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재미, 문(門)의 미학
나는 요즘 춘천 서면지에 실을 민속신앙과 설화에 대한 글을 쓰고 있다. 옛 기록을 찾다가 상촌 신흠(申欽, 1566~1628)의 글을 접하게 되었다. 재미가 참 좋다. 정말 쏠쏠하다. 이 시간만큼은 마치 내가 신흠과 같은 시공에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좋은 사람들과 같이 있을 때, 그 느낌 그대로다. 그 가운데 오늘은 신흠의 인생삼락(人生三樂)을 따라가 본다.
그러고 보니 신흠을 만나 적은 꽤 오래되었다. 몇십 년 전, 춘천을 대상으로 노래한 작품을 찾다가 신흠을 만나게 되었다. 오늘 또 신흠의 글을 읽으면서 순간 나는 천인합일(天人合一, 자연과 인간이 하나 되다)의 경지에 오른 듯 황홀했다. 그 글들이 어찌나 절절한지 마치 신흠이 옆에 있는 듯하였다. 글을 통해 만나는 옛 선비와의 대화는 그렇게 나를 감동하게 했다.
산촌(山村)에 눈이 오니 돌길이 무쳐세라
시비(柴扉, 사립문)를 열지마라 날 ᄎᆞ즈리 뉘 이시리
밤중쯤 일편명월(一片明月)이 긔 벗인가 ᄒᆞ노라(상촌 시조)
어쩌면 신흠과 자연이 이렇게 조화로울 수 있을까? 글을 읽는 재미는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으리라. 내가 신흠의 글을 읽으면서 신흠의 경지를 같이 누리듯, 신흠도 다른 이들의 글 또는 자신의 옛글을 읽으면서 나와 같은 심정이었을 것이다. 그는 세 가지 즐거움을 상촌집<야언(野言)>에서 말했다. 감상해 보자.
閉門閱會心書(폐문열회심서) 문을 닫고 마음에 맞는 책을 읽는 재미
開門迎會心客(개문영회심객) 문을 열고 마음에 맞는 손님을 맞이하는 재미
出門尋會心境(출문심회심경) 문을 나서서 마음에 맞는 경계를 찾아가는 재미
此乃人生三樂(차내인생삼락) 이 세 가지야말로 내 인생의 세 가지 즐거움이다.
신흠의 인생삼락(人生三樂)은 글을 읽고, 사람을 만나고, 여행을 떠나는 즐거움이다. 이 모든 것은 풍요로운 생활 자체이면서, 참삶의 가치를 찾는 사유의 시간이다. 누구나 누리고 싶은 최고의 즐거움이다.
그러고 보니 상촌에게는 문(門)이 모든 사유와 행동의 경계였다. 문을 닫으면 혼자만의 공간, 문을 열면 만남의 공간, 문을 나서면 나그네의 공간이었다. 정말 문은 자아(自我)와 세계(世界)의 소통과 차단을 동시에 만들어낸다. 그 때문에 문은 커다란 통로이면서 장벽이었다. 개방하면 통로가 되고, 차단하면 장벽이 된다. 신흠은 그의 삼락을 문이라는 특수한 구조를 통해 사유하는 방법을 알았다. 위의 시조에도 시비(柴扉, 사립문)라는 산촌의 문이 나온다. 역시 문이 이 시조의 중심어이다. 그는 자연과 소통하면서 인간과 자연의 문을 활짝 열었다. 그 결과 천인합일의 경지에 이르게 되었다. 내가 자연이요, 자연이 곧 내였다. 어찌 문을 닫고 이 경지에 이를 수 있었을까? 그러나 글을 읽으면서 자신을 돌이켜 볼 때는 신흠도 문을 닫았다. 깊은 통찰이 필요한 시간이었다.
문(門). 그렇구나. 문을 열면 행동의 변화를 맞이하고, 문을 닫으면 갇힌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치 또한 이와 다를 게 없다. 즐거움은 인생 최고의 화두(話頭)이다. 이 화두를 깨치고, 누리는데 즐겁게 사는 것보다 더 나은 게 없다. 다만, 그 즐거움은 장벽 없는 사유와 바른 행동이 따라야 한다. 신흠이 삼락을 정한 데는 그만한 원인과 그 원인에 따른 고통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화두를 깨친 단어는 즐거움이었고, 그 즐거움은 마음의 문을 여닫는 데서 비롯했다. 힘든 오늘 이 순간, 우리도 마음의 문을 여닫는 재미를 느껴보면 어떨까.(이학주, 2023.6.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