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적이고 반복적인 기도
마태복음 26:44, 또 그들을 두시고 나아가 세 번째 같은 말씀으로 기도하신 후
찬송가 257장(마음에 가득한 의심을 깨치고), 361장(기도하는 이 시간)
오늘 말씀에 보면 예수님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에 세 번이나 같은 말씀을 가지고 기도하셨습니다. 기도의 내용이 십자가의 고난, 그 쓰라린 잔을 마시지 않으면 좋겠으나 그렇지 아니할진대 아버지의 뜻대로 되기를 원한다는 내용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기도를 드리실 때에 얼마나 간절했는지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처럼 변할 정도였습니다. 예수님은 세 번이나 엎드려 기도하셨는데, 중간에 제자들이 기도하지 아니함을 인하여 그들로 시험에 들지 않도록 깨우시려고 일어나 가서 제자들을 깨우기 위하여 중단되곤 했습니다. 한번에 한 시간씩 정도의 기도의 분량씩 세 번에 걸친 기도는 주제가 달라지지 않았고 기도의 말들도 거의 그대로였습니다. 거의 두세 시간에 걸친 예수님의 기도는 초점을 잃지 않고 오직 이 기도 제목에만 집중하여 매달리는 기도였습니다.
엘리야 선지자의 갈멜산에서 비를 내리는 기도 역시 동일합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약속하시기를, 엘리야가 말하면 들으시고 비를 내려주시겠다고 하신 바 있습니다. 엘리야는 그 약속을 붙들고 갈멜산 꼭대기에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대로 비를 내려달라고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기도해도 하늘은 꿈쩍도 하지 않고 땡볕만 내리쬐었습니다. 선지자는 자기 종을 서쪽의 바다쪽을 바라보라고 명하여서 비 올 조짐이 있는가를 살피게 했습니다. 그러나 보니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아무 것도 없나이다”라는 대답이 돌아오면 선지자는 또 다시 얼굴을 무릎 사이에 넣고 간절히 비를 내려달라고 동일한 기도를 드리곤 했습니다. 일곱 번째 가서야 그의 사환이 “바다에서 사람의 손 만한 작은 구름이 일어나나이다”라고 전하자 선지자는 벌떡 일어나 산 한쪽 곁에서 식사하는 아합 왕에게 가서 “비가 막히지 아니하도록 마차를 갖추고 내려가소서”라고 얘기해줍니다. 그리고 난 후 조금 후에 구름과 바람이 일어나 하늘이 캄캄해지고 큰 비가 내렸습니다. 일곱 번의 기도의 내용은 동일한 것이었습니다.
다니엘의 21일 간의 기도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가 페르시아 왕 고레스 재위 3년에 자기 민족의 미래에 대하여 알고 싶어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하여 하나님께 간절히 묻기를 21일 동안 작정 기도를 했던 것입니다. 세 이레 동안 좋은 떡도 먹지 아니하고 고기와 포도주를 입에 대지지 아니하고 기름을 바르지 아니한 가운데 하나님께 계속 집중 기도했습니다. 그러자 21일째 되는 날에 힛데겔 강 곧 티그리스 강의 강가에 있었을 때에 영광스러운 모습을 지닌 분 우리 주님인 듯한 분이 나타납니다. 그의 영광스런 모습을 보자 다니엘은 자기 몸이 썩은 듯하고 힘이 다 빠져나가 깊은 잠에 빠져들었는데, 그분이 한 손으로 그를 어루만지고 일으켜서 이렇게 일러주셨습니다.
“다니엘아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깨달으려 하여 네 하나님 앞에 스스로 겸비하게 하기로 결심하던 첫날부터 네 말이 응답받았으므로 내가 네 말로 말미암아 왔느니라 그런데 바사 왕국의 군주가 이십일 일 동안 나를 막았으므로 내가 거기 바사 왕국의 왕들과 함께 머물러 있더니 가장 높은 군주 중 하나인 미가엘이 와서 나를 도와주므로 이제 내가 마지막 날에 네 백성이 당할 일을 네게 깨닫게 하러 왔노라 이는 이 환상이 오랜 후의 일임이라 하더라”(다니엘 10:12~14)
이처럼 우리 주님이나 엘리야나 다니엘의 기도를 보면 한 문제를 가지고 집중적이고 반복적인 기도를 드려서 마침내 응답받을 때까지 매달리는 것을 보게 됩니다.
아브라함도 소돔과 고모라 성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눈앞에 두고 두렵고 떨리지만 하나님 앞에 직접 나아가 그 성의 용서를 위하여 간구하되 무려 6번에 걸쳐서 끊임없이 동일하게 매달리고 매달리는 모습을 보인 바 있지 않습니까?
예수님께서 한 예를 든 것도 마찬가지의 교훈입니다. 한 과부가 교만하고 사람을 무시하는 재판장에게 찾아가서 “내 원수에 대한 나의 원한을 풀어 주소서”라는 동일한 청원 제목을 가지고 밤낮을 가리지 않고 끈질기게 매달리니 재판관도 어쩔 수 없어 생각하기를 “이 과부가 나를 너무 번거롭게 하니까 그 원한을 풀어주어야 하겠다”고 마음을 고쳐먹고 해결해주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주님은 바로 그 과부처럼 하나님께 끈질기게 기도하는 것이 바른 믿음이라고 말씀해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문제가 생겼을 때에 그 문제를 가지고 집중적으로 응답받을 때까지 주님 앞에 끈질기게 기도하기를 조금도 주저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주님께서 가르쳐주신 말씀 중에
“또 기도할 때에 이방인처럼 중언부언하지 말라 그들은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 줄 생각하느니라 그러므로 그들을 본받지 말라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마태복음 6:7~8)
는 말씀을 생각하면서 기도할 때에 말을 적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반복적인 기도를 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지만 주님께서 마태복음 6장에서 중언부언하지 말라는 가르침은 이방인들처럼 마음을 담지 않고 입술로만 하는 기도 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영혼의 기도가 아니라 입술의 기도만 드리면 안된다는 뜻입니다. 또한 진정한 마음을 쏟아붓는 기도가 아니라 마음도 없이 같은 말만 계속 반복하는 것을 금하는 것입니다. 진정한 경외심 없이 장황하게 말을 화려하게 꾸며서 하는 기도 등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음을 담아 간절하게 반복하여 같은 주제를 가지고 끈질기게 계속 기도하는 것은 결코 중언부언의 기도가 아닙니다. 주님께서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는 말씀을 가르치셨는데, 이것 역시 어떤 문제를 가지고 집중적으로 물러섬 없이 집중적으로 기도를 드리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고 여겨집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평소에는 백화점의 물건들이 다양하게 있듯이, 우리의 기도 제목들이 다양하여 그것들을 주님께 아뢰듯이 이것 저것 다 아뢸 수 있으나, 꼭 응답받아야 할 문제가 있을 경우에 집중적이고 반복적인 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우리 주님께서 기도하셨듯이, 갈멜산에서 엘리야 선지자가 기도하였듯이, 다니엘이 21일 동안 그러했듯이, 우리도 한 문제를 가지고 주님께 가지고 나와 응답받을 때까지 끈질기고 간절하게 기도하여 응답받는 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그렇게 집중적이고 반복적인 끈질긴 기도를 드릴 때에 주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반드시 응답해주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