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은 김우징(金祐徵). 아버지는 상대등 균정(均貞)이며, 제43대 희강왕의 종제(從弟)이다.어머니는 진교부인(眞矯夫人) 박씨이고,
비는 진종부인(眞從夫人)이며.
828년(흥덕왕 3) 대아찬(大阿飡)으로 시중(侍中)에 임명되었다.
831년 면직된 뒤 834년 다시 시중이 되었으나, 이듬해 아버지가 상대등에 임명되자 사임했으며. 836년 흥덕왕이 죽은 뒤,
아버지인 균정과 제륭(悌隆:뒤에 희강왕) 사이에 왕위쟁탈전이 벌어졌을 때
제륭을 추대한 김명(金明:뒤에 민애왕)·이홍(利弘) 등과 싸웠으나 아버지가 전사하는 등 대패하자 김양(金陽)과 함께 청해진(淸海鎭)의 장보고(張保皐)에게 도망갔다.
희강왕이 자살하고 민애왕이 즉위하자 우징은 838년 장보고의 도움으로 군사 5,000여 명을 이끌고 진격하여 민애왕의 군사를 물리치고 839년 즉위했다.
즉위 후 할아버지를 혜강대왕(惠康大王), 아버지를 성덕대왕(成德大王),
어머니를 헌목태후(憲穆太后)로 각각 추봉했다.
또한 자신의 즉위에 공을 세운 장보고를 감의군사(感義軍使)에 임명했다.
그러나 즉위한 지 3개월 만에 죽었다 (백과자료)...
첫댓글 자료 올리는 중
안타깝네요 즉위 3개월만에 죽다니 어떻게 오른자린데....?
3개월만에 죽어서인지 왕릉이 너~무 초라하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