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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예수를 믿으십니까?
-이기호 목사
감사합니다 이 작은 체구에 그냥 야무진 아주 감동적인 찬양이 참 은혜 많이 받았습니다.
한 주 동안 다 평안하셨죠? 오늘 하나님 말씀 요한복음 6장 24절부터 27절까지 또 66절부터 69절까지 말씀 우리 함께 교독하시겠습니다.
제가 먼저 읽습니다. 우리가 거기서 예수도 안 계시고 제자들도 없음을 보고 곧 베드를 타고 예수를 찾으러 가보나옴으로 가서
바다 건너편에서 만나 랍비여 언제 여기 오셨나이까? 하니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오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썩을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인치신 자니라.
이제 66절 봅니다. 그때부터 그의 제자 중에서 많은 사람이 떠나가고 다시 그와 함께 다니지 아니하더라.
예수께서 12 제자에게 이르시되 너희도 가려느냐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되 주여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이까
우리가 주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이신 줄 믿고 알았사옵나이.
아멘. 이것이 우리 모두의 고백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전도회를 앞두고 저는 오늘 이 시간에 여러분들과 함께 아주 본질적인 문제를 가지고 하나님 말씀의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여러분 질문 한번 좀 드릴까요? 우리가 이미 신앙을 한 사람이지만 누군가가 여러분에게 특별히 믿지 않은 누군가가 여러분에게 당신은 왜 예수를 믿으십니까? 당신이 도대체 예수를 믿는 목적이 뭡니까라고 물으시면 여러분은 뭐라고 대답하시겠습니까? 여러분이 예수 믿는 이유가 어디에 있어요? 아마 각자가 아마 다 있을 거라고 생각됩니다.
제가 한 번은 성경을 가르치면서 잘 아는 집사님들에게 똑같은 질문을 드린 적이 있습니다.
집사님 집사님은 왜 예수님 믿으세요? 이렇게 여쭤봤어요.
그랬더니 어느 집사님이 이제 한 집사님이 말씀하신 목사님 예수 믿으면 든든하잖아요.
힘들고 어려울 때 누군가 나를 도와주시고 지켜주시는 분이 있다는 게 얼마나 감사합니까? 그래서 저는 예수 믿습니다.
그렇게 말씀하세요.
또 어떤 집사님은 목사님 저는 제가 누군가에게 터놓고 기도할 수 있는 대상이 있다는 게 그렇게 좋아요.
그분이 예수님이라는 사실이 그렇게 행복합니다.
또 그렇게 말씀하세요. 그리고 어느 집사님은 저는 예수님을 생각하면 마음이 편안해져요.
삶의 모든 근심 걱정이 사라집니다. 그래서 저는 예수님 믿습니다.
이렇게 말씀을 하세요. 여러분 어떻습니까? 여러분은 어떤 이유 때문에 예수를 믿으십니까? 제가 우리 집사님들의 대답이 틀렸다는 말이 아니에요.
다 옳은 말씀입니다. 예수 믿으면 마음이 든든해지고 편안해집니다.
세상의 염려와 건친 걱정이 다 사라집니다. 세상이 알지 못하는 기쁨과 행복이 우리 안에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저는 이러한 이유들이 우리가 예수를 믿어야 하는 궁극적인 이유는 될 수 없다고 저는 생각을 해요.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가 이러한 동기와 목적을 가지고 예수님을 믿다가 어느 날 갑자기 질병이 오고 고난이 오고 삶의 어려움을 만나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렇게 믿어왔던 주님께 아무리 기도하고 부르짖어도 아무런 기도 응답이 없고 변화가 일어나지 않으면 여러분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예수 믿어도 마음의 평안이 없고 삶의 문제들이 해결되지 않으면 여러분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오히려 예수 믿는 것 때문에 고난이 오고 핍박이 있으면 여러분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대부분의 사람들이 예수 믿다가 어려운 일을 만나면 가장 먼저 누구 벌입니까? 예수님을 포기합니다.
신앙을 포기해버려요. 그러므로 우리가 올바른 동기와 목적을 가지고 예수님을 믿는 것 대단히 중요합니다.
대단히 중요한 문제예요. 어찌 보면 우리 신앙의 사활이 걸린 문제예요.
오늘 여러분 이 질문은 구도자들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이미 신앙을 하고 있는 우리 모두에게 대단히 중요한 질문이에요.
오늘 이 시간 말씀을 들으시면서 나는 과연 왜 예수를 믿는가 한번 여러분 신앙을 다시 한 번 점검해 보시는 시간을
갖게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일찍이 남편을 여기고 혼자서 외아들을 키우셨던 한 집사님이 계셨습니다.
이분은 대부분 어머님들이 그렇지만 애비 없는 자식이라는 소리를 듣지 않게 하기 위해서 아주 반듯하게 키우셨어요.
그래서 그 아들이 꽤 좋은 대학을 나와서 좋은 직장에 취직을 했습니다.
돈을 아주 잘 벌어요. 근데 문제가 뭡니까? 돈은 잘 버는데 아들이 뭐를 잘못해요 신앙을 잘 못하는 곳입니다.
그래서 집사님의 소원은 다른 거 볼 거 없고 그저 우리 집안에 신앙 좋은 며느리 하나 들어와가지고 우리 아들이 신앙생활 잘했으면 좋겠다 그게 꿈이셨어요.
날마다 그 일을 위해서 기도하셨어요. 세월이 지났습니다.
제가 몇 년 세월이 지난 다음에 우연히 그 집사님을 다시 만났어요.
집사님과 반갑게 인사를 나눈 다음에 제가 인사를 드렸어요.
아드님 잘 계시지요? 혹시 결혼을 하셨나요? 이렇게 물어봤어요.
그랬더니 갑자기 집사님 얼굴이 금방 굳어지시더니 아유 목사님 말도 마십시오.
요즘 그것 때문에 얼마나 속이 상한지 모르겠어요.
그렇게 말씀하세요. 제가 물었습니다. 아니 그게 무슨 말씀인가요? 혹시 뭐 결혼이 잘못되기라도 했습니까? 아니 그게 아니에요.
우리 아이들 때문에 아주 골치가 아픕니다. 왜 그러시는데요? 그랬더니 집사님이 속에 있는 이야기를 하세요.
집사님이 같은 교회에 아주 신앙생활 잘하고 청년 활동 잘하는 여청년이 있어서 이 청년이면 되겠다 싶어가지고 자기 아들하고 이렇게 사귀게 했답니다.
결혼을 했어요. 근데 결혼하고 나니까 아니에요.
봉사하기는 커녕 예배를 소홀히 하기 시작하고 안식일날도 겨우 예배만 드리고 그냥 도망가기가 바쁘다는 것입니다.
하루는 안 되겠다 싶어서 이제 시어머니가 앉혀놓고 얘기했답니다.
얘야 그래도 니 남편보다 니가 더 신앙이 좋지 않냐? 여자는 남자 남자는 여자하기 나름이다.
제발 니 남편 좀 제대로 붙잡아놓고 신앙생활 잘하게 좀 그렇게 해라.
왜 옛날에는 그렇게 열심히 신앙 하더니 왜 이렇게 요즘에는 그렇게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지 않는 거냐 그렇게 했더니 며느리의 대답이 가관이 아닙니다.
물론 우스갯소리로 한 얘기겠지만 이렇게 얘기하더라는 거 아니? 어머니 제가 뭐 예수 믿으려고 교회 나간 줄 아세요? 좋은 신랑과 만나려고 교회에 다녔죠 그렇게 얘기하더라고 웃으면서 미칠 지경이라는 거예요.
목사님 제 아들을 위해서 좀 기도해 달라고 참 많은 것들을 생각나게 해주는 이야기입니다.
여러분은 왜 예수 믿으십니까? 여러분이 신앙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오늘 주님은 우리가 올바른 동기와 목적을 가지고 예수님을 믿게 되기를 원하십니다.
그것이 바로 오늘 본문의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에요.
그렇다면 우리가 예수를 믿는 궁극적인 이유는 과연 무언가? 우리가 왜 예수를 믿어야 하는가? 첫째로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이유는요 예수를 믿는 자들에게 우리 주님이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가장 본질적인 이웃이죠.
예수 믿는 자들에게 주어지는 궁극적인 축복은 영생입니다.
죽음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거예요. 그러면 여러분 우리가 예수 믿으면 세상 북의 영화가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 믿으면 우리 출세가 보장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 믿으면 우리의 성공이 약속되는 것이 아니에요.
예수를 믿는 자들에게 주어지는 궁극적인 축복은 영원히 사는 것입니다.
죄로 인해서 죽을 수밖에 없는 인생이 예수님을 믿음으로 영원히 살게 되는 것 여러분 이것이 예수 믿는 자들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사람들은 이 영원한 것에 관심이 별로 없습니다. 그죠? 여러분 느껴보시겠지만 대부분 사람들은 그저 눈에 보이는 것으로 만족하고 살아갑니다.
이 땅에서 잘 먹고 잘 살면 그만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는 날 동안 행복하게 살면 그만이지 뭐 죽음 이후에 무슨 삶이 있느냐고 그렇게 얘기합니다.
그들의 관심은 그저 인생이 전부예요. 그래서 그저 사람들의 관심은 뭡니까? 먹고 사는 일에만 매여 있습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그러했어요. 오늘 본문의 배경이 되는 이 사건이 무슨 사건입니까? 여러분, 제가 오늘 본문의 말씀을 읽기 전에 대충 대략적인 배경을 이야기하지 않았습니다만, 본문에 있는 이 사건이 있기 전에 일어난 사건이 무슨 사건입니까? 오병이어의 사건이 주님은 그날 벳세다 들판에서 군중들을 위해서 매우 늦은 시간까지 말씀을 가르치셨어요.
근데 군중들이 주님이 주시는 말씀이 도치돼가지고 이른 아침부터 저녁 늦은 시간까지 밥 먹는 것도 잊어버린 채 주님 말씀을 들었습니다.
드디어 날이 저물기 시작합니다. 해는 서산으로 기울어가고 전형도 우리지고 있었지만 군중들은 도무지 예수님 주위를 떠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우리 주님께서도 하루 종일 말씀을 하시고 잡수시지도 않았기 때문에 피곤과 배고픔에 지쳐 계셨습니다.
그때 제자들이 주님께 이야기합니다. 이제 그만하시라고 무리를 좀 보내셔야 된다고 말씀하셨어요.
그런데 주님은 당신의 말씀을 듣기 위해서 몰려온 이 무리들을 그대로 돌려보내실 수가 없으셨습니다.
그들도 이른 아침부터 저녁 늦은 시간까지 아무것도 먹지 않은 것을 주님이 아셨습니다.
만약에 이 무리를 그대로 보내신다면 배고픔과 허기로 고통당하게 될 것을 주님이 아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잘 아시는 오병이요 그죠? 물고기 두 마리와 떡 다섯 덩어리로 몇 명을 먹이세요? 5천 명을 먹이시는 기적을 베풀어 주셨어요.
여러분, 성인만, 남자만 5천 명입니다. 그렇다면 여자들과 어린아이들까지 포함하면 적어도 1만 명이 좋기 넘는 엄청나게 많은 무리를 먹이신 것입니다.
그날 베풀어주신 오병이의 기적은 수많은 무리들을 놀라게 했습니다.
주님이 공생애 기간 중에 수없이 많은 기적을 베풀어 주셨지만, 같은 기간 안에 같은 장소에서 이렇게 수많은 백성들을 향해서 기적을 베풀어주신 건 처음 있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자리에 모여 있던 군중들이 흥분하기 시작했습니다.
주님이 바로 그들이 그토록 기다리던 메시아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모세가 말씀하신 바로 그 선지자가 그들 가운데 오신지도 모르겠다고 그들은 생각한 것입니다.
군중들의 소망은 점점 부풀어 올랐습니다. 이분이야말로 이 나라를 지상의 낙원으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만들어 주실 수 있는 분이시다.
이분이야말로 우리의 배고픔과 굶주림을 해결해 주실 수 있는 분이시다.
이분이야말로 이 나라를 로마의 압제로부터 해방시켜주실 수 있는, 우리가 기다리던 메시아라고 기대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그 자리에 모여 있던 군중들이 예수님을 어떻게 하려고 그랬어요 이스라엘에 뭘로 세우려고 합니까? 왕으로 초대하려고 했습니다.
우리 영감의 글에 보면 이 모든 일에 누가 앞장을 섰다고 그랬습니까? 예수님의 제자들이 앞장을 섰다고 그랬습니다.
그때 우리 예수님께서는 아주 단호하고도 엄숙한 목소리로 당신의 이스라엘의 왕이 되시는 것을 거절하셨어요.
그리고 무리를 흩어버리십니다. 선동하는 제자들을 재촉해서 먼저 가보나옴으로 건너게 하시고 당신은 홀로 남아서 무리들을 흩어버리셨습니다.
그리고 따로 기도하시러 산으로 올라가셨습. 여러분 이것이 바로 어저께 일어났던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다시 새날이 밝아오자 흥분한 무리들이 또다시 주님이 홀로 남아 있던 베사사들욕으로 모여들기 시작했습니다.
무수한 백성들이 예수의 소문을 듣고 걸어서 또는 배를 타고 주님께로 모여들었습니다.
그런데 우리 주님은 그 자리에 계셨어요 안 계셨어요? 계시지 않았습니다.
그 전날 밤 주님은 갈릴리 바다를 걸어서 제자들이 탄 배에 오르신 다음에 제자들이 탄 배를 잔잔케 하시고 제자들과 함께 갈릴리 바다를 건너서 가바나으로 건너오신 곳입니다.
드디어 우리 예수님께서 가버나움의 한 회당에 계시다는 소문을 듣고 무리들이 그곳까지 주님을 찾아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드디어 그들이 기다리는 누구를 만나요
예수님을 만나게 된 그것이 오늘 본문이 시작되는 바로 이야기입니다.
그때 주님께서 흥분한 군중을 향해서 하신 첫마디가 무엇이었습니까? 이런 말씀 뭐 하세요? 요한복음 6장 26절 27절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나를 찾는 곳은 뭐를 본 까닭이 아니고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오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썩을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말씀하셨어요.
여러분 이게 무슨 말입니까? 너희들이 나를 찾는 동기가 잘못됐다는 말씀이에요.
너희들이 나를 찾아온 이유를 나는 안다는 것이에요.
그것은 너희가 내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인 표적을 보았기 때문이 아니라 떡을 먹고 배부르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신 거예요.
그러나 그것이 나를 찾는 동기와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시는 것이 그러면서 그들에게 뭐라고 말씀하셨어요? 썩을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해서 하라고 말씀하셨어요.
이게 무슨 말입니까? 그저 배부르기 위해서 나를 믿으려고 하지 말라는 말씀이에요.
이 땅의 부귀와 영화를 위해서만 나를 찾지 말라는 것입니다.
보다 영원한 삶을 위해서 나를 믿으라고 말씀하시는 것이에요.
그것이 우리가 주님을 믿는 동기가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주님을 믿는 목적이 여기에 있어요.
예수 그리스도 그분 안에 오늘 우리에게 뭐가 있어요? 영원한 생명이 있기 때문에 우리가 주님을 믿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요한복음 6장 35절에서 같이 읽습니다.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예수께서 시작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줄이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여러분 여기서 주님은 당신 자신을 가리켜서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생명의 떡이라고 말씀하셨어요.
이 생명의 떡이라고 하는 말씀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는 떡이라는 말씀이에요.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위해서 하늘로부터 내려오신 떡 바로 그분이 누구라는 말씀이에요? 예수 그리스도시라는 말씀이죠.
그것이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목적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죠.
주님은 당신이 오신 목적을 이 비유에서 분명히 말씀하셨어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서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40절 같이 읽어볼까요?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그렇다면 여러분 우리가 예수 믿는 이유가 분명해지지 않습니까? 우리가 주님을 믿는 이유는 배부르기 위해서 믿는 거 아닙니다.
그저 마음 편해 보자고 믿는 거 아니에요 이 땅에서 잘 살아보자고 예수 믿는 건 더더욱 아닙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는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그분 안에 예수 그리스도 안에 영원히 죽지 아니할 생명이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가 떡을 먹음으로 육신의 생명을 유지할 수 있게 되는 것처럼 예수를 믿음으로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기 때문에 주님을 믿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뭐가 있다고 말씀하세요? 생명이 있고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다고 말씀하신 그래서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요한복음 6장 48절, 51절에서 다시 이렇게 말씀하세요.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라. 너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어도 죽었거니와 이는 하늘에서 내려온 떡이니 사람으로 하여금 먹고 죽지 아니하게 하는 이것이니라.
51절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있는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여러분 이 약속을 믿으십니까? 우리가 이 약속을 믿고 예수 믿게 된 거 아닌가요? 이것이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궁극적인 이유 아닙니까? 근데 여러분 영감에에 보십시오.
그 많은 군중들이 주님께서 있었는데 그들을 향하여 주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한번 들어보십시오.
사람들은 그리스도께 그들의 조상들이 광야에서 먹은 만나를 가리키면서 마치 그 양식의 공급이 예수께서 행하신 이적보다 더 큰 이적이나 되는 것처럼 말하였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당신이 오셔서 주시고자 하는 축복에 비교해 볼 때 그 선물이 얼마나 보잘 것 없는지를 보여주셨다.
만나는 세상에서의 생존을 보장할 수 있을 뿐 사망의 접근을 방지하거나 죽지 아니함을 보증하지는 못한다.
그러나 하늘의 떡은 영생에 이르도록 영혼에게 자양분을 공급할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죽음 앞에서 여러분 우리의 부의 영화가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내가 아무리 많은 재물을 모으고 세상에 부귀 영화를 누려본들 죽음 앞에서 그런 것들이 우리에게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결국 우리가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가 버린 인생이라면 우리가 이 땅에서 누리고 사는 이 모든 것들이 우리에게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그저 우리는 한 줌의 흙에 불과한 존재들이 그래서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것 아니겠습니까? 예수 안에 영원한 생명이 있음을 믿기 때문에 주님을 믿는 것이지.
이탈리아 우르바노라고 하는 대학에 가면 그 대학 정문에 이런 간판이 붙어 있다고 합니다.
뭐라고요? 그리고 “그 다음에는” 이 간판을 이렇게 하게 된 이유가 있답니다.
로마에 살고 있는 한 젊은이가 큰 꿈을 안고 이제 공부를 하게 됐습니다.
그런데 가난에서 뜻을 이룰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그
도시의 독재가였던 한 유명한 할머니를 찾아갔습니다.
그 부탁을 합니다. 할머니, 저는 꿈이 있는 젊은이입니다.
학창 시절에만 저를 잘 도와주시면 반드시 은혜를 제가 갚겠습니다.
그렇게 이야기했어요. 그랬더니 할머님이 이 청년의 부탁을 듣고 할머니가 물었습니다.
그래 젊은이가 앞으로 어떤 계획을 갖고 계십니까? 물었어요.
그랬더니 젊은이가 대답합니다. 우선 법과대학에 들어가서 열심히 공부하고 싶습니다.
그랬더니 할머니가 말해요. 그리고 그다음에는 대학을 졸업한 다음에는 변호사가 돼서 제가 가난한 사람들 편에서 훌륭한 일을 하겠습니다.
그리고 그다음에는 그리고 그다음에는 변호사 사업을 좀 더 확장해서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제가 좋은 일을 하겠습니다.
할머니가 다시 대답합니다. 그리고 그다음에는 순간 이 젊은이는 말문이 막혔습니다.
뭐 그리고 그다음에는 늙겠지요 하지만 할머니 저는 늙어서도 제자들을 교육하고 더 많은 일을 봉사할 겁니다.
다시 묻습니다. 그리고 그다음에는 머리를 긁적이던 젊은이가 대답합니다.
뭐 그다음에는 죽겠죠 그리고 다시 묻습니다. 그리고 그다음에는 청년이 할 말이 없어요.
그때 할머니가 이 젊은이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대요.
나는 인생의 마지막도 모르는 사람을 위해서 단 한 푼도 투자할 수 없어.
이 할머니와의 만남이 젊은이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고 합니다.
그는 그 할머니와의 만남이 있은 이후에 자기 인생의 문제를 진지하게 생각하게 되었고 마침내 죽음 앞에서 자기가 아무것도 아님을 깨닫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는 예수님을 개인의 구주로 영접하게 되었고 죽음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 이후에 젊은이가 크게 성공해서 로마에 큰 대학을 세우게 됐는데 그가 세운 대학의 정문에 뭐라고요? 그리고 그 다음에는 이렇게 적게 되었다는 그런 말씀이에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다시 여러분에게 묻겠습니다.
여러분은 왜 예수를 믿으십니까?
예수님을 믿는 자들에게 영원한 생명이 약속되어 있음을 믿으시게 되길 간절히 바랍니다.
그저 주님은 우리에게 먹을 양식을 주시기 위해서 이 땅에 오시지 않았어요.
주님은 우리가 잘 살게 하기 위해서 이 땅에 오신 것이 아닙니다.
그저 주님은 우리가 이 땅을 살면서 건강하게 살도록 우리에게 오신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에요.
주님이 하늘 영광의 보좌를 버리시고 이 땅에 오신 이유는 죄 없으신 그분이 십자가 위에서 우리가 죽을 영원한 죽음을 대신 죽으시고 오늘 여러분과 저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셨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그럼 누구든지 그분을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분명해지죠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이유는 죄로 인하여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 인생의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고 우리가 예수 안에서 영원히 살게 되는 복을 누리게 되기 때문인 것입니다.
오늘 이것이 여러분과 제가 예수님을 믿는 궁극적인 이유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둘째로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이유는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 인생의 근본적인 아주 궁극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기 때문에 그래요.
여러분 우리가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이 참 많잖아요 이 죄 문제 우리가 조금 전에 다뤘습니다만 이 죽음의 문제 이 사단의 시험과 유혹의 문제 그죠? 이 모든 것들이 다 인간의 힘으로는 불가능합니다.
영생을 얻는 문제도 마찬가지죠. 여러분 우리 노력으로 영생을 얻을 수 있나요? 우리 행함으로 우리가 구원받을 수 있습니까? 아니죠 누구를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우리가 구원에 이르게 된다고 말씀하셨어.
그래서 여러분 요한복음 6장 28절에 보십시오.
그들이 물어요. 뭐라고 묻는지 보십시오. 그들이 묻되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무슨 일을요?
하나님의 일을 하오리까? 이게 무슨 말인지 서 안 와닿으시죠? 이 하나님의 일이 뭐냐? 앞뒤 문맥을 보면 우리로 하여금 영생을 얻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일입니다.
보시면 우리가 영생을 얻기 위해서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느냐고 묻고 있는 것입니다.
아직도 그들은 영생을 얻기 위해서 그들이 지금 무언가 스스로 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마치 부자 법관처럼 내가 영생을 얻으려면 뭘 해야 합니까? 지금 그렇게 묻고 있는 것입니다.
그때 주님께서 그들에게 뭐라고 대답하세요? 29절 말씀 같이 읽습니다.
시작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께서 보내신 일을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그랬어요.
여러분 무엇이 하나님의 일이라고요? 하나님이 보내신 자를 믿는 것 이 하나님이 보내신 자가 누굽니까? 예수 그리스도시죠 그죠? 그분을 믿는 것이 곧 영생을 얻는 비결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의 행위가 아니라 우리의 노력이 아니라 하나님이 보내신 자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영생을 값없이 선물로 주시는 곳이라고 말씀하시는 거예요.
그것이 곧 하나님의 일을 하는 곳이라고 말씀하세요.
그러자 다시 그들이 주님께 묻습니다. 뭐라고 질문해요? 그들이 묻되 그러면 우리가 보고 믿도록 행하시는 표적이 무엇이니? 하시는 일이 뭡니까? 무슨 말입니까? 우리가 당신을 믿으려고 하는데 도대체 당신이 정말로 하나님이 보내신 자라고 하는 사실을 믿을 수 있는 뭐를 보여달라는 말이에요? 표적 증거를 보여달라는 말이죠 근데 여러분 그들은 이미 뭐를 본 사람들입니까? 표적을 본 사람들이에요 이미 그들이 예수가 메시아임을 그들 눈으로 본 사람들이에요 확인한 사람들이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그들은 더 큰 표적을 보여달라고 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뭐라고 말합니까? 그 뒷부분에 보면 우리 조상들은 광야에서 뭐 먹었나이다.
무슨 얘기인 줄 아세요 여러분 이 이야기가 당신은 누구보다 못하단 말이에요?
모세보다 못하단 말이에요? 당신은 그저 우리 한 끼 이 수천 명 다 모여가지고 우리가 먹을 양식을 주셨지만 적어도 우리 조상인 모세는 수백만에 이르는 유대 백성들을 뭐예요? 몇 년 동안 40년 동안 먹이셨단 말이에요? 당신이 정말로 하나님이 보내신 메시아라면 고작 이 한 끼 먹여주시는 것 갖고 안 된다는 말이죠 더 큰 표적을 보여달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이 영감이 그는 이렇게 말씀하셔서 들어보십시오.
그들은 메시아에게서 더욱 큰 축복을 기대하였던 것이다.
그들의 불만스러운 마음은 예수께서 저희가 목격하였던 바 그렇게 많은 이적을 행하실 수 있으신데도 어찌하여 당신의 모든 백성에게 건강과 힘과 재물을 주시고 그들을 억압하는 자로부터 해방시키시고 능력과 영예를 주어서 그들을 높이실 수 없을까 하고 의심을 품었다.
예수께서 하나님의 보내신 자라 주장하면서도 이스라엘의 왕이 되시는 것을 거절하신 사실은 그들이 이해할 수 없는 신비였다.
당신이 정말로 하나님이 보내신 자라면 왜 먹을 거 주지 않으시는 거예요? 왜 우리 부자 되게 하지 않으시냐는 말이에요.
이 로마의 악재로부터 왜 우리를 해방시키려고 하지 않으시냐는 말씀이에요.
그러니까 이스라엘 왕이 되는 것을 거절한 것은 그들이 이해할 수 없는 신비였다고 말씀하셨어요.
그때 여러분 보세요. 그때 주님께서 그들에게 하신 말씀이 요한복음 6장 32절 33절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에게 이르노니 모세가 너희에게 하늘로부터 떡을 준 것이 아니라 내 아버지께서 너희에게 하늘로부터 참떡을 주시나니 하나님의 떡은 하늘에서 내려 세상에 뭐 주는 거라고요? 생명을 주는 것이라고 말씀하세요.
이게 무슨 말일까요? 만나러 내리게 한 분이 누가 아니라는 말이에요 모세가 아니라는 말씀이죠 그럼 누가 내리게 하셨습니까? 하늘에서 주셨다고 그랬어요.
하늘에서 주신 분이 누굽니까?
하나님이지요 이 사실을요 영감이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세요.
놀라지 마십시오. 이렇게 말씀하세요.
만나를 주신 분께서 그들 가운데 서 계셨다. 히브리인들을 광야 가운데서 인도하시고 하늘에서 내리는 떡으로 날마다 그들을 먹이신 분은 바로 그리스도 자신이었다.
누구였다고 말씀하세요 누가 만나 내리신 거라고요? 예수님이 그렇게 하신 거라고 말씀하신 거예요.
주님이 그들에게 만나를 내려주셨던 곳입니다. 주님은 그들의 피로를 외면하지 않으시고 굶주림에 지친 백성을 위해서 무려 40년 동안 그들에게 만나를 부어주신 곳입니다.
그러면서 주님은 만나보다 더 소중한 떡을 그들에게 소개하셨어요.
32절 말씀 보십시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에게 이르노니 모세가 너희에게 하늘로부터 떡을 준 것이 아니라 그다음 말씀 보십시오.
내 아버지께서 너희에게 하늘로부터 뭐 주신다고요? 참 떡을 주시나니 이것이 여러분 여기서 말하는 참떡이 누굴까요? 우리 영감 에그리은 만나는 하늘에서 오신 참떡의 표상이었다고 말씀하셨어요.
여러분 이 떡이 누굽니까? 그렇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지금 주님은 만나 사건을 통해서 우리 인생의 참떡이신 예수 그리스도 자신을 소개하고 있는 거예요.
그 떡을 주신 이유가 뭐라고 말씀하셨어요? 33절 하나님의 떡은
뭐라고 말씀하셨어요? 하늘에서 내려 이 세상에 못 주는 거라고요.
생명을 주는 것이니라고 말씀하셨어요. 그때 여러분 이 주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한 무리들 중에 하나가 뭐라고 이야기합니까? 34절에 그들이 이르되 주여 이 떡을 항상 우리에게 주소서 그랬어.
마치 사마리아 여인이 자기 육신의 갈증을 풀기 위해서 다시는 물 길러 오지 않을 생수를 요구했던 것처럼 그들도 지금 그들의 굶주린 배를 채워줄 수 있는 그래서 다시는 배고프지 않을 그 떡을 지금 달라고 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때 주님께서 하신 유명한 말씀이 35절입니다.
한번 읽겠습니다. 다 같이 시작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줄이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그랬어요.
사람들은 보세요. 주님이 떡을 주시는 분이라고 생각했는데
중요한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려요. 군중들은 주님이 떡을 주시는 분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주님은 자신이고 생명의 떡이라고 말씀하시는 거예요.
이게 무슨 말입니까? 여기서 주님은 우리 인간의 가장 본질적인 피로가 무엇인지를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여전히 육신의 양식을 고집하며 다시는 배고프지 않을 떡을 달라고 요구하는 무리들에게 주님은 내가 곧 생명의 떡이라고 말씀하시는 거예요.
나를 먹는 자는 결코 줄이지도 않고 목마르지도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내가 곧 생명의 떡이라는 이 말씀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우리 인생의 진정한 피로는 주님이 주시는 그 무엇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예수 그리스도 그분에게 있다는 말씀이 주님 안에 모든 것이 다 들어있다는 말씀이에요.
예수 그리스도 그분이 우리 모든 것이라는 말씀이에요.
왜 그렇습니까? 그분이 우리를 지으신 분이세요.
그분이 우리를 구속하신 분이십니다. 그분은 지금도 우리의 피로를 채워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분은 천지와 만물을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세요. 그래서 주님은 내게 오는 자를 내가 결코 줄이지 아니할 터이오 나를 먹는 자는 반드시 목마르지 않을 거라고 말씀하세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 인생의 전부이십니다.
그분 안에 우리 인생의 모든 피로가 다 들어 있습니다.
그분을 통해서 우리가 구원받고 영생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한 줌의 떡이나 돈이 아니에요.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 바로 그분이십니다.
왜 그런 줄 아세요? 예수 그리스도 그분 안에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이 다 들어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메마른 땅에서 만나 내리게 하셨던 부분 판석을 쪼개서 물을 내셨던 그분 아무것도 없는 돼지의 말씀으로 생명을 지으신 그분이 오늘 여러분과 제가 믿으시는 하나님이신 것을 믿게 되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그래서 바울은 골로서 2장 9절에서 뭐라고 말씀하세요? 그분 안에는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구하신다고 말씀하세요.
그러므로 이제 우리가 주님을 찾는 이유가 주님이 주시는 그 무엇에 있는 것이 아니라 주님 그 자신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그분 안에 우리의 모든 것이 다 들어있음을 믿게 되시고 그분을 통하여 우리가 생명을 얻고 영생을 얻게 되는 것임을 믿으시게 되길 간절히 바랍니다.
사람은 다 한계를 갖고 있죠 그죠? 자기 스스로의 힘으로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여러 가지 난제를 안고 살아갑니다.
그런데 이런 모든 난제를 풀 수 있는 분은 오직 누구밖에 없습니까? 예수 그리스도 그분밖에 없어요.
한국 대학생 선교회를 세워가지고 청년 복음화에 힘썼던 고 김준근 목사님이 있어요.
그분이 그 책을 쓰신 책 가운데 이런 말이 있어요. 백문 일답이라는 말이 있어요.
백문일답
100가지 문제 중에 한 가지 뭐라는 말이에요? 대답이라는 거죠.
우리 인생에 수없이 많은 문제가 있는 것 같지만 사실 답은 뭐라는 얘기예요? 하나라는 거지 그 답이 누구시라는 말씀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시라는 말씀이 오늘 여러분은 무엇 때문에 고민하고 무엇 때문에 괴로워하십니까? 예수 그리스도 안에 여러분 인생의 해답이 있음을 믿으시게 되길 간절히 바랍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이시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 인생의 전부가 되셔야 돼요.
그분이 주실 그 무엇의 믿음의 어떤 우리의 믿음을 거는 것은 나약한 신앙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 그분만이 우리의 유일한 신앙이 되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우리가 이런 신앙을 갖게 되면요 내 자식이 잘 되고 사업이 잘될 때처럼 내 자식이 못되고 사업이 어려움을 당해도 주님을 믿는 우리 신앙이 흔들리지 않습니다.
우리 몸이 건강하고 튼튼해 절처럼 우리 몸이 병들고 허약해지더라도 우리의 신앙이 변함이 없습니다.
내가 배부르고 부유할 때처럼 가난하고 굶주릴 때에도 주님을 믿는 우리의 신앙이 한결같이 되는 것입니다.
왜요? 우리 신앙이 주님이 주시는 그 무엇에 있는 곳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그분에게 있기 때문에 그래요.
오늘 이것이 우리가 예수를 믿는 궁극적인 이유가 되길 간절히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구조가 되실 수 있기 때문에 그래요.
그렇죠? 우리는 다 연약한 죄인들입니다. 우리도 우리 자신을 알 수 없어요.
그죠? 바람이 불면 흔들리기 쉽고 그 시험이 오면 넘어지기 쉬운 그런 사람들입니다.
우리 스스로가 우리 자신을 구원할 수 없는 나약한 죄인들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누가 필요합니까? 예수 그리스도가 필요한 것이지.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자신을 믿는 것이 아니라 나를 구원하시고 날마다 내 영혼을 새롭게 빚어주시는 예수 그리스도 그분을 믿으셔야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다 예수를 누구로 믿는 사람들이에요? 구주로 믿으시는 사람들이에요.
안타깝게도 오늘 주님의 말씀을 듣던 사람들 중에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주님을 버리고 떠나갔다고 말씀하신 그리고 다시는 주님과 함께 다니지 않았다고 말씀하신 왜 그렇습니까? 이유가 뭘까요? 예수님과 예수 그리스도가 그들의 배부르고 세상 부귀영화를 위해서 오시지 않았다는 그 말씀을 듣고 그들이 실망해서 떠나간 것입니다.
그때 주님께서 사랑하는 12 제자를 바라보시면서 뭐라고 말씀하셨어요? 6장 67절 예수께서 12 제자에게 이르시되 뭐라고요? 너희도 가려느냐 그때 여러분 예수님이 수제자 중에 하나인 베드로가 뭐라고 대답하셨습니까?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 한번 우리 신앙의 고백을 담아 함께 고백해 볼까요? 시작 주여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까? 우리가 주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이신 줄을 믿고 알았사옵나이다.
오늘 이것이 여러분과 저의 신앙 고백이 되길 간절히 바랍니다.
그러니까 여러분 베드로는 주님이 영생을 주시는 분으로 믿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거룩하신 분으로 알았다는 말씀이 여러분 하나님의 거룩하신 분이 누굽니까? 이 거룩이라는 분은 누구에게만 쓰여지는 말씀이에요? 하나님이라는 말씀이죠 하나님이 거룩하시자라는 이 말씀은 베드로가 이미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우리를 구원하러 오신 그리스도요 메시아인 것을 그가 알았다는 말씀이에요.
믿었다는 사실이죠. 우리에게도 이런 신앙이 필요합니다.
들으십시오 여러분 기억하십시오. 그분은 단지 거룩한 삶을 살다 가신 성인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단지 위대한 가르침을 주신 우리의 스승이 아니에요.
예수 그리스도는 여러분과 저의 구주이십니다. 죄와 허물로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를 구원하시러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이십니다.
육신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지만 그분은 죄와 사망에 노예되어 있는 여러분과 저를 구원하러 이 땅에 오신 우리 하나님이세요.
연약하고 넘어지기 쉬운 죄인들을 구원하시러 이 땅에 오신 보이는 하나님으로 이 땅에 오신 분이세요.
한 만 이야기만 드리고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20세기의 위대한 평신도 신학자 가운데 한 사람이 cs.
루이스라고 하는 사람이 있어요. 이분이 한 번은 영국의 유명한 대학인 캠브리지에 가서 설교를 했습니다.
그날 설교 제목은 예수의 구주되심이라는 설교였습니다.
설교를 마치고 이분이 이제 단에서 내려와 있는데 한 학생이 딱 다가오더니 그렇게 질문하대.
만약 오늘 교수님께서 예수가 우리가 본받아야 될 위대한 스승이라고 말씀하셨다면 우리는 다 박수를 쳤을 것입니다.
근데 오늘 교수님께서 예수가 구세주라고 하나 되게 묵은 기독교 신앙의 아주 고리타분한 교리를 말씀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아무 반응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얘기하는 거예요. 이때 루이스 교수가 그 젊은이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자네는 정말로 예수가 우리의 완벽한 모델이라고 생각하나? 그렇지요
그래 그렇다면 완벽한 모델이신 예수님을 우리가 따라가는 것이 정말로 중요하다고 믿나? 당연하지요.
그럼 내가 자네에게 묻겠네. 자네는 완벽한 도덕적인 모델이신 예수님을 완전히 자네가 따라갈 수 있다고 믿는가? 이 젊은이가 머뭇거립니다.
완전하게는 따라갈 수 없겠지 그래 그럼 자네도 자네의 도덕적인 불안전성을 인정하는군.
자네에게도 실수가 있고 죄가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나? 인정합니다.
그때 이 루이스 교수가 그 젊은이를 향해서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그렇다면 자네에게 필요한 것은 도덕적인 모델로서의 예수가 아닐세.
자네의 도덕적인 실패와 죄로부터 자네를 구원해 줄 수 있는 구세주이신 예수가 먼저 필요하다는 죄인에게는 모델로서의 예수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구세주로서의 예수가 필요한 것이네.
구주이신 그리스도를 만난 다음에 비로소 그분은 자네에게 모델이 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알았죠? 그래서 여러분 우리가 예수를 구주로 믿는 것입니다.
그분은 우리가 끊임없이 닮아가야 할 도덕적인 모델이기도 하지만 우리 인생의 실패와 죄로부터 우리를 구원해 주시는 여러분과 저의 구세주이십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영감의 글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들으십시오.
우리는 예수께서 살아계신 구주이심을 믿음으로 우리 자신만을 바라보지 말아야 할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 자신의 은혜와 공로가 우리를 구원하리라고 생각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리스도의 은혜는 우리의 유일한 구원의 소망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완전히 신뢰하고 죄를 용서해 주시는 구주로서 예수님의 공로를 의뢰할 때 우리는 우리가 소망하는 모든 도움을 받게 될 것이다.
저는 이제 말씀을 마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왜 예수를 믿으십니까? 우리는 다 연약하고 부족한 것이 많은 죄인들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도움이 없이는 한순간도 살아갈 수 없는 나약한 인생들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가 끊임없이 주님을 바라보고 신뢰하지 않는 한 우리는 그 누구도 승리할 수 없기 때문에 그래요.
그러므로 사랑 성도 여러분 부디 우리의 구주되시는 예수님만 바라보고 여러분 자신을 바라보지 않게 되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삶의 모든 순간마다 우리의 구조이신 예수 그리스도만을 바라보고 승리하시는 여러분과 제가 되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우리 함께 일어나셔서 찬양하시겠습니다.
나의 자
친구 대신 구주 예수 너는 그의 사랑 알고 있느냐? 그가 나를 바른 길로 이끄시는
다른 친구
할 수 없었던 그
저와 같은 친구도 나 마을 안에서 구원하셨으. 그의 사랑 내가 너의 주를 처음 배웠을 때 나의 마음엔 죄가 가득하.
사랑으로 너를 품에 안으셔서 옳은 길을 내게 가르치셨는 주님 다운 친구는 그와 같은 친구도 나를 죄악에서 구원하셨으니 그의 사랑 그로 매일매일 나의 마음이 새로우 주가 나를 사랑함을 이 새 죽을 나를 구속하신 참된 친구 그와 만날 기쁜 날을 그리네.
주님에게 덤 친구 없네 그와 같은 친구도 없네 를 죄악에서 구원하셨으.
그의 사랑 끝
비록 부화가 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나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의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아버지, 이것이 우리의 고백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가 주실 그 무엇에 우리의 신앙을 거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그분에게 우리의 신앙을 걸고 살아가는 주의 백성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는 연약합니다. 부족합니다. 쓰러지기 쉽습니다.
넘어지고 실수하기 쉬운 존재들입니다. 아버지요 우리를 붙들어 주시옵소서.
우리를 끝까지 이기게 하여 주시옵소서. 천성에 이르도록 아버지, 우리 신앙을 이끌어 주시옵소서.
이제는 우리를 사랑하시고 천성까지 인도하실 우리 아버지 하나님의 놀라우신 은혜와 우리를 위해서 자기 생명을 버리시면서까지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랑과 우리를 넘어질 때마다 다시 일으켜 주시고
날마다 새 힘을 얻게 하시는 성령 하나님의 감화 감동하심이 오늘 이 말씀을 듣고 예수 그리스도를 진정한 나의 구주로 영접하기로 결심한 주의 성도들 위에 이제로부터 영원토록 언제나 함께해 주시기를 우리의 구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