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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강세미나 22.09.04(일)
할렐루야. 오늘도 어제 이어서 사도행전 17장 26절의 말씀. 어제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사 온 땅에 거하게 하시고 저희 년대를 정하시며 거주의 경계를 한하셨으니. 저희의 연대. 아들과 종과 시민을 추수하는 여호와의 절기에 대한 비밀을 사도 바울은 알고 증거 해 놓았습니다. 어제는 이제 에덴동산에 감춰진 그 생명나무의 실과들의 정체성 그들이 여호와의 절기를 통과하는 그 비밀을 이제 창세기부터 제가 말씀을 증거 해 드렸습니다. 그래서 율법이전시대에 노아까지 제가 생명나무의 실과들이 여호와의 절기를 통과하는 그 비밀을 제가 알려 드렸는데, 오늘은 마찬가지입니다. 생명나무의 그 실과들이 계속해서 이어져서 이제 율법시대를 맞이합니다. 율법 시대. 이 율법시대에도 여호와의 절기를 통과하는 생명나무의 실과들의 정체성을 성경은 계시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율법시대에 생명나무 실과들이 어떻게 여호와의 절기를 통과하는가? 이 율법이전시대와 율법시대 또 이제 앞으로 복음의 시대에 그 절기를 통과하는 그 계시의 영을 우리에게 받으면 지금 우리에게 절기가 통과하는 비밀을 알게 됩니다. 지금 그것이 우리에게 임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지금 절기를 통과해야 됩니다. 왜? 생명나무의 실과이기 때문입니다. 할렐루야.
그래서 율법시대에 그 여호와의 절기를 통과하는 생명나무의 실과들의 정체성을 이제 여호수아기 5장 2~12절의 말씀을 통해서 함께 나누기 원합니다. 이 여호수아기는 여호수아는 이 모세가 애굽에서 출애굽을 해서 그 홍해를 건너서 출애굽을 해서 광야에 가 있을 때 광야에서 이제 출애굽 1세대들과 40년을 훈련받고 살다가 모세와 출애굽 1세대들은 광야에서 다 죽습니다. 다 죽는데 이제 광야에서 태어난 이들은 애굽에서 태어난 자들이 아니고 광야에서 태어난 20세 미만의 자들과 갈렙과 여호수아가 그들을 요단강을 건너가는 그 계시에서 이제 우리가 그 절기에 대한 비밀이 숨겨져 있습니다.
그래서 여호수아기 5장 2~12절의 말씀을 함께 나누면서 그들이 통과하는 절기를 함께 나누기 원합니다. 그 때에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너는 부싯돌로 칼을 만들어 이스라엘 자손에게 다시 할례를 행하라 하시매. 여호수아에게 하나님께서 이제 모세에게는 부싯돌로 칼을 만들어서 할례를 하라고 이야기하지 아니하시고 이제 요단강을 건널 때 여호수아 대제사장 여호수아 이 대제사장 여호수아는 멜기세덱의 의의 왕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영원한 복음의 대제사장 예수그리스도를 계시하는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 그런데 그 여호수아가 이제 그 요단강을 건너갑니다. 일단 요단강. 굉장히 중요한 것이 성경을 더 디테일하게 깊이 들어가면 그 한 구절 한 구절 안에 그 다음에 지역 그런 어떤 계시되어 있는 것을 알면 놀라운 하나님 비밀이 있는데, 요단강을 건너갔지만 아직 요단강에서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려면 무엇이 있습니까? 여리고성이 있습니다. 여리고성. 여리고성의 문을 열고 들어가야 됩니다. 들어가야지만 가나안이 정복되는 것입니다. 요단강을 건넜다고 해서 지금 무엇입니까? 약속의 땅 가나안을 점령한 것이 아닙니다. 그 앞에는 지금 여리고성이 막혀 있습니다. 여리고성. 이 여리고성을 통과해야 됩니다. 통과. 그런데 이 여리고성을 통과하는 그 자들이 생명나무의 실과들인데 그들이 광야에서 요단강을 건넜습니다. 지금 여호수아하고 출애굽 2세대들이 건너자마자 요단강 물이 다시 흐르면서 다시 돌아갈 수 없습니다. 그러면 이들은 지금 요단강을 건너서 요단강을 건넌 그 지역과 여리고성 입구 그 사이에 지금 그들이 거기서 거주하고 있는 것입니다. 들어가지 못하고 일단은 건넜습니다. 그런데 건넜는데 그들이 여리고성을 통과하려면 반드시 절기를 통과해야 됩니다. 절기. 절기를 통과하지 않고서는 안 됩니다. 그런데 이 절기를 통과하려면 광야에서 모세에게 받았던 할례를 가지고는 통과할 수 없습니다. 육적인 할례를 가지고는 통과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이제 이 부싯돌을 가지고 하나님이 칼을 만. 부싯돌은 무엇입니까? 부싯돌은 칼을 가는 것이고 이렇게 칼을 갈 때 불이 나갑니다. 이 부싯돌은. 이 부싯돌로 칼을 갈라는 것은 바로 성령의 검을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할례를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이제 성령께서 친히 인을 쳐서 할례를 주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 여호수아가 부싯돌을 가지고 그 돌을 가지고 칼을 만들었습니다. 만들어서 할례 산이라는 데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할례를 행하는데 이 할례가 바로 그리스도의 할례입니다. 그리스도의 할례. 모세가 주는 할례가 아니고 요단강을 건넌 자들에게 그리스도의 할례가 임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들은 지금 요단강을 건넌 자들은 생명나무의 실과들의 본질입니다. 광야에서 다 죽은 자들은 선악과나무에서도 선악의 본질이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호수아가 4절에 여호수아가 할례를 시행한 까닭은 이것이니 애굽에서 나온 모든 백성 중 남자 곧 모든 군사는 애굽에서 나온 후 광야 노중에서 죽었는데 그 나온 백성들은 다 할례를 받았으나. 모세를 통해서 할례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오직 애굽에서 나온 후에 그 광야 노중에서 난 자들은 할례를 받지 못했다. 그러면 광야에서 난 출애굽 2세대들은 할례를 받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 때 요단강을 건너 갈 때 여호수아에게 광야에 사는 자 중에 20세 미만 자들만 추려서 데려갔습니다. 그러면 이 이야기는 모세에게 할례를 받은 자가 아니고 이들은 할례를 받지 못했기 때문에 이제 요단강을 건너서 그들에게는 할례를 주라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의미는 무엇인가? 이 지금 출애굽 2세대들 이들은 광야에 있을 때 율법 아래에 있었지만 이들은 성령의 약속을 받은 생명나무의 실과들이었다는 것입니다. 실과들이기 때문에 이들에게는 모세를 통해 육적인 할례가 임할 수가 없습니다. 이들에게는 오직 성령이 친히 인을 쳐서 그들에게 육적인 몸을 벗는 그리스도의 할례를 줘야 되는 것입니다. 마음의 밭에 임하는 것입니다. 마음에. 모세가 주는 것은 육신의 그 포피를 자르는 것이 할례였지만 그 할례는 혈통적 표면적인 할례이지 이것이 영적인 할례 그러니까 그리스도의 할례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 할례를 받은 자들은 요단강을 건너 이 가나안 땅에 들어올 수가 없습니다. 광야에서 다 죽어야 됩니다. 광야에서. 그런데 요단강을 건너와서는 이들을 데리고 어떻게 합니까? 가야되는 길이 여리고성을 통과해서 이제 새 예루살렘 성을 점령하고 모든 약속의 땅 가나안 땅을 다 점령해야 되는데 그들이 점령할 수 있는 자들은 그리스도의 할례를 받은 자만이 기업을 받을 수가 있습니다. 기업을. 하나님나라의 유업을 받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 6절에 이스라엘 자손들이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치 아니하므로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대하여 맹세하사 그들의 열조에게 맹세하여 우리에게 주마 하신 땅 곧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그들로 보지 못하게 하리라 하시매 애굽에서 나온 족속 곧 군사들이 다 멸절하기까지 사십년 동안을 광야에 행하였더니. 광야에서 사십 년 동안 행한 목적은 무엇입니까?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들. 그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들이 그 열매 실과들을 지금 가나안땅으로 들어오지 못하고 광야에서 모두가 다 추수하는 걸러내는 것입니다. 전부. 걸려내어서 이제 그들은 광야에서 죽게 하고 이제 이 여호수아와 이 성령의 약속을 받은 이 생명나무 실과는 이제 가나안을 기업으로 받게 됩니다. 가나안땅을.
그 때 그들의 대를 잇게 하신 이 자손에게 여호수아가 할례를 행하였으니 길에서는 그들에게 할례를 행치 못하였으므로 할례 없는 자가 되었음이었더라. 이들은 광야에 있을 때는 할례 없는 자 무할례자였습니다. 이들은 광야에서는 무할례자. 우리도 무엇입니까? 율법 아래에서 열심히 이 땅의 제단에서 우리가 열심히 헌신하고 봉사한다 할지라도 우리는 무할례자였다는 것입니다. 무할례자.
그래서 온 백성에게 할례 행하기를 필하매 백성이 진중 각 처소에 처하여 낫기를 기다릴 때에. 이제 요단강을 건너와서는 이제 이 생명나무 실과들에게 성령의 인이 인 쳐지는 것입니다. 이제 성령의 세례가 인 쳐졌습니다.
그 때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내가 오늘날 애굽의 수치를 너희에게서 굴러가게 하였다 하셨으므로 그곳 이름을 오늘까지 길갈이라 하느니라. 이스라엘 자손들이 길갈에 진을 쳤고 그달 십사일 저녁에는 여리고 평지에서 유월절을 지켰고. 이 생명나무의 실과 이 출애굽 2세대들 그러니까 여호수아와 갈렙, 출애굽 2세대들은 반드시 무엇입니까? 14일 날 유월절을 통과해야 됩니다. 이 절기를. 이 이야기는 무엇입니까? 그리스도의 할례를 받은 영적 이스라엘 이들이 이면적인 유대인이라는 것입니다. 이면적인 유대인. 할렐루야. 그리고 이들은 하늘에 속한 교회요 남자의 머리이신 그리스도의 지체들이다. 이들은 이미 초실절에 첫 이삭의 한 단으로 이미 하나님께서 택정함을 받은 자들이고 그들이 곧 남자의 부활생명이라는 것을 계시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반드시 남자의 머리이신 그리스도의 지체라면 반드시 예수님과 똑같이 유월절을 통과해야 됩니다.
유월절을 통과하고 나면 이튿날 그 땅 소산을 먹되 그 날에 무교병과 볶은 곡식을 먹는다. 이 무교병 그러니까 이 땅에 이 사람이 주는 지식이 아니고 무교병은 예수님이 주시는 하늘의 지식을 먹어야 됩니다. 새 양식을 먹어야 됩니다. 새 양식. 새 곡식. 새 언약의 말씀을 먹어야 됩니다. 그것을 먹었더니 그 땅 소산을 먹은 다음 날에 만나가 그쳤다. 새 곡식을 먹었더니 광야에서 먹던 만나 묵은 곡식이 없어져버린 것입니다. 새 곡식을 먹었더니 묵은 곡식이 사라져버립니다. 그쳐버렸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다시는 만나를 얻지 못하고 그 해 가나안 땅의 열매를 먹게 되었다. 다시는 묵은 곡식 아래 들어가는 것이 아니고 이들은 새 곡식을 먹게 되고 새 언약의 천국의 말씀을 먹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묵은 곡식 먹고 계세요? 새 곡식 먹고 계세요? 그러면 여러분과 저는 이미 요단강을 건너왔습니다. 어떤 사람은 지금 유월절을 통과하는 사람도 있고, 어떤 사람은 무교절을 통과하는 사람도 있고, 어떤 사람은 지금 초실절을 통해서 지금 온전한 부활의 생명으로 나오는 자도 있고. 이것이 다 믿음의 분량이 다르고 다 가는 이제 추수의 시기가 다른 것인데.
그러면 지금 여호수아와 출애굽 2세대들은 유월절과 무교절, 초실절을 반드시 통과했습니다. 통과하고 나니까 이들에게 무슨 일이 벌어집니까? 여리고성이 무너져버리는 것입니다. 여리고성이 열려버리는 것입니다. 여리고성이 열리니까 하나님이 무엇이라고 그러셨습니까? 그 여리고성 안에 내가 감춘 모든 보화를 다 취해서 내게 바쳐라. 그들이 이제 가나안땅 이 여리고성 안에 들어가기 전에 하나님께서 모든 그 가나안땅을 점령하기 위해서는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물질의 풍요를 주는 것입니다. 그들의 물질이 아니고 하나님이 예비 해 놓은 것들. 그것을 취하라는 것입니다. 이제 취해서 내게 바쳐라. 무슨 이야기인지 아시겠죠? 그렇습니다. 우리는 지금 여리고성이 무너졌습니까? 안 무너졌습니까? 할렐루야. 우리의 지금 시점은 영적 시점은 어디에 있는가하면 흑암 안에 감춰져 있는 물질을 취하는 것이 길이 보였다는 것입니다. 그 길을 지금 보여주는 것입니다. 우리 눈에 보입니다. 지금. 그러면 이제 취하라고 할 때 취하면 됩니다. 취해서 엿 사먹으라고? 100평 아파트 짓고 살라고? 취하면 이것을 가지고 모든 열방을 회복시키는 것입니다. 그래야 가나안 약속의 땅 가나안을 기업으로 받을 수 있습니다. 그 약속의 땅 가나안의 기업을 잇는 그 기업을 하나님께서 세웁니다. 하나님께서. 할렐루야.
그래서 지금 우리가 이제 알아야 되는 것은 표면적 유대인과 이면적 유대인의 할례를 이제 우리가 알아야 됩니다. 할렐루야. 그래서 우리가 이제 이 표면적 유대인과 이면적 유대인의 할례를 사도 바울은 이미 로마서 2장에 계시해 놓았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표면적 유대인 무엇이고 이면적 유대인이 무엇인가? 굉장히 많이 혼란했습니다. 이제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되는 것은 우리가 선악과나무의 실과라면 반드시 요단강을 건너지 못하고 광야에서 죽어야 됩니다. 그런데 감사한 것은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횃불언약을 통해서 약속을 할 때 약속의 땅 가나안만 주셨으면 종들은 추수가 안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애굽 강에서부터 광야에까지도 약속을 했습니다. 출애굽을 건너는 그 애굽 강부터 유브라데스강 그러니까 광야에서부터 약속의 땅 가나안까지를 지경으로 주었습니다. 그것을 주셨기 때문에 광야에 죽었던 모세, 엘리야도 잘 북이스라엘에 있다가 그 아저씨 죽을 때 되면 광야로 나갑니다. 자기 팔자가 광야로 가야 됩니다. 거기서 가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 아저씨는 종입니다. 종. 그런데 이 광야의 지경을 안 줬으면 아브라함의 4대 손의 열매가 추수가 안 됩니다.이것이 놀라운 것입니다. 이 지역 경계에 대한 거주 경계도 우리가 나중에 증거 할 때 다 드러나게 되는데 그래서 로마서 2장을 오늘 좀 공부합니다. 함께 나눕니다.
로마서 2장 1절에 그러므로 남을 판단하는 사람아 무론 누구든지 네가 핑계치 못할 것은 남을 판단하는 것으로 네가 너를 정죄함이니 판단하는 제가 같은 일을 행함이니라. 남을 판단하고 정죄하는 자가 자신을 정죄한다는 것입니다. 자신을. 판단하고 같은 일을 행한다는 것입니다. 이 이야기는 이것이 지금 율법 아래에 있는 자를 이야기합니다.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 죄와 사망의 법에 매인 자들은 남을 판단하고 남을 계속 정죄합니다. 모세도 아무리 시내 산에서 율법 그 율법을 제정 받았어도 나오자마자 모세는 하나님이 주신 산 돌을 갖다가 증거 판을 집어던지고 그 금 신상 세우고 춤추는 그들을 판단하고 정죄하고 난리를 쳤습니다.
이런 일을 행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판단이 진리대로 되는 줄 우리가 아노라. 이런 일을 행하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판단이 진리대로 된다. 그들은 선악과나무의 실과이지 생명나무의 실과가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본질이 다르고 정체성이 다른 것입니다. 정죄의 직분자와 의의 직분자가 나눠져버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헐렁헐렁하고 살고 남도 판단도 해보고 할 때 손가락질도 하고 다 했습니다. 거짓말도 하고 남 판단도 하고 싸움도 하고 째려도 보고 우리가 생명나무 실과라도 다 했습니다. 여기 계신 분들은 처음부터 거룩하셨습니까? 거룩. 다 똑같았는데 다 율법 아래에 있을 때 무엇이 달랐느냐? 우리의 본질은 생명나무의 실과였기 때문에 성령이 인을 치는 순간 우리는 거룩한 몸이 되어버립니다. 이것이 정죄의 직분에서 의의 직분으로 바뀌어 버립니다. 이것이 절기를 통과하는 자의 정체성 열매들입니다. 열매들. 무슨 이야기인지 아시죠? 위안이 좀 되시죠? 위안이 좀 됩니다.
이런 일을 행하는 자를 판단하고도 같은 일을 행하는 사람아 네가 하나님의 판단을 피할 줄로 생각하느냐. 이런 일을 행하고도 똑같이 정죄하고 판단하는 너희들은 하나님의 판단을 피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혹 네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당신, 네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너를 인도하여 회개케 하심을 알지 못하여 그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의 풍성함을 멸시하느뇨. 다만 네 고집과 회개치 아니한 마음을 따라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우신 판단이 나타나는 그 날에 임할 진노를 네게 쌓는도다.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행한대로 보응하시되 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는 영생으로 하시고 오직 당을 지어 진리를 좇지 아니하고 불의를 좇는 자들에게는 노와 분으로 하시리라. 악을 행하는 각 사람의 영에게 환난과 곤고가 있으리니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라. 여기서 각 사람이 영이 아니고 혼이라고 쓰여 있습니다. 영어로 보면 soul로 나옵니다. soul로. 여기 영과 혼 이런 것도 모르니까 성경에도 그냥 이것이 다 그냥 영인지 혼인지 모르고 분별없이 막 써 놓았기 때문에 우리가 영어성경에도 보면서 보면 이것이 영어성경도 똑같습니다. 또 혼과 영을 분별했어도 어떤 것은 영인지 혼인지 분별이 안 됩니다. 굉장히 난무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왜 악을 행하는 사람은 영의 생명이 악을 행할 수가 없습니다. 악을 행한다는 것은 영의 생명 예수님이 악을 행할 수 있습니까? 예수님은 왜 선이라고 합니까? 예수님이 행하시면 왜 선이라고 합니까? 하나님의 뜻을 알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시기 때문에 선하다는 것입니다. 선하다. 예수님이 오셔서 착하게 사시고 어머니 말씀도 잘 듣고 이런 것이 아니고 그런 것을 아무리 백 날 해도 하나님 뜻을 모르면 그것은 선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선을 행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하나님의 의를 성취하는 것이 선입니다.
그런데 이 지금 악을 행하는 자는 그 혼에게 환난과 곤고가 있다는 것은 그 악을 행하는 자에게 그의 혼에게 곤고가 온다는 것은 말씀의 기갈이기 때문에 그에게는 기근이 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헬라인에게. 유대인에게도 있고 헬라인에게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자들이.
그런데 선을 행하는 각 사람에게는 영광과 존귀와 평강이 있으리니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라. 이것은 하나님 영의 생명 이 생명나무의 실과들은 유대인에게도 있고 헬라인에게도 있고. 유대인에게도 있고 이방인에게도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유대인만 있고 이방인은 없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외모로 사람을 취하지 아니하심이니라. 하나님께서 외모로 취한다고 하면 예를 들어서 내가 유대인에게 말씀을 먼저 주었으니까 이것은 유대인에게만 내가 이 영광을 허락하리라. 이러면 이방인 헬라인은 아무리 하나님의 선을 좇아가도 그들은 영광을 볼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외모로 사람을 취하는 것이 아니고 그 안에 심령 안에 하나님의 뜻을 아는 자를 찾는 것입니다. 그 안에 하나님의 뜻을 아는 자는 영의 생명들만이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입니다. 영과 영이 교통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영적 예배자들에게 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12절에 무릇 율법 없이 범죄 하는 자 또한 율법 없이 망하고 무릇 율법이 있고 범죄 하는 자는 율법으로 말미암아 심판을 받는다. 어차피 율법이 없이 범죄 한다고 하면 이 하나님의 선과 악을 모르기 때문에 이들은 결국 다 음부로 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율법이 있고 율법을 제정 받았습니다. 받았는데도 범죄 한다는 것은 율법 아래에서 죄와 사망의 법에 매어서 이것이 죄에서 자유함을 얻지 못하는 자 그 자들은 율법은 죄의 권능이기 때문에 이 율법으로 말미암아 심판이 임하는 것입니다. 심판이. 왜냐하면 하나님의 선과 악을 분별하는데 그 악의 선을 모르기 때문에 악을 좇아가다 보니까 이것이 하나님께서 심판하는데 이 악을 좇는 것이 무엇입니까? 이 종들은 하나님의 선을 압니까? 모릅니까? 모릅니다. 영의 생명이 아니기 때문에 하나님의 선을 모릅니다. 그러면 이들이 선하다고 이 혼의 생명이 선하다고 하는 것은 행위로 구원을 받고 행위로 제사를 하고 이런 행위로 구원을 받는 줄 안다는 것입니다. 그런 자들은 다 마지막에 심판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심판. 우리는 지금 헐렁헐렁한 것 같은데도 영의 생명이기 때문에 이 하늘의 비밀 이 새 언약의 말씀이 임할 때 내 양식이니까 기쁘고 이것을 알아듣고 이 말씀 안에 내가 평강이 온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을 아는 생명이라는 것입니다. 그들에게는 심판이 옵니까? 안 옵니까? 올 수가 없습니다. 심판이 올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서는 율법을 듣는 자가 의인이 아니다. 오직 율법을 행하는 자라야 의롭다 하심을 얻으리라. 하나님 앞에서 율법을 듣고 율법을 듣는 자 그 율법을 따르는 자가 의인이 아니고 그 율법을 행하는 자가 의로운데 율법을 행할 수 있는 분은 누구입니까? 오직 예수그리스도. 그래서 율법을 완성시켜버리는 것입니다. 복음으로. 율법을 완성시킵니다. 율법을 완성시킬 수 있는 것은 오직 복음. 이 복음으로밖에 완성할 수가 없는데 이 복음은 새 언약의 말씀이 담겨져 있습니다. 이 새 언약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율법의 모든 계명을 완성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새 계명을 주는데 너희는 서로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그 사랑은 하나님의 진리 안에 거하라는 것입니다. 진리의 말씀 안에 거하라는 것. 그 진리가 우리를 자유케 할 때 우리가 하나님의 의롭다 하심을 받게 되고 그래서 우리가 의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 의인은 바로 부활의 생명이 된다는 것입니다. 부활의 생명. 그 생명은 창세전부터 그리스도 말씀 안에 있었던 생명이었기 때문입니다. 그 말씀 우리 이 지체들은 예수님의 몸이었기 때문입니다. 한 성령 안에서 한 몸으로 연합을 이루게 된다. 이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14절에 보니까 율법 없는 이방인이 본성으로 율법의 일을 행할 때는 이 사람은 없어도 자기가 자기에게 율법이 되는 것입니다. 이런 이들은 그 양심이 증거가 되어 그 생각들이 서로 혹은 송사하며 혹은 변명하여 그 마음에 새긴 율법의 행위를 나타내느니라. 이 이방인들 안에서도 율법이 본성적으로 율법의 일을 행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율법이 없어도 자기에게 율법이 된다. 이방인 안에서도 선악의 열매가 있는 것입니다. 이방인 안에서도. 그들의 양심이 증거 되고.
그런데 그 마음에 율법의 행위가 나타나게 되는데 사도 바울이 이야기하는 것은 곧 내 복음에 이른 바와 같이 내가 전하는 이 새 언약의 천국복음 이 복음이 이른 바와 같이 하나님이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사람들의 은밀한 것을 심판하시는 그날이라. 이 복음이 이른바. 이 복음 안에는 하나님이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사람들의 은밀한 것을 심판하시는 그날. 은밀한 것을 심판하시는 그날이 이 마지막 주의 재림 때 추수 때 그 열매대로 그 나타나는 열매대로 심판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심판을 받는 생명입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의를 성취하는 생명입니까?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기 전에 우리는 휴거되는 생명입니다. 이 땅에 있으면 누구나 다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게 되어 있습니다. 임하기 직전 그 임하는 심판은 예수님께서 공중 재림하실 때 만왕의 왕 심판주로 오시기 때문에 공중 재림하실 때 이제 이 땅에 재앙이 임합니다. 그 재앙은 인류가 탄생한 이래로 최대의 재앙 대 환난이 오게 되는데 그 환난을 통과하지 않는 자가 의로운 자들 그들을 예수님의 몸으로 연합시켜버립니다. 이것이 공중 혼인잔치가 그래서 예비 되어 있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17절에 유대인이라 칭하는 네가 율법을 의지하며 하나님을 자랑하며 율법의 교훈을 받아 하나님의 뜻을 알고 지극히 선한 것을 좋게 여기며. 이 지금 유대인들은 유대인이라 칭하는 자들은 율법을 의지합니다. 율법을 왜 의지합니까? 모세 우리의 선지자 이 모세를 통해서 하나님이 친히 시내 산에서 율법을 제정해 주었는데 이 율법을 의지하고 율법 아래 규례와 율례를 따라서 제사도 지내고 짐승도 잡고 그 피로 회개하고 이런 일들을 그것이 선한 것이라고 합니다. 그것이 구원을 받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네가 율법에 있는 지식과 진리의 규모를 가진 자로서 소경의 길을 인도하는 자요 어두움에 있는 자의 빛이다. 네가 율법을 따르는데 소경의 길을 인도하는 자요 어두움에 있는 자의 빛이요 어리석은 자의 훈도요 어린 아이의 선생이라고 스스로 믿으니. 그러면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네가 네 자신을 가르치지 아니하느냐 도적질 말라 반포하는 네가 도적질 하느냐. 너는 율법을 잘 따르는데 왜 너는 율법을 못 지키느냐. 너는 율법을 잘 교훈하고 가르치고 선생처럼 훈도하고 다 하는데 왜 너는 율법을 지키지 못하고 너는 율법에 도적질 하지 말라고 하고 도적질 하시면 율법의 계명을 어기는 하나님의 심판이 임합니다. 저는 도적질 하고. 무엇 하지 말라고 하면서 자기는 또 우상을 섬기고. 저는 가르치면서 저는 저는 그 율법의 계명을 지킬 수 있는 능력이 없는 자입니다. 그러니까 소경을 소경이 인도하는 자가 되고. 그러니까 결국 무엇입니까?
율법을 자랑하는 네가 율법을 범하므로 하나님을 욕되게 해버린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무엇이라고 하셨습니까? 예수님이 오셨을 때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의 교훈을 삼가라. 저들은 하나님의 뜻을 모르고 율법의 계명 율법을 따르고 율법을 훈도하고 가르치는 선생인데 저들은 너희들을 지옥 자식 만든다. 저들의 말을 절대로 따르지 말라. 이렇게 이야기한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따랐습니까? 안 따랐습니까? 왜 웃으세요? 새 곡식이 나오기 전에는 누구도 다 묵은 곡식 아래 다 있었습니다. 저도 율법을 엄청 따랐던 사람입니다. 바울 형님 못지않게 따랐습니다. 제가 요즘에 기도 하지 말고 자빠져 자라고 하니까 어떻게 기도를 안 하고 사느냐고 합니다. 제가 율법 아래에 있을 때는 기도 왕이었습니다. 기도 왕은 아니고 왜냐하면 엄청 기도했다는 것입니다. 금식도 저 자주 했습니다. 봉사하면 제가 365일 봉사한 사람입니다. 아마 저만큼 따라오기 아마 여러분들보다 더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말씀은 몰랐습니다. 왜냐하면 목사님이 시키는 대로만 했기 때문입니다. 열심히. 그리고 그냥 선한 일이라고 하면서 선한 일은 다 하면서 거짓말도 했습니다. 다 했는데 내 뜻대로 안 되었습니다. 기도는 그렇게 많이 하면 사업도 잘 되어야 되는데 하는 일은 다 망하게 하고 안 됩니다. 무엇이 잘못 되어도 한참 잘못 되었습니다. 또 그냥 금식하면 무엇이 잘 된다고 해서 금식을 또 했더니 금식하고 났더니 괜히 잘 되는 것도 없고 괜히 몸만 상한 것 같습니다. 몸만. 그런데 이 진리를 받고 나니까 자유 해져버렸습니다. 전부 다. 기도가 무엇인지 알았습니다. 기도가. 제가 여러분들 보고 기도하지 말라고 하는 이유가 왜 제가 기도하지 말라고 하는가 하면 율법 아래에서 여러분들이 기도하면 그러면 예수님이 무엇이라고 하셨습니까? 이방인이 구하는 것을 하기 때문에 너희가 심판 받는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 솔직히 다 펴놓고 이야기해 보십시오. 기도. 왜 기도했습니까? 자식 잘 되어라. 무엇 해라. 사업 좀 안 되니까 사업이 좀 잘 되게 해 달라. 이런 것입니다. 전부 다. 하나님의 뜻은 비밀은 모르고. 그러니 그 기도를 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한테. 내가 기도를 하지 말라고 하니까 기도 막히면 죽습니다. 그 기도는 하나님과 교통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내 영이 살아야 하나님과 교통하는데 하나님의 비밀은 아무 것도 모르는데 성령이 아무리 내가 이방인이 구하는 기도해도 성령이 역사를 안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 마음과 합한 자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 새 곡식을 받고 이 진리를 알면 여러분들이 이 진리를 나누고 같이 함께 하고 성경을 보고 이것이 기도입니다. 이것이 호흡이고 이것이 생명의 호흡이라는 말입니다. 내가 이 기도를 이야기하는 것이지 이방인이 구하는 이 기도 하지 말고 그 기도 하려면 몸상하고 하니까 어떤 분은 기도를 너무 많이 해서 새벽기도부터 시작해서 다 했는데 장로님이 그냥 자빠져 자라고 해서 그래서 자꾸 자니까 살만 포동포동 찌고 얼굴이 너무 좋은데 좋기는 굉장히 좋다고 합니다. 마음에 좀 부담이 온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이것 무언가 좀 해야 되지 않나? 이것이 좀 엎드려서 무언가 해야 되지 않나? 하려고 하면 장로님이 자빠져 자 이런 소리만 자꾸 들려서 자고 했더니 살이 쪄서 포동포동해져서 얼굴이 좋다고 합니다. 그리고 가정이 화평해졌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남편보고 새벽기도 가라고 안 하니까 남편이 그렇게 좋아한다고 합니다. 그전에는 의무적으로 가려고 하니까 남편이 졸리는데도 새벽기도를 안 하니까 사업이 안 된다고 이래서 새벽기도 가서 졸려도 앉아 있었는데 지금은 wife가 너무 자유 해지니까 자기도 너무 자유 해졌다고 합니다. 남편들이. 그래서 그것은 다 좋은데 이 진리는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진리 안에서 호흡을 해야지 하나님과 합해지고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되고 내 안에 있는 영이 장성해지면 그 성령이 나를 인도할 때 그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통과할 수 있고 또 하나님이 그를 통해서 화목직책의 의의 직분의 사명을 또 감당하기 때문에 하늘과 땅의 것을 다 주는 복을 누리기 때문에 그것을 통해 열방을 회복하는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그래서 이야기하는 것이지, 제가 기도하지 말라고 하니까 세상에 저 말씀을 받았다고 하는 사람이 기도 하지 말라고 한다고 이런 어리석은 이야기는 그만하시고 말씀의 진리 가운데 성령과 교통하라는 것입니다. 아시겠죠? 그러니까 제가 기도하지 마세요. 하는 이야기는 그 영생의 기도를 막는다는 것이 아니고 이방인이 구하는 것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백해무익한 것이고 오히려 너에게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는 저주가 임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무슨 이야기인지 아시겠죠? 우리끼리만 알면 됩니다.
그래서 이제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율법을 자랑하는 네가 율법을 범함으로 하나님을 욕되게 하느냐. 기록된 바와 같이 하나님의 이름이 너희로 인하여 이방인 중에서 모독을 받는도다. 너희가 율법을 잘 지킨다고 하면서 범하게 되니까 이방 땅에서 하나님의 이름이 모독을 받게 된다고 합니다. 네가 율법을 행한즉 할례가 유익하나 만일 율법을 범한즉 네 할례가 무할례가 되었느니라. 네가 율법을 행함으로써 할례가 유익하게 되는데 그런데 율법을 범한즉 네가 할례가 아니고 무할례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네가 율법 아래에서 아무리 할례를 받아도 그것은 할례 받은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런즉 무할례자가 할례도 안 받은 무할례자 이방인이 율법의 제도를 지키면 그 무할례를 할례와 같이 여길 것이 아니냐. 오히려 이방인들이 율법을 받지 않고 모르는데 그들이 그 율법의 계명을 잘 지키고 율법을 온전히 지키게 되면 그들이 오히려 더 할례자가 되지 않느냐. 이렇게 이야기하면서 또한 본래 무할례자가 율법을 온전히 지키면 의문과 할례를 가지고 율법을 범하는 너를 판단치 아니하겠느냐. 이 유대인들은 의문을 가지고 할례를 하기 때문에 율법을 범하는 너를 판단하게 되는데 대저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표면적인 육신의 할례가 할례가 아니라.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지니 신령에 있고 의문에 있지 아니한 것이라. 그 칭찬이 사람에서가 아니요 다만 하나님에게서니라. 이 이야기는 우리가 교회 열심히 다니고, 이 땅의 제단을 열심히 다니고, 헌신 많이 하고, 선교 많이 하고, 성전 건축 많이 하고 집사, 권사, 장로 이것을 받았다고 해서 그것이 할례를 받은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그렇지만 성경의 의문을 가지고 있고 성경이 열려있지 않으면 그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할례를 받은 것이 아닙니다. 이 할례는 표면적인 유대인을 이야기하는데 이면적인 유대인은 그 할례가 마음에 임해버립니다. 그것이 그리스도의 할례입니다. 그리스도의 할례. 이것이 마음에 임하니까 신령에 있고. 신령이라는 것은 내 영이 살아나 내 영이 다 눈이 뜨이기 때문에 하늘의 비밀을 알게 되고 성경의 의문에 있지 않습니다. 이 표면적인 유대인들은 의문 가운데 성경 하나님의 뜻도 모르고 의문 가운데 할례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율법 아래에 있으면. 그런데 마음에 할례를 받은 자들은 율법 아래에 있는 것이 아니고 그리스도의 할례가 성경의 의문 십자가의 의문이 다 열리면서 하늘의 신령한 것을 다 알게 되기 때문에 그것은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에게로 오기 때문에 하늘의 비밀을 맡은 자가 되어버립니다. 그들이 바로 그리스도의 할례를 받은 자가 이면적 유대인이요 우리가 율법 아래에서 성경의 의문을 가지고 받는 할례는 표면적 유대인이다. 이것을 우리가 잘 알아야 됩니다. 유대인이라는 의미는 저기 저 이스라엘에 있는 자가 유대인이고 여기는 아니라는 것이 아니고 이방인이나 유대인이나 할 것 없이 모든 자 안에 헬라인이나 할 것 없이 모든 자 안에 마음에 할례가 인친 자가 바로 그리스도의 할례를 받은 자요 그 자들이 바로 의문에 성경의 의문에 있는 것이 아니고 신령한 모든 비밀을 다 맡은 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온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땅의 지식으로 이 땅의 어떤 그 종교행위로 주는 할례는 사람에게서 오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은 하나님이 기뻐 받지 않는 것입니다. 왜? 그 할례는 행위로써의 할례는 성경의 하나님 뜻도 모르고 그것을 따라간다는 것은 결국은 심판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심판을. 이것을 우리가 잘 알아야 됩니다. 할렐루야.
그래서 그 여호수아와 출애굽 2세대들은 광야에서 할례를 받지 아니하고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땅에 들어오자마자 여리고성 입구 직전에 거기에서 하나님께서 여호수아를 통해서 부싯돌을 가지고 칼을 만들어서 성령의 검입니다. 그것으로 마음에 인을 쳐버리는 것입니다. 그 할례는 바로 그리스도의 할례. 그리스도 할례가 임해야 광야에 있었던 성경의 의문이 율법 아래에서 행위에 따라 하나님 마음을 아는 것이 아니고 그 의문에 있던 모든 것들이 가나안땅에 들어옴으로써 그 그리스도 할례가 임함으로써 절기를 통과하게 됨으로써 그리스도의 마음을 알게 되고 그리스도가 전한 이 새 언약의 모든 비밀을 알게 되니까 여리고성을 통과하게 되고 여리고성에서 가나안을 점령하는 모든 비밀을 알기 때문에 성령이 인도하시기 때문에 그 가나안땅을 기업으로 받을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생각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자 나가면 기업을 이루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하나님 앞에 심판 받게 되고, 성령이 우리를 인도해 끌고 나가게 되면 약속의 땅 가나안을 기업으로 받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이 하신다는 것입니다. 성령이. 할렐루야.
그래서 이 바울은 이 비밀을 알았기 때문에 누구든지 그 철학이나 종교철학이나 교리는 헛된 속임수이니까 너희를 노략하는 것이니까 조심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람의 유전이나 세상의 초등학문에서 나온 것이고 그 초등학문을 따르는 것이지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반드시 그리스도의 할례가 임해야지만 우리의 육적 몸이 벗겨져야 내 안에 있는 영이 살아나게 되고 이 영이 살아나야 성령과 교통하게 됩니다. 이 성령과 교통을 해야 살리신 이의 영이 우리 안에 들어올 때 예수님이 장사한 바와 같이 우리 역시도 죽으면 예수님이 부활한 것과 같이 그 살리신 이의 영이 우리를 부활시켜버립니다. 이것이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그러면 지금까지 우리가 무슨 말씀을 가지고 우리가 신앙생활을 했는가하면 예수님이 주신 새 언약 창세전에 감춰진 하나님나라의 비밀을 몰랐기 때문에 우리는 계속 죄 가운데 있었다는 것입니다. 죄 가운데. 우리는 영의 생명이었는데 생명나무의 실과였는데도 우리는 율법 아래에서 죄와 사망의 법에 매어있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를 잘 믿는데 예수님이 전한 말씀을 몰랐기 때문에 죄 가운데 있었다는 것입니다. 죄 가운데. 이 죄 가운데 있다는 것은 성령이 와서 우리에게 진리를 주는데 그 예수를 믿지 않음으로 성령을 훼방하게 되어버립니다. 거역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내 뜻으로 가게 됩니다. 내가 배운 이 땅의 지식을 좇아가게 됩니다. 그러면 그들은 다 성령을 훼방하는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를 말씀을 믿고 알고 성령의 세례를 받은 자면 성령이 인도하여 가기 때문에 성령을 훼방할 수가 없습니다. 내 영을 성령이 이끌어 가버리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내 지식을 갖고 내 이 땅의 사람의 지식을 가지면 성령이 인도할 때 나와 다르기 때문에 나는 내 길을 가버린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내가 가진 경험, 내가 가진 지식, 내가 가진 모든 것을 판단하고 가기 때문에 그것은 네 판단으로 가는 것이고 하나님의 뜻대로 가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사도 바울이 우리가 율법 아래에 있을 때 있었지만 아들의 영이 우리에게 임하게 됨으로써 우리가 율법 아래에서 율법의 계명을 좇아가던 우리가 아들의 영이 임하니까 우리가 복음의 아들이 되는 명분이 세워져버리고 더 이상 우리가 이 땅의 그 종의 삶을 사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나라의 유업을 이을 후사의 삶을 살게 된다. 이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창세기 17장 7~14절에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에게 하나님께서 이미 할례의 언약을 통해서 남자의 부활생명을 거두는 것은 이 할례언약의 부활생명이 바로 요단강을 건넌 출애굽 2세대들과 여호수아입니다. 지금 우리가 이 복음의 시대는 지금 예수그리스도의 진리의 말씀 안에 거하는 자들. 그 한 성령 안에서 한 몸이 되는 그들이 바로 남자의 부활생명입니다.
그래서 7절에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와 네 대대 후손 사이에 세워서 영원한 언약을 삼고 너와 네 후손의 하나님이 되리라.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할례언약을 제정해 주실 때 할례로 언약을 제정해 주실 때 이 때는 율법도 복음도 제정되기 전입니다. 율법도 제정되기 전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할례언약을 하는데, 내가 너와 네 하나님께서 내가 너와 네 후손 아브라함 너와 네 후손에게 너의 우거하는 땅 곧 가나안 일경으로 주어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고 나는 그들이 하나님이 되리라. 가나안의 일경을 기업으로 주었습니다. 하나님이 또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그런즉 너는 내 언약을 지키고 네 후손도 대대로 지키라. 너희 중에 남자는 다 할례를 받으라. 이것이 나와 너희와 너희 후손 사이에 지킬 내 언약이다.
갑자기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너희 중에 남자는 다 할례를 받으라. 그러면 여자는 받지 말라는 여자는. 또 무식해서 저기 또 아랍 이슬람 그쪽에는 여자도 할례를 해야 된다고 해서 여자를 또 할례를 합니다. 진짜 징합니다. 전라도 말로. 징하다고 합니다. 너희 중에 남자는 할례를 받으라. 이 남자가 바로 영의 생명들. 생명나무의 실과들. 하나님의 아들들. 하늘에서 난 자들은 다 할례를 받으라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여자도 있고 이 육신적으로 사라도 받아야 되고 리브가도 받아야 되고 다. 룻도 받아야 되고. 누가 있습니까? 라합. 있습니다. 육신으로는 여성인데 그들은 남자라는 것입니다. 만약에 이 말씀이 여기에 적용된다면 지금 여기 계신 남자들만 다 할례를 받으세요. 그러면 여기 계신 여성분들은 집에 가셔야 됩니다. 들을 일이 없습니다. 무엇하러 들으세요? 할례도 안 주시는데 성령께서. 그것이 아니고 여기에 오신 남성과 여성 이 지금 성별을 구별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아들에게는 전부 이 할례가 임하는 것입니다. 이 할례를 받으라는 것입니다.
그 때는 이 아브라함에게 율법도 제정되기 전에는 아브라함의 그 흔적이 무엇인가 하면 양피를 베어서 이것을 너와 나 사이의 언약의 표징으로 한다. 아브라함에게 하나님께서 있는데 이 양피를 가지고 언약을 세우는데 대대로 남자는 집에서 난 자나 혹 너희 자손이 아니요 이방 사람에게서 돈으로 산 자를 무론하고 난지 팔일 만에 할례를 받을 것이라. 이방 땅에서 산 이 노예 이들 안에서도 남자들은 할례를 받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이방인들 안에서도 하나님의 아들들이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 유대인이나 이방인 하니까 자꾸 유대인과 이방인을 나누는데 그것이 아니고 복음이 유대인으로부터 자기 땅인 유대인으로부터 와서 이방인으로 가기 때문에 하나님은 열방입니다. 모든 민족 안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이지 유대인에게만 이루고 이방인은 아니고 지금 나누는데 이 자체가 하늘의 비밀을 몰라서 그렇습니다. 제사장나라의 조상 야곱에게도 이스라엘 열두 지파 자손을 낳는 야곱에게도 하나님께서 동서남북으로 네 자손이 편만하게 퍼진다는 것입니다. 동서남북으로. 지금 우리나라에 이 땅에도 하나님의 종이 있습니다. 그러면 그들을 야곱의 남은 자손이라 칭함을 받는 것입니다. 그러면 피가 피로 그러면 한 번 족보를 따져봅시다. 그러면 지금 우리 피 갖고 다 따지면 첫 사람 아담의 혈통으로 나온 것입니다. 전부. 이 혈통으로 가면 다 가면 다 거기 있습니다. 어디서 나옵니까? 여섯째 날의 사람 네피림은 아니겠죠?
그러니까 너희 집에서 난 자든지 너희 돈으로 산 자든지 할례를 받아야 하리니 이에 내 언약이 너희 살에 있어 영원한 언약이 되려니와. 이 양피 살이 언약인데 이 살이 무엇입니까? 이 살이 무슨 살입니까? 예수님이 성찬 할 때 이것이 내 살이라고 합니다. 이것이 내 생명의 떡이라고 합니다. 내 살과 피를 먹으라고 했습니다. 이 살은 바로 그리스도의 말씀입니다. 새 언약의 말씀. 예수님의 몸이라는 말입니다. 예수님의 몸. 영생의 떡이라는 말입니다. 영생의 떡. 이것이 계시. 왜냐하면 이 당시에는 지금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으로 택했지만 이 당시는 하나님이 율법이나 복음이나 두 언약을 제정하지도 않았습니다. 장차 이 모든 것은 예수그리스도를 계시한다는 말입니다. 예수그리스도.
할례를 받지 아니한 남자 곧 그 양피를 베지 아니한 자는 백성 중에서 끊어지리니 그가 내 언약을 배반하였음이니라. 이 생명의 떡을 먹지 못한 자들은 어떻게 됩니까? 남자의 부활생명이 될 수가 없습니다. 왜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으로 세웠는가 하면 이 아브라함을 통해서 이제 생명나무의 실과들이 이 땅에 열매 맺혀야 되기 때문입니다. 그 약속이 있었고 횃불언약의 약속이 있었고, 할례언약의 약속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 여러분과 저는 이 약속에 의해서 우리가 이 열매가 나오는 것입니다. 지금. 그러면 여러분들이 지금 그 할례를 받았다는 의미가 하나님께서 이 살을 먹은 자. 이 살을 양피를 베어서 가진 자. 이 자가 누구냐? 우리가 바로 예수그리스도의 말씀을 먹어버렸다는 것입니다. 그 먹었다는 의미는 성령이 와서 우리에게 기름을 부어주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남자의 부활생명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놀라운 축복이 우리에게 임한 것입니다. 믿으십니까?
그래서 이 남자를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1장 3절에 그랬습니다. 이 남자가 할례 받으라는 이 남자가 바로 남자의 머리이신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몸이 남자의 부활생명이다. 왜 그리스도의 몸이냐? 이 남자의 부활생명이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먹은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지체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이 놀라운 축복이 저희들에게 임했다는 말입니다. 할렐루야. 그렇습니다.
어쨌든 우리가 율법이전시대나 율법시대나 모두가 다 이 생명의 실과들 생명나무의 실과들은 절기를 다 통과해야 됩니다. 그러면 우리는 지금 이 땅에 지금 사는 우리 시대가 성경의 예언을 보면 마지막 대 희년의 세대가 왔고 이제 끝에 끝자락에 왔는데 지금 이 땅의 현대교회는 절기가 무엇인지, 할례가 무엇인지 아는 것이 없습니다. 그러면 지금 그들에게는 비전이 없습니다. 그들이 무엇을 전할 수 있겠습니까? 이 땅에. 빛을 전하겠습니까? 무엇을 전하겠습니까? 광야에서 다 죽는 것입니다. 전부 다. 광야에서. 그러면 지금 하나님께서 그러면 이 땅에 추수 때가 다 되었는데 다 그냥 묻어버립니까? 이제 이 절기를 통과하는 빛의 아들들. 하늘에 속한 교회들이 등장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이 하늘에 속한 교회들이 등장해야 여호와의 영광이 그들의 머리 위에 임해 있는 것입니다. 그들이 빛을 발할 때 이 어두움 가운데 빛을 발할 때 열방이 회복되는 것입니다. 이 놀라운 축복이 우리에게 임했다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이제 이 진리가 증거 되어 나가게 되면 이 땅에 있는 제단에서 묶여 있는 그 영의 생명들. 또 선악과 중에서도 선의 열매들. 또 너와 네 집에 구원을 이루어야 되니까 그 천국시민들도 이제 이 고구마 뿌리에 끌려나오듯이 끌려나옵니다. 전부다 다 관계 속에서 이 하나님은 너와 네 집을 구원한다는 그 관계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전부 다. 할렐루야. 그러니 우리에게 지금 이 엄청난 사명이 임했고 축복이 임했으니 우리는 반드시 이 그리스도의 할례가 임하게 된 것이고 반드시 절기를 통과함으로써 초실절에 이 부활의 온전한 생명이 되어 나올 때 요셉에게 부어졌던 하늘의 것과 땅의 것이 다 축복이 우리에게 넘칠 줄 믿습니다. 할렐루야. 하나님께 영광의 박수를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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