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공화국 출범과 감리교의 제9대 이환신 감독
자유당 시절 이승만 대통령이 정동제일교회 장로요 부통령이며 실세였던 이기붕과 그의 부인 박마리아 여사가 권사였기에 감리교회는 정권으로부터 많은 혜택을 누렸다. 감리교는 무조건 자유당을 지지하였다. 그러나 1960년에 3․15 부정선거, 4․19 학생혁명으로 자유당 정권이 무너지고 민주당 정권이 집권하게 되었다. 그러나 자유당 정권의 부패와 민주당 정권의 무능을 일소해야 한다는 미명 하에 육군 소장 박정희를 주축으로 한 세력들이 5․16 군사혁명을 일으켜 제3공화국이 출범하게 되었다. 이때 자유당에 유착하여 있던 감리교 내에서도 부패한 자유당 정권을 지지한 것에 대한 반성이 있었다.
이러한 때에 감리교 안에서 대형 부정비리 사건이 터지고 말았다. 1960년 특별총회에서 회계로 선출된 박이남 장로가 거액의 공금을 유용한 사건이었다. 이로 인해 5월 1일 긴급 소집된 이사회에서 감독과 3국 총무들이 사표를 제출하게 되였지만 이사회에서는 이를 반려하였다. 이어 7월 3일에 특별총회를 개최하여 이 사건을 처리하기로 했다. 1962년 7월 3일에 특별총회가 개최되어 10월 총회를 앞당긴다는 ‘임시조치규정’을 통과시키고 폐회하였다.특별총회 폐회 후 그 다음날 7월 4일 제9회 정기총회가 정동제일교회에서 개최되었다. 감독선거는 5일, 6일에 걸쳐 실시하였는데 41차례 투표한 끝에 이환신 감독이 기독교 대한감리회 제9대 감독으로 당선되었으니 각 계파 정치의 절정을 보여준 셈이다.총회는 신임감독의 추천으로 5국 총무를 두었다. 종전의 전도국, 교육국, 사회국에 사무국과 부녀국을 신설하여 총무를 두어 5국 총무 체제로 개편한 것이다.
이환신(李桓信) 감독은 1902년 1월 8일 평남 강동에서 태어났다. 어려서 학문을 수학하고 1918년 10월 3일 보통학교 재학 시 교사의 인도로 기독교인이 되었다. 1919년 단신으로 만주에 건너가 4년여 동안 방랑생활을 하였고 1923년 7월 15일 세례를 받고 신학에 뜻을 두었다. 1924년 서울 피어선 성경학원을 수료했고, 1927년 감리교 협성신학교를 졸업했다. 1931년에는 연희전문학교 문과를 졸업하고 이어 미국 유학길에 올라 1933년 밴더빌트 대학교 신학부, 1935년 펜실베이니아 대학원을 수료하고 문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귀국 후 1935년 감리교 총리원 청년부장을 지내고, 1937년 5월 7일 양주삼 감독에게 목사 안수를 받았다. 해방 이후에는 연세대학교 신과대학 교수로 재직했다. 1950년에는 남가주 대학 대학원에서 연구하였으며 1951년 감리교신학대학 교수로 부임했다. 그 후 YMCA 연맹 총무를 지내다가 1962년 7월에 제9대 감독으로 선임되었다. 그가 감독으로 선임되는 과정은 감리교회의 파벌정치의 실상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성화파, 호헌파, 정동파라는 계파들이 각 파의 후보에 투표하는 바람에 3분의 2의 지지를 받아야 당선되는 장정의 규칙을 충족시킬 수 있는 후보가 나올 수 없는 구조였다. 결국 이환신 감독은 41차의 투표 끝에 124표 중 84표를 득표하여 감독에 취임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환신 감독은 종전의 전도국, 교육국, 사회국, 초무 주심의 총리원 체제를 사무국을 신설하고 부녀국에도 총무를 두어 5국 총무 체제로 개편했다. 1967년부터는 연세대학교 대학교회 담임목사로 시무하였으며 신학대학에 강의도 맡았다. 1972년 은퇴한 후에는 감리교 원로목사회 회장, 평화통일촉진회 총재 등으로 활동했다. 그 후 1984년 6월에 향년 82세의 일기로 별세하였다.
이환신 감독이 재임 중 주재했던 감리회 의회는 다음과 같다.
제10회 총회(1966년 9월 20일~26일, 10월 13일~17일, 정동제일교회 개최)이다.
그가 주재한 연회는 제22회 중부연회(1963년 3월 10일~16일, 정동제일교회 개최), 제23회 중부연회(1964년 2월 12일~15일, 정동제일교회 개최), 제24회 중부연회(1965년 3월 16일~22일, 배화강당 개최), 제25회 중부연회(1966년 3월 23일~27일, 정동제일교회 개최)이다.
또한 제14회 동부연회(1963년 3월 10일~16일, 정동제일교회 개최), 제15회 동부연회(1964년 2월 1일~8일, 동대문교회 개최), 제16회 동부연회(1965년 3월 16일~22일, 배화강당 개최), 제17회 동부연회(1966년 3월 23일~27일, 정동제일교회 개최)를 이끌었다.
제9회 남부연회를 (1963년 3월 10일~16일, 정동제일교회 개최), 제10회 남부연회(1964년 2월 19일, 대전제일교회 개최), 제11회 남부연회(1965년 3월 16일~22일, 배화강당 개최), 제12회 남부연회(1966년 3월 23일~27일, 대전제일교회 개최)를 주재하였다.
이환신 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