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적 유혹에 맞서려면 부모-자녀가 함께 올리사랑(효도)을 해야 한다
성적 유혹은 에덴동산에서 시작되었다. 하나님은 말씀-원리-천도-천륜-천법-규범의 힘보다 사랑의 힘을 더욱 강하게 창조하셨다. 하나님은 심정의 본체이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부모로서 사랑하고 싶어서 견딜 수 없는 충동에 의해 사랑할 수 있는 대상, 자녀가 필요해서 하나님의 신상과 신성을 그대로 닮은 자녀를 창조하셨다. 인간조상 아담과 해와는 절대 주체자 부모이신 하나님 앞에 절대 대상자로서 올리사랑하는 자녀가 되지 못하였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향한 내리 사랑(아가페적 사랑)은 절대적이었고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이 크고, 넓고, 높고, 깊은 강력한 사랑을 천사장이 부러워서 시샘할 만큼 부어주셨다. 하나님의 강력한 사랑의 품안에서 있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성장과정a, 즉 사랑이 커나가는 과정에 있었으므로 그 사랑을 감지하지 못하고 항상 옆에 있는 사탄, 루시퍼의 자기 중심한 달콤한 횡적사랑에 유혹되어 성적 타락을 한 것이다.
사탄이 자신의 욕구충족을 위해 해와를 그 도구로 이용하려는 강력한 유혹에 이끌리어 해와의 자기 중심한 육심의 성적 욕구와 상대기준이 조성됨으로써 불륜의 사랑의 힘이 하나님과 올리사랑으로 주고받는 힘보다 강렬하여 타락하고 말았다.
해와가 하나님을 중심한 참사랑의 올리사랑을 하게 되면 육심(성적욕망)은 생심(정, 지, 의, 사랑)을 자연스럽게 따르게 되어 있다. 또한 참사랑을 중심한 육심의 성적욕망은 성스러운 것이 된다. 때가 되어 하나님의 축복아래 부부를 이룬 성적욕망은 하나님이 거할 수 있는 성스러운 자리이다.
그렇다면 해와가 올리사랑을 하지 못하여 육심이 생심보다 더욱 강력하여 타락하게 된 이유가 무엇일까?
하나님의 창조원리는 상대에게 정성을 드리는 것만큼 주체-대상관계의 수수작용이 일어나서 힘이 창출된다. 하나님은 해와에게 지극히 정성을 드렸으나 해와가 하나님과 올리사랑으로 수수작용을 하는 것보다 육심의 욕망을 자극하는 천사장과 횡적 상호작용을 더욱 강하게 하여 천사장-해와의 관계가 더욱 친밀해졌기 때문이다.
자주 만나고 대화하고 정을 나누게 되면, 자기 중심한 불륜한 사랑이었으나 불륜의 사랑의 힘이 나오게 된다. 그러므로 결국은 깨어질 관계이지만 만날수록 정이 들고 더욱 친밀한 관계로 무르익게 되었다.
만일 해와가 하나님께 감사하고 천사장보다 하나님과 더욱 자주 만나고, 대화하고, 질문하고, 의논하고, 보고하고, 접촉함으로써 올리사랑을 하였다면 하나님과 주고받는 생심적 사랑의 힘이 강력하여 더욱 빠르게 사랑 완성하였을 것이다. 해와는 성장과정에 있었으므로 하나님이 귀찮을 정도로 하나님을 졸졸 따라다니기만 했어도 그것이 올리사랑이다.
하나님은 해와가 그렇게 하기를 간절히 고대하셨다. 그러나 강요할 수는 없었다. 인간이 스스로 그렇게 하길 기다리셨다. 해와가 올리사랑을 했다면 하나님-해와 관계의 친밀한 사랑의 힘에 의해 천사장의 성적 유혹을 의식적으로 자기 통제할 수 있었으며, 천사장이 자신의 욕구를 채우기 위해 해와를 유혹의 도구로 이용하는 것에 맞서는 힘이 있었을 것이다.
해와는 천사장과 자주 보고, 마주 대하고, 눈길을 주고받고, 손을 맞잡고, 함께 어떤 일을 시도하고, 스킨쉽을 함으로써 천사장과의 횡적 사랑이 더욱 빠르게 성숙하게 되었다. 그 친밀함이 해와의 생심보다 육심의 욕구, 성적 욕구를 촉발하게 되었으며. 결국 천사장과 성적 관계를 맺게 된 것이다.
청소년들이 남녀의 친구를 사귀는 것은 만나서 함께 식사하고, 음악 듣고, 영화보고, 노래방 가서 노래하고, 함께 거닐면서 차츰 정이 들어 이성의 싹이 트고 서로 문자로 채팅하면서 문자가 오지 않으면 기다리게 되고 일과가 그렇게 서로 함께 지내면서 두 사람 관계에 정이 자라게 된다.
우리는 밥 한번 같이 먹는 것이 어때서? 영화 한번 같이 본 것이 문제인가? 라고 쉽게 생각하게 되지만 그렇게 단둘이서 함께하였다는 사실이 정의 실적으로 쌓이게 됨으로써 이성 간에 친밀함이 성장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친구사이에 식사도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다.
아무리 식사를 같이 해도 정서적으로 통하지 않는 대상이 있는가 하면, 두 사람 사이에 제삼자가 개입하는 것이 싫고, 단둘이만 있고 싶고, 둘이만 밥 먹고 싶고, 둘이만 데이트하고 싶은 대상이 있다. 이 경우가 이성 간에 정서적으로 통하고 사랑이 싹트는 관계이다. 이 관계는 손도 잡고 싶고, 포옹도 하고 싶고, 스킨쉽의 충동도 일어나는 관계이므로 성행동으로 쉽게 옮겨갈 수 있다.
인간의 뇌신경은 어떤 대상을 접하면 접할수록 각인이 되어 그것에 익숙해지고 익숙해지면 좋아지게 된다. 우리가 아는 음악이 흘러나오면 좋아서 절로 따라서 흥얼거리게 되고, 운동이나 게임도 그 규칙을 모르고 관람할 때보다 알고 관람하면 훨씬 재미있고 즐거운 이유이다.
올리사랑이 왜 중요한가? 우주의 근본원리가 하나님-인간관계가 부자관계이기 때문이다. 부자관계의미는 부모는 주체의식(내리사랑-자애)을 갖고 자녀는 대상의식(을리사랑-효도)으로 서로 수수작용 할 때 사랑의 힘이 발생하여 부자관계가 친밀해진다. 부자관계의 친밀함의 터전 위에서 횡적사랑의 친밀함이 정착하면 건강한 사랑이상이 이루어진다.
올리사랑(효도)이란 대상의식으로써 주체 앞에 감사하며, 겸손하고, 순응하는 것이다. 자녀가 대상의식을 갖도록 교육하기 위해서 첫째로 부모가 먼저 하나님과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대상의식을 가지고 항상 감사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모습을 솔선수범 하는 것이다.
감사한 마음을 습관화하기 위해서는 부모-자녀가 함께 감사한 내용을 10가지씩 기록 한다. 생각이 잘 안 나는 것을 생각하다보면 “아! 그것도 감사한 일이구나!” 라고 깨닫게 되며, 그렇게 하다보면 마음속에서 진심으로 울어나는 감사함이 몸에 배게 된다.
둘째는 겸손한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교육한다.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은 우주의 삼라만상을 보면 지극히 작은 것이고, 자신이 잘하는 것도 지극히 작은 부분이므로 조금 안다고, 조금 잘한다고 우쭐대는 것은 타락성의 교만심의 발로이다. 자녀들이 무엇인가 잘하면 잘할수록 격려해주되 우쭐대지 않도록 주의를 주어야한다.
셋째는 주체 앞에 순응하는 태도를 키워야한다. 인간에게 주체는 하나님이요, 부모요, 말씀이요, 천륜이다. 이 주체 앞에 절대신앙, 절대사랑, 절대복종하는 삶을 훈련해야한다. 이것은 양심교육이요, 사랑교육이다. 당연히 부모가 먼저 솔선수범하여 하나님과 말씀, 천륜 앞에 절대 신앙, 절대사랑, 절대복종하는 모습으로 살아가야 한다.
교육학에서 보고된 바에 의하면 가정에서 부모가 실천하는 모델적 삶을 보고 자녀가 무의식적으로 배운다. 이 무의식교육이 75%의 교육효과가 있으며, 말로 교육하고 훈육하는 것은 25%정도 교육효과가 있다고 연구결과가 보고되었다. 그러므로 자녀들이 올리사랑을 하기를 바란다면 부모가 먼저 하나님을 섬기고 할머니, 할아버지를 섬기는 올리사랑을 실천하는 길이 가장 빠른 생명력 있는 교육이다.
자녀와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려면 가장 중요한 것들 중에 대화를 빼놓을 수 없다. 자녀와 대화를 자주 나누는 것이다. 대화를 자주해야하는 것을 알지만 실제로 잘 안 되는 경우가 많다. 먼저 하나님께 매 순간 기도로 질문하고 보고하고 상의하는 습관을 생활화하는 것이다. 다음은 부모-자녀가 대화를 나눈다. 부모-자녀가 대화나누기가 멋쩍으면 할 말을 종이에 기록을 하여 지정된 바구니에 담아 놓도록 서로 약속한다.
또는 지정된 장소에 의자를 놓아두고 그곳에 부모나 자녀가 앉으면 서로가 할 말이 있다는 것을 알아채고 부모나 자녀가 다가가서 이야기를 건넨다. 자연스럽게 부모-자녀가 대화를 자주하는 분위기를 조성하여 자녀의 욕구가 무엇인지, 감정이 어떠한지 민감하게 대응해야할 것이다. 부모가 자녀의 마음의 욕구를 터치해줄 때 자녀의 마음이 열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도저히 들어줄 수 없는 잘못된 자녀의 욕구는 서로 대화를 통해서 풀어가야 할 것이다.
다음은 말씀훈독을 생활화한다. 말씀의 힘은 양심의 생활을 하도록 이끄는 힘이 있다. 말씀에 의해서 천륜을 벗어나지 않으려는 에너지가 솟아난다. 말씀은 사람의 인격을 변화시키는 힘이 있다. 말씀 따라 실천할 때 진리 안에서 자유를 느낄 수 있다.
가정에서 각자 생활시간대가 달라서 매일 훈독하기 어려우면 일주일에 한 번이라도 꾸준히 하면 효과가 크다. 가족끼리 둘러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대단히 소중한 시간이기 때문이다. 가족끼리 상의하여 함께 둘러앉아서 짧게라도 훈독하고 읽은 것에 대해 느낌과 자기 생각을 이야기하고 실생활에서 무엇을 변화시킬 것인지 구체적으로 한 가지씩 정하여 실천에 옮긴다.
실천이 잘 이루어지지 않으면 핀잔하지 말고 격려하며 기다려준다. 아이의 성장은 때가 있기 때문에 부모가 서두른다고 되지 않는다. 기다리는 것도 사랑이다. 그 아이의 눈높이에 맞도록 기다려주는 것이 아이를 위하는 것일 때가 있다. 하나님이 지금까지 우리의 성장을 위해 그토록 긴 세월을 기다려주시고 계신다.
청소년들이 순결할 수 있는 힘은 부모-자녀의 친밀감과 말씀의 힘에서 나온다는 것을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하다. 부모-자녀의 친밀한 관계에서 자녀의 올리사랑이 가능하며 올리사랑(종적사랑의 실천)을 하는 자녀는 순결한 삶(천륜의 실천)을 살 수 있다.
에덴동산에서 짧은 기간이었으나 타락하기 전에 인간이 생심과 육심의 밸런스를 이루었던 본심이 작용하는 기간이 있었다. 그 때로 우리가 돌아가면 된다. 우리는 해와가 타락한 이유와 그것을 회복하는 방안을 알기 때문에 본연의 하나님-인간관계의 친밀한 관계로 회복할 수 있다.
부모-자녀의 친밀감이 밀착되어 있는 자녀들은 자신의 성적 욕구를 의식적으로 유보할 수 있는 힘이 있다. 그리고 정적 유대관계가 있으므로 정이 고프지 않아서 대중매체를 통하여 성적 충동을 느끼는 유혹을 이길 수 있는 용기가 있다. 또한 자신의 성적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 남을 이용하려는 유혹에 맞설 수 있는 에너지가 축적되어 있다. 그래서 인류가 모두 올리사랑을 할 수 있으면 절대 성을 완성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