요한 일련의 영적 활동을 수행함을 뜻한다.
우선 하느님께 이르기까지 영혼을 들어 올리는 믿음의 행위가 있어야 하니,
이는 삼위일체이신 하느님과 영적으로 만나기 시작한다는 뜻이다.
이 믿음의 행위 다음으로, 하느님과의 만남을 심화시키는 겸손과 신뢰와 사랑의 행위가 이어져야 한다.
이 행위는 기도를 제대로 바치기 위해서 필수적인 것이니,
하느님께서 역겨워하시는, 순전히 기계적인 기도를 하지 않도록 해 주기도 한다.
나는 마음이 아니라 입술로만 나를 공경하는 사람들에게는 고개를 돌리기 때문이다.
불행히도, 기도하는 소수의 사람들 중에도 단지 기계적인 기도만 하면서 의무를 다했다고 우쭐해 하는 이들이 많다.
실제로는 의무를 다한 것이 아닌데 말이다. -아들들아 용기를 내어라-
기도를 가르치지 않는 성직자들에 대해
내 성직자들은 지칠 줄 모르는 스승이 되어 신자들에게 기도하는 법을 가르쳐야 하지 않겠느냐?
좋은 엄마는, 아이들이 성장함에 따라, 실증내는 법 없이 삶에 유익한 것들을 가르치는 엄마이다.
그런데 내 성직자들은 세례 성사를 통해 영혼들 안에 하느님의 생명을 낳아 주는 사람들이 아니겠느냐?
너희는 너희의 보살핌에 맡겨진 신자들에 대해서 진정한 영적 부성을 실천하며 살고 있지 않으니,
대체 무엇이 너희로 하여금 이토록 중요한 의무를 소홀히 하게 하느냐?
너희가 살펴볼 용기가 있다면 너희의 영적 자녀들에게 부성애를 발휘하지 않은 데서
오는 불행한 결과를 확인 할 수 있을 것이다.
공의로운 재판관이신 하느님 앞에서는 너희가 마땅히 주어야 할 것을 주지 않은 것이 그대로 드러나기 마련이다.
게다가, 너희의 이 일은 무한히 고귀한 가치를 지닌 수없이 많은 영혼들의 구원에 관한 것이다.
아들들아, 결말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신앙 위기의 원인은 여러 가지이고
그 원인들 중 어떤 것들은 너희의 뜻과는 상관없다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어떤 원인들은 너희의 탓으로 돌려야 한다는 것도 사실이다.
너희가 회개하지도 속죄하지도 않는다면 어떻게 되겠느냐?
또 하느님을 섬기는 대신 줄곧 너희 자신을 섬기기만 한다면 어떻게 되겠느냐?
내 자녀들과 사제들아, 너희에게는 별로 많은 시간이 남아 있지않다.
너희의 영원한 삶을 결정하는 것은 내가 아니라 너희 자신이다.
아들아, 지치지 않고 네게 당부하는 것이니, 기도하고 보속하여라. -아들들아 용기를 내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