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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게시글
좋은 책을 읽고서 스크랩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
빗쏠이 추천 0 조회 198 09.02.17 01:22 댓글 15
게시글 본문내용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

                           로버트 제임스 윌러 지음  /공경희 옮김

                           1993년 5월10일 초판 인쇄

                           발행처  (주)시공사  / 발행인  전재국      

                           등록번호 / 제 3-248호. 등록일자 1989년 5월10일 

 

 

                            

영화 속의 한 장면

메릴 스트립(여)과 클린트 이스트우드(남) 

 

 

 아마...10년 전 쯤 되었지 싶다.

 진짜 볼만한 책이 아니면 나에게 보란 말을 하지 않는 친구가 전화를 걸어왔었다.

 요즘 서점가에 한창 뜨는 책인데 아직도 안 읽어봤냐며 ....

 

그때...그 당시. 이 책을 읽는 동안 내내 나의 심장이 마구 뛰었었다는 걸 고백하자.

프란체스카와 킨네이드의 사랑이주는 신선한 충격.

러브칵테일이라는 도파민 분비시기를 넘겨버린 현실의 나와 무관치 않았다는 것도 이유가 되었겠지만,

작가 제임스 윌러의 깔끔하고 정갈하고 세련된 문체에 사로잡혀버렸던 그때.

속된 것을 속되다 말하면, 말하는 사람이 더 속되게 보일 만큼 완벽한 아름다움으로 카버된 러브스토리.

그 다음은 생각하고 싶지 않을 만큼 두사람의 인생이 나의 마음을 끌어당겼고

지상에 마지막 남은 행복이 있다면 바로 이런 게 아닐까 하는 쪽으로

극단의 감성과 흔들리는 이성이 만나 타협을 했었다. 

 

그랬다. 그런 생각을 했던 때로부터 벌써 10년이란 시간이 흘렀나보다.

유치하고 좀은 쑥쓰럽다.

이 책을 다시 한번 휘저어 놓고 싶다는 생각에 묻어온 콩고물 같은 이 느낌, 말이지!!!

 

그는 언제나 나와 같은 방향을 바라보던 사람이었다.

그와 나의 사고가 소설 속 두 사람의 러브스토리를 놓고 갈리고 있다는 사실에서 온

신선하고도 놀라운 충격에 이어진 생각들을 적어보고 싶었다고 할까?

지인의 숨결을 몰래 엿보다가 붉어졌던 얼굴에서 핏기가 가시기 전에 살짝 그리고 슬그머니.  

  

알다시피 <메디슨카운티의 다리>는 로버트 제임스 윌러가 쓴 실화소설이다.

사진작가 로버트 킨케이드와 가정 주부인 프란체스카와의 나흘간의 사랑을 그린.

남편이 아닌 다른 사람을 가슴에 갈무리하면서도 규율과 제도 속에 묵묵히 가정을 지킬 줄 아는 사랑스럽고 정숙한 프란체스카. 소설이 아니라 현실이라도 충분히 이해해 줄 수 있고, 갖고 싶을 만큼 아직도 마음이 짠하다고 하는 지인의 말. 순간의 사랑만으로도 평생을 견딜 수 있는 여인의 사랑은 정숙하다는 단어에 흠집을 내지 않는다는 의미였을까?

 

그래. 

누군가를 사랑하지 않고는 세상을 살아내기 힘든 게 지상에서의 삶이라는 점을 인정한다. 

그 사랑의 힘으로 누군가는 직장에서 돈을 벌고,  

그 사랑의 힘으로 누군가는 책임과 의무로만 유지되는 빛바랜 일상에 충실할 수 있는 힘을 얻기도 하고,

편협하고 옹졸했던 마음이 그 사랑의 힘으로 넓은 아량과 여유를 갖게 되기도 할 것이다.  

홀로 남겨진 것만 같은 짙은 고독함이 밀려 올때도

그 사랑만은 유일하게 그 고독을 밀어내 줄 수 있을 것이다. 

 

자유를 주자.

그런 사랑은 이성으로 막을 수 있는 게 아닐 것이므로 

사랑이 와서 머물다 가도록 통로를 열어놓고  

흘러들어오는대로, 또 조용히 흘러가도록 길을 내어주고

그 혼이 자유롭게 모든 느낌과 싸우면서 인생을 키워갈 수 있도록.

 

이런 사랑에 

윤리나 도덕, 제도나 관습의 잣대를 들이대는 일은 얼마나 재미없고 잔혹한 일일까.

그런데도 나는 왜 두 사람의 사랑에 세미한 눈금의 자를 대어보려 하는 걸까. 

단순히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함께했던 두 사람의 그날이

영혼의 깊은 곳으로부터 진정 자유로울 수 있을까 하는 날선 질문을

두 사람을 향해 던지려 하는 나의 저의. 윌러의 그 사랑이 메말라 버린 중년의 방기일까.

 

진정 허다한 허물이 덮어 질 수 있을까. 사랑이라는 이름 안에선?

존슨과 함께 했던 그 침실에서

프란체스카와 킨케이드가 함께 누워있는 씬이 정갈한 언어로 치장되고, 

그것이 삶을 삶이게 하는 원동력이었다는 걸 말하려는 작가의 의도에 속아

우린 잠시 착시현상까지 일으키고 있진 않았었나?  아닌가?

 

어느 날, 남편이 없는 사이 한 남자가 침실에 들었었다- 요약하면 이렇다.

하지만 어떤 우아한 언어로 옷을 입히면 그건 단지 지고지순한 사랑일 따름이다.  

 

한때, <애인>이라는 드라마가 대한민국 기혼 여성들의 마음을 흔들어 놨던 적이 있었다.

그때 결혼한 여자들 중 그런 사람 한 둘 쯤 있는 것은 흠이 아니라 자랑이었을 거였다.

하지만 우리의 눈과 귀는 심장의 피와 무관하지 않아서 그렇게 이성적이고 냉정치 못했고,

오히려 감성에 더 끌려갔고,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탈선의 정당성을 설명할 기회를 얻었었다.

 

<사랑을 그대로 지나가게 하고, 행복해지는 의무를 소홀히 한, 핑계와 편법으로 살아온 당신을 고발합니다.  이 사랑의 이름으로. 당신은 사형에 처해지지 않을 수 없을 것이오. 당신이 고독에 처해지도록 선고를 내리는 바이오.>

 몇년 전. 무작위로 발송된 메일 하나를 열자 산똘마니또 글씨체의 깜찍한 말들이 나를 향해 쏟아졌다. 고독에 처해지기 두려워 사랑도 하고, 유희를 원한다는 그 당당한 변론에 반론도 공감도 하지 못한 채 나른한 시간에 떠밀려 왔던 것은 유감이 아닐 수 없다. 지면과 넷상에 떠도는 아름다운 말들때문에 나는 아직도 가끔 어지럽다.

생각해보면 누구나 있을 법한, 학창시절에 좋아하던 대상이 지금까지 마음속에 아련한 그리움으로 남아있는 것은 사랑으로 건너가기 전 우정의 청순함 때문이리라. 도파민은 3년 정도가 그 수명의 끝이라지만, 우정엔 시효가 없기 때문이리라. 나이가 들어 갈수록 우정을 나눌 친구가 절실해지는 건 성숙한 삶의 요구가 있기 때문이다. 그 우정은 천명을 거스르지 않고도 가질 수 있어 행복하다.

 

스토리디자이너가 디자인하는대로 만들어진 옷을 그대로 입어선 안 된다.

작가의 의도에 비판없이 슬쩍, 의식 그 하부를 내어주는 건 20세기를 살아온 우리들 답지 못했다.

그때 이 책은 영화로 제작되었고, 다시 많은 이들의 영혼을 혼미케 만들어 놓는 동안

음지의 독버섯은 화려한 옷을 입고 아스팔트를 뚫고 시내 한복판에 피어났으리라. 

독신으로 평생 살아가는 킨케이드때문에 그들의 며칠은 더욱 더 미화되었고,

때문에 이의를 제기하고 물음표를 그려보려는 시도조차 비방과 지탄의 대상이 됐었다. 

 

사랑, 그 좋은 사랑. 진정 아쉬움이 있다면  

3일 간의 사랑이 침대에서만 이루어지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걸.

그렇다면 그건 사랑이 아니라 우정에 불과한 거라고 우긴다면 뭐라고 답해줘야 할까?

사랑을 하되 그 색감이 다르고, 온기가 다른 사람과 사랑을 하고 싶다고...그래야 살 수 있을 만큼 생활이 고달프고 재미없다고 절실하게 물어오면 그때 나는 어떻게 대답해줘야 할까?

그 죄를 고독하게 출발한 인생에만 지울 것인가? 

 

소설 속 두 사람은 아름다웠고, 진실했고 세상도 그들을 용서했다,

하지만... 그렇지만 깊은 곳에선 불빛 하나가 꺼져갈지도 모른다. 

사랑이라는 이름의 독선적인 시선으로 행복을 설명하고 규정하려는 모든 시도를 검토하고 거부할 줄 알아야 하는 연유는 바로 이런 것 때문이었다. 

때론 감성보다 이성을 선택할 줄 아는 용기.

때론 즐거움보다 슬픔과 고독에 자신을 내어주고, 

때론 기쁨보다 고뇌를 선택할 줄 아는 만용(만용이래도 좋다).

이런 것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인간에게만 주어진 아주 은밀한 특권일테니까.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함께 했던 두사람의 그 시간들.......행복한 건 분명한데,

그렇지. 행복했던 건 사실인데, 그런데 그들은 무죄일까? 과연 그럴까? 

 

아이러니하게도 같이 산다는 건 허다한 사랑을 지운다는 것과도 같을 지 모른다. 

그 사랑이 희미해지면서 사람은 책임과 의무로 다시 융합되어

동물과는 다른 면으로 살아갈 명분을 얻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격렬하지도, 시작만큼 애틋하지도 않다하여 가치까지 하락하는 것이 아니라면

아름다운 문체와 표현의 세밀함이 책의 수준을 말해주는 것과는 별도로 

그 중심에 흐르는 인물들의 삶에 대한 평가는 읽는 우리들 독자의 몫인 것을 잊지 말자.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소설에 많은 점수를 준다.

깔끔하고 군더더기 없는 문체. 그리고

통속적인 스토리를 우아하게 끌어올려 많은 이들의 공감을 이끌어내도록 그려 낼 줄 아는 것은 분명 작가의 역량에 속할 것이기에. 

하지만 여전히... 

픽션이든 난픽션이든 프란체스카라는 한 여인을 해부하는 칼은 날카롭게 칼날을 갈고 싶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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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작성자 09.02.17 01:29

    첫댓글 오래 전 한 때 많은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책이 문득 생각나서 비판을 가해 봤습니다. 읽기를 권하고픈 책은 아니지만, 알아두면 낙제는 면할 지도 모른다는 염려아닌 염려를..... 참되고 정신차린 말을 못하고 물러가옵니다.

  • 09.02.17 15:10

    신앙적이 사랑에 견주어 동물적이라면 너무 비하된 말일까? 승화 하기도 불가능 하지만 승화 하기전의 인간 본연의 사랑은 있을 수 있으며 우리 모두가 위선의 굴레를 벗어 버리면 그중에 가끔씩은 골라내서 세탁하고 다림질 하여 꾸며 보고 싶은 의복 들도 있음직 하다 독자의 감명에 어느 정도 수긍이 간다.나 또한 벗으면 때가 죄린 몸둥이도 있다. 다만 옷을 입고 있을 뿐이다.

  • 작성자 09.02.17 10:57

    남녀가 금지된 사랑을 나눴는데, 구약시대엔 여인에게만 그 중한 죄목이 지워졌던 걸 기억합니다. 아마 제가 남자였다면 이런 글에도 칼질이 많이 필요했을 거예요....ㅋ...생각은 자유니까요.

  • 09.02.17 10:12

    발행인 '전재국'이 前 대통령 '전두환'씨의 아들이 맞지요?

  • 09.02.17 19:30

    '중년' 사랑 이야기에 '노년'은 감히 못 끼일 터이기에 딴전을 부렸더니만, 웬 딴지세여? 하기야 이 책(원작) 영화에서 감독과 주인공을 겸하여 맡았던 '클린트 이스트우드'도 6학년 3반 때의 작품이더만여~. 그런데 '邪戀'을 제아무리 '美化' 시켜도 '사랑'이 될 수는 없는 노릇이어서 읽을까 말까?

  • 작성자 09.02.18 08:18

    느디님도 참^*^ 우리의 영과 혼에 관련된 얘기잖아요. 늙어가는 건 겉모습이지 혼이 아니기에 넉넉히 참여하셔도 되실줄 아옵니다.

  • 작성자 09.02.18 08:29

    죄송합니다 느디님....제가 쓴 답글 다른 걸 수정하려다 그만 실수로 먼저 올린 답글을 지웠네요. 찾을 수도 없고....(네...장남 재국. 하지만 여기선 두 사람의 러브스토리에 방향을 맞춰주심 어떨까요? ) 이렇게 제가 댓글을 달았었던 가요? 죄송..휴~~

  • 09.02.17 11:49

    빗쏠이님은 마음이 너그러우신듯^^ 사진작가 로버트 킨케이드에게는 칼 날을 안 내미시고? 물론 "프란체스카라는 한 여인을 해부하신다"고 공표를 하시네요 . "경계의 목적은 청결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거짓이 없는 믿음으로 나는 사랑..."이 말씀이 떠오릅니다.

  • 작성자 09.02.17 15:16

    수국님께서 잘 지적해 주셨어요. 글을 다 써놓고 보니 그 남자도 있었네요. 늘 그랬듯이 남보단 나 자신에게 참 모질죠. 프란체스카. 그녀와 내가 다 여자라는 거 때문에 그랬었나봐요. 누가 킨케이드에 대해서도 한마디 해줄 수 있을 거예요. 한 사람만 해부하는 데도 힘이 다 소진되고 말았어요 수국님.

  • 09.02.17 22:28

    이 작품은 영화로만 보았는데, '빗쏠이'님의 서평(書評)이 더 실감 나네요.(역시 작가적 기질이 다분 하십니다^^) 인간적으로 주인공들의 사랑이 나름 진지해 보이긴 했어도, 사랑의 본체이신 하나님, 그 분의 사랑을 빠진 인간의 사랑은 언제나 불완전하고 문제가 있어 보입니다.

  • 작성자 09.02.18 08:29

    백합님도 이런 영화 보시는구나 ?ㅋㅎ (*_*) 하나님만으론 현실감이 잘 안 느껴지니까 많은 사람들이 피부를 스치고 싶어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봐요. 인생에서 그 사랑을 빼면 너무 삭막해서 못살겠지요? 그림자일지 언정...

  • 09.03.06 23:37

    나의 영에 하나님의 사랑이 필요하듯이 육신이 느끼는 사랑이라는게 정욕적이 될찌라도 완전히 무시할 수 만은 없다고 자인 합니다. 사랑은 삶의 원동력인데 사람의 사랑은 가다 보면 실망해 버리니까 힘이 빠져 그만 지쳐 버리는 거죠. 한계라고 할까요.

  • 작성자 09.03.08 14:22

    사랑하는 감정은 마음에서 마음으로 흐르는 거라서 막을 수도, 막을 길도 없을 거예요. 누가 생각이 흘러가는 길을 차단할 수 있을까요? 하지만 그 사랑의 감정들이 행동으로 옮겨 가는 곳 어느 지점에서 절제와 조율의 통제를 받느냐 하는 문제가 우리들의 관심사가 될 거 같아요. 꿈사랑님...제 생각이예요 *^^ 오늘은 따뜻한 봄날이네요 건강하시지요?

  • 09.03.08 19:58

    예 염려해 주시는 성도님들의 기도가 주님께 상달되어 날로 건강이 회복되어 가고 있읍니다. "마음에서 마음으로 흐르는 사랑.." 사실은 저는 사람과의 신나는 사랑 이야기가 없네요. 남 들 이야기나 듣고 <로미오와 줄리엣> 같은 사랑을 꿈꾸고 했지요. 주님의 사랑을 알고 나서도 육신은 있기에 여전히 그런 욕심은 있었는데 남편과 그런 사랑 해 보려고 노력했는데 안 되었고 도리어 주님께 책망받고 제가 주님의 사랑에 만족 할 줄 모르는 음녀라고 고백해 버리고 주님 앞에 고개 숙였읍니다. 그런데도 가끔씩 또 고개를 쳐 드는 걸 보면 저는 어쩔 수 없는 사람인가봐요.

  • 작성자 09.09.29 13:02

    사람끼리의 사랑도 육신을 입고 있는 동안은 우리를 걸어가게 하는 요소 중의 하나가 아닐까요? 꿈사랑님. 하지만 결혼을 하고 나면 그 사랑은 배려와 책임과 의무로 대체되고 그 가운데서 인간의 사랑보다 더 깊은 하나님의 사랑을 알아가는 데로 우린 인도받고 있어요. 그리고 마음은 늘 청춘의 시절을 넘어가지 않고요. 늘 평안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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