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코너]<6495>어머니의 姓
발행일 : 2004.09.15 / 여론/독자 A34 면
▲ 종이신문보기
아버지의 성을 따르게 돼 있는 현행 민법을, 부부 간에 합의되면 어머니의 성도 따를 수 있도록 고치겠다는 보도가 있었다. 성에 있어 남녀평등의 진일보랄 수 있다. 난혼(亂婚)으로 모계사회가 불가피했던 고대 중국의 팔대성(八大姓)을 보면 강(姜) 희(姬) 원(嫄) 사(사) 영(瀛) 등 8개성 모두가 계집녀(女)변인 것으로 미루어 어머니의 성이 판칠 수밖에 없었다.
부권사회가 자리를 굳히면서 어머니의 성은 예외적인 경우에 계승됐을 뿐이다. 이를테면 김수로왕은 허왕후와의 사이에 아들 열을 두었는데 어머니 성을 보존하기 위해 두 아들에게 허(許) 성을 허락, 그중 한 분이 김해 허씨의 시조요, 한말의 의병장 허위(許蔿)가 그 후손이다. 동성(同姓)혼이 자유로웠던 삼국시대나 고려시대에 이를 악덕시했던 중국의 눈치를 살펴 왕실에서 임금의 어머니들이 성을 타성으로 바꾼 사례는 많았다. 신라 소성왕의 어머니 김씨가 그의 아버지 김신술의 신(神)자를 취하여 신(神)씨로 개성한 것이라든지, 고려 혜종이 공주를 자신의 아우에게 여의면서 공주의 성을 황보(皇甫)씨로 바꾼 것 등이 그것이다. 조선조에서는 천민인 노비 출신의 자녀는 어머니의 성을 따른다는 종모법(從母法)으로 계급안보를 위해 어머니의 성을 악용하기도 했었다.
성(姓)을 독점하는 부권의 횡포 측면에서 한국은 선진적이다. 서양이나 일본 여자들은 시집 가면 자신의 본성을 잃고 남편의 성을 따라야 한다. 곧 모계의 피가 부계의 혈통 속에 소멸돼 버린다. 관습적으로 이름마저도 소멸, 미시즈 아무개로 남편의 부속 호칭으로 예속돼 버린다. 그래서 미국과 일본 여권운동의 하나로 성(姓)의 노예로부터 해방이 쟁점이 돼왔다. 중국만이 합의에 따라 어머니 성도 따를 수 있게 돼 있는데, 관행과 부딪혀 갈등이 잦다. 연전 허난성에서 있었던 일로 4형제 중 아들을 못 낳는 형 셋이 있는 유남(劉男)과 무남독녀인 원녀(袁女) 사이에 아들이 태어났는데 가문을 단절시키고 싶지 않은 양가의 갈등으로 유남이 원녀를 찔러 죽이고 자살하는 비극이 일어났었다. 성의 평등으로 파생될 가족 간 갈등이나 이간을 둔 다각도의 연구가 선행돼야 한다고 본다.
kyoutaelee@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